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처음으로 앨범 단위로 듣게 된 앨범
최엘비 - 독립음악
본인은 아빠와 형이 틀어놨던 쇼미9를 우연히 보게 되면서 힙합, 아니 정확히는 쇼미와 알파에 입문하게 된다. 그러다 쇼미10 때였나 김강토를 접하게 되었다. 솔직히 처음에 봤을 땐 "뭐야 숑키 짭인가" 했는데 계속 보다 보니 재밌어서 챙겨보게 되었다. 그러던 중 수많은 국힙 유입러를 탄생시킨 전설의 영상 "국힙 심화편" 을 접하게 되었고, 댓글에 호평이 많았던 독립음악을 보고 호기심으로 돌려보게 되었다. 내 인생을 바꾼 호기심 중 하나였다.
독립음악을 듣고 난 뒤 충격에 빠졌다. 앨범의 슬프고 찌질한 가사들과 곡들이 재생되며 계속 이어지는 앨범이라는 매개체가 그냥 너무 재밌어 보이고 가슴은 미칠 듯이 두근거렸다. 내가 여태까지 모르고 살았던 앨범의 진정한 면모와 매력에 완전히 빠져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즉시 내 머릿속엔 지금까지 느껴본적 없던 엄청난 흥미와 이끌림이 느껴졌다. 바로 다른 명반들도 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내 인생을 바꾼 두번째 호기심이었다.
그 두 호기심의 나비효과는 실로 엄청났다. 지금 내가 엘이를 가입하게 만들었고, RYM에 계정까지 개설하게 만든 것도 전부 결국은 김강토가 내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만약 김강토를 접하지 못 했더라면 아미 지금쯤 멜론 차트 탑 100을 듣고 있지 않았을까?
2. 취향의 전환점이 된 앨범
Boards of Canada - Music Has the Right to Children
뭐 내 프사가 이미 이 앨범이 내 인생 앨범이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있는데 굳이 설명을 덧붙힐 필요가 있을까?
https://hiphople.com/musicboard/29545644
위 글을 참고해줘라. MHTRTC가 어떻게 내 삶 속에 침투했고,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는지를 더 설명할 필요 없이 이미 자세하게 써놓았다.
아 근데, 이 앨범을 어떻게 알게 되었고, 왜 취향의 전환점인지는 더 설명을 해봐야겠다. 본인은 최성을 통해 Radiohead를 알게 되며 90년대 브릿팝이나 얼터너티브 록을 중심으로 음악을 디깅하게 되었다. 이후 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반 리스트를 알게 되고, 그 리스트를 이용해 디깅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나무위키에서 Kid A 문서를 읽던 중 에이펙스 트윈과 보즈 오브 캐나다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 아쉬운 점 중 하나는 에이펙스 트윈 1집만 듣고 BOC는 넘겼다는 것이다.. 이후 시간이 지나 /mu/라는 커뮤니티를 발견하게 되고, /mu/core를 알게 되면서 보즈 오브 캐나다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후 전개는 예상대로니 말하지 않겠다. 애초에 위의 글에 자세히 나오기도 하고. 아무튼 이 앨범을 듣고 나서 락이나 힙합밖에 듣지 않던 내가 지금 웬 이상한 앰비언트 괴물이 되었다.
이외 후보로는 다프트 펑크의 Discovery, 라디오헤드의 Kid A, Charli xcx의 BRAT 등이 있었다. 넷 다 일렉트로닉 앨범인게 함정.
3. 힘든 시기에 나를 지탱해준 앨범
Radiohead - OK Computer
원래 이것도 MHTRTC를 꼽으려 했다. BOC의 낙관적인 사이키델리아는 내가 주저앉을 것만 같을 때 항상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엔 오키컴을 꼽겠다.
톰 요크가 던져놓은 차갑고 날카로운 현실과 미래에 대한 직시, 불안, 우울, 혼란 등 오키컴이 담고 있는 서사는 꽤나 방대하고 범우주적이다. 세기말 세계의 정세가 어지러워지고, 로봇과 AI 등이 과연 21세기의 미래 모습을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지에 대해 라디오헤드는 꽤나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앨범 설명은 여기까지 하고, 그래서 왜 이 앨범이 나를 살렸는지는 길게 말 안하겠다. 그냥 그때 라디오헤드 멤버들이 느꼈을 생각들, 예를 들면 미래에 대한 혼란, 불안, 우울 등이 남일같지 않았고 세상 그 무엇보다도 공감이 됐기 때문이다. 난 변화를 좋아하면서도 싫어한다. 한창 내가 심적으로 괴로워하며 흔들리고 있을 때, 나를 꿋꿋이 잡아줬던 앨범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가사 몇 줄을 덧붙이며 오키컴 이야기를 마치겠다.
