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인에게 한국 발라드를 대표하라는 명반을 손에 꼽으라 해보자. 수많은 걸작들이 거론될 만하지만, 내게 있어서 개중에 으뜸은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다. 나만이 그런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작품은 수록곡 전체에 특별한 마법이라도 깃든 것 같달까. 혹 故 유재하의 의도대로 사모하던 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음악이기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여러 부차적인 이야깃거리보다도 <사랑하기 때문에>가 더욱 각별해지는 것은 음악 속 진심이 느껴진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어쩌면 30여 년이 넘어가는 작품임에도 한 남자의 진심이 여전히 통할 수 있다는 것은 시대를 관통하는 정서가 본작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랑하기 때문에> 속 나타나는 진심이 청중에게까지 전달되기 위해서는 많은 요소들이 갖춰질 필요가 있었다. 응당 음악이라면 갖추어야 할 요소들, 리듬과 멜로디, 하모니 그리고 가창과 같은 것들 말이다. 당시의 유재하는 이 모든 것들을 홀로 제작했다. 정규 음악교육을 거치면서, 여러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부터 클래식 하모니를 이용한 작곡법까지, 그가 음악을 통해 발현한 마법은 클래식에 기댄 독자적인 방식으로 드러난다. 모든 곡의 작사, 작곡, 편곡을 유재하 홀로 진행했으니, 지극히 개인적인 진심이 음악에 묻어 나올 수밖에 없지 않을까. 꼭 그렇게 느끼지 못하더라도, 각 곡에 수록된 여러 음악적 장치들은 유재하 본인의 의도에 따라 치밀하게 진행되기에 놀라울 만하다.
물론 발매 초기, 세간에서는 유재하를 가창력이 부족한 가수로 묘사했고, 당대의 대중들 역시 본작을 낯선 무언가로 받아들였다. 혹은 음악 자체로 혁신적인 작법을 도입했기에, 대중에게는 유재하의 음악이 생소한 것으로 느껴지기 쉬웠을 수도 있다. 반대로 현대로 돌아오자면, 무난한 팝 발라드 선율에 익숙해진 이들에겐 <사랑하기 때문에>는 다소 뻔하게 느껴지는 결과물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유재하가 지나온 발자취는 현대에 와서는 이미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것들이지 않는가. 결국 ‘좌우간 과거와 현대 모두에서 의아함을 자아낼 수 있는 작품이지 않을까’라는 나지막한 생각이 남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혁신적 자주의 성과물이라면 오해의 여지가 줄어들지도 모른다. 유재하의 음악 자체로 드러나는 기예는 지금으로도 훌륭하다고 여길 수 있다. 각 곡마다 다채로운 음악적 화성과 장치들 그리고 독특한 멜로디, 특히 클래식에서 따온 작법은 과거와 현대 모두 대중에게 효과적인 방식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과거부터 현재까지 대부분의 한국산 팝 발라드가 유재하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나. 익숙하던 익숙하지 않던 유재하의 작법은 당시로는 혁명적인 것이며, 지금으로는 군더더기 없는 말끔한 것이니.
무엇보다도 과거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숱한 의문을 해소하는 것은 음악에 사무쳐 드러나는 진심이다. 진심. 본작의 오랜 칭송이 지속되는 것도,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의 카테고리에 1위로 자리 잡은 것도 <사랑하기 때문에>가 한국 발라드의 효시쯤 되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 결과물의 진심이 아직까지도 유효하기에 작금의 평가가 적합하게 느껴진다. 애초에 <사랑하기 때문에>가 현 한국 모던 발라드의 시발점이자 그 자주적 결과물로서 모자람을 찾기가 힘든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음악으로 통하는 진솔함이 여타 작품으로의 대체를 어렵게 만들기에 더욱 칭송받는 것이다.
그렇게 음악적 탁월함과 드러나는 진심의 교집합은 아울러 독특한 사운드스케이프를 형상한다. 유재하의 음악을 들을 때 아련하게 느껴지는 감정, 혹은 연인에 대한 짙은 감정의 이모저모 등과 같은 것들. <사랑하기 때문에>는 유재하의 지극히 개인적인 사랑 일대기를 노래한 음반이지만, 그 감정 농축이 다른 어떤 앨범보다도 짙기에, 유재하 본인의 감정 거울을 청중에게 쉬이 빌려주게 된다. 섬세하고 유려한 가사가 어눌하지만 정직하고 순수한 보컬 사이로 밝게 빛난다. 이윽고 청아한 멜로디가 청자를 휩쓸고 지나갈 뿐이니, 이로써 <사랑하기 때문에>는 유재하와 청자의 경험이 서로 맞물리며 더욱 입체적인 작품으로 변모한다.
단순히 훌륭한 작품을 내놓고, 향년 25세의 꽃다운 나이에 사망했기에 불후의 천재로 거듭나는 것은 아니다. 유재하의 음악에는 다른 가수들이 대체하기 힘든 독보적이라 불릴 만한 재능이 담겨 있었고, 이것이 현재까지도 유효함을 확인할 수 있으니, 지금까지 기억되는 것이다. 당대로는 한 남자의 꾸밈없는 진심이 먼 미래에도 통하리라고는 쉬이 생각할 수 없을 테지만, 아직까지도 시대를 아우르는 정서가 귓가를 맴돌 뿐이다. -한 남자의 진심, 그리고 사랑했기 때문에.-
오랜만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네요. -ㅅ-
앞날님 진심으로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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