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log5tQ8MXxg
비공정 [kin]
새롭게 뜬 눈 속에는 세상 맑고 깨끗한, 새롭고 아름다운 것들이 담겨있었다. 그 아름다움은 형용하기 힘든 추상적 감정과 원시적 감각, 그리고 꽤나 기하학적인 방식을 차용했다. 상쾌한 바람이 불고 잎사귀들이 속삭이듯 양 귀 곁을 맴돌며 소곤거린다. 당장 내 지식으론 풀어내기 어려운 풍경이 펼쳐져 있지만 어떠한 이해와 노력이 필요하진 않았다. 원초적 순수함은 경이로운 우주처럼 모든 질문을 삼키고 그 앞에 복종하게 되듯, 긴 여행 끝에 발견한 그들은 매우 낯설지만 우리의 감각을 순식간에 전복하여 온몸을 놀라움과 반가움에 진동하게 했다. 새로운 세상이지만 마치 그곳이 우리의 시작이었던 듯 어머니의 품처럼 모든 숨 쉬는 것들을 포용한다. 그들은 자연과 자신의 경계가 없고 삶과 죽음의 경계도 없다.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들에는 욕심과 미련, 바람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주적인 성찰인가 우리는 그들을 보며 스스로에게 자문하고 사색한다. 하지만 끝내 그 모든 고뇌가 무의미함을 느낀다. 이미 우리는 그 깨끗함에 침략당했고 물들었고 젖어들었다. 비공정은 절대적인 순수에 착륙했고 세계의 역사의 기원 자체를 발견했다.
SF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비공정의 2번째 EP ‘kin’은 지금까지 그들의 행보에서 예측할 수 없었던 새롭고 놀라운 경험과 환희에 찬 성찰을 경험하게 한다. 그동안 쓰러진 세상, 폐허가 된 도시, 사라져버린 생명들, 포스트 아포칼립스 이후 비행하던 비공정은 정해진 목적지 없이 또다시 하늘 속을 우주 속을 빙빙 돈다. 그들의 음악은 세상의 방랑자이자 개척자로서 자신의 임무를 꾸준히 수행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마침내 원시의 자연으로 돌아간 미개척지에 다다른다. 자연에 손대지 않은, 문명을 거스르지 않은 부족과의 조우는 비공정의 음악에 또 다른 자아를 불어넣어 디스토피아적 우울의 뫼비우스 띠를 끊어내고 찬란한 자유로움의 서사를 EP로 표현하게 만들었다.
낯선 이들과의 조우는 두려움이 아닌 새로운 에너지로, intro ‘Burn’을 통해 힘차게 빛을 뿜는다.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문화를 가진 그들은 죽은 자에게도 슬픔이나 애도하기보다는 원시의 품으로 돌아감을 축복하고 웃고 노래한다. 타이틀곡 ‘Gaia’에서 탄성처럼 폭죽처럼 터져나가는 보컬과 프로그레시브 한 밴드 사운드는 ‘Why, you?’에서 비공정을 새로운 대지의 품으로 끌어안아 하나 된 축제의 절정을 표출한다. 그렇게 밤의 깊이가 깊어지고 차분한 어둠이 내리고 ‘kinfolk’에서 솔직한 아쉬움과 슬픔을 내비치는 사람들과 포크적인 감성과 어쿠스틱한 연주를 선보이며 위로를 보내는 비공정 사이에 따뜻한 우정이 싹튼다. 그렇게 다시 아침이 밝게 떠오르고 부족민들과 인사를 나눈 후 새로운 탐험을 준비하는 비공정은 ‘Hoo!’에서 그들에게 배운 삶의 지혜와 사랑을 세상에 숨어있는, 앞으로 새롭게 발견할 생명들에게 나누고자 다짐한다.
비공정은 새롭게 진화했다. 하지만 새로운 사운드를 입었다 해서 그동안 그들이 쌓아 올려온 메시지가 크게 변모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위대한 사랑의 아름다움과 청초한 순수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사랑은 세계를 넘고 우주를 넘어 새로운 세상, 존재들과의 조우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나 언젠가 이 모든 감정이 사라진 곳과 마주했을 때 그 사랑이 빛나는 구원이 될 수 있길 꿈꾼다. ‘kin’, 인디언(체로키족) 언어로 ‘이해한다’, ‘사랑한다’의 뜻을 갖고 있다. 비공정이 세상에 이야기하려던 사랑은 이제 더욱 성장해 세상을 이해하고 포용하려 한다. 조금은 심오한 듯하지만 이러한 감정의 모음이 바로 우리네 원초적인 삶이자 역사가 아닐까.
조혜림 (음악 콘텐츠 기획자 /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