2번째 트랙은 역시나 예상대로 듣기 버거웠고, 이 앨범을 끝까지 들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 번째 트랙을 들을 때, 난 이 앨범의 진가에 대해 깨닫기 시작했다.
이 앨범을 볼 땐, 같은 곡을 여러 버젼으로 만들었다기보단, 앨범 전체가 하나의 곡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게 맞다. 이 앨범을 한 곡으로 보자면, 이 곡은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가속하는 형태를 띄고 있다. 보통 이러한 동일한 구조를 반복하며 끊임없이 가속하는 한 곡같은 앨범은 곡이 시작부터 끝까지 유기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마라탕후루는 비범하게도 개별 곡 안에서의 맥락만큼이나 앨범의 전체 흐름조차도 와해되어있다. 이러한 기괴한 구조 위에 영포티 냄새나는 의미없는 악곡과 가사는 피치를 올려가며 더욱 아무도 듣지 않는 매아리가 되어간다. 이처럼 앨범 자체가, 모든 부분이, 하나도 빠짐없이, 한 음 한 음, 한 마디 한 마디가 의미 없는 앨범이 세상에 존재했던 적이 있는가? 무조성, 즉흥성, 불규칙성의 끝판왕 하쉬노이즈 뮤지션들도 이러한 거대한 무의미는 구현해내지 못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이러한 거대한 무의미에 다가가는 데에 거의 성공했으나 아쉽게도 작품성을 챙겨버렸다. 그러나 이 앨범은 일말의 음악성조차 말소된 채로, 순수한 무 그 자체가 된다.
이 앨범의 이러한 무 상태는, 상징적인 의미를 제외하고 앨범 내에서도 큰 작용을 한다. 내가 앨범을 들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초월적 경험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이 앨범은 5억년 버튼과 같은 역할을 한다. 앨범의 존재가치를 완전히 부정함으로서, 청자는 15분의 끔찍한 무의미 속을 마치 5억년처럼 방황하게 된다. 청자는 눈 앞에 있는 푸짐한 똥을 먹어야 할 때, 똥맛이 느껴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딴생각을 하는 상태가 된다. 5억년간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철학적이고 초월적인 사유를 단 15분만에 얻을 수 있는 경험을 하게 해주는 앨범이라는 것이다. 즉, 이 앨범은 단순히 앨범의 무의미성만으로도 앨범 자체로도 큰 가치를 지닌다. 바로 5억년간의 기억이 제거되지 않는 5억년 버튼같은 가치를 말이다.
5억년 버튼에서 기억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아무도 버튼을 누르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앨범을 들으면서 느낄 수 있는 초월적 경험은 인간의 범위를 벗어나므로, 나는 살면서 두 번 다시 이 앨범을 들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러고 내가 실수로 또 초월적 경험을 하여 심적으로 광기에 둘러싸이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이 앨범과 비슷한 류의 앨범은 다시는 나오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을 보는 이들 중,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초월적인 경험을 하고 싶거나, 세상의 진리를 깨닫고 싶은 이들은, 이 5억년 버튼을 꼭 눌러봐야 할 것이다.
5/5
서이브-마라탕후루
하다하다 5억년버튼 ㅋㅋ
근데 저거 레이팅하려고 15분 가만히 듣고있는동안 진짜 온갖 생각이 다 들었음
걍 레전드앨범
https://rateyourmusic.com/artist/xaev
이 서이브는 음악 ㅈㄴ잘함
달이야코어는귀가아파요
탕후루론 또 나왔네 이정도면 거의 난제급
근데 글은 흥미롭네요 생각해보니 마라탕후루의 모든 순간이 쓸모 없는건 정말 엄청난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라탕후루가 진정한 앰비언트(환경음악)이다
확실히 생각해보면 한 노래의 배속과 inst 만으로 ep를 구상한 건 매우 파격적인 것이긴 함
근데 그 의도가 ㅅㅂ 너무 뻔해서 역한 것일뿐
미래에 숏폼이라는 개념이 사라진다면 이 앨범은 그때가 되어서야 재평가될 것
림에 적혀있는 리뷰랑은 내용은 같은데 꽤나 다르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딴 노래의 inst곡을 만드는 역대급 야마ㄷㄷ
첫문장 보고 바로 곡 맞춰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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