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음악은 많아졌고, 기억에 남는 음악은 적어졌다. 그 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힙합엘이 매거진 에디터들이 한껏 마음 가는 대로 준비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들어보면 좋지 않을까 싶은, 절대 놓쳐서는 안 될 2020년 4월의 앨범들이다.
엠프레스 오브(Empress Of)는 80년대 전자음악을 비롯한 얼터너티브 사운드를 구사하며 블러드 오렌지(Blood Orange), 칼리드(Khalid)와의 협업을 이뤄낸 바 있다. 세 번째 앨범인 본작에서도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시카고 하우스를 비롯한 전자음악 기반 프로덕션이 주를 이룬다. 뚜렷한 차이점이 있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본인의 정체성을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낸다는 것. 오프닝부터 어머니의 목소리를 삽입하는 건 물론, 후반부에는 라틴 음악을 자연스레 조화시키며 온두라스의 피가 흐르고 있는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음악 자체에, 그리고 가사와 보컬에 몸을 맡기다 보면 어느새 앨범을 반복해서 찾고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Kiana Ledé - KIKI
발매일: 2020/04/03
추천곡: Cancelled., Chocolate., Second Chances.
팝 트랙 “EX”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키아나 르데(Kiana Ledé)는 알앤비/소울 장르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여러 차례 드러내 왔다. 덕분에 새 정규 앨범 [KIKI]는 장르 팬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한 사운드와 피처링진으로 꽉꽉 채워졌다. 팝 성향의 트랙들도 곳곳에 있으나, 키아나 르데가 추구하는 음악적 방향에 전혀 거슬리지 않을 정도일 뿐이다. 또 하나의 포인트는 앨범에 담긴 키아나 르데의 이야기. 때로는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Cancelled.”), 연인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며(“Forfeit.), 전형적으로 사랑을 갈구하기도 하는 등(No Takebacks.) 갖가지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정도면 신인으로서 받았던 기대치에 훌륭하게 화답한 앨범이다.
Yves Tumor - Heaven To A Tortured Mind
발매일: 2020/04/03
추천곡: Kerosene!, Romanticist, A Greater Love
익스페리멘탈 일렉트로닉 아티스트 입스 튜머(Yves Tumor)의 새 앨범 [Heaven To A Tortured Mind]는 결코 록, 일렉트로닉 장르 팬에 국한돼 소비될 만한 작품이 아니다. 이 앨범은 엠비언트 사운드 중심의 과거 앨범들과는 완전히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는데, 12곡 안에 뒤섞인 많은 장르 가운데 이번 앨범을 묘사하는 가장 인상적인 이름은 바로 ‘사이키델릭 소울’이다. 거칠고 몽환적인 기타 사운드가 과거의 록과 부딪히며 조화되고, 빈티지한 질감과 미래적인 시각이 만나 새로운 음악이 된다. 기존 팬은 물론 폭넓은 장르의 새로운 팬들을 다수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이 있는 작품.
Kari Faux - Lowkey Superstar
발매일: 2020/04/07
추천곡: While God Was Sleepin'..., StickUp!, Look At That
기억 저편의 캐리 포우(Kari Faux)에게서 그다지 큰 매력을 느끼진 못했었다. 분명 괜찮은 퀄리티를 보장하고 있으나, 나른한 사운드 때문인지 좀처럼 귀를 사로잡는다는 느낌이 없었다. 하지만 새 믹스테입 [Lowkey Superstar]는 다르다. 탁 트이는 질감의 붐뱁 트랙 "While God Was Sleepin'..."으로 시작해 드라이브에 제격일 듯한 트랩 곡 "StickUp!"으로 이어지고, 조금만 더 가면 랩-싱잉까지 제대로 소화해낸다. 모양새만 잘 갖춘 게 아니라, 각각의 모든 트랙에 듣고 싶게 만드는 흡입력이 확실히 있다. 201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고군분투하며 쌓인 경험치가 결국 열매를 맺어낸 게 아닐까. [Lowkey Superstar] 이후로는 캐리 포우라는 이름에 조금 더 주목해보고 싶다.
