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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atles #10 <The Beatles>

title: Illmatic앞날 Hustler 2024.09.24 19:20조회 수 448추천수 12댓글 7

셀프 타이틀의 이름을 버젓이 지닌 <The Beatles>, 일명 화이트 앨범. 본작이 기존 비틀즈(The Beatles)의 해체 아닌 해체의 시초를 보여준다면 믿을 것인가? 처음으로 밴드의 이름을 내건 작품이지만, 그 안에 있는 음악들은 앨범 자켓의 하얀 배경과도 같다. 공백으로 가득 찬 대지를 바라보는 것처럼, 전 작품들의 화려한 배경이나 콘셉트는 어디 가고, 하얀색 빈 바탕의 자유로움이 넘실거린다. 재밌는 점은 흰색으로 지워버린 앨범의 배경은 공허를 의미하기보다도 그 안을 메울 만한 비틀즈 멤버들의 수많은 상상력과 창의력을 동원한다. 하나의 극풍을 지워버린 결과물은 다양성과 창의성, 자유 등과 같은 인상을 심어준다. 오히려 그것들이 너무 방대한 나머지 역설적으로 하얀색 배경이 되었다는 설명이 맞을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The Beatles>가 기억되는 방식은 가령 이런 식이다. 각 멤버의 색깔을 전부 담을 수 없으니 아예 흰색으로 덮어버리자는 말로서. 앨범 내 수록 곡마다의 특성은 각기 다르며, 그들을 묶어주는 연결고리는 희미하게 남아있는 비틀즈라는 이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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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atles>를 앨범으로서 하나의 통일성을 지키지 못했다고 힐난할 수도 있겠거니와, 혹은 각 멤버의 솔로 곡을 한 앨범에 담은 모양새가 되었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산개한 각 멤버의 재능이 눈부시게 만개했다는 점 역시 부정할 수 없다. <The Beatles>는 이전 앨범의 관습을 탈피한 것뿐만 아니라, 탐닉할 수 있는 장르를 각자가 선보인 사례라고도 할 수 있다. 각 곡의 장르부터 시작해서 악기, 보컬, 작곡 등의 여러 요소들이 일제히 다른 모습을 자랑한다. 그럼에도 놓치지 않은 것은 매 곡마다의 퀄리티이니 놀랍지 않은가. 통일성이라곤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중구난방으로 흩뜨려놓은 처참한 퀄리티의 음악은 또 아닌 것이다.

사실 <The Beatles>는 제작 환경부터가 이제껏의 작품과도 한참은 다른 노선을 타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여러 이유가 있을 터인데, 멤버 간의 불화 심화나 이들을 조율을 해주던 매니저 브라이언 앱스타인의 사망 등이 대표적인 이야기다. 링고 스타의 임시 탈퇴, 해리슨과 매카트니의 갈등, 레논-요코와 밴드 사이의 갈등이나 대외적으로 과도한 스케줄 등, 당시의 비틀즈는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곤란한 상황이었다. 이때의 비틀즈는 개인적으로도, 집단적으로도, 리더십의 명확한 방향도 부재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복잡다단한 배경을 자랑하는 작품이 어째서 시대를 넘어선 고평가를 받는가’라는 의문 역시 존재한다. 이제껏 다함께 하나의 콘셉트를 지키며 내놓던 음악들은 어째 자취를 감추고는, 창의성의 폭발로 대두되는 방대한 다른 무언가가 앨범 전체를 메운다. 그들을 둘러싼 수많은 문제와 갈등은 음악 퀄리티를 저해한다기보다도, 이제껏 얽매여 있고 밴드라는 이름 아래에서 표출하지 못한 각 멤버의 개성이 분출되는 결과물을 만들었다. 이것이 화이트 앨범, <The Beatles>의 정체성이 다시금 드러나는 과정 중 하나이다.

<The Beatles>의 방대함과 다양함은 각 멤버가 지닌 천재성의 또 다른 발휘가 아닐까. 하얀 캔버스 바탕 위에서 비틀즈는 원하는 만큼의 광활한 활주를 선보인다. 종잡을 수 없는 장르와 주제들의 향연이 대표적이다. 로큰롤부터 시작해 레게, 소울, 블루스, 헤비메탈, 포크, 컨트리 등이 편재한 작품 속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각 멤버의 개성이자 비틀즈가 자랑하는 음악적 절충주의다. 이를 비틀즈스럽다고 할 수 있다면, 충분히 비틀즈스럽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나. 각 음악의 제작 과정부터 시작해 여러 갈래를 적절히 흡수한 절충주의의 소산물은 충분히 ‘비틀즈스럽게’ 들릴 테니까.

