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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고

Parkta19582025.02.10 16:20조회 수 187추천수 4댓글 3

신은 죽었다.


누구나 아는 이 말은 무슨 의미일까. 니체가 건강 상의 이유로 글이 사변적이고 시적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확실히 니체의 몇몇 철학서는 일반적인 논문이나 학술서와 다르다. 일종의 에세이에 가까운 면이 있다.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대표하는 저 문장 역시 그 특성 때문에 이것이다 라고 말하기 어렵다. 내 짧은 식견으로는 저 뜻은 신으로 대표되는 절대적인 가치의 실종을 의미한다. 더이상 현대는 중세의 신과 같은 절대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야코보가 피히테에게 보낸 서신에 등장한 '허무주의'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니체는 이를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표현대로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 신이 죽었다는 말은 인간은 자유라는 말이다. 이제 인간은 본인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하고 의미를 발명할 수 있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재정의하고 나아갈 수 있다. 


이 때 우리는 이런 의문이 든다. 그게 가능해? 

 물론 더이상 종교는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선택의 영역이다. 하지만 법과 자본은 다르다. 그것들은 선택의 영역이기는 하나

사실상 반강제되어있다. 왜냐하면 모두 각자만의 기준을 가지고 살기에는 인간들은 다양하고 그 다양성에는 상충되는 요소들이 있어 갈등을 유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은 니체가 원하는 정도로 강하지 못하다. 그래서 우리는 법과 정의,인권,돈 이라는 우리가 믿기 때문에 존재하는 허구의 가치를 발명했다. 다른 의미로 여전히 신은 살아있다. 푸코의 지적대로 우리의 생각은 여전히 권력구조의 영향 아래에 있다.

 

니체의 주장이 가지는 근본적인 문제는 베케트가 제시한다. 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이런 대사가 있다.

'이젠 어떡하지?'

고도를 기다리며는 죽은 나무 앞에서 구원을 기다리는 두 남자의 이미지를 구현한다. 이 이미지는 인간실존의 상태를 압축적이고 아름답게 제시한다. 그들은 막이 끝나기 전에 '이제 갈까'라고 하지만 지문은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라고 한다. 그들은 갈 곳이 없다. 연극은 무대가 인물들에게 허용된 유일한 곳이며 두 인물은 탈출할 수 없다. 그들이 암시하는 자살 말고는. 

 이들의 절망은 할 일이 없다는 것. 정확히 말하면 고도가 부재한 상황에서 의미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에 있다. 고도를 기다리는 동안 할 일이 없다는 것은 그 무엇도 정해져있지 않다는 인식이 주는 공포와 권태를 내포하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 가치를 발명하고 불확실성을 자신의 실존을 발견하는 무대로 삼을 정도로 강인하지 못하다. 



'내가 서자로 태어나는 순간, 하늘에서 가장 정숙한 별자리가 반짝였다고 한들, 나는 변함없이 지금의 내가 되었을 것이다.'

리어 왕에서 악인 에드먼드는 본인 아버지가 주장하는 말에 대응하는 이 독백을 한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대응하며 몰락하는 인간을 그리는 셰익스피어 작품 속 이 대사는 나에게 여러 생각을 들게 한다.


그 중 하나는 우리의 자아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나일까, 아님 환경일까, 아님 운명이라는 이름이 어른거리는 미지의 무엇일까.

 

빈 서판 이론이 있다. 이 이론은 우리가 태초에 백지 상태라고 주장한다. 한 때 주류를 이루던 이 이론은 촘스키가 보편문법이론을 들고 나오면서 우리에게 언어를 습득하는 본능이 내재되어있다는 주장을 함으로써 위기에 봉착한다.


현재는 많은 연구결과에 따라 서판이 비어있지 않음은 입증된 듯 하다. 우리는 성격,외형,지성 등등 자아를 구성하는 층들에 유전의 영향이 각인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들 사이에는 유전자에 따른 차이가 있다.


예컨데 페미니즘은 여러 분파로 나뉘어지지만 어떤 분파는 남자와 여자의 뇌가 아무 차이가 없고 환경에 따라 각자의 자아가 형성된다고 본다. 이 의견은 내 생각에 틀렸다. 사업가로 성공한 남성은 여성보다 다수다. 이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업가로 실패한 남성도 여성보다 많기 때문이다. 사업가라는 직업의 특성에 남성이 가지는 경향성(공격성,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경쟁성)이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오해하지 말자. 이 말은 여자가 사업가로 성공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성향을 가진 남성이 여성보다 많다는 뜻이고 이것은 환경의 탓이 아니다.


