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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REWIND II: 훵크계의 또라이 George Clinton과 P-Funk

title: [회원구입불가]greenplaty2015.04.23 13:46추천수 9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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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WIND II] 크계의 또라이 George Clinton과 P-Funk

 

음악을 좀 좋아한다는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의외로 조지 클린턴(George Clinton)이라는 이름을 낯설어하는 경우를 종종 접한다. 훵크에 사이키델릭 록(Psychedelic Rock)을 접목한 음악, 또는 웨스트코스트 힙합, 그중에서도 지-훵크(G-Funk)에 영향을 준 음악이라는 지극히 교과서적인 지식으로 피-훵크를 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영화나 CF에 자주 삽입되는 "Everyday People"로 잘 알려진 훵크 밴드인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Sly & The Family Stone)과는 달리 조지 클린턴과 팔러먼트-펑카델릭(Parliament-Funkadelic)의 훵크 음악에는 상대적으로 거리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아래의 짧은 영상 두 개를 살펴보자.

 

 


 


위쪽의 동영상은 펑카델릭(Funkadelic)의 "Can You Get To That"(1971)이 삽입된 HTC사의 광고이고, 감각적인 비주얼과 사운드로 잘 알려진 아래쪽의 동영상은 슬레이 벨즈(Sleigh Bells)의 "Rill Rill"이 삽입된 아이폰5C의 광고다. 잘 들어보면 알겠지만, "Rill Rill"은 펑카델릭의 "Can You Get To That"의 전주를 통째로 샘플링한 곡이다. 조지 클린턴의 음악이 팝 밴드에 의해 샘플링이 되고, 그의 음악뿐만 아니라 샘플링을 통해 재창조된 곡이 모두 CM송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컴퓨터·휴대폰 업계를 대표하는 두 기업의 CF를 통해 조지 클린턴의 음악이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조지 클린턴의 음악을 제법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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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클린턴의 팔러먼츠

 

조지 클린턴이 공식적으로 활동했던 60년대엔 피-훵크 음악을 하지 않았다. 그는 모타운(Motown Records)에서 곡을 쓰기도 했고, 팔러먼츠 담배 상표에서 착안한 팔러먼츠(The Parliaments, 팔러먼트와 다름)라는 두왑(Doo-wop/보컬 인터플레이를 중시한 흑인음악)을 주로 하는 그룹을 결성하기도 하면서, 크와는 거리가 있는 음악 활동을 펼쳐왔다. 팔러먼츠는 그를 포함해 다섯 명의 가수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순회공연을 위해 다섯 명의 연주자를 추가로 영입하면서 10인조 밴드가 되었다(이후에도 멤버들은 계속 영입되었다). 그의 그룹 팔러먼츠가 속해있었던 레이블은 레빌롯(Revilot Records)였다. "(I Wanna) Testify"가 차트 상위권에 올라가는 히트를 기록하긴 했지만, 이외에는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조지 클린턴은 그야말로 원히트원더나 다름이 없었다.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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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러먼트-펑카델릭 그리고 피-훵크

 

