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로용 제목이지만,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을 힙합이라 부르고, 들국화 1집을 락이라 부르는 건 "꽤 심각한 오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와 생각하는 힙합/락과 각 앨범들이 만들어졌을 때의 의도-방향성이 꽤 차이가 난다 생각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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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간과하는 사실이지만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은 92년도에 발매되었습니다.
이게 뭘 의미하냐고요? 서태지와 아이들 앨범 제작 당시에는 뉴욕 붐뱁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는걸 의미합니다 (...)
나스, 비기, 우탱 앨범은 모두 94년도에 나왔죠.
그러면 서태지와 아이들이 했던 랩은 도대체 뭘 모델로 한 걸까요?
답은 유로댄스와 디스코 랩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즉 애당초 서태지와 아이들 앨범의 모델은 댄스 음악이였던 것입니다.
증거는 여러 가지 있습니다.
우선 시기가 있죠. 92년도 3월에 나왔으니 적어도 곡 작업에 영향을 준 음악은 91년도 말 정도가 한계일겁니다. 90년도에 ATCQ가 나오긴 했지만, 당시 차트 성적은 미비했습니다.
지금처럼 디깅이 쉬운 시절이 아니였던걸 감안하면, 메탈이 백그라운드인 서태지가 ATCQ까지 디깅했다...라고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어 보이죠.
게다가 디깅했다 한 들, 첫번째 앨범에서는 그런 영향이 전혀 안 보입니다. 차라리 표절 시비로 유명한 <난 알아요>는 유로댄스와 뉴잭스윙의 영향이 더 강해보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록곡이 재미있습니다. 사실 타이들곡과 한두곡을 제외하면 의외로(!) 대부분의 곡들은 발라드입니다.
리듬감 있는 비트 위에 얹은 발라드. 시티팝이죠.
이런 형태의 음반은 당시에 꽤 많았습니다. 윤상도 신해철도 이상은도, 신스 훵크 위주의 시티팝에서 점차 테크노나 디스코랩, 유로댄스 같은 컴퓨터와 루프 위주의 음악으로 넘어가고 있었죠.
서태지도 이 흐름 위에 있었던 겁니다.
차이가 있다면, 대놓고 타이틀에서 랩을 했고 인기가 대폭발했다는 거죠.
덕분에 서태지와 아이들은 적어도 세 가지 한국 음악 장르의 선조가 됩니다. 1. 아이돌 음악. 2. 한국 힙합 음악. 3. 90년대 댄스 음악 (쿨, 클론 등등. 쿨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시티팝에서 훵크스러움을 빼고 하우스와 유로댄스로 비트 바꾸면 쿨 음악입니다. 그리고 이게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수록곡의 전반적인 분위기이기도 하고요.)
ps. 들국화 어쩌고는 다음 시간에....손목이 아프네요.
후속기사 원해요
서태지는 시나위에서 락을 시작했고 평생의 발자취에서 락 애호가의 모습을 보입니다. 음악에 락이나 메탈적 베이스를 계속 깔고 가죠. 힙합도 일부분 반영한 거지 물론 메인은 아닙니다.
다만 그 당시 국내 힙합은 랩보다는 비보잉으로 통했던 시절이고 이 당시 비보잉을 할 때 브레이크 비트를 썼습니다. 요즘 힙합=랩음악으로 통용되어서 그렇지 사실 국내에서 쇼미 기점으로 랩이 주류가 된 거지 그 전에는 춤이 주류였습니다. 양현석도 비보이로 활동을 했었구요. 그래서 브레이크비트에 사용되는 힙합적 사운드와 요소를 넣었다고 볼 수 있죠. 난 알아요에서 중간 중간 들리는 스크래치가 그 예입니다. 일부곡이지 전체가 아니라는 점/ 발라드/ 테크노(디스코)나 뉴잭스윙은 맞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동의하는 바입니다. 브레이킹은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네요.
여담이지만 <난 알아요>의 성공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커리어를 예상치 못한 쪽으로 이끈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아마 랩이 적고 좀 더 유로댄스 같은 곡이 성공했다면, 힙합을 가교로 락을 집어넣는 시도는 못하고 그냥 계속 쿨 같은 노선(완성도나 참신성 뭐 이런건 다 제쳐두고 사운드적인 측면에서 말이죠)으로 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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