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매체에서 최고의 영화로 뽑히는 <시민케인>만 봐도 2024년에 나왔으면 지금과 같은 명성을 누릴 수 없었을 거임. 그리고 다른 클래식 영화들도 마찬가지고 영화를 넘어 그림, 책, 춤이나 다른 예술도 똑같음. 하지만 그것들이 그 시대를 넘어서 지금까지 높은 평가를 받는 건 후대 작품들이 그것들의 영향을 받고 문화가 그 작품들로 인해 발전했기 때문임.
너바나의 <nevermind>의 pop적인 부분은 비틀즈한테서 영향 받은 것임. 그리고 너바나는 얼터너티브의 락의 시대를 열고 그 후 나온 대다수의 아티스트들은 너바나에게 영향을 받고 존경을 표했음. 이렇듯 비틀즈가 있기에 <nevermind>가 있고 다른 아티스트들도 훌륭한 작품을 낼 수 있었 던 것 같이 <누명> 또한 그러한 위치라고 생각함. 또한 <누명>이나 비틀즈의 곡 그리고 <시민케인>은 지금 듣고 봐도 시대를 뛰어넘는 훌륭한 작품임은 틀림없음.
다만 <누명>이 비교적 비틀즈의 곡보다 올드하게 느껴지는 것에 대한 내 생각은 이럼. 근본적으로는 힙합이랑 락이랑 추구하는 사운드가 다른 부분도 있겠지만 첫 번째로 힙합은 트렌드에 민감한 장르임. <누명>이 나온 2008년도와 우리는 다르게 입고, 다른 단어를 쓰고, 다른 멋을 추구함. 그렇기에 2008년대의 트렌드를 반영한 <누명>은 그 시대를 겪지않은 사람들에게는 올드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함. 또한 그 시절 버벌진트가 겪은 서사를 알고 봐야 더 와닿기에 그런 부분도 있다고 느낌.
두 번째는 피쳐링 진임. 버벌진트와 이센스를 제외한 다른 래퍼들의 랩은 실제로 올드함. 여기에선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음. 들어보면 앎.
세 번째는 역설적이게도 버벌진트가 너무 랩을 잘해서 같음. 시대를 앞서가는 랩을 뱉고 라임개념을 확립한 것이 한국 힙합이 빠르게 성장하게 된 원인임. 만약 버벌진트의 랩에 래퍼들이 영향을 받지않았더라면 <누명>의 영향력은 떨어지더라도 <누명>을 지금 세대에서 느끼는 사람이 많지않았을까 생각해봄.
난 참고로 <누명>보다 <킁>을 더 많이 돌림. 그럼에도 한국힙합 최고의 앨범을 뽑으라고 한다면 <누명>을 뽑을 것이며 이것은 내가 죽을 때까지 바뀌지않을 거 같음. 또 손이 자주 안간다는 이유로 평가절하하는 건 옳지않다고 생각함. 특히나 "난 이게 좋더라~"가 아닌 "한국힙합 대표 앨범"이라는 타이틀을 달 때에는 더욱 더.
사실 작년인가 재작년에 힙합 입문하고 누명 첨 들어봤을 땐 그렇게 좋다고는 못느꼈는데 그 때 제가 듣던 음악이랑 스타일이 확연히 다른것도 있고... 락과 다르게 힙합은 비트도 중요하지만 보통 랩과 가사로 승부를 보기에 그 시대상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는것도 있는 것 같아요.
<누명>이 극한의 유기성과 작가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더욱 그런 부분도 있죠.
그 시절 리드머에서 평한 걸 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누명]은 불친절하다. 단번에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인스트루멘탈 트랙이 산재해있고, 내러티브도 비선형적이다. 발매 당시 버벌진트의 상황을 알지 못한다면, 앨범 전반에 흐르는 무거운 분위기에 완전히 몰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라고 말할 정도로 서사가 중요한 앨범이에요.
그 뒤로도
"하지만 탄탄한 프로덕션과 퍼포먼스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가치가 있다. 당시에는 물론이고 지금도 한국 힙합 씬에서 이 정도로 빼어난 완성도의 앨범은 흔치 않다."
라고 코멘트 할 정도로 랩핑자체로도 뛰어난 앨범이 맞죠.