그는 멤피스로 이주하여 웨스트바운드(Westbound Records)와 계약을 하게 되었는데, 레빌롯이 팔러먼츠의 이름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새로운 그룹명이 필요하게 되었다. 베이스 연주자 빌리 넬슨(Billy "Bass" Nelson)은, 그룹이 지향할 스타일인 '크'와 '사이키델릭'을 결합해 펑카델릭이라는 그룹명을 고안했다. 이렇게 탄생한 펑카델릭은 기존의 두왑 밴드 팔러먼츠의 멤버 그대로였지만, 이들이 목표한 음악 스타일은 그룹의 새로운 이름처럼 크와 록을 합친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은 1970년에 조지 클린턴은 레빌롯과의 분쟁에서 승소하여 팔러먼츠에 대한 소유권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룹의 이름은 팔러먼츠로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조지 클린턴은 펑카델릭과 동일한 멤버 구성으로 팔러먼트(Parliament)라는 이름만 살짝 바꾼 새로운 그룹을 만들어냈고, 레이블도 펑카델릭이 계약한 웨스트바운드가 아닌 인빅터스(Invictus Records)와 계약했다. 동일한 멤버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두 그룹은 다른 음악을 했다. 펑카델릭과 팔러먼트가 서로 다른 레이블과 계약한 것은 두 그룹의 음악 스타일이 중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펑카델릭이 사이키델릭 음악을 계승했다면, 팔러먼트는 펑카델릭의 하드 훵크와 팔러먼츠의 소울이 만나는 경계선쯤에 위치할 소울풀한 훵크 음악을 지향했다(물론 이 두 그룹은 모두 사이키델릭 훵크/소울을 연주했고 콘셉트도 동일했다). 팔러먼트는 그룹의 초창기 이름뿐만 아니라 음악 스타일도 어느 정도 계승한 셈이었다.

 

동일한 멤버지만 다른 콘셉트의 두 그룹으로 투어 활동을 시작하면서 '팔러먼트-펑카델릭'이라는 명칭이 등장했다. 약간의 차이가 있는 음악을 하는 다른 밴드라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공연을 펼칠 때, 팔러먼트로 먼저 등장해서 연주를 펼친 뒤, 무대에서 내려왔다가 다시 펑카델릭으로 등장하는 촌극을 벌일 수는 없었다. 팔러먼트가 공연을 해도 결국에는 펑카델릭이었고, 펑카델릭이 공연을 하면 그건 팔러먼트였다. 결국, 이들을 통칭해서 팔러먼트-펑카델릭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피-훵크'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피-훵크의 어원에 대한 이야기는 많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팔러먼트-펑카델릭의 줄임말이라는 설에서부터, 퓨어 훵크(Pure Funk), 사이키델릭 훵크, 플레인필드 훵크(Plainfield Funk, 팔러먼츠가 결성되었던 지명을 딴 것)까지 다양한 추측이 있다. 피-훵크의 어원이 무엇이든 간에 중요한 것은 이 명칭의 의미다. 피-훵크는 팔러먼트-펑카델릭이라는 단체는 물론, 여기에 참여했던 음악가들, 조지 클린턴이 고안해낸 훵크의 한 갈래, 그리고 팔러먼트-펑카델릭의 무대장치, 패션, 콘셉트까지 포괄적으로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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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로퓨처리즘 & 피-훵크 신화

 

혹시 소설 [반지의 제왕]을 쓴 작가 톨킨스(J.R.R. Tolkins)가 소설을 쓰게 된 결정적인 동기가 영국에 독자적인 신화가 없어서였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바그너(Richard Wagner)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의 모티프가 된 북유럽 신화를 톨킨스도 차용하면서 [반지의 제왕]이라는 대작을 탄생시켰다.

 

조지 클린턴도 이와 비슷한 구상을 했다. 그가 생각해봤을 때, 동양인들이나 유럽인들과는 달리 미국의 흑인들에게는 신화라든지 이렇다할만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가득한 역사가 없었다. 그들에겐 핏빛으로 가득한 노예의 역사와 자유와 평등을 위한 투쟁의 역사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조지 클린턴은 변화와 창조의 필요성을 느꼈고, 결국 우주 공상 과학을 택하게 되었다. '아프리카의(African)'라는 의미의 '아프로(Afro)'와 기존의 인습과 역사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예술적 사조를 제시하는 '미래파(Futurism)'를 더한 아프로퓨처리즘(Afrofuturism), 즉 흑인들의 미래주의 음악을 구상한 것이었다.


