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앨범서 먼저 언급할 부분은 단연코 전작과의 비교이다.
전작인 channel orange가 일렉사운드와 매력적인 훅, 멜로디컬함으로 무장한 피비알앤비의 대표적인 작품이였다면 본작은 알앤비 앨범이 아니며 차라리 비틀즈나 비치보이즈에 가깝다. 탁월한 가사와 그만의 신스활용, 가창은 여전하지만.
내용적으로도 channel orange가 세상에 대한 오션의 비전을 파노라마와 같이 펼친 작품이였다면 blonde는 각기 연결되지 않는 조각들을 이어붙인 콜라주와 같다.
다음에 눈에 띄는 지점은 앨범커버이다. 얼굴을 가리고있는 남자의 모습과 blond라는 제목. 특이하게 오션은 얼굴을 찍었지만 손으로 그 모습을 가렸고 blonde가 아니라 blond라고 적었다.
이는 앨범의 컨셉과 연결되어있다.
알몸 상태는 내밀한 오션의 이야기를 담은 앨범이라는 짐작을 가능하게 하지만 얼굴을 가리는 동작은 우리가 그의 내면을 명확히 알 수 없음을 암시한다.
blonde 가 아닌 blond인 이유 역시 (오션이 철자에 무지하다는 가능성을 제외한다면)오션과 그의 감정,생각들이 겉으로 보이는 바와 다를 수 있다는 표현일 것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는 오션이 이 앨범에서 표현하고자한 것은 가려진 얼굴과 고의로 틀린 철자와 같이 불가해하고 알 수 없는 본인의 감정이라는 혼란스러운 수수께끼라고 생각한다.
블론드의 사운드는 말그대로 탁월하다. 어쿠스틱 기타, 808 드럼, 일렉기타, 신디사이이저, 목소리 까지 오션은 다양한 소리들을 규합해 서정적이면서도 몽환적인 음악을 만들었다. 이런 사운드들은 그 자체로도 매혹적이지만 오션의 심리묘사와도 연결되어있다. 이 앨범에서 오션은 혼란스러우면서 모순적인 내면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산만하고 다채롭다. 기승전결의 익숙한 패턴과도 거리를 둔 방식으로 곡들을 만든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렇게 잘 정돈된 형식으로 담을 수 없는 무엇인가라고 오션은 생각했을 것이다.
각각의 곡들은 연결된다기보다는 산만하게 배치되었다.
지나간 옛사랑에 대한 미련과 슬픔,고독을 어쿠스틱 기타로 잔잔히 진행하다가 신스가 추가되고 오션의 절절한 절창으로 마무리되는 사운드에 담아낸 self control,
기타와 신스음 위에다가 냉정하면서 서글픈 가사를 얹은 nights는 앨범의 분위기와 구조를 보여준다. 특히 nights에서의 중간의 비트전환은 앨범을 전반부,후반부로 나누며 이 앨범이 가진 정서와 오션의 양면성을 표현한다.
인트로인 nikes에서 오션은 변조된 목소리와 신스루프로 곡을 구성했다. 변조된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앨범에 등장하는데 이는 오션과 그의 감정이 지닌 모순적이고 양가적인 특성을 드러내면서 약물과 잠, 기억에 따른 혼란스러운 내면의 상태를 표현한다. 인트로부터 이 앨범이 일종의 분리와 그에 따른 화자의 복잡한 심리 상태를 표현할 것이라는 복선이다.
이런 연출은 앨범의 특징인데 예컨데 스킷인 be yourself에서 오션 친구의 어머니는 본인 스스로가 되라면서 약물에 취하지마라는 메시지를 남기는데 이 두 내용(스스로가 되어라지만 동시에 하지말아야할 것을 강요하는)은 모순적인 면이 있다. 그리고 다음 solo에서 화자는 약에 취해있다.
이런 이중성은 ivy나 white ferrari에서도 드러난다.
ivy에서는 기쁨과 사라질 것들에 대한 슬픔이 같이있다.
사랑의 시작을 이야기하는 구절 다음이 사라질 것들의 시작이라는 가사이지 않은가.
white ferrari에서의 화자는 순수한 사랑을 믿지만 그의 연인은 냉소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화자의 목소리(아마도 제임스 블레이크)가 변하는 전개는 화자의 마음이 영원할 수 없음을 암시하는 듯 하다.
white ferrari와 self control등에서 알 수 있듯이 블론드에서 오션은 전작과 달리 피처링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그 피처링들은 적극적으로 존재감을 보이지는 않는다.(유일한 예외는 solo(reprise)의 안드레이다.)
이는 앞에서 말했듯 모순과 혼란과 연결된다. 각기 다른 목소리들은 오션 속 내면의 화자들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목소리들을 등장시켜 복잡다면한 본인의 심리를 대변하게 만든 것이다.
색다른 피처링 운용을 보여준 solo는 두 번 나오는데 이는 혼자됨의 외로움을 강조시키는 구성이다. 두번째 등장시킬 때의 안드레3000의 벌스 역시 현재의 음악시장과 인간관계에서 오는 오션의 심정으로 해석해도 큰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짜 가사가 난무하고 자기 가사가 사라져가고 본인만의 독창적인 노래가 가지는 가치가 의심스러운 상황을 거짓된 관계들 사이서 홀로 진심을 전달하려는 화자의 외로움과 연결시킬 수도 있다는 말이다.
블론드의 음악은 크게 사랑,고독, 아픔의 축들을 중심으로 배열되어 있다. 단편적인 기억들과 감정들, 그에 따른 오션의 마음의 풍경들이 이 앨범에 산재되어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많은 내용들이 생략되어 있으며 드러난 부분들은 모순적이고 혼란스럽다. 중요한 것은 생략된 것이 무엇일까가 아니다. 오션이 의도한 바는 바로 그 생략 그 자체일 것이다. 그렇다면 오션은 왜 생략적이고 혼란스러우며 모순적이기까지한 형식을 취했을까?
그 이유는 아마도 우리의 마음이, 사랑이, 고독이, 슬픔이, 인간이 그러하기 때문이리라.
블론드는 완전한 조각품이 아니다. 차라리 이 작품은 오션이 여러 조각들을 합쳐서 빚은 너무나 아름다운 그릇이다. 그 비어있는 그릇을 채우는 일은 청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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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에게 한 기자가 champagne supernova의 가사의 의미를 물었답니다.
노엘은 씨발 나도 몰라요. 라고 대답했고요.
이에 기자는 '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6만명이 이 노래를 부르는 거요?'라고 했죠.
노엘의 답은 이랬습니다.
'그건 각각의 이들에게 다른 것을 의미한다고'
블론드가 그런 앨범일 겁니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블론드가 있겠죠.
이 글은 제 블론드지 다른 사람의 블론드는 아닙니다.
제 파리하면서 부박한 언어로 담을 수 없는 감흥을 가진 앨범이죠... 모두 각자의 블론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것도 옛날에 쓴 거 ㅎ
솔로 2번씩이나 나오는게 그리 해석될 수도 있겠군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그 모호함이 정말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주는게 매력 같아요
오션의 추억의 파편들을 훌륭한 톤 위에 흩뿌려놓아 들을 때마다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드는 앨범이죠..
이분 글솜씨는 볼때마다 본받고 싶어지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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