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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 '이것은 아마 마지막 꽃잎' MV

title: SCARING THE HOES그린그린그림2025.02.26 01:33조회 수 83댓글 0

https://www.youtube.com/watch?v=MYDPKB7JTZE

 

 

올겨울에는 눈이 많이도 내렸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한번 큰 눈이 내리면 하얗게 얼어붙은 채로 어지간해서는 녹지 않습니다.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저는 남쪽 태생인지라 추위를 많이 타지만, 눈 내린 후 지천을 덮은 상고대를 목격하기 위해서라면 잘 시간도 줄여가며 밤 산책을 나서곤 하였습니다. 때로는 밟을 수 있는 땅이 있고 걸을 수 있는 다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벅찬 경외를 느꼈습니다. 실존이라는 것은 일면 거창한 듯하여도, 사소한 체감의 그물 속에서 낚아 올리는 매 순간의 집합이 아닌가 합니다. 가끔 아무것도 꿈꾸지 않는 무위無爲를 상상해 보곤 합니다. 존재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삶과, 의미를 찾지 않아도 되는 영혼을 말이에요.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런 깨달음에도 기어이 가 닿게 되는 것일까요? 아직 젊은 채로 백발이 성성해져 버린 지금의 우리들은, 깨달아도, 깨닫지 않아도 안 되는 서글픔을 어깨마다 붙들어 매고 어스름을 걷는 세대입니다. 겨우 못 박아둔 마음이 찰나에 허물어지는 때가 올 때면 전 생애가,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고 진심으로- 진심으로 믿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깨진 그릇 안에도 노래는 청연히 고이고, 시혼은 어찌 그리도 공활히 내려앉는지요? 스며든 얼룩은 결이 되어 무늬를 이루고, 세월처럼 켜켜이 쌓이더니 시가 되었습니다. 단지 오늘에 이르기 위해 그 모든 시절이, 좌절과 혼란과 낙담과 웃음을 내포한 전 생애가 오롯이 필요했습니다. 흘러간 억겁과 다가올 억겁 사이, 기적 같은 인연으로 동시대에 태어난 우리라 하겠습니다. 우리가 나누는 것은 시대의 편린 그 이상이니, 서로의 이름을 만지고 생애의 굽은 궤적을 점점이 함께 이어갈 충직한 벗이자 정든 동지라 하겠습니다. 나의 놀라운 이여. 우리에게 아직도 충분히 이룰 시간이 있습니다. 그것 외에 우리가 가졌다고 할만한 것이 더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보다 값진 것이 있다고 한다면 달리 또 무엇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살아간다는 것은 곧 인내하는 것. 먼 숲의 우듬지가 마른 잎사귀 한 장 없이 초라한 이맘때라도, 땅 밑을 붙든 뿌리는 힘차게 뻗고 있음을 이미 다 알고 계시겠지요. 그리하여 늘 다시 피고 지는 운명을 쉼 없이 반복하는 것이 생애라 여기니 지치고 달뜬 마음도 한사레 놓였습니다. 속내 언저리에 얼어붙은 채 옅은 빛마저 모조리 난반사하던 의심도 불안도, 봄볕 아래 놓인 눈처럼 속절없이 녹아 흙으로 스몄습니다. 바람과 나란히 누워 가만히 귀 기울이자니 무언가 속삭여주는 듯한 좋은 때 있었습니다. 붙잡아 두었다가 한 자락 그려 보내니 이것으로 잠시나마 안온해지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심규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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