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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M - 개미: 시간의 흐름에 맞서는 법

TEVR2024.05.16 23:23조회 수 765추천수 1댓글 3

 

 

QM의 디스코그래피는 정규 2집 [HANNAH]를 기점으로 변화한다. 이전까진 ‘행동하는 시인’이라는 정체성을 토대로 패기 넘치게 사회의 고름을 조명하던 그였으나, 2집부터는 개인의 서사에 더 집중한다. 후일담으로 밝힌 바로는 공황장애를 앓던 중 가족의 소중함을 느꼈다고 한다. 결국 가족은 자신의 뿌리이자 자신의 편이지만, 자신이 꿈을 좇는 틈에 부모님은 노화하고 동생의 생일 선물을 사주지도 못하는 형이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앨범의 끝에서 ‘우린 모두 하나’를 외치던 그는 3집 [돈숨]에서 또 다시 달라진다. 어머니가 고열로 응급실에 간 상황임에도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그는 이전의 태도를 고수할 수 없고 돈을 벌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돈숨]으로 QM은 돈을 벌었다. 앨범 완판 후 재판을 하고, 아이돌 업계에서 랩 레슨을 하고, 방송에도 출연해 이름을 알렸다. 회사를 차리고 신예를 키우는 지금의 큐엠이 과거의 이야기를 꺼냈다. 공황장애를 앓던 [HANNAH] 이전의 이야기를 현재로 가져온다. 이번의 테마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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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 (feat. 최엘비)

지난 정규 2집의 인트로는 ‘은’이었고, 이번엔 ‘금’이다. 최엘비의 [독립음악]은 QM의 [돈숨]과 맞닿는 점이 많고, 둘 다 그 앨범들로 인정을 받았다. 그런 최엘비가 QM의 차기작에서 포문을 연다.

 

내 돌 반지 녹여서 만든 줄 줄 줄

아빠의 목에 걸친 유일한 금 금 금

언젠가 물려받겠지 내가 늙으면

있을지 잘 모르겠는 내 아들 주면 되나

됐고 가득 채워 둘래 나의 금고

전부 다 녹여 아들 목디스크 올 정도로

무겁게 둘러줘 내 삶의 무게

절대로 뒤지진 않을 거다 그냥 아무개로

 

‘독립음악’에서 ‘누군가의 아버지는 되어주지 못할 것 같다’며 말하던 최엘비는 가족을 이루는 게 꿈이라던 QM과 공감대를 형성한다. 엄연히 다른 화자지만 같은 처지의 이야기이다.

 

손목엔 몇천짜리 시계 동네 장보듯 빛깔은 다꽝

백만원 너무 쉬워, 환전해 유로 바꾸러 가 낮밤

적들을 끌어안아, 가까이 근데 돈은 더 가까이

적금 만들라는 엄마의 입을 막으려 티켓 끊어줬지 사이판

 

입 닥쳐, 너는 말해 침묵은 금

근데 난 나를 말해 손목 금을 감았구만

 

침묵은 금이라던 세상과 달리 자신을 말해 돈을 번 QM. 지금의 QM은 [돈숨] 속 상황이 아니다. 충분히 돈을 벌었고 씀씀이마저 커진 모습이다. [Empire State Motel]과 [Room Service], 두 장의 EP로 설명된 돈을 번 QM의 이야기이다.

 

나를 두고 배를 몰아 떠난 너가

다시 돌아온다면 바다에 잠기면 좋겠다

항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기다릴 수밖에

너답게 그냥 떠나가, 작게

 

그러나 이전 '보통의 삶‘, ’Chantey Interlude' 등에서 자랑스러운 직업과 평범을 요구하던 연인은 돈을 벌어왔음에도 만족하지 못한다. 소소하고, 잔잔한 삶을 바라며, 돈이 아닌 ‘오빠’를 원하는 연인을 곱게 볼 수 없다. ‘항구’는 [돈숨]의 ‘닻’ 트랙에서 비유된 본인의 처지이므로, 상대방이 같은 인물임을 유추할 수 있다.

 

 

2. 입에총 (feat. ZICO)

QM이 직접 밝혔듯 이 앨범 유일한 이지리스닝 트랙이다. ‘지루한 랩’이라는 평가에 반기를 들 듯 북 소리처럼 들리는 드럼 위에서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WAS] 이후 작품들에선 톤이 통일됐었으나 이 곡에서부터 다시 다양한 톤을 선보인다. 피처링으로 참여한 지코의 날선 톤도 더욱 감흥을 더해준다.