JP THE WAVY - LIFE IS WAVY
발매일: 2020/04/08
추천곡: OK, COOL, BLIND, Just A Lil Bit
일본에서 가장 트렌디한 래퍼가 누구인지 묻는다면 바로 제이피 더 웨이비(JP THE WAVY)를 들려주자. 그는 2017년 “Cho Wavy De Gomenne”으로 얻어낸 버즈를 3년간 훌륭한 커리어로 키워왔고, 드디어 정규 데뷔 앨범 [LIFE IS WAVY]를 발표했다. 제이피 더 웨이비는 18개 트랙에 거쳐 미니멀한 트랩부터 싱잉 랩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주는데, 앨범 전체적으로 세련된 사운드를 유지하며 웨이비하고 패셔너블한 캐릭터의 매력을 충분히 담아냈다. 박재범과 식케이(Sik-K)의 피처링 참여가 눈에 띄고, 버벌(VERBAL), 아클로(AKLO) 등 탄탄한 일본 래퍼들이 다수 참여했다.
Kenny Mason - Angelic Hoodrat
발매일: 2020/04/15
추천곡: Metal Wings, U in a Gang // Exxon, HIT
재능 넘치는 끼쟁이도 보여줄 수 있는 게 너무 많으면 고민이 된다. 앨범 하나에 잘하는 걸 하나씩 보여주고 싶거나, 아니면 앨범 하나에 모조리 때려 박고 싶을 수도 있으니까. 통통 튀는 매력의 싱글 "HIT"를 통해 이름을 알렸던 신예 케니 메이슨(Kenny Mason)은 후자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첫 트랙인 "Firestarter"부터 이미 진중한 매력이 새로 발견되며, 플로우와 완급조절이 돋보이는 "PTSD", 이모 랩 스타일을 차용한 듯한 "Lean", "Pretty Thoughts" 등 트랙마다 각기 다른 매력이 보인다. 반복해서 듣고 싶게 만드는 매력적인 멜로디가 부족한 점은 아쉬우나, 자신의 장기를 모조리 쏟아부었다는 것만으로도 분명 성공적인 데뷔 프로젝트다.
dvsn - A Muse In Her Feelings
발매일: 2020/04/17
추천곡: Still Pray For You, Outlandish, A Muse
얼굴도 드러내지 않은 채, 신비스러운 정체와 음악으로 대뜸 등장했던 알앤비 듀오 디비전(dvsn)은 분명 변하고 있다. 세 번째 앨범에 이르러 마침내 커버 아트에 얼굴을 드러냈다는 것만을 말하는 건 당연히 아니다. 전작들과 가장 큰 차이는 지금껏 한 명도 없었던 피처링진이 잔뜩 참여했다는 점. 그만큼 그들의 팔레트도 무궁무진하게 넓어졌으며, 실제로 피비알앤비(PBR&B) 사운드의 교과서처럼 느껴졌던 지난 두 앨범과 비교해 보면 이번 앨범은 너무나도 다채롭다. 특히 자메이카 뮤지션들인 부주 밴턴(Buju Banton), 팝칸(Popcaan)과 함께 이어가는 중반부 네 트랙의 ‘댄스홀 바이브’는 디비전에게서 절대 볼 수 없을 모습이라 생각했기에 더욱더 흥미롭다.
Rina Sawayama - SAWAYAMA
발매일: 2020/04/17
추천곡: XS, Comme Des Garçons (Like The Boys), Akasaka Sad
리나 사와야마(Rina Sawayama)의 스튜디오 데뷔 앨범. 2000년 전후의 팝 시장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앨범의 내용보다 먼저 와닿을 것은 사운드에 깊게 밴 그 시대의 흔적이다. 실제로 이 앨범의 사운드는 콘(Korn), 에반에센스(Evanescence),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넵튠스(The Neptune), 팀발랜드(Timbaland)와 같은 2000년대 초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를 언급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다. 리나 사와야마는 뉴 메탈부터 알앤비, 제이팝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그 시절 유행하던 사운드를 입맛대로 골라 왔지만, 그렇다고 앨범이 흔한 추억 재생산의 도구란 건 아니다. 그는 당시의 사운드를 가져와 개인적 경험과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로 훌륭하게 사용했고, 그 점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Westside Gunn - Pray for Paris
발매일: 2020/04/17
추천곡: 327, French Toast, Allah Sent Me
2019년, 요즘 트렌드와 다른 이전 시대의 힙합 사운드를 들고 오며 돌풍의 핵으로 자리매김한 그리셀다 레코즈(Griselda Records). 멤버 웨스트사이드 건(Westside Gunn)은 들어온 물에 노를 젓겠다는 듯 새 정규 앨범 [Pray for Paris]를 발표했다. 그리셀다 멤버들을 비롯해 프레디 깁스(Freddie Gibbs),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 등 내로라하는 피처링 진이 이름을 올렸으며, 여전히 단조롭고도 차가운 피아노 샘플이 시종일관 반복되는 등 이전 시대의 눅눅한 뉴욕 붐뱁 힙합 사운드로 채워져 있다. 여기에 웨스트사이드 건은 쥐어짜는 듯한 특유의 하이톤 랩을 구사하며 패션을 비롯한 자신의 관심사, 마약에 관한 이야기, 거리의 삶을 풀어놓는다. 피처링진의 활약이 워낙 특출나 약간은 주객전도된 느낌이 있지만, 붐뱁 사운드를 좋아하고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확실히 선물 같은 앨범이다.