하지만 지금에 와서 시대상을 고려하지않는 사람들은 앞에 나온 서사나 작가주의적 성향을 못느끼고 단순히 "뛰어난 랩핑"에만 주목하고 있어요. 그래서 버벌진트의 랩이 뛰아나긴 하지만 2024년의 발전한 랩을 듣다가 2008년의 버벌진트의 랩을 들으면 실망할 수 있죠. 그러나 시대상을 고려하고 작가주의적 성향과 유기성에 주목해서 듣는다면 더욱더 앨범을 재밌게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물론 여러 번 언급했지만 버벌진트의 랩 자체는 지금 들어도 상당히 훌륭한 수준입니다.
타 장르 음악인 언니네 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를 같은 년도에 나왔다는 이유로 누명과 비교하는 댓글을 보고 너무 답답했어요
말 그대로 버벌진트는 지금도 누명을 쓰고 있죠. 타 장르랑 비교 하는 거 자체가 어불성설인데 또 하필 역사가 긴 락 장르와 비교하니 더 억울할 수 밖에 없죠. 락은 정착이 된 지 상당히 오래된 장르고 가장 최근에 일어난 혁명이 너바나의 <네버마인드> 라고 생각해요. 언니네 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가 나오기 17년 전이죠. 하지만 <누명>은 한국힙합의 과도기에 나온 작품이고 그 과도기 또한 버벌진트 덕에 빠르게 안정화됐고 그 뒤로 발전하였죠. 그러니 솔직히 장르적 특성 및 추구하는 사운드를 빼고 봐도 시기적으로 비교가 잘못되었죠. 2040년에 2024년의 락과 힙합을 비교하는 것과는 10배 이상의 차이라 장담할 수 있습니다.
타당한 말씀이십니다.
글쓴님 말씀에 전반적으로는 공감하는 바이나, 저는 누명이 막 한국힙합 원탑 앨범 이렇게까지 추앙받는거까지는 잘모르겠습니다.. 명반이라함은 시대를 막론하고 좋게느껴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 엘이 게시판 보고 오랜만에 다시 돌려도 vj의랩 이외에는모조리 별로라고 느껴집니다.. 작년에 나온 이센스 저금통같은 느낌이죠.. 차라리 2007년도에 나온 다듀 3집이 저는 올드하지도 않고 더 훌륭한 앨범이라고 생각듭니다.
일단 <누명>은 버벌진트 랩뿐만 아니라 서사, 유기성, 작가주의 성향, 다음절 라임 등 즐길 요소가 많은 앨범입니다. 시대상을 고려한다면 말이죠. 시대상을 고려하지않는데도 그 의미가 퇴색될 뿐 앨범 자체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음악은 어디까지나 취향의 영역이기에 다이나믹 듀오의 3집을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듯이 <누명> 또한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 힙합 최고의 앨범들을 뽑으라고 한다면 영향력을 크게 봅니다. 누명이나 에넥도트, 프리더비스트 등 일정 수준을 넘긴 앨범들은 취향 차이라고 보기 때문이죠. 물론 다이나믹 듀오의 앨범들도 영향력이 크긴합니다. 다만 다이나믹 듀오의 앨범들은 대중들이 힙합에 입문하게 되는 게이트웨이 같은 역할이죠. 버벌진트하고는 다른 영향력입니다. 이러한 다이나믹 듀오같은 영향력은 아티스트를 평가할 때는 큰 가산점을 주게 되지만 개별의 앨범을 평가할 때는 큰 점수를 주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댓글에서 동의하기 힘든 점은 "명반이라함은 시대를 막론하고 좋게느껴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라는 문장입니다.
첫 번째로 명반은 대중과 평단에서 매우 뛰어나다고 보편적으로 인정할 때 비로소 그렇게 불립니다. 명반이 개개인의 평가가 모여서 만들어지는 건 맞지만 좋게 느껴져야한다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느낌이죠. 아직까지는 대중과 평단에서는 <누명>을 좋게 봅니다.
두 번째는 본문에서 언급했듯이 시대를 막론하고 입니다. 다빈치의 그림들도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죠. 그러면 <모나리자>나 <최후의 만찬> 등등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나 기법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친 작품도 다 명화가 아니게 되는 걸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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