 

개미는 개미답게 바닥에 바짝 엎드려

 

그때 총 꺼내지 못해, 아직도 자다 깨

피는 못 속여, 혓바닥, 아빠 DNA

할 말 다 하고 살았다, 피 봤다는 아빠지만

할 말 다 하고 사는 나 불렸지 아빠 지갑

 

아이돌 연습생 시절 있었던 에피소드로 시작하지만 이 앨범 제목인 ‘개미’의 올바른 자세를 소개한 뒤 아빠, 돈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할 말을 하는 것으로 돈을 벌고, 아빠를 호강시킨 지금의 큐엠은 화내지 못했던 과거를 당당히 후회할 수 있다. 이 트랙까지는 개미처럼 납작 엎드리지 않겠다는 의중을 엿볼 수 있다.

 

 

3. Bust down (feat. The Quiett)

 

엄마 왜 이렇게 주름이 많아

시간을 얼려 둬야겠군, 금보다 비싼

 

곡의 시작부터 등장한 것은 ‘엄마의 주름’이다. 조부모를 통해 부모의 노화와 죽음을 두려워 했던 그는 시간을 얼려 둬야겠다며 다짐한다. 금보다 비싼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이는 우리의 삶과 죽음을 두려워 하는 원인이 된다.

 

할부로 시간을 산다면 살래, 알바한

고개 숙여가며 아쉬운 소리 옆엔 앵무새

새장에서 너를 꺼내 잠깐 목을 비틀게

 

지금까지의 QM이 보여주지 않았던 잔인한, 고어한 표현이다. 이 앨범이 담고 있는 울화의 시작이기도 하다. 서비스직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일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한정적이고, 점점 하나의 목소리밖에 내지 못한다. 결국 나의 말도 앵무새처럼 학습되는 것이다. 알바에 낭비되는 자신의 시간이 아깝고, 우습기도 한 상황에서의 자기혐오라고 읽힌다.

 

아빠 죽으면 얼마나 물려줄 거야?

자기 전 상상해 그 돈으로 살 시계와 여자

시간이 느리게 가길 바라지만 빠르길

바라는 난 확실하게 미친 씨발놈 불효자

 

아버지의 죽음은 슬프지만 그 후 물려받을 유산은 기대된다. 자신 안의 이중성을 ‘확실하게 미친 씨발놈 불효자’라며 혐오한다. 청자로서 이 대목에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에게 물려받을 재산이 없는 난, 가족 중 유의미한 재산을 가진 유일한 사람인 외할머니의 죽음을 상상한 적 있다. 가정을 꾸리지 않은 외삼촌과 우리 엄마, 그리고 엄마 밑의 누나와 나 자신. 머리로 계산해보던 와중 스스로 역겨움을 느꼈다. 그러나 내 체면을 위해 그 감정을 누구와 공유할 수 없었다. 반면 이것을 가사로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아티스트인 QM은 직접적으로 고백한다.

 

월에 500부턴 행복 수치가 똑같애?

평생 세 들어 살라는 거잖아 또 월세?

언제 멈춰 내 머릿속 빨간 뱀 혓바닥

진짜 가져야 되겠어 손목에 bust down

 

계급 사회 속 보통의 사람들은 꽤 인정 받을 법한 돈을 벌어도 자가의 꿈을 이룰 수 없다. 돈을 가진 자본가들은 부동하는 와중, 세입자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 깨지지 않을 벽에서 또다시 물욕을 느낀다. ‘Gucci Talks To Me'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빨간 뱀은 사치와도 같다. 빨간 뱀의 혓바닥은 끝없이 QM을 재물로 유혹한다.

 

쇼미더머니 1차 가사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알 것이다. 손목에 얼음 등은 자신의 가사에 없다던 QM과 지금의 QM은 다른 사람이 되었다.

 

4. 나이롱

낭만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지독하게 이성적이고 현실주의자라고 느껴왔던 QM이 교회를 다닌다는 말을 듣고, 또 그로 인해 영감을 받는다는 말을 듣고 꽤나 놀랐었다. 또 팬으로서 과연 신자로서의 그가 무슨 말을 할까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그러나 이런 곡을 낼 것이라고는 상상해본 적 없다.

