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우리의 목표는 생존이 아니라 삶이다. 삶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모비 딕에서 한 에피소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바로 도블론 금화와 관련된 일화이다. 항해 중 선원들은 금화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들은 금화에서 무엇이 보이는 지 이야기한다. 에이허브 선장은 본인을 본다. 그 밖에 여러 선원들은 각자 다른 것들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핍이다. 가련한 흑인소년은 미쳤다는 취급을 받는다. 그가 금화의 그림을 읽고 남긴 말을 보자.
'나는 본다. 너는 본다. 그는 본다. 우리는 본다. 그들은 본다.'
핍은 그들 모두가 보고 싶어하는 것을 본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 그가 지적하고 있는 것이 그 사실이다. 철학자 칸트는 우리가 물자체라는 사물의 본질에 도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멜빌의 모비 딕 속 바다의 고래 모비 딕 역시 그런 존재다. 모비딕 서두에 인용된 문구들은 과학적이면서도 신화적이다. 모비딕 역시 모호하고 다중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때때로 그는 그냥 거대한 고래 같다가도 어떨 때는 초자연적인 악마 같다.
그러니까 모비딕은 삶, 혹은 우주의 질서에 가깝다.
그 삶에 대해서 우리는 궁극적으로 무지하다는 것을 멜빌은 이 에피소드로 보여준다.
소쉬르는 언어체계를 기표와 기의로 구분했다. 기표는 사과라는 단어이고 기의는 사과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과일이다.
기표와 기의의 불일치는 히치콕의 대표작인 현기증의 핵심이기도 하다. 현기증에서 중요한 이미지는 초록 조명 아래 검정 실루엣으로 표현된 마들렌의 얼굴 옆모습이다.
옆모습과 불명확한 실루엣은 스코티가 핵심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 두 작품에 공유되는 것은 어떤 환상이다. 예컨데 입센의 들오리에서 지적되는 것이다. 입센의 들오리에서 냉소적인 의사 레링의 대사가 말한다. 우리 인간은 삶의 진실을 견딜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베케트의 두 인간은 그저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견디고 있다. 베케트가 정의하는 삶이다.
그래서인가 체호프의 벚꽃동산의 마지막 피로스의 대사는 체호프가 늘 그랬듯이 삶의 진실을 압축한다.
'인생이 다 지나가버렸어. 많이 산 것 같지도 않은데'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삶의 진실은 삶이 보잘것없다는 슬픈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 무의미함을 못 견딘다.
하지만 이 사실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삶이 거대하다면 어쩌면 우리는 그 거대함에 압사할 수도 있다. 그래서 류노스케의 이 말이 있지 않은가. '삶은 성냥개비와 같다. 가볍게 다루면 위험하지만, 전전긍긍하면 우스꽝스럽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스꽝스럽지 않고 가볍지 않게 살 수 있을까.
픽사의 영화 소울은 그 해답을 준다. 삶은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다. 그리고 살아야할 이유는 없다. 삶 그 자체가 이유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주인공이 지하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은. 초반에 지하철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상이었지만 결국 후반부 그는 지하철에서 아름다운 일상을 만끽한다.
매일 매일은 고통이고 지루하다.
인생은 백치가 떠드는 이야기와 같아.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차 있지만,
결국엔 아무 의미도 없도다.
하지만 아무 의미 없다고 해도 상관없다. 의미를 불어넣으면 된다.
그리고 내일,또 그리고 내일이 돌아오는 것처럼 순간은 반복된다. 들뢰즈가 지적했던대로 차이 역시 그렇다. 바람이 봄을 실어나르는 감각은 반복되지만 그 해 봄과 지금의 봄은 다르다. 그 차이는 분명하다.
예컨데 차이의 반복이다.
어떻게 순간을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순간을 사랑하는 동안 멈출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기억할 수 있고 내 과거, 그러니까 내 정체성에 새겨서 반복시킬 수 있다. 그것은 반복되는 순간 차이를 발생시킬 것이고 거기서 삶은 다시 반짝인다
-넌 마치 신이 내게 보내준 선물이야. 신에게 따지고 덤비다가도 신이 너를 가리키며 '난 나쁜 것들도 많이 만들었지만 얘도 만들었지'라고 하면 나는 할 말 없어지는 거지.-
그런 순간이 우리를 살게 한다.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문화적 메타포가 많네요. 그 중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서 따온 구절이 인상 깊었습니다. ㅎㅎ
근데 궁금한건 굳이 엘이 종게에서 글을 쓰시는 이유가 있나요?
음 사실 순간이니 이런 것들에 음악을 듣는 행위도 포함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쓰는 음악 외의 글들도, 사실 음악과 예술이 선물한 순간들에 바치는 러브레터이거든요.
레퍼런스만으로 글을 다 완결시키는 게 이상향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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