인간은 유전의 산물이고 환경과 별개로 태어나기 전부터 그의 성격과 자아는 정해져 있을 수도 있다. 라고는 말 못하더라도 적어도 유전이 인간의 자아형성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치고 그것이 인간의 신체적 능력,정신적 능력과 특성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물론 환경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내가 유전이냐 환경이냐 라는 과학계의 난제를 끌고 온 이유는 이것이 어쩌면 신은 죽었다라는 말에서 나온 결론에 배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스스로 가치를 정하고 나아갈 수 있다고? 그런데 만약 내가 내가 되기 전에 이미 정의되고 정해져있다면? 별자리와 상관없이 우리가 누구인지 정해져 있다면?


아마 대다수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할 것이다. 삶은 그 사이에 있을 것이라고 유전과 환경 사이에 자아가 있고 선택과 운명 사이에 삶이 있다고. 맞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누구이고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할까?


늘 그랬듯이 인류가 낳은 위대한 천재를 참조하자.

 To be or not to be. 

모든 문학자들과 작가들, 독자들, 각각의 번역가들을 고뇌에 빠지게 만든 문장이다. 

존재냐 부재냐 사느냐 죽느냐. 이 Be가 던지는 질문을 압축하자면 왜 살아야하나. 어떻게 행동해야하나 이다. 


햄릿은 인간이 무한공간의 왕이다고 말하지만 먼지의 정수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리어 왕은 미쳐서 내가 누구라 말할 수 있는 자가 누구냐 라고 묻는다. 맥베스는 

 인간은 촛불의 그림자라고 말한다. 

 

앞에 말한 질문에 셰익스피어는 답을 같은 희곡에 남겼다. Let be. 삶을 그리고 존재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여기에 해답이 있을까.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을 내자'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 박찬욱은 말한다. 


나는 이렇게 둘을 합치고 싶다. 희망을 버리고 삶과 나를 받아들이고 힘을 내자.


우리는 삶의 모든 것을 재정의할 정도로 강하지 않다. 힘에로의 의지로 해낼 수 없는 것들도 있고 미리 점지된 운명도 있다. 그러니까 희망을 버려라. 대신 힘을 내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힘이다. 살아갈 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허무주의에 대한 답을 준다. 그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선택할 한 순간. 

모든 것은 빛나지 않지만 빛나는 모든 것들이 있다. 그 순간들은 온 우주에서 나에게만 허락된 순간이다. 

 

삶은 고통이고 때때로 운명이며 때때로는 정해진 것 없는 공허함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긴 항해를 한 번 끝냈다 해도 뒤에는 두 번째 항해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며, 두 번째 항해를 끝냈다 해도 뒤에는 세 번째 항해가, 그 뒤에도 또 다른 항해가 영원히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 세상에서의 우리의 노고란 그처럼 모두 끝이 없고 견뎌내기 힘든 것들이다."

모비 딕의 이 구절은 삶을 압축한다. 나의 대답은 이것이다.


어떡하겠어요. 살아야죠! (사이) 바냐 외삼촌, 우리 살도록 해요. 길고도 숱한 낮과 기나긴 밤들을 살아나가요. 운명이 우리에게 보내주는 시련을 참을성 있게 견디도록 해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라는 말에 한 청년은 이렇게 덧붙였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

우리 삶의 서판에는 이미 철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에게 같지 않다. 다 다르고 누군가는 모음이 많고 자음이 적으며 다른 누군가는 반대다. 하지만 문장은 서판에 없다. 우리는 문장을 완성시킬 수 있다. 모든 문장을 쓸 수는 없다. 어떤 문장은 형편없겠지만 어떤 문장은 아름다울 것이다.


삶은 공허해서 우리가 의미를 살아숨쉬게 해야 하고 때때로 이미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 희망을 버리자. 그리고 삶을 받아들이고 순간을 사랑하고 힘을 내자. 


'그럼 그 한 줌의 시간을 소중히 할테야'

에블린이. 


다시 봤는데 감동이 안 가셔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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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1 2.10 16:27

    개추흑흑

  • 1 2.10 16:33

    이 작품에서 냈던 허무주의에 대한 나름의 대답이 진격의 거인에서 받았던 대답과 개인적으로는 약간 닮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에 극장에서 보고 굉장히 감동했던 영화였는데 간만에 생각나네여

  • 2.10 17:57

    개인적으로 애애올은 21세기 영화 top5 안에 든다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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