 

죽음이 무서워 당신을 믿는 것

아닐까, 이러다 아마도 지옥에 갈 걸

침대맡에 성경을 두고 자지만

그 앞에 자위를 하는 난 어떤 인간인가

 

가스펠과 성가를 연상시키는 비트지만 독실한 신앙심과는 반대되는 이야기이다. 맹목적인 믿음과 충성심을 약속하는 분위기와는 다르다. 죽음이라는 불가항력에 대비하기라도 하듯 수지타산을 따지고, 겉보기에 깨끗한 모습도 아니다. ‘나이롱’ 신자로서의 이야기다.

 

욕은 달콤해, 성욕 물욕 또 식욕

이 단어 뒤 싫어라 말한 사람, 안 믿어

 

깔끔하게 입고 착한 척하는 속물

소매 끝은 피가 묻었지 아님 좆물

이런 난 어때, 우리 모두 하나라며

딸 팔이 래퍼는 누리고 부리고 싶어 하녀

 

인간이라면 여러 욕구들을 가지는 게 당연하지만 당당하게 내보이기엔 부끄러움이 있다. ‘소매 ... 좆물’과 ‘딸 팔이 ... 하녀’ 라인은 강렬한 임팩트를 준 가사였는데, 고상하게 돌려 말할 수 있는 부분임에도 일부러 외설적이고 징그럽게 표현했다는 감상이 든다. 성스러운 사운드와 외설적인 가사의 대비가 더더욱 아이러니를 강조시킨다. 게다가 “이런 난 어때”를 물으며, 추악한 면모를 보여주며 사랑을 인정 받고 싶어 하는 모습은 징그럽기까지 하다.

다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우린 모두 하나”를 외치던 QM의 모습을 정말 좋아했는데 (HANNAH 트랙 멜론 재생수 876회) 그 모습을 스스로 부정하는 듯한 모습이라 내 팬심의 근간이 흔들리는 위기를 겪었다. 다만 CD ONLY 트랙이 HANNAH2이므로, 당연히 이것마저 의도했으리라 생각한다.

 

내 얄팍한 믿음의 두께, 나이롱

깨끗한 것들엔 있다고, 알러지

내 얄팍한 믿음의 두께, 나이롱

난 원래 검은 게 아니라 탄 거지

 

‘나이롱’은 훅을 참 잘 짰다고 느껴지는 곡이기도 하다. 단순한 구성임에도 비트와 잘 어울릴뿐더러 총 3가지 문장이 반복되는데 많은 것을 내포한, 그러나 문장 자체의 감흥도 챙긴 가사이기도 하다. 그 중 알러지 라인은, 최근에 나도 많이 하는 생각이어서 공감까지 됐다. 가사 잘 쓰는 래퍼야 많지만, QM은 나와 주파수가 맞아서 더욱 좋아할 수밖에 없다.

 

마주치는 이웃이 갑자기 뒤로 와 바짝 붙어

알고리즘 뉴스가 떠올라 너도 몸 굳게 될 걸

빨리 날 남겨야 돼 해야 되겠어 결혼을

날 믿어줘 제발 사라져 버리기 싫어 난 흔적을

 

싸야 돼 한 명은 요절할지 모르니 셋

낳아줘 남겨야 되잖아 나라는 사람의 DNA

친구가 보낸 애기 사진 몇 장 넘겨 내 새낀 듯

너의 삶을 뺏고 싶다 심지어 너의 신부

야, 내가 너 대신 살아보면 안 될까?

믿어줘 원래 셋이 해도 되잖아 젠가

 

2절은 정말이지 단 한 줄도 버릴 수가 없는 벌스인지라 거의 통째로 인용했다. 공황장애, 더 정확하게는 과거 인터뷰에서 밝혔던 죽음 공포증으로 추정되는 불안함을 느낀다. 그로 인해 죽기 전 자식을 낳아야겠다는 조급합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선까지 넘어버린다. 돈, 여자 등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윤리적인 부분에서 QM을 호평하던 청자일수록 큰 충격을 받을 부분이다. 당연하게도 필자 포함이다.

 

이 부분에서의 QM은 음악이란 틀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연기력을 선보인다. 다소 헐거운 라이밍과 화려함이 덜한 플로우를 피지컬과 가사로 커버한다면, 그의 가사를 특장점으로 끌어올리는 데 연기력이 크게 일조한다. 이전의 ‘중앙차선’, ‘36.5’ 등의 트랙에서도 연기력이 돋보였지만, 단언컨대 이 곡에서 정점을 찍었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밀도 높은 트랙이라고 생각이 든다. 가장 많이 들은 곡이기도 하다. 다만 DNA를 남기고 싶다는 어쩌면 공통적인 감각을 애진작에 포기한 사람으로서 공감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공감하지 못해 더욱 서늘했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겠다.