'피-훵크 어스 투어'에 등장한 마더십

 

그가 만들어낸 것은 '피-훵크 신화'라는 것이었는데, 마더십(Mothership)이라는 우주선을 위에 띄어놓은 무대에 조지 클린턴을 비롯한 멤버들은 기괴한 가발, 의상, 선글라스, 신발을 착용하고 올랐다(심지어 밴드의 기타리스트 개리 시더(Garry Shider)는 기저귀를 차고 무대에 올라서 기저귀남(Diaperman)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우주선 캐딜락을 타고 다니는 포주처럼 보이고 싶었다던 조지 클린턴은 흑인들이 우주로 나가면 이런 모습일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펑켄슈타인 박사(Dr. Funkenstein)라는 별명의 조지 클린턴은 자신의 머리를 금발로 물들이기도, 형형색색으로 물들이기도 했다. 비정상적인 기인들로 가득한 훵크음악계에서도 그는 최강의 또라이였다. 악기 소리는 물론이고 왜곡한 음성까지 활용하여 이런 정신 분열적인 분위기를 고취시켰다. 일렉트릭 기타, 신디사이저, 베이스 기타가 주도하는 신 나고 댄서블한 훵크 음악은 피-훵크 신화라는 콘셉트와 멤버들의 패션과 완벽하게 일치했고, 청중들은 열광했다.

 

이런 콘셉트를 강화하기 위해 이들은 '온더원 이론(On the One Philosophy)'을 구상했다. 모든 이들의 맥박은 우주의 리듬과 동일하게 뛰는데, 이렇게 연결되어 있어 모두가 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 이론의 논지였다. 이런 조지 클린턴의 상상력은 상식선을 초월하는데, 따지고 보면 우주에서 온 초능력자들 엑소(EXO)라든지, 우주토끼 전사 그룹 B.A.P의 콘셉트는 이미 40여 년 전이 이미 존재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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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그 이후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지 클린턴은 온갖 문제들에 직면하게 되었다. 운영, 급여 문제로 일부 멤버들이 탈퇴하기 시작했고 팔러먼트의 레이블이 금전적인 문제로 파산하자, 조지 클린턴은 팔러먼트와 펑카델릭을 해체해버렸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활동하거나 피-훵크올스타즈(P-Funk All-Stars)라는 그룹을 대동하면서 활동했는데, 사실상 팔러먼트-펑카델릭 핵심 멤버들이 그대로 소속되어 활동했다. 하지만 80년대에 조지 클린턴과 피-훵크 음악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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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경기에서 열린 '디스코 파괴의 밤' 행사 (링크)

 

가장 큰 문제는 당시 흑인음악을 대하던 대중들의 태도였다. 피-훵크와 함께 70년대 중후반을 휩쓸었던 디스코가 그 문제의 중심에 있었다. 당시 디스코 음악은 흑인음악은 물론이고 록, 팝 음악까지 흡수하며 커다란 태풍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이에 백인 록 마니아들은 분개했고, 반-디스코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디스코 음반을 모아놓고 화형식을 치르기도, '디스코는 구려(Disco Sucks)'라는 슬로건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다니고도 했다. 여기엔 흑인들의 음악이 록으로 넘어오는 현상에 대한 반발심과 디스코는 게이 음악이라는 인식이 상당히 크게 작용했다. 이런 흐름이 더욱 격해지면서 흑인음악을 방송하던 흑인 라디오 디제이들이 해고를 당하기까지 했다. 백인들의 반-디스코 운동은 상당한 성공을 거두면서, 80년대에 디스코는 미국의 '국가적 망신'쯤 되는 이미지로 변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흐름이 디스코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백인들은 소울, 알앤비, 훵크를 싸잡아서 '디스코'라고 불렀고, 나머지 흑인음악도 이런 디스코 불매운동의 피해자가 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디스코 음악과 흐름을 함께해온 조지 클린턴의 음악이 피해를 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알앤비 차트와 팝 차트를 제집처럼 들락거리던 조지 클린턴이 1982년에 내놓은 싱글 "Atomic Dog"가 알앤비 차트에선 1위를 달성했지만, 팝 차트에선 100위권 밖에 랭크되었다는 점이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럼에도 훵크 음악의 혁명가였던 그의 입지는 확고했다. 록 밴드 레드 핫 칠리 페퍼즈(Red Hot Chili Peppers)는 평소에 존경하던 조지 클린턴을 찾아가 자신들의 앨범에 참여해 달라고 부탁했고, 그는 프로듀서로 참여해 [Freaky Styley]를 제작했다. 그의 인기는 과거와 같지 않았지만, 80년대 중후반부터 힙합 뮤지션들이 조지 클린턴의 곡을 샘플링하기 시작하면서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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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코스트 힙합의 계승

