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라이트는 빛의 영화입니다.
빛은 파랑과 빨강, 검정입니다. 달빛 아래 모든 흑인은 푸르다. 이 명제는 이 영화를 지탱하는 말이죠. 푸름은 평등, 사랑, 정의일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저에게 푸름은 조사'도' 입니다.
문라이트는 문의 영화이기도 합니다. 1부가 2부 모두 문이 닫히며 끝납니다. 그리고 2부에서 파란 옷을 입고 있던 샤이론은 3부에서 검은 옷을 입고 등장합니다, 폭력을 행사한 후 그는 달빛의 푸름에서 벗어나 검정의 어둠으로 편입되었습니다. 그리고 케빈을 만나 용서함으로써 다시 파랑의 달빛이 있는 해변으로 회귀합니다.
그래서 왜 푸름이 '도'냐고요?
우리는 때때로 무언가를 '정의' 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올바른 삶, 예술, 사람, 우정 등등의 가치를요,
그럴 때 우리는 종종 잘못된 조사를 사용합니다, 아니 덜 정확한 조사라고 하는 편이 맞겠군요.
이것이 정의야, 이것이 좋은 삶이야, 이것이 사랑이야, 등등 하지만 '이'는 자주 '만' 이 되고는 합니다, 그 순간 정의하는 행위는 폭력적이고 부정확해집니다.
하지만 '도'를 이용해 무언가를 정의하는 것은 다릅니다.
이것도 사랑이야
이것도 예술이야
이것도 삶이야
이것도 아름다움이야.
어떤 것들은 각자만의 기준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 스스로만이 정의가능 합니다.안티고네의 비극성은 그들 각자가 각자 기준으로는 정의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우리가 '도'라는 조사를 사용할 때 그 모든 '이것'들에 존엄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각자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지요.
달이 비추는 해변은 '도'라는 조사를 허용하지 않는 이들을 제외한 모두에게 열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도'라는 조사로 다른 것들을 받아들일 때 달은 반짝입니다. 그러니까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습니다, 우리가 달빛 아래에 있는 한.
저는 악이란 늘 개별성의 상실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름을 가진 누군가가 600만명의 유대인, 동성애자, 집시 중 하나가 되는 순간들 말이죠, 우리가 '도'라는 조사로 개인을 받아들이고 다름을 인정함으로써 무언가를 정의할 때 달빛이 형형히 빛날 거라고 믿습니다.
every nigga is a 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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