 

 

5. 번데기 (feat. cacophony)

이전부터 QM이 샤라웃 했던 아티스트라서 카코포니의 참여가 반가웠다. 2분이 채 되지 않는 러닝타임과 비유적인 가사, 또 몽환적이면서도 음울한 보컬은 브릿지의 기능을 한다. 번데기 자체가 유충에서 성충이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피처링이라고 쓰여 있는데 카코포니의 목소리만 담겨 있다. 처음에 당황해서 QM이 작사에 참여했을 듯해 곡 정보를 보았는데, 작사 작곡 란에도 QM의 이름은 없었다. 물론 사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작업했겠지만, 이럴 거면 곡명 말고 아티스트란에 공동작업자로 올렸어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키드밀리의 Kocean에도 재키와이가 함께 있듯이)

 

이걸 듣는 너 만이 조용히 하면 돼

 

마지막 가사는 다음 트랙과 이어진다.

 

 

6. 개미굴

직전 트랙의 마지막 가사인 “너만 조용히 하면 돼”로 시작한다. 도둑질을 하던 동네 형에게 맞았지만 머리가 큰 후 똑같이 도둑질을 하게 된 QM. 엄마 지갑부터 자전거를 털던 그는 한 누나를 만나게 된다. 누나의 담배 냄새는 ‘꼴렸’고, 누나의 자취방에 가서 첫경험을 한다.

 

여긴 따듯해, 전기장판 위는 작은 섬

여름이 처음인 난 물어 남친 있다면서

세상은 장님인데 우리만 조용히 하면 되지

이불에 감긴 우린 들어온 거야

개미굴

 

‘고등학생인 어른’으로 지칭되는 누나는 자신보다 어린 학생을 꼬셔 관계를 가진다. 주변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고, 범죄도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쉽게 통용되지 않는 청소년 간의 성관계 이야기다. 더군다나 남자친구가 있으니 더욱 도덕적 규범과는 거리가 있는 셈이다. 그리곤 다시 등장하는 ‘조용히 하면 된’다는 말이 이 곡의 트랙이다. 말하지 않으면 들키지 않는 사실이 있고, 그 사실이 도덕적일 필요도 없다.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는 공간, 안전하지만 자랑할 수 없는 이불 속은 개미들이 모여 사는 곳, 개미굴이다.

 

개미굴

Trust nobody because everybody lies

개미굴

Life's a bitch and fuck you die for nothin'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무도 믿지 않고, 비관적으로 삶을 바라보게 된 QM이다.

 

씨발 살 좀 빼라, 거울이 싫을 때도

엄마 폰 배경 내 마른 사진은 녹슨 대못

이런 나도 사랑하라며 씨부렁거리지만

내가 날 사랑하지 않는 게 이 대화의 대목

 

밑 빠진 독 물 붓듯 음식을 쑤셔 넣지 난

목에 손가락 넣어, 한 개, 두 개, 세 개 더

게워 내면 다시 태어난 기분 핏줄 터져도

고양이는 놀란 눈, 도망쳐 나에게서

텅 비었으니 다시 채우려 켰지 배달 앱을

 

비만은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자 현 시대 게으름의 표상이기도 하다. 당연히 비만인들은 스스로의 모습을 혐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글을 쓰는 나도 폭식으로 튼살이 날 때까지 비만했던 과거가 있고, 최근 다시 폭식증이 도져 다시 살이 쪄버린 나는 이 벌스에서 도망갈 수 없었다. 내가 애써 사회적으로 숨겨온 감정을 지켜보는 것이, 심지어는 팬의 입장에서 아티스트를 지켜보는 입장으로서 그림이 그려지는 점이 괴롭기도 한 트랙이다.

 

이 트랙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QM의 로우톤을 들을 수 있다. 연기를 전공하다 보면 다양한 목소리와 움직임이 필요한 장면들이 있는데, 그것을 음악에서 경험하니 새롭기도 했다.

 

 

7. Just do it

나이키의 유명한 캐치프레이즈 “Just do it". 하지만 나이키를 사는 내용은 아니다. 직역하면 ‘그냥 해’ 정도의 뉘앙스인데, 한 편으로는 무책임하고 폭력적으로 들릴 수 있는 어휘이기도 하다.

직전 트랙에서 최고로 음울한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그 분위기를 이어가기보단 잔잔해지는 현악기 소리로 시작한다. 교향곡 같기도 하다.

