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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i XCX - brat를 듣고

TomBoy2024.06.23 22:31조회 수 722추천수 9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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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7

 

 

 

 

 

Von dutch 뮤직비디오에는 공항을 제멋대로 활보하며 카메라에 주먹을 날리고 비행기 좌석을 넘나들거나 날개 위를 기어다니며 난동을 부리는 찰리가 등장한다. 수하물 컨베이어 벨트에 널브러진 채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녀의 기진한 눈빛과 함께 비디오는 끝을 맺는다. 서른한 살을 맞이해 샬럿이 발표한 일곱 번째 정규 앨범 <brat>는 이 정신 사나운 비디오의 연장선으로, 그 속에는 "성숙함"이 없다. 원체 왈가닥 같은 이미지라지만 이번에는 콘셉트를 초월해 말 그대로 애새끼brat가 돼버린 것이다. 음악 또한 피차일반이다. 현재 이 앨범을 향해 쏟아지는 찬사에는 "그렇게까지 특별한가?"라는 의문부호가 뒤따르기 마련인데, 샬럿이 슈퍼노바를 부르고 에스파가 Von dutch를 부른다고 해서 크게 이질감을 느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체 어떤 면모가 찰리 XCX를 빌리언 스트리밍 슈퍼스타'이자' 컬트 아이콘으로 만드는 것일까. 물론 드레이크, 콜드플레이, 위켄드, 레이디 가가 등 대형 스타디움에서 투어를 돌면서 컬트 문화의 추종을 받았던 뮤지션들은 늘 우리 곁에 있어왔다. 하지만 오늘날 그들이 컬트 문화에서 거의 회자되지 않는 것과는 달리 샬럿은 이 바닥의 마돈나가 됐다. 내가 보기에는 이 역학관계, 즉 샬럿이 그동안 무엇을 어떻게 해왔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이 하이프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인 듯하다.

 

<Pop 2> 이후 샬럿의 음악세계를 이해하는 데는 <brat> 홍보를 위해 크루와 함께 출연한 보일러 룸 영상이 도움이 될 것이다. 70여 분간의 세트 동안 그녀가 전통적 의미의 DJ 역할을 하는 것은 10분 남짓이며, 이후 록스타, 드랙퀸, 폐업 직전의 클럽 호스트가 되어 분위기를 주도하며 파티를 이끄는데 모든 시간을 할애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Pop 2> 이후 샬럿의 음악, 하이퍼 팝을 지탱하는 텐트폴 역할, 보일러 룸 세트마저도 제일 큰 공훈이 에이지 쿡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의견을 종종 마주친다. 하지만 이야말로 상관관계에서 인과관계를 잘못 추론한 결과로서, 팬데믹 기간에 샬럿이 속옷만 걸친 채 침대에 누워 셀카를 찍지 않았더라면 하이퍼 팝과 에이지 쿡의 비중이 지금과 같지 않았을 거라 해도 그리 큰 비약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주류 문화가 반문화의 질감과 톤, 그리고 비주류 예술가들의 아이디어를 적절히 차용하는 방식으로 번성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장기간 추세는 물론이거니와 특정 시점을 놓고 보더라도 그때 그 아이디어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으며 그 안에서 사회를 지배하는 힘은 언제나 주류 세력이다. 하물며 반문화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The Velvet Underground & Nico>마저 당대 주류 음악에 대한 반작용ㅡ"나는 절대로 비틀스 같은 음악을 만들지 않을 거야!"ㅡ에서 탄생하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반문화에서 파생한 비주류 예술을 추켜세우려는 소위 힙스터들이 테일러 스위프트에 버금가는 주류 문화의 기수에 환호를 보내는 작금의 광경은 어딘가 우스꽝스러울 따름이다.

 