'비틀즈스럽게'. 그러니까 그들은 다양한 장르를 본인의 것으로 만들 줄 알았다. <Please Please Me>의 머지비트, <Rubber Soul>의 포크 록, <Sgt. Pepper...>의 사이키델릭 록까지의 여정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음악을 한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The Beatles>는 개중에서도 가장 다양한 모습의 비틀즈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Beach Boys 풍의 로큰 넘버 "Back in the U.S.S.R."과 레게 리듬을 사용한 "Ob-La-Di, Ob-La-Da", 헤비 메탈의 시초 격되는 하드 록 넘버 "Helter Skelter"가 한 앨범 안에 있음에도 각기 다른 밴드가 만든 곡이라고 느껴지진 않는 이유가 그런 것처럼.

이렇게 보면 <The Beatles>를 대표하는 특성은 다양성일지도 모른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로 다양성을 염두에 두고 앨범을 제작했을 리는 만무하다. 애초에 다양한 장르를 한 앨범 안에 실을 것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던 환경 그리고 각자가 생각하는 음악 지향성이 달랐기 때문에 <The Beatles>라는 앨범이 탄생했다고 보는 것이 옳게 된 방향성이겠다. 그룹으로의 정체성이 흔들리며 수많은 갈등과 모순되는 상황이 우선으로 연출되었고 그 사이에서 다양한 음악들이 속속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제 기준에서 본작이 그렇게 산만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이유도 가장 인간적인 입체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각 멤버의 수많은 감정과 장르, 그리고 개성까지가 수록곡 사이사이로 녹아있다. 매카트니는 감미롭고 부드러운 음악("I Will", "Black bird") 말고도 경우에 따라 야성적인 음악("Helter Skelter")을 할 수 있음을 증명했고, 레논은 때에 따라 사회에 대한 투명한 시선("Revolution 1")을 내비치기도, 해석이 곤란한 독특한 음악("Glass Onion")을 만들기도 했다. 해리슨은 비틀즈 안에서도 외골수의 길("While My Guitar Gently Weeps", "Long Long Long")을 헤쳐나갔음을 알 수 있으며, 링고는 마침내 첫 단독 작곡 "Don't Pass Me By"를 선보이며 특유의 익살스러움을 선보였다.

<The Beatles>만의 특별함과 위대함은 때에 따라 서로가 단절되는 환경 속에서도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음악을 제작하고는, 그 속에 풍부한 감정을 담았다는 것 자체가 아닐까. 우여곡절 끝에 제작된 작품은 당시의 상황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동시에, 경우에 따라 각 곡의 퀄리티에 감탄을 하기도, 웃음을 짓게 하기도, 놀라움을 주기도 한다. 내게 있어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에 잠시 참여한 에릭 클랩튼의 기타 연주는 아직까지도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이면서, 전위적인 사운드 콜라주 음악 "Revolution 9"은 어떤 면에서 레논의 아이디어에 작지 않은 놀라움을 가지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비유를 하자면, <The Beatles>내의 여러 수록곡들은 서로 마찰을 일으키기보다도 각자가 서로 다른 이름을 부여받고 살아 숨 쉬는 유기체에 가까운 형태로 느껴진다. 아름다운 혼란이라는 다소 모순적인 표현이 <The Beatles> 앨범에는 찰떡일지도 모른다. 혹 비틀즈를 아예 싫어하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 수많은 장르와 테마의 곡 중 하나는 당신에게 적지 않은 울림을 줄지도 모른다.

<The Beatles>는 기존의 비틀즈에게 있어서도 획기적인 작품이다. 수많은 영감이 모이고 실제 실행된 앨범이며, 음악의 색다른 경계를 탐색하기도 한다. 각자의 영감이 백분 발휘될 수 있는 상황이 생기고, 그에 따라 다양한 감정과 사운드가 한 앨범에 담기었다. 숱한 장르 속에서도 뚝심을 지킨 각자의 개성과 정체성은 앨범의 독특한 성격이 되어주었으니, 혹 활짝 열어젖힌 혼란이 충분히 마음에 들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The Beatles>의 진짜 색깔은 저마다의 마음속에 달려있지 않았을까. 비틀즈에게도, 대중들에게도, 나에게도, 어떤 색일지는 심상에 맡겨봐야 알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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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 1 9.24 19:21

    이 시리즈 굉장히 오랜만이네요

    선개추누르고 보겠습니다

  • 9.24 19:23

    Revolution 9은 뭐랄까 여전히 저한테는 감도 안오는 음악입니다

  • 1 9.24 19:34

    감사합니다 -

  • 1 9.24 20:05

    수록곡들이 모두 개쩔면 유기성 없는 것도 다채로움으로 승화된다는 가장 조은 예시

  • 1 9.24 21:18

    시리즈 오랜만이네요.. 각자의 개성이 너무 방대하여 그냥 하얀색으로 덮어버렸다는 표현이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 1 9.25 18:30

    필력이 대단하시네요

  • 1 9.25 21:12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비틀즈 앨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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