 

사실, 피-훵크가 힙합으로 이어질 것임은 조지 클린턴이 가장 잘 알았을 것이다. 팔러먼트-펑카델릭은 노래 대신 말을 리드미컬하게 내뱉는 식의 내레이션을 자주 선보이곤 했는데, 이건 랩의 시초라고 볼 수도 있다. 가령, [Maggot Brain](1971)에 수록된 "You and Your Folks, Me and My Folks"에선 (라임이라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동일한 단어('Folk')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리드미컬하게 말을 하면서 초기 랩과 유사한 형태의 발성을 선보인다. 여기에 강력한 드럼과 베이스 연주까지 더해진 이 곡은 곧 등장한 힙합을 예고했다.

 

결정적으로 피-훵크는 웨스트코스트 힙합 뮤지션들이 샘플링을 하면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되었다. 투팍(2Pac), N.W.A., 아이스 큐브(Ice Cube), 닥터 드레(Dr. Dre), 다 도그 파운드(Tha Dogg Pound), 워렌 지(Warren G), 스눕 독(Snoop Dogg) 등의 서부 힙합 뮤지션들의 비트에 샘플링이 되었다. 닥터 드레와 워렌 지는 피-훵크에 갱스터 랩(Gangsta Rap)을 접목하면서 지-훵크라는 새로운 힙합 장르를 개척했다. 이렇게 탄생한 지-훵크 음반들인 닥터 드레의 [The Chronic](1992), 스눕 독의 [Doggystyle](1993), 워렌 지의 [Regulate...G Funk Era](1994)는 서부 힙합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명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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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The Chronic], [Doggystyle], [Regulate...G Funk Era]

 

지-훵크뿐이 아니었다. 아웃캐스트(Outkast), 우탱 클랜(Wu-Tang Clan), 데 라 소울(De La Soul), 레드맨(Redman),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 라킴(Rakim) 등등, 미국 전역의 랩퍼들이 팔러먼트-펑카델릭의 몽환적이고 강렬한 음악을 사용하여 힙합 트랙으로 둔갑시켰다. 이런 힙합 뮤지션들의 일방적인 피-훵크 사랑으로 조지 클린턴은 샘플링된 곡을 가장 많이 소유한 음악가 중 한 명이 되었다.

 

이런 좋은 관계는 이후에도 이어져서, 스눕 독의 음악에도 피쳐링 아티스트로 참여했고, 2008년에 발표한 [George Clinton and His Gangsters of Love]에는 엘 드바지(El Debarge), 르자(RZA), 슬라이 스톤(Sly Stone), 카를로 산타나(Carlos Santana), 레드 핫 칠리 패퍼즈 등의 음악가들이 객원으로 참여했다. 그는 여전히 현역 음악가로 활동 중이며, 켄드릭 라마(Kendrick Larmar)와 같은 젊은 음악가들의 작업물에 참여하며 21세기 팝계와도 호흡을 맞추고 있다. 2014년에는 펑카델릭 멤버들을 모아 3 CD 앨범 [First Ya Gotta Shake The Gate]를 발표했다. 각 디스크에는 11곡이 실려 총 33곡이 수록되었는데, 이 33곡은 펑카델릭이 1981년에 마지막으로 발표했던 앨범 [The Electric Spanking Of War Babies]로부터 흐른 33년을 상징한다. 비록 전성기 시절의 정력적인 사운드는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피-훵크의 유산을 어느 정도는 담고 있는 앨범이다. 


