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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가 고장나서 10cm의 [3.0] 세 곡에 대한 이야기

검은행진2024.08.02 21:23조회 수 124추천수 1댓글 1

저는 어릴 때 10cm의 [3.0]을 좋아했습니다. 

 

1. 쓰담쓰담

 

https://www.youtube.com/watch?v=adAQI6B-DMY

 

어릴 때 앨범에서 제일 별로였던 노래로 깊게 남았던 노래입니다. 그 이유는 장르에 비해서 가사가 너무 저속하다는 것이었죠. 그 때는 이런 사운드의 노래는 가사가 저속하면 안 된다는 굳은 믿음 같은 게 있었는데, 돌아보면 참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지금 들었을 때는 어렸을 때보다 훨씬 더 좋은 인상을 남기는 노래입니다. 어릴 때는 가사를 충분히 돌려쓰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았는데, 지금은 가사의 변태스러움이 조금만 생각하면 드러나도록 썼다는 점이 장점으로 들립니다. 왜냐하면, 권정열은 모음을 살짝 꺾으면서 강하게 부르면서 모음에 3중 설탕 글레이징을 하는 듯한 창법을 구사하는데, 이것이 어느 정도 저속한 가사와 재치 있게 잘 맞아떨어져요. 10cm의 그다지 좋지 않은 노래들에는 그 창법이 느끼하고 절박하게 느껴지긴 하는데, 여기서는 그 창법이 의도된 골계미의 퍼즐 조각처럼 느껴져요. 권정열 특유의 창법이 사실 듣다 보면 웃긴 창법인데, 여기서만큼은 권정열 본인도 그걸 아는 것 같아요. 그리고, 돌려쓴 듯하지만 그냥 대놓고 저속한 가사와 그 창법이 합쳐지니 더 웃기고요. 

 

2. 스토커

 

https://www.youtube.com/watch?v=E4bMmWKBo8I

 

어릴 때는 이 노래를 참 좋아했습니다. 확실히 인기가 있을 만한 노래에요. 특히나, 어린 감성을 서툴게나마 자극하는 데에는 효과적인 노래에요. 거기다가 권정열 특유의 창법도 어릴 때는 절절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 들었을 때는 평가가 확연하게 떨어지는 노래에요. 예전처럼 그렇게 감정에 젖어서 들을 수가 없고 오히려 사람을 냉정하게 만드는 노래에 가까워요. 지금 들으면 화자가 '내가 그렇게 나쁜 걸까요'라고 물을 때 '어, 맞아'라고 속으로 대답하게 되는 노래에요. 여기서는 권정열의 모음에 3중 설탕 글레이징을 하는 듯한 창법과 가사의 조합이 심한 역효과를 불러일으켜요. 물론, 제게는 노래의 근본적인 문제는 수동공격적으로 자기 연민을 늘어놓기만 하는 가사지만, 그 가사를 그런 창법으로 소화하니 자기 연민과 거기에 따르는 수동공격적인 뒷담화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을 징징거리며 독촉하는 것을 듣는 느낌이 들며, 의도와 정반대로 감수성이 진실되게 섬세하기보다는 가식적으로 예민한 것처럼 들려요. 특히나, 오열하듯이 코러스가 터질 때는 절절함과 표현력이 와닿는다기보다는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지켜보는 느낌이에요. 노래에서 사랑을 표현할 때는 다른 매체에 비해서 어느 정도 유아주의적 관점에 빠지기는 쉽다고 생각하지만, 이 노래는 너무 유아주의가 심한 결과물이에요. 특히나, 사랑의 대상을 수동공격적으로 표현하면서 자기 감정만 너무 소중하다는 듯이 온갖 섬세한 척을 다 하는 노래라는 점에서 너무나도 자아도취적이죠.

 

3. 짝사랑

 

https://www.youtube.com/watch?v=lI0UZO4eMaw

 

어릴 때도, 지금도 쭉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물론, 어릴 때는 권정열의 창법에 좀 더 깊은 인상을 받아서 이 노래를 지금보다 더 좋아하는 쪽이었어요. 스토커와 소재가 겹치고 한 앨범 안에 있어서 스토커와 자주 함께 비교되는 노래인데, 저는 이 노래가 더 마음에 들어요. 사랑의 대상에 대한 이야기는 시각적 묘사 중심이어서 근거와 근본이 없는 수동공격적인 감성을 담았다는 인상이 비교적으로 훨씬 약해요. 스토커는 가식적인 자기 연민과 자기 혐오가 강하다면 이 쪽은 더 깔끔하고 솔직하게 가사가 써졌어요. 그런 가사가 좀 더 많은 부분을 덜 정제된 목소리와 더 가라앉은 멜로디로 이끌어간다는 점이 합쳐지니 노래 자체도 스토커에 비해서 덜 느끼하고 더 진심 어린 감성을 담았다는 인상이 들어요. 

 

+ 개인적으로 권정열 창법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한정적으로 느껴져요.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나 쓰담쓰담처럼 재치있게 노래를 끌어갈 때는 내용과 창법의 조합이 좀 더 입체적이기 때문에 매력적으로 느껴지는데, 정작 진심을 표현하려고 달려들면 너무 축축하고 느끼하게 다가와요. 특유의 촌스러움이 묻어나는데, 그 촌스러움이 알맞은 가사와 만나면 너무 자연스럽고 뻔뻔하기에 매력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가사를 만나면 오래 듣기가 힘들어요. (여기서 촌스러움은 가치 중립적인 수식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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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8.2 22:08

    스토커 오랜만이네요.. 옛날에 정말 많이 들었던 곡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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