처음으로 찰리 XCX라는 이름을 알렸던 아이코나 팝의 I love it부터 하이틴 드라마의 단역처럼 분장을 한 이기 아잘레아의 Fancy 그리고 로맨틱 코미디 '안녕, 헤이즐'의 사운드트랙이자 첫 히트곡이었던 Boom Clap에 이르기까지, 샬럿은 좋은 팝송이란 순간순간의 생동감을 포착해 실감시켜주는 것이며, 어떤 허황된 가사라도 확신에 찬 태도와 꿀처럼 달라붙는 후렴만 있으면 팔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체감해왔을 것이다. 선 굵은 비트, 너저분하게 늘어놓은 신스, 트래비스 스캇에 견줄만한 오토튠 보컬, 샬럿이 그토록 흠모해왔던 하이퍼 팝 에지 등, Club classics과 B2b는 이런 표준을 두 배로 강화시킨 댄스 넘버로서 단순한 가사와 폭발력 넘치는 퍼커션을 통해 팬들이 간절히 고대하던 도파민을 양껏 분비한다. 여기에 100 Gecs의 대책 없는 쾌락주의, 에이지 쿡과 PC 뮤직의 독특한 분위기, MIA와 어피 같은 전임자들, 무언갈 갈망하는 눈빛으로 "내가 너의 넘버원이야."라는 코러스에 맞춰 춤을 추는 수천 명의 틱톡커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찰리 XCX라는 브랜드가 전에 없던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이다. 10년 전 암스텔 강을 누비며 춤을 추던 샬럿과 드골 공항을 빌려 난동을 부리는 서른한 살의 샬럿, 두 샬럿의 꿈은 모두 스타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10년 전 그녀가 스타가 되기 위해 급급했던 것과는 달리, 현재 그녀는 자신이 평생 꿈꿔온 자리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하다.

 

<Rhythm Nation 1814>를 들을 때마다 왜 뮤지션들이 엔지니어링 측면에서 이렇게 강렬한 음악을 만들지 않는지 호기심이 인다. 하지만 우리가 <how i'm feeling now>와 <Renaissance> 같은 앨범을 듣기까지 거의 30년이 소요됐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라. Sympathy is a knife의 밀도 있고 퇴폐성 강한 신스 라인과 Everything is romantic의 최면적인 보컬 디자인은 분명 고전의 그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만듦새가 탁월하다. 그럼에도 <brat>는 제2의 <how i'm feeling now>가 아니고 우리 시대의 <Thriller>는 더더욱 아니다. 앨범의 시퀀스에서는 아무런 의도를 읽어낼 수 없을 때가 많고 내러티브 또한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다. 샬럿은 그동안 자신의 작품 속에서 숙고하고, 충만하고, 상처받고, 당당하고, 의식하고, 창의성 넘치고, 한계를 뛰어넘고, 비록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매 순간 완벽을 기하려는 한 여성으로 존재해왔다. <brat>의 서사 역시 크게 다를 바 없을지 모르나 여기서는 맥락이라는 게 제거된 느낌이랄까. "어른스러움"과 "천진난만함"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젖줄을 댄 수많은 창작자 중 거의 대다수는 자신이 어른스러워졌기에 세상이 달리 보인다고 말할 것이다. 반면 찰리 XCX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더 철없고 더 무구해져 가는 시간 속에서 샬럿은 비로소 자기만의 방식으로 스타가 된다.

 

커리어가 중반을 넘어섰을 때 이처럼 대작이 나오는 경우는 심심치 않지만, <Crash>처럼 다소 열후한 앨범에서 <brat>처럼 커튼콜이 이어지는 작품으로 반등하는 경우는 드물다. Von dutch나 360 같은 선공개 곡들이 기대감에 불을 지피기에는 모자람이 없었으나, 나는 샬럿이 자신이 개척한 댄스 팝의 좁은 궤도 안에 갇힌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샬럿의 팬들은 그녀가 이 시대의 <Thriller>를 갖고 오리라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정말 이상한 것은 그녀에게 아이돌 팬덤 수준으로 충성심을 보내는 사람들이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앨범을 서슴없이 모욕하는 힙스터라는 점이었다. 결국 <brat>를 둘러싼 소동과 하이프는 샬럿이 자신을 세심하게 "브랜딩(혹은 리브랜딩)"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그 결실은 단 한순간의 선택과는 무관하다. 소피와 에이지 쿡과의 협업 이래 생긴 팝 음악에 대한 비전, 즉 진정한 팬들은 마케팅이 아니라 음악에 움직인다는 믿음 아래 시간을 거슬러 올라 자신의 모든 면을 재창조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팝스타에서 팝의 대안이자 미래가 됐고, 하이틴 드라마에 나올 법한 복장으로 스타게이트가 써준 노래를 부르다가 하이퍼 팝의 큰 바위 얼굴이 됐으며, 쿨하고 잠재력 있는 만년 슈퍼스타에서 벗어나 애새끼처럼 행동함으로써 취향에 죽고 사는 이들을 위한 아이돌이 됐다. 그 누구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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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개성을 무기로 삼아 활동하는 대중음악에서도

찰리는 유독 개성이 강한 뮤지션인 것 같습니다.

 

언뜻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계산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고 영리한 사람인 듯하고요.

하긴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찰리도 없었을 테지요.

 

brat에 어울릴만한 부제가 있다면,

'찰리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일 겁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저 또한 금요일 퇴근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네요. ㅠㅠ

다들 힘찬 한 주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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