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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앤트 메리 (My Aunt Mary) [My Aunt Mary]
시간은 때로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가치를 드러내곤 한다. 1999년 10월 발매됐던 마이앤트메리의 첫 앨범이 26년 만에 모든 음원 플랫폼에서 공식 서비스를 시작한다. 당시 스물세 살의 청년들이 만들어낸 이 음악들은 이제 한국 인디 음악사의 중요한 기록물로 우리 앞에 새로이 다시 선다.
1995년 겨울, 펑크 클럽 “드럭”에서의 공연을 시작으로 97년까지도 꾸준히 활동하던 이들의 주요 무대였던 “태권브이”는 새 주인을 만나 여전히 모던록 클럽의 성지로 회자되는 “스팽글”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강릉에서’와 ‘선데이 그리고 서울’과 같은 대표곡들은 정규 음반이 발매되기 전부터 PC 통신(천리안, 유니텔)이나 팬들에 의해 만들어진 다음카페를 통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다. 그렇게 마이앤트메리의 공연을 찾는 관객들이 서서히 늘어가며 이미 데뷔 앨범을 낸 델리스파이스나 언니네 이발관과 함께 주목을 받게 된다.
학업 문제와 군 문제 등으로 결성된 지 장장 4년 만인 1999년 독립 레이블 [강아지 문화예술]에서 이들의 첫 앨범이 발매된다. 밴드 스스로 프로듀싱과 레코딩까지 직접 해야 하는 녹록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마이앤트메리의 음악적 진로를 모색하던 중요한 당시의 11곡의 트랙들이 여기 담겨있다.
마이앤트메리는 처음부터 자신의 음악 스타일을 묻는 질문에 “그저 팝”이라 답했다. "그저 팝"이라는 간결한 말로 대신한 이들의 정체성 선언은, 당시 획일화 되어가던 록 사운드와는 다른 길을 걸어가겠다는 선명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윤상과 조지 마이클 등 이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뮤지션들의 감성을 녹여낸 '가족사진', '선회하지 않는 길', ‘꿈을 꾸나요’ 등의 곡들은 젊은 뮤지션들의 담대한 실험이자 진지한 탐구이다. 특히 기존 밴드 버전에서 어쿠스틱 솔로로 재해석된 '큐비즘에 관한 새로운 언급'은 그들의 음악적 진정성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공연 때마다 밴드 버전으로 선보이다 심플하게 정순용의 어쿠스틱 기타로만 녹음한 연주곡 ‘큐비즘에 관한 새로운 언급’에 대해 훗날 정순용은 그 당시엔 이 곡을 밴드 버전으로 앨범에 수록하기엔 음악적 연출력에 따른 내공이 아직은 부족하다 느껴 어쿠스틱 기타 한 대로 그 구성을 바꾸게 되었다고 했다.
이듬해 델리스파이스의 김민규가 설립한 레이블 [문라이즈]를 통해 정순용의 솔로 프로젝트 토마스 쿡의 첫 음반 “Time Table”을 발표한 이후로 밴드의 프런트맨에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입지를 넓혀가며 두 활동을 병행한다. 같은 시기 한진영은 노브레인의 세션으로 연주 활동을 이어간다. 2002년, 뒤이어 발매된 두 번째 앨범을 통해 더욱 스트레이트하고 록킹한 사운드를 선보이는데 여기에 베이스의 한진영과 드럼의 이제윤의 곡이 수록되기도 했다. 이 앨범을 끝으로 오랜 시간 함께 해왔던 이제윤이 유학으로 팀을 떠나게 되고, 이때 남은 두 멤버들이 먼 길을 떠나는 이제윤을 배웅하는 마음으로 만든 ‘공항 가는 길’이 수록된 세 번째 음반 ”Just Pop”이 2004년에 발표된다. 이 앨범부터 역시 고등학교 시절 절친이자 세션 드러머로 활동하던 테크니션 박정준이 새로운 멤버로 합류하여 지금껏 함께하고 있다. 레코딩까지 도맡았던 그 동안의 두 장의 앨범에서 DIY적 성격이 두드러졌던 반면 3집에 이르러서야 안정적인 레코딩 스튜디오부터 매니지먼트까지 얻게 된 이들이 음반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되자 드디어 마이앤트메리가 구현하고자 했던 음악적 시도들이 결실을 보게 된다. 2004년 한국 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음반상”과 “최우수 모던록” 부분을 수상할 만큼 평론가들과 대중들에게 큰 호응을 이끌어내면서부터 이제 마이앤트메리는 어느덧 매력적인 프로 뮤지션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게 된 것이다.
메이저 레이블인 [플럭서스]로 적을 옮긴 후에는 플럭서스 대표 김병찬의 프로듀스 아래 자사의 스튜디오에서 작업에 더욱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완성도에 심혈을 기울여 만든 두 장의 앨범이 “Drift”(2006)와 ”Circle”(2008)이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까마득히 모른 채 긴 여정을 떠났던 앳된 청년들은 어느덧 노련함까지 갖춘 뮤지션으로 한 단계 더 성장했음을 입증하며 순도 높은 그들만의 팝 사운드를 완성해 냈지만 “Circle”을 마지막으로 긴 시간 휴지기를 가지게 된다. 이 시간 동안 정순용은 토마스 쿡으로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한진영은 옐로우 몬스터즈와 클리쳐스, H A Lot,”TAE:A” 등 여러 밴드에서 활동을 이어가다 2022년 드디어 오랜 휴지기를 끝냈다.
2022년 재결성 후 새로운 음악을 발표하면서도 그들만의 팝 사운드를 놓치지 않는 마이앤트메리. 그 시작점인 이 앨범은 90년대 한국 인디 음악의 역사적 순간을 담은 타임캡슐이자, 한 밴드의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소중한 기록이다. 우리가 이 오래된 음반을 다시 듣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처음 듣고 꽂히는 음악이 있다면,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진심이 담긴 내 맘 같은 음악도 있는 법이다.
글 서준호 [a.k.a 지영민&볼빨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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