Fivio Foreign - 800 BC
발매일: 2020/04/24
추천곡: Drive By, Big Drip, Demons & Goblins
기본적으로 그게 그거처럼 들리는 드릴 래퍼들 속에서 캐릭터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살아남기 힘들다. 때문에 특유의 걸걸한 톤으로 사랑받던 팝 스모크(Pop Smoke)의 사망 소식은 드릴 씬에서 더욱더 쓰린 소식이었다. 다행히도 드릴 사운드는 남은 이들에 의해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파이비오 포린(Fivio Foreign)은 남아있는 드릴 래퍼 중 가장 큰 성장 가능성을 가진 인물이다. 첫 믹스테입인 [800 BC]는 그런 그의 패기와 정수를 고스란히 담은 프로젝트. 파이비오 포린의 인기를 견인했던 싱글 “Big Drip”이 귀를 확실히 끄는 와중에, 나름의 공식이 있는 ‘추임새 패턴’과 격앙된 랩 톤이 나름 다른 드릴 래퍼들과의 변별력을 만들어낸다. 드릴 사운드에 관심을 붙이고 싶다면 거리낌 없이 추천할 수 있을 듯한 느낌 충만한 프로젝트다.
rum.gold - aiMless
발매일: 2020/04/24
추천곡: Save You, Call It What You Want, Waiting For
럼골드(rum.gold)는 미국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알앤비/소울 싱어송라이터다. 팔세토 창법을 주로 구사하는 그는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청자에게 큰 인상을 남기는 보컬인데, 이번 EP [aiMless]에서도 그 매력이 십분 발휘된다. 간단한 오르간 사운드와 본인의 목소리만으로 곡을 이끄는 “Save You”, 차분한 기타 사운드와 함께 곡을 빌드업해 나가는 “Call It What You Want” 등의 트랙을 들어보면 럼골드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자밀라 우즈(Jamila Woods)와 함께 호흡을 맞춘 부드러운 네오소울 넘버 “Waiting For” 역시 꼭 들어보길 권한다. 각자의 삶에서, 그리고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가 얼른 아물길 바라는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을 정도로 가사 역시 큰 울림을 전하는 EP다.
YoungBoy Never Broke Again - 38 Baby 2
발매일: 2020/04/24
추천곡: Bout My Business, Diamonds, Thug Of Spades
영보이 네버 브로크 어게인(Youngboy Never Broke Again, 이하 영보이)은 어쩌면 밑바닥 출신 악동 래퍼의 전형이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거쳤고, 각종 질 나쁜 범죄에 연루됐다. 하지만 마이크 하나로 자신의 거친 삶을 노래해 성공을 이뤄냈다. 그렇기에 과거의 아픔과 경험을 피아노 비트 위에 노래하는 그의 감성적인 트랩 뮤직은 분명 직설적이지만 호소력이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노래하는 첫 트랙부터 어머니가 직접 랩 피처링으로 참여한 것을 보면 그 표현 방식이 얼마나 직접적이고, 또 그렇기에 얼마나 와닿는지 알 수 있다. 그의 성공의 발판이 된 믹스테입 [38 Baby] 발표 후 약 4년 만에 찾아온 속편. 영보이의 음악은 여전하지만, 또 그래서 매력이 있다.
Editor
힙합엘이
항상 좋은글 감사
디비젼 진짜 생각도 못한 사운드인데 너무 좋음
Rina Sawayama 개좋음
글 항상 잘보고 있다고 댓글 남기려고 회원가입했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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