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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아티스트 열전 - LL Cool J

title: [회원구입불가]HiphopLE2012.11.29 02:41추천수 2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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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열전] 존경하라, 그는 진짜 힙합 스타이니까 – LL Cool J
 
솔직히 말하면 다소, 아니 굉장히 유치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엘엘 쿨 제이(LL Cool J(Lady Loves Cool James), 이하 엘엘)은 그를 언제 접했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시각이 달라진다. 비(Rain)보다 먼저 옷을 찢고 느끼한 눈빛을 발사하는 엘엘을 먼저 접했다면 그 사람에게 엘엘은 미국의 랩스타일 것이고, NCIS나 다른 매체에서 본 얼굴인데 힙합엘이에 등장하는 걸 봤다고 하면 그 사람에게 엘엘은 그냥 만능 엔터테이너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첫 결과물은 저 멀리 거슬러 올라가 1984년에 나왔고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그는 미국에서 힙합으로도 스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개척해 낸 사람이며, 시대의 흐름을 기민하게 읽어온 사람이다. 쉬지 않고 긴 시간 동안 꾸준히 앨범을 내고 달려왔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존경 받을 수 있지만 거기에 그는 성공이라는 놀라움을 더했다.
 
그가 처음 앨범을 발표한 건 스무 살도 되기 전이었다. 11살부터 랩에 관심을 보인 그는 연이어 데프잼(Def Jam)과 계약하고 싱글 ‘Rock The Bells’를 포함한 첫 앨범 [Radio]를 발표하였다. 이 앨범은 플래티넘을 기록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첫 앨범만 해도 그는 당시 올드 스쿨 느낌에 충실한 랩퍼였다. 앨범은 릭 루빈(Rick Rubin)에 의해 진행되었으며 엄청난 호평과 찬사를 받았다. 비보이(B-Boy)에 관한 가사, 당시 10대였던 그의 패기가 담겨있는 랩과 릭 루빈의 독특하고 간결하지만 강한 느낌의 곡 구성이 잘 만나서 성공적인 결과물을 만들었고, 혹자는 이 앨범을 두고 엘엘 커리어상 최고의 앨범이라고 손꼽기도 한다. 앨범은 처음으로 '힙합 발라드' 곡을 수록하였으며 힙합 역사에 의미있는 결과물이다.
 
1987년 두 번째 앨범 [Bigger And Deffer]을 통해 또 한번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이는 아직까지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곡 중 하나인 싱글 ‘I Need Love’을 통해 이루어 낸 것인데, 당시만 해도 이러한 달달한 힙합 곡이 거의 없었고, 이러한 것을 싱글로 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당시 데프잼에 있었던 릭 루빈과 러셀 시몬스(Russell Simmons)의 권유로 이 곡을 싱글컷하기로 했고, 당시 엘엘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발표했지만 결과적으로 엄청난 사랑을 받게 된다. 물론 이러한 곡의 성격을 의식해서인지 다음 싱글은 ‘Go Cut Creater Go’라는, DJ에게 바치는 곡을 택했다. 앨범은 크게 성공하였고, 이러한 상승세를 맞아 세 번째 앨범 [Walking With A Panther]를 발표한다. 앨범에서 엘엘은 프로듀서로서 직접 참여하여 곡을 만들고 앨범을 기획하였다. 앨범은 전작 만큼 팔리지는 못했지만 네 곡의 싱글을 발표하는 등 나름대로 선전했다.
 

LL Cool J (Feat. The-Dream) - Baby

여기에 엘엘은 또 한번 역사를 기록한다. [Mama Said Knock You Out]으로 좀 더 거칠고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으며 당시 쿨모디(Kool Moo Dee)와 아이스-티(Ice-T) 간에 디스전이 있었던 그는 ‘To Da Break Of Dawn’이라는 디스곡을 발표해 호평을 얻었고, 엠씨 라이트(MC Lyte), 데 라 소울(De La Soul) ATCQ(A Tribe Called Quest)와 함께 엠티비 언플러그드(MTV Unplugged) 사상 처음으로 랩을 선보이기도 했다. 앨범은 말리 말(Marley Marl)의 프로듀싱으로 좀 더 세련되어졌고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의 곡을 샘플링하는 등 뉴스쿨로의 진일보를 알렸다. 앨범은 처음으로 엘엘에게 그래미 트로피를 안겨주었으며 코미디언이자 프로듀서인 크리스 락(Chris Rock)은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 지에서 '힙합 앨범 사상 최고 중 하나'라고 꼽았다. 이러한 동부 힙합 사운드는 다음 앨범까지 말리 말과 함께 하며 지속되었다.
 