조지 클린턴은 곧 새 앨범 [Chocolate City: London | P-Funk Live at Metropolis]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 앨범은 1 DVD, 2 LP, 2 CD로 구성된 박스세트인데, 그의 열성 팬이라면 간직한 만한 제품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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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훵크 연주자들

 

조지 클린턴을 중심으로 전개된 피-훵크 음악에 참여한 음악가는 수십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들 중 가장 중요한 인물 세 명만 소개해보겠다.

 

♬ Funkadelic - Maggot Barin 

 

에디 헤이즐(Eddie Hazel)

 

에디 헤이즐은 팔러먼트-펑카델릭의 초창기부터 활동했던 기타리스트다. 그의 연주는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의 블루스 록 스타일을 계승한 듯한 느낌인데, 이 덕분에 펑카델릭이 사이키델릭 록 스타일의 훵크를 구현할 수 있었다. 그의 뛰어난 연주는 훵크 팬들은 물론, 60·70년대의 다양한 록 명곡들로 인해 높아진 록 마니아들의 기대치까지 충족시킬 수 있을 정도였다. 에디 헤이즐은, 가창력으로 이동한 흑인음악계의 관심을 다시 연주력으로 끌고 온 인물이었다. 그의 연주의 정수는 펑카델릭의 앨범 [Maggot Brain]에 수록된 동명의 곡 "Maggot Brain"에서 10여 분간 진행된 솔로다. 이 곡은 음악지 롤링 스톤이 꼽은 '100대 기타 명곡'에서 60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에디 헤이즐은, 피-훵크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Maggot Brain]의 전설적인 녹음을 마친 뒤 팔러먼트-펑카델릭에서 탈퇴했다. 밴드의 리드 기타 자리는 개리 시더가 대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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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 워렐(Bernie Worrell)

 

버니 워렐은 [Maggot Brain]에서 에디 헤이즐과 함께 연주했다. 이 글의 가장 도입부에서 언급했던 "Can You Get to That"에서 리드미컬한 건반 반주를 한 것 역시 버니 워렐이다. 버니 워렐은 초창기 멤버는 아니었고, 펑카델릭의 데뷔 앨범 [Funkadelic](1970)이 발표된 후 영입되었다. 선율적인 차원에서 신디사이저를 이용했던 기존의 훵크 음악과는 달리 버니 워렐은 저음의 소리를 이용하여 베이스 소리를 강화하는 연주를 선보였다. 피-훵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 베이스 기타와 함께 음악의 전면에 나서서 기성 훵크 음악과는 다른 음악 세계를 구축해냈다. 펑카델릭-팔러먼트가 공식적으로 해체된 1981년에 그룹을 떠나긴 했지만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조지 클린턴의 작업물에 참여해 우정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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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치 콜린스(William "Bootsy" Collins)

 

제임스 브라운의 밴드 제이비스(The J.B.'s)에서 활동하다가 1972년에 팔러먼트-펑카델릭에합류한 부치 콜린스는 조지 클린턴이 피-훵크라는 음악 스타일을 구축하는 데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조력자로 꼽을 수 있다. 노래를 부르거나 드럼을 연주하기도 했지만, 주로 베이스를 담당했으며, 작사·작곡에도 많이 참여했다. 그는 배경에서 꾸며주는 역할에 그쳤던 기존의 베이스 연주에서 탈피하여, 훵크 음악을 주도하는 존재로 발전시킨 인물이다. 부치 콜린스는 세션맨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러버 밴드(Rubber Band)를 결성해 밴드 리더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여기엔 조지 클린턴의 도움이 있었다.

 

이 외에도 초창기 오하이오 플레이어즈(The Ohio Players)에서 활동했던 월터 모리슨(Walter "Junie" Morrison),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와 잠시 협업했던 드러머 디키 풀우드(Ramon "Tiki" Fulwood), 제임스 브라운의 밴드였던 호니 혼즈(The Horny Horns), 기저귀남으로 불렸던 기타리스트 개리 시더 등이 있다.






