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o Are One? : 불편한 월드컵과 주제곡 이야기
전 세계 축구 팬들의 축제 월드컵이 개막한 지도 벌써 며칠이 지났다. 이번 월드컵은 특히 '축구' 하면 바로 떠오르는 나라 브라질에서 열리는 만큼, 많은 이들이 바라왔을 월드컵이었을 것이다. (영국은 종주국임을 내세우기 전에 마지막 우승이 언제였는지...) 하지만 이런 예상은 개막 전부터 보기 좋게 무너졌다. 월드컵을 위해서 빈민가를 밀어버리고, 치안을 위해 무기를 지급한 덕분에 매일같이 이어지던 시위는 멈출 기미는커녕 더욱 격해졌고, 아마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이러한 움직임은 계속될 듯하다. 브라질 사람들은 격심한 빈부격차와 무너진 공교육 현실에 대해 '월드컵에 투자한 예산을 병원이나 학교에 투자했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보다 나아졌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축구는 좋아하지만, 월드컵은 반대하는'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나보다 더 잘 알고,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므로 이 글에서는 깊게 다루지 않겠다. 오늘 이 글에서 내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이번 월드컵의 '주제곡'에 대한 이야기다.
이야기에 앞서 월드컵 주제곡의 역사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월드컵의 주제곡은 첫 번째 월드컵이 개최된 이후로 약 30년이 지나서야 생겼다. 그마저도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1962년 칠레 월드컵 당시 칠레의 밴드 로스 램블러스(Los Ramblers)가 월드컵에 맞춰서 만든 곡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그제야 피파(FIFA)가 그 곡을 주제곡으로 선정한 것이다. 그 이후, 주제곡은 일종의 관례처럼 계속되어 왔다. 이렇게 시작된 주제곡이 근래처럼 대중성을 띄게 된 것은 90년대 이후부터이다. 그전까지는 개최국의 정체성과 주제곡의 클리셰(Cliché; 진부하고 상투적인 양식) 사이에서 갈등하던 피파는 그때부터 주제곡을 완전히 상업적 용도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주제곡은 획일화된 퍼커션 리듬과 의미 없는 가사만을 좇게 되었다. 개최국의 특성은 일종의 악기처럼 사용될 뿐, 곡 자체에서 개성을 찾아보기는 어렵게 된 것이다.
♪ Pitbull & Jennifer Lopez (Feat. Claudia Leitte) - We Are One [Olodum Mix]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정점을 찍은 듯하다. 핏불(Pitbull)과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가 함께한 "We Are One (Ole Ola)"은 삼바 리듬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점을 제외한다면 그저 핏불이 매번 선보였던 팝일 뿐이다. 브라질의 정체성을 드러내면서도 월드컵과 어울릴 음악을 만들 수 있는 훌륭한 로컬 뮤지션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두 아티스트를 전면에 내세운 점은, 더는 주제곡이 주최국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상업적인 목적만을 지닌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의 주제곡인 "Waka Waka"의 경우에도 역시 비슷한 혹평을 받았었지만, "Waka Waka"는 조금이나마 아프리카의 색채를 담았었다. 하지만 이번 곡에서는 그러한 모습조차 찾아보기가 어렵기에 지난 주제가인 "Waka Waka"를 다시 사용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게다가 "We Are One (Ole Ola)"의 뮤직비디오는 팝적인 곡의 분위기와는 무관하게 삼바를 추는 댄서와 예수상 등 브라질의 상징적 요소들을 적당히 끼워넣으면서 더 큰 반감을 사고 있다.
공식 주제곡이 최악의 주제곡이라는 평을 받는 만큼, 이미 수많은 뮤지션들이 이번 월드컵 주제곡에 시위하는 격으로 더욱 월드컵에 어울리면서도 좋은 음악들을 발표하고 있다. 그중, 샤키라(Shakira)의 "La La La"나 브라질 출신의 개비 아마란토스(Gaby Amarantos)와 모노블로코(Monobloco)가 함께한 "Todo Mundo" 등은 대중들에게 오히려 공식 주제가보다 더욱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것은 뮤지션이 아닌 사람들까지도 이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는 이야기인 동시에 좋은 음악 자체가 가진 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Todo Mundo"는 삼바 빅밴드 풍의 음악에 심판의 휘슬이나 응원 구령 등을 샘플로 사용하며, 역대 월드컵 주제곡들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퀄리티를 보여준다.
만약 피파가 월드컵을 정말 세계인의 축제로 만들고 싶다면, 먼저 주제곡처럼 피파가 권한을 쥐고 있는 모든 부분에서 주최국에 대한 존중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한다. 현지인들이 즐기지 못하는 축제를 세계인들이 즐긴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 아닐까. 이러한 상황들 때문에 아마도 내 기억 속에서 이번 브라질 월드컵은 축구보다도 시위로 더욱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2018년의 대한민국에서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축제를 위해 현지인들의 삶을 망가뜨리는 것도, 논란을 둘러싼 시위도, "We Are One (Ole Ola)"과 같은 주제곡도 말이다.
♪ Gaby Amarantos & Monobloco - Todo Mundo
글│GDB/ANBD
편집│soulit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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