그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1995년 여섯 번째 앨범 [Mr. Smith]를 발표한다. 앨범은 트랙마스터즈(Trackmasters)에게 많은 부분을 맡기는 등 큰 변화를 모색하였다. 이전 앨범까지 엘엘의 앨범들이 힙합 냄새 짙은 음악들이 대부분이었다면 이 앨범에서는 알앤비적인 요소, 팝적인 요소까지 생각한 곡들이 많았다. 물론 이러한 점을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랩 기술에 있어서는 오히려 이전까지의 앨범보다 더욱 발전한 모습을 들려줬다. 이전의 올 스쿨 플로우를 버리고 더욱 타이트하고 재미있어진 랩이 자리잡았다. 더욱 듣기 쉬워진 앨범은 더블 플래티넘을 가져왔고 그에게 또 한번 그래미 트로피를 안겨 주었다. 개인적으로도 가장 좋게 들었던 앨범 중 하나이며 메인스트림 힙합에 있어 하나의 좋은 보기를 던져주었다고 생각한다. 뒤의 앨범 [Phenomenon] 역시 당시 가장 잘나가는 프로듀서 중 한 명인 디디(Diddy)의 도움으로 비슷한 스타일의 앨범을 만들었으며 하드코어 트랙의 비중을 조금 늘렸으며 더욱 멜로디컬한 트랙들이 자리했다.
 
시간이 지나 엘엘은 [G.O.A.T.]에서 다시 하드코어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러한 시도가 먹혔는지 그는 처음으로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완전히 방향을 틀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격적인 가사와 트랙들은 그의 시작이 뉴욕이며 올 스쿨임을 상기시켜 주는 듯 했고, 빵빵한 피쳐링진도 이러한 성공에 한몫 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존재하는 그의 섹시한 컨셉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말 그대로 이름값 하는 엘엘(Lady Loves Cool J)이었다. 이후 그는 아홉 번째 앨범 [10]을 발표한다. 아홉 번째 앨범인데 이름이 [10]인 이유는 중간에 베스트 앨범까지 포함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뒤로 [Todd Smith]까지, 그는 철저히 대중 친화적인 앨범들을 발표했고 그러한 패턴은 잘 유지되었다.
 
2008년 회심의 작품 [Exit 13]을 통해 다시 하드코어한 엘엘로의 컴백을 시도하며 다양한 음악을 선보였지만 민망할 정도로 저조한 판매량과 함께 조용히 묻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는 20년 넘게 함께 해오던 데프잼과 결별하게 되며 이 즈음부터 인기 미국드라마  NCIS:LA 시리즈를 촬영하게 된다. 동시에 돌비(Dolby)와 함께 "Boomdizzle"이라는 이름의 음향 사업에도 손을 댄다.하지만 작년에 니요(Ne-Yo)와 함께 싱글을 발표하고 최근 새 앨범에 대한 뉴스를 알리는 등 그는 아직 음악의 끈을 놓지 않았다. 비록 [10] 이전에 선구자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과 달리 음악들에 있어서 그러한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지만 그는 충분히 인정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앞으로 그가 어떠한 결과물을 들려줄 지 모르지만 그가 바라는 만큼 반갑게 맞아주는 것도 미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글 | Bluc

 
신고
댓글 9
  • 11.29 08:29
    2pac형 디스한 곡이 언급되지 않은게 좀 아쉽네요... I shot ya...
  • Lhy
    11.29 11:05
    여담으로 'I Need Love'는 Necro가 'I Need Drugs'로 다시 만들기도 했죠.
  • 11.30 09:22
    @Lhy

    전 네크로 곡을 더 좋아해요

  • 11.29 18:06
    좋은글 잘봤습니다!!
  • 11.29 19:37
    힙합의 산증인을 따져보면 웨스트엔 스눕, 드레, 이포티 정도가있고 이스트엔 제이지, 나스와 더불어 엘엘형님이 독보적이죠ㅋㅋ 글잘봤습니다!
  • 11.29 19:41
    멋쟁이 쿨제이 형님
  • 11.30 16:32
    LL Cool J 정말 기대된다요!
  • TIP
    12.1 01:36

    Bigger And Deffer 

  • 2.24 02:21
    맨날 볼 때마다 옥슬레이드 채임벌린 생각나는데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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