추천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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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got Brain]과 [Funkentelechy Vs. The Placebo Syndrome]

 

"Maggot Brain"에서의 에디 헤이즐의 환상적인 일렉트릭 기타 솔로만으로도 [Maggot Brain]은 팔러먼트-펑카델릭의 수많은 앨범 중에서 가장 중요한 앨범으로 꼽힐 만하다. 그의 기타 연주는 앨범의 또다른 수록곡 "Hit It And Quit It"에서도 펼쳐진다. 글의 도입부에서 CF와 함께 감상했던 "Can You Get To That", 초창기 랩의 기원으로 지목했던 피-훵크의 내러티브가 잘 드러나는 "You And Your Folks, Me And My Folks"도 인상적인 수록곡이다.

 

팔러먼트의 앨범으론 [Funkentelechy Vs. The Placebo Syndrome]을 선택해봤다. 70년대 중반부터 무르익기 시작했던 피-훵크의 우주 공상 과학 콘셉트가 잘 발현되었으면서도 팔러먼트를 펑카델릭으로부터 구분 짓는 요소가 보여지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제임스 브라운의 "Say It Loud (I'm Black and I'm Proud)"의 백코러스가 연상되는 고전 훵크 "Bop Gun (Endangered Species)"를 시작으로 피-훵크 신화를 접목한 "Sir Nose d'Voidoffunk (Pay Attention - B3M)"과 “Funkentelechy", 팔러먼트 고유의 스타일을 선보이는 "Wizard of Finance"와 "Placebo Syndrome" 그리고 피-훵크 음악을 대변하는 "Flash Light"까지 총 6곡이라는 조촐한 구성된 앨범이지만, 보여줄 건 다 보여준다.

   

 




주요 샘플링 사례 



N.W.A. - Straight Outta Compton (1988)

원곡: Funkadelic - You'll Like It Too (1981)


 


De La Soul - Me Myself and I (1989)

원곡: Funkadelic - (Not Just) Knee Deep (1979)




Common - Cold Blooded (2000)

원곡: Parliament - Funkin' for Fun (1976)





The Lonely Island - The Old Saloon (Interlude) (2009)

원곡: Parliament - Let Me Be (1975)



글 | greenpla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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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2
  • 4.24 14:26
    우워 좋은글밤사합니당
  • 4.24 15:15
    와 무슨 역사 글 한편 읽은거 같네요
    좋은 정보 너무 감사합니다 !
  • 4.24 22:40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4.25 01:52
    조지클링턴 뻥카델릭 팔라아멘트 진짜 좋아하는데 감사합니다ㅠㅠ

    팔리아멘트만 필정도로 팔리아멘트 좋아해요ㅠㅠ
  • 4.25 04:25
    Maggot Brain.. 진짜 첫 곡부터가 죽이는 명반중에 명반이네요..
    조지 클린턴옹을 중심으로 본 흑인 음악 일면의 역사.. 머릿속에 잘 담아갑니다!^^
  • 감사합니다
  • 4.25 13:08
    maggot brain... 기타 솔로를 니 어머니가 죽고 우는 것 처럼 하라고 했다죠? ( cry like your mama just died) 레드 핫 칠리 페퍼스 1집을 프로듀싱한 것도 조지 클린턴으로 압니다
  • 4.25 15:28
    이거 정말 좋은글이에요. 감사합니다. 알고 있었던건데 더 자세하게 알게됬네요ㅎㅎ
  • 4.26 02:12
    선스웩후감상
  • 4.26 02:15
    많은것을 배웁니다
  • 4.26 13:28

    위에 추천앨범 두 장을 좋게 들으셨다면

    Funkadelic [One Nation Under a Groove]

    Parilament [Mothership Connection]

    이 두 앨범도 강추드림

  • title: The WeekndSID
    4.27 13:02
    이정도면 책으로 엮어서 내도 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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