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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그.알: Wilson Pickett – The Exciting Wilson Pickett (1966)
윌슨 피켓(Wilson Pickett)은 60년대에 상당한 인기를 구가한 흑인음악 스타지만, 흔히 말하는 60년대 소울 역사에선 외면되곤 한다. 아마 그의 음악을 소울 시대의 거장들과는 달리 특정한 스타일로 규정하기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일단 거칠고 시끄러웠다. 많은 이는 그가 미국 남부의 앨라배마 주 출신인 점을 토대로 그가 블루스 기반의 음악 성향을 추구했다고 분석하기도 하지만, 이는 절반만 맞는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어머니는 아동폭력을 피해 미국 북부 미시간 주에 있던 아버지에게로 갔다. 11살 때였다. 대부분 사람이 그렇듯 윌슨 피켓도 10대에 접한 음악이 그의 음악적 자양분이 됐다. 이 시기에 그가 즐겨 들었던 건 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의 음악이었다. 리틀 리처드는 당시 빠른 템포를 기반으로 한 로큰롤로 전국적인 인기를 누리는 스타였다. 그의 외모와 의상, 음악은 화려했고, 강렬했으며, 외설적이었다. 그 때문에 얻은화려한 ‘나쁜 남자’ 이미지로 10대 흑인들의 롤모델이 되기까지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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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활동의 시작은 당대 대부분 흑인음악가와 마찬가지로 가스펠이었다. 바일오리네어스(The Violinaires)라는 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했다. 이후에는 팰컨스(The Falcons)라는 인기 리듬앤블루스 그룹에 영입돼 노래를 불렀다. 세속음악을 시작하자 사람들은 그에게 ‘악마의 음악을 하는 것이냐’며 비판했다. 이에 윌슨 피켓은 종교적인 가사를 노래하지 않을 뿐, 자신의 음악 속에는 가스펠이 있다고 답했다. 일정 부분 사실이었다. 그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강렬함은 로큰롤과 리듬앤블루스에서만 나온 게 아니었다. 실제로 1963년에 발표한 "If You Need Me"에는 곡 전반에 가스펠 풍 코러스가 흐르며, 설교가 내레이션으로 들어가 있다. 이 곡은 더블 엘 레코즈(Double L Records)를 통해 발매된 앨범 [It's Too Late]에 수록됐다. 앨범을 통해 윌슨 피켓은 일정 수준의 인지도를 얻게 됐다.
이윽고, 그의 전성기가 애틀랜틱 레코즈(Atlantic Records)와 함께 시작했다. 애틀랜틱 레코즈에서의 데뷔 앨범 1965년 작 [In The Midnight Hour]는 전형적인 소울 앨범이다. 이 앨범에는 스택스 레코즈(Stax Records)의 하우스밴드 부커 티 앤 더 엠지스(Booker T. & The M.G.'s)가 일부 참여하기도 했다(전국적인 레이블이었던 애틀랜틱 레코즈는 멤피스의 로컬 레이블은 스택스 레코즈의 카탈로그를 유통해줬고, 그 대가로 스택스 레코즈의 작곡/작사가들과 하우스밴드, 스튜디오 지원을 받았다). 부커 티 앤 더 엠지스의 합세로 오티스 레딩(Otis Redding)으로 대변되는 스택스 레코즈의 사운드가 짙게 나왔다. 대표적으로 부커 티 앤 더 엠지스가 조력한 "In The Midnight Hour"와 ”Don't Fight It"은 알앤비 차트에서 각각 1위와 4위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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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덤에 오른 윌슨 피켓은 당당해졌다. 자신의 목소리와 음악을 더 자신있게 표출했다. 이듬해에 발표한 [The Exciting Wilson Pickett]은 알앤비를 중심축에 두고 다양한 방면으로 뻗어간 작품이다. 가령 앨범의 첫 곡 "Land Of 1000 Dances"는 50년대 로큰롤과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이 유행시킨 초기 형태의 훵크가 절묘하게 합쳐진 곡이다. 이 곡은 크리스 케너(Chris Kenner)의 것이 원곡이지만, 이후 캐니벌 앤 더 헤드헌터스(Cannibal & The Headhunters)의 리메이크 버전이 더 유행한 곡이다. 이 곡에 등장하는 '나~나나나' 하는 코러스는 원곡에는 없던 것으로, 녹음 당시 캐니벌 앤 더 헤드헌터스의 리드싱어 프랭키 캐니벌(Frankie "Cannibal" Garcia)가 가사를 잊어버려 즉흥적으로 흥얼거렸던 가사다. 결국, 이 즉흥 코러스는 곡의 상징처럼 됐다. 윌슨 피켓도 이 리메이크 버전을 기반으로 록킹하고 훵키하게 편곡했다. 제임스 브라운의 [Live At The Apollo]를 연상시킬 정도로 강렬하고 열정적인 이 녹음물은 스튜디오 레코딩이라는 게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역동적이다. 곡은 알앤비 차트에서 넘버원, 팝 차트에선 6위에 올랐다. 윌슨 피켓은 이전까지 [In The Midnight Hour]의 싱글들로 알앤비 차트 넘버원에는 두 차례 오른 바는 있지만, 팝 차트에선 20위권 성적도 없었다. 전국적인 팝 스타로 등극한 순간이었다.
알앤비 차트 넘버원, 팝 차트 16위에 오른 싱글 "634-5789"는 스타일이 달랐다. 블루스 진행의 피아노, 가스펠 풍의 코러스, 훵키한 관악기로 이루어진 연주에 윌슨 피켓의 끈적이고 거친 음성이 더해졌다. "Barefootin'"에선 레이 찰스(Ray Charles)의 리듬앤블루스와 제임스 브라운의 훵크의 영향이 동시에 드러나고, "I'm Drifting"은 시대를 50년대로 회귀시킨 듯한 로큰롤 곡이었다. 한편, "Ninety-Nine And One-Half (Won't Do)"는 거친 음성을 앞세운 서던 소울 진국이다. 이렇듯 [The Exciting Wilson Pickett]에는 리틀 리처드, 레이 찰스, 오티스 레딩(Otis Redding), 제임스 브라운 등 그의 선배/동료 뮤지션들의 영향이 짙게 드러난다. 분명, 상기 언급한 이들과는 달리 윌슨 피켓에겐 선구자격 타이틀이 없다. 특정한 장르를 개척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유산과 유행을 다양하게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쪽을 택했다. 이는 꽤 오랫동안 유효했다. 인기는 70년대 초까지 이어진 데다가 범주도 흑인음악 씬에 국한되지 않았다. 팝 차트에서도 호성적을 내며 팝 스타로서의 면모를 다졌다. 그렇게 스타가 되었음에도 그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윌슨 피켓은 자신을 스타덤에 올려준 음악적 뿌리를 생각했다. 그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저는 블루스를 노래하는 가스펠 가수니까요.”
글 | 류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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