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k Floyd - Wish You Were Here
I. "So, so you think you can tell..."
그날, Pink Floyd는 연주하지 않았다. 그들은 기억했다. 지나가버린 사람들, 사라진 순수함, 죽어버린 혁명, 그리고 자신들 스스로조차 믿지 못하게 된 시대를.
『Wish You Were Here』은 곡을 연주하는 대신, 잿빛 인간성을 불태운 재만을 손에 쥐고 노래한다. 이 앨범은 '듣는다'는 행위보다도, '잊어버렸던 상실을 재경험하는 고통'에 가깝다.
"Can you tell a green field from a cold steel rail?" —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냐고 묻는 이 첫 질문은 이미 청자에게 남은 일말의 순진성조차 비웃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팔아버렸다. 뜨거운 심장을, 치기 어린 믿음을, 세계를 바꿀 수 있을 것만 같던 착각을. "How I wish, how I wish you were here" — Roger Waters의 목소리는 한 마리 학처럼 가늘고 슬프다. 그러나 그 울음은 연민이 아니다. 그것은 체념이면서 동시에 배신의 낙인이다. "너도 없고, 나도 없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인류는 그렇게 모든 유토피아를 스스로 불태우고, 회색 공허 속을 맴도는 자멸적 존재로 퇴락했다.
II. Shine On You Crazy Diamond — 불멸할 수 없는 영혼을 위한 진혼곡
『Wish You Were Here』은 한 사람을 위한 영원한 묘비이다. 그 이름은 Syd Barrett. 『Shine On You Crazy Diamond』는 총 9부에 걸쳐 퍼지는 거대한 서사시이며, 그 서사시의 주인공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육신은 잃었지만, 정신은 다른 차원으로 이탈해버린 친구. Floyd는 그를 애도하는 것도, 구원하는 것도 거부한다. 그저 광기의 순수성을 기억하려 한다. 그들이 포기해야 했던 순수함의 조각을, 끝내 껴안지도 못한 채, 미련과 죄책감의 바다에 띄운다. "Come on you target for faraway laughter..." Syd에게, 그리고 모든 너무 일찍 순수함을 잃어버린 자들에게 바친다. 미친 다이아몬드는 빛나는 법을 모른 채 빛났고, 바래지 않은 채 죽어갔다. Floyd는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통곡하는 대신, 기억한다. 그리고, 자신들 역시 다이아몬드처럼 닳아가고 있음을 인정한다.
III. Welcome To The Machine — 꿈을 삼켜버리는 문명
어느새 우린 머신 안으로 들어왔다. 태어나자마자 번호를 부여받고, 성공이라는 전제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 주입된 허울뿐인 꿈을 쫓는다. 『Welcome To The Machine』은 음향적으로 공포다. 차갑게 윙윙대는 신디사이저는 기계가 아닌 인간의 목구멍 안에서 자라나는 패배감을 상징한다. "Where have you been? It's alright, we know where you've been" — "너는 어디에 있었니?"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이미 시스템은 우리를 알고 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가 무엇을 사랑할지, 무엇을 포기할지, 어떤 방식으로 타락할지. 『Wish You Were Here』은 이런 운명론적 패배를 끔찍할 정도로 차분히 묘사한다. 이 앨범은 싸우지 않는다. 항변하지도 않는다. 그저 비명조차 삼킨 채, "우리는 이미 패배했다"라는 통렬한 인식을 한 채 흘러간다. 그것이 이 앨범이 끼치는 진정한 공포다. 항상 무언가를 비판하려 애썼던 그 시대의 음악과 달리, 『Wish You Were Here』은 아예 희망을 말하기를 포기했다. 그저 거대한 머신 안에 갇힌 우리 모두의 가련한 신음을 기록할 뿐.
IV. Have a Cigar — 산업, 탐욕, 그리고 예술의 죽음
"Which one's Pink?" 음반산업계 거물들이 Pink Floyd를 가리켜 던진 모욕적 질문이다. Pink가 누구냐고? 예술을 짓밟은 자들은 예술이란 존재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음악은 단순한 상품, 히트 차트를 장식할 또 하나의 번호표일 뿐이었다. 『Have a Cigar』는 비웃는다. 가식적인 환대, 계약서 속 위선, 모든 것을 돈으로 환원하는 세계. 거대한 비웃음이다. 이 곡은 가요도 아니고 록도 아니고 재즈도 아니다. 그저 하나의 분노다. 문명에 기생해 예술을 죽이는 모든 자들을 향한, 맹렬한 저주다.
V. 시대를 뒤엎는 건 결국 부재다
『Wish You Were Here』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앨범이다. 부재하는 친구, 부재하는 순수함, 부재하는 자유, 부재하는 인간성. 이 앨범은 희망을 노래하지 않는다. 저항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저 폐허 위에서, 손가락 끝으로 남은 재를 문질러본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세계를. 그런데, 텅 빈 공허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잊고 있던 무언가를 비로소 되찾는다. 그것은 비겁하게 살아남기 위해 잃었던 자신의 심장 소리다.
『Wish You Were Here』.
당신이 이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여기에 있으니까.
그리고 아무도 없으니까.
너도 여기 잇으면 좋앗을 텐데..😢 명반입니다 개추
서사시의 주인공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육신은 잃었지만, 정신은 다른 차원으로 이탈해버린 친구.
육신은 현실에 존재하고 정신이 이탈한거 아닌가요...?
핑크 플로이드의 사상은 20세기 실존주의 철학, 특히 장 폴 사르트르와 알베르 카뮈의 철학과 놀라울 정도로 맞닿아 있어요. 실존주의는 생물학적 생존을 '존재'로 보지 않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깨어 있는 의식과 자아를 유지하는 것을 뜻하죠. Syd Barrett의 육신은 여전히 현실에 존재했지만, 핑크 플로이드에게 중요한 건 '그가 어떤 존재였는가' 입니다. 그가 스스로를 인식하고, 세계와 관계를 맺고, 창조하고, 사랑했던 정신이 무너졌기에 핑크 플로이드는 그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낀 것이죠. 육신은 껍데기에 불과할 수 있으나 존재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정신과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또한 핑크 플로이드가 느낀 다른 종류의 상실감을 강조하기 위해 문장에 대비를 주었습니다.
아 실존주의와 관련되어 있군요
저도 알베르 카뮈는 참 좋아합니다
이게 묻히나.. 일단 개추 누르고 갑니다 헤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