A heart that's full up like a landfill
A job that slowly kills you
Bruises that won't heal
쓰레기장처럼 가득 찬 마음
천천히 너를 죽이는 직장
치유되지 않는 멍
No alarms and no surprises, please
(Get me out of here)
아무 공포도, 아무 놀람도 없이, 제발
(날 여기서 꺼내줘)
No Surprises 中
이외의 후보로는 시규어 로스의 Ágætis byrjun이 있었다. 이유는 어예티스 비욘의 타이틀 곡을 들으며 눈물을 쏟았던 기억이 있다.
4.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준 앨범 or 본인의 사랑과 관련된 앨범
Porter Robinson - Nurture
원래 이것도 MHTRTC를 꼽으려 했다. 워낙에 많이 듣고 다녀서 일상에 행복을 준 것도 맞고, 몇 주 전에 고백을 받고 사귀기로 결정했던 날에도 Roygbiv를 들었다. 비틱은 아님ㅋ
내게 소소한, 아니 어쩌면 무엇과도 교환할수 없는 추억을 줬던 앨범이라. 떠오르는 앨범은 많지만 내 일렉트로닉 심장은 자연스레 Nurture를 선택했다. 내게 항상 상쾌한 아침을 선사해주는 Look at the Sky를 들을 때면 흥분과 향수, 묘한 우울감을 느끼고, Get Your Wish는 분명히 신나는 EDM 넘버이지만 초현실적인 가사와 맞물려 왠지 모를 감동과 허상을 안겨다준다. 분명 한 앨범 안에 이정도로 뱅어가 꽉차있는 앨범은 드물다. 그리고 그 트랙들은 내게 소소한 행복을 주었다.
후보로는 페기와 대니 브라운의 SCARING THE HOES, takahiro(FKS)의 Wastefulcore, 모디스트 마우스의 The Lonesome Crowded West 등이 있었다.
5. 가장 사랑하는 앨범
takahiro(FKS) - Wastefulcore
원래 이것도 MHTRTC를 꼽으려 했다. BOC 1집, 오키컴을 놔두고 뭔 이상한 앨범을 꼽냐 생각할 수 있다. 그것도 올타임 최애 앨범 자리에. 앞에 이미 두 앨범은 언급했고 후보는 많았다. Carrie & Lowell, Nurture, Selected Ambient Works 85-92 등. 뭐 근데 이번에는 한번 언더독이자 지금 내가 제일 알리고 싶은 앨범에게 이 영광의 자리를 바치기로 했다.
takahiro(FKS)는 알려진게 없는 무명 다리아코어 아티스트다. 뭐 사실 사클에서 활동하는 일렉트로닉 음악가들이 대개 다 그렇지만. Wastefulcore는 정말 자신있게 다리아코어의 가장 빼어난 조각이고, 미래의 익스페리멘탈 팝 음악가들이 완성해나갈 음악의 비전이자 수정구슬이라 말할수 있겠다. 그리고 그 익페팝 음악가 중 한 명은 아마 내가 될 것이고.
개인적으로 이 앨범을 보면 자꾸 Velocity : Design : Comfort가 겹쳐보인다. 둘다 시대를 초월한듯한 음악, 발매 당시의 무명, 컬트적인 팬덤 등 비슷한 요소가 한둘이 아니다. 이 앨범 10년 뒤에 무조건 인터넷 음악 너드들에 의해 발굴되어 인터넷 일렉트로닉 클래식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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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리 보니 신기하고 우연적인 삶을 산것 같다. 독립음악을 듣게 된 계기도 단순 호기심,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뜬 Goodbye To A World, 그저 커버가 예쁘고 다리아코어라는 장르가 궁금해서 들어본 Wastefulcore까지, 내가 음악을 들어왔던 과정 중 남겨진 발자취들을 돌이켜보면 뭐하나 제대로 된거 없이 계획의 저 편을 한참이나 벗어나있었다. 그래도 내 음악 인생을 퍼즐로 본다면 상당히 많은 조각들을 남들보다 일찍 발견하고 맞췄으니 비록 지금은 이상하고 지랄맞아 보일지라도, 나중가서 본다면 꽤나 재밌는 그림이 하나 완성되지 않을까?
전 디깅 안합니다 엘이가 떠먹여줄뿐..
이게 어떻게 중1임 ㅋㅋㅋ
개쩌네요 잘 읽었습니다
오키컴보고 추천 누를려다가
커플인 거 보고 안 누를려다가
마지막 wastefulcore보고 누릅니다..
앰비언트 일지도 그렇고 어린 나이에 디깅 능력이 대단하시네요
전 디깅 안합니다 엘이가 떠먹여줄뿐..
중1? 예? ㅁㅊ
야호
wastefulcore 1번트랙 청각적 쾌감이 지리죠
근데 Wastefulcore는 전곡이 뱅어라서 베스트를 꼽는게 무의미함
저도 어릴 때 이런 음악들을 접한게 후회는 아니더라도 부럽기는 하네요
잘 봤어요!
중1 맞냐고요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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