 

빌려온 꿈을 갚는 사람, 이젠 없지 재미가

돋보기 들어 태양을 등진 기분은 demi god

동기부여 하는 숏츠들 말하지 낮은 곳에 행복이

개미 타는 냄새 즐겨라

 

‘꿈을 꾼다’라는 펀치라인으로 청자들의 감탄을 불러일으키던 그였지만 이젠 그것에 흥미를 잃었다. 꿈을 꿔도 이상에는 닿을 수 없고, 이미 이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낮은 곳에 행복이 있다”고 말한다. 마치 계급상승을 꿈 꾸지 말라는 것처럼 들린다.

 

손엔 4천짜리 시계, 목엔 2천

보증금 목에 걸고 다녀도 불안한 밑천

행복하지 않아, 아직 모자란가 돈

똑같을 것 같다 적으면 고작 몇천이냐 욕

지금이 지겨운 내게 다음 영수증이 와있지

청년 적금이 말해 just do it lik Nike

 

벌 만큼 벌었지만 아직 성에 차지 않고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이 못마땅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지불해야 할 값은 주기적으로 생긴다. 그 중 하나로 대표되는 청년적금은 “Just do it.”이라고 말한다. 마치 불만을 가지지 말고 일을 해서 돈을 벌어오라는 식으로, 우리의 생각마저 돈 앞에서는 사치가 되어 버린다.

 

가족사진 찍는 김에 영정 사진도 찍자

아빠의 말에 이제 죽음은 꽤 잦은 인사

 

결혼을 안 한다면 아마 HANNAH는 그저 비유

그 편이 낫지 뭐 음악은 영원히 사는 기술

 

지금껏 두려워 해온 부모님의 죽음은 이제 머나먼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결혼을 해서 한나라는 딸을 낳고 가족을 이루는 꿈도 포기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가 될 준비를 하는 아빠는 물어

이 핸드폰 위치 추적되냐? 잃어버렸어요

왜 갑자기란 물음에 기억을 잃어버릴 준비야

그의 뒤에 걸린 수십 개의 마라톤 메달과

밑창이 닳은 나이키 시체 밭은 베란다

개미 페로몬 쫓듯 집 돌아오던 사내

미아가 되는 모습은 나 보지 않을까 해

 

그러나 아빠의 노화는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치매와 갖은 노후를 대비하는 아빠의 모습을 마주하기도 힘들다.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곤 한다. 오랜 시간 달려오며 이룬 성과도 있을 것이고, 희생한 것들도 있을 것이다. 개미가 페로몬은 쫓는 것은 무의식의 영역이다. 오래 다닌 길은 머리가 아닌 발로 익히듯 무의식적으로 집을 찾아올 수 있다. 그러므로 아빠가 길을 잃고 미아가 되는 상황을 겪고 싶지 않아 회피한다.

 

내가 먼저 죽으면 불효자 되는 거 맞지?

Just do it like Nike

 

처음으로 직접적인 자신의 죽음을 언급한다. 우울증 등을 겪으면 죽음이 꽤나 가까워지곤 한다. 언제든 내 선택지로 고려할 수 있는 염두의 대상. 견디기 힘든 상황을 앞두고 있을 때 회피성으로 자살 사고가 들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도 자식의 죽음이 부모에게 끼칠 영향을 걱정하게 되는데, 이기적인 마음의 소리는 ‘Just do it’이다. 그렇게 죽음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진다. 죽음 시퀀스의 도입이다.

 

 

8. 망가진것들 (feat. 지웅)

 

아무리 떠나라고

밀어내고 소리쳐도

네 곁에 남아줄 테니

더 망가져도 돼

나도 망가진 사람인 듯해

 

톱니바퀴처럼 딱 물려 돌아가는

우리 너의 눈에 맞춰 땡기지, 탱고

 

총알처럼 내리쬐는 햇볕을 피해

원 스텝, 투 스텝, 이야기는 톨스토이

 

지구가 망했음 좋겠어란 너의 말에

너의 머리를 쓰다듬고, 나도라 말해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삐걱 소리가

걱정 안 해도 돼, 이미 망가진 우리야

 

정신 질환으로 힘들어 하는 연인과의 이야기이다. 아름답게 포장된 심연의 이야기라고 느껴질 만큼 지독하게 낭만적이고 지독하게 어둡다. 망가진 사람들끼리 집 안에서 평생을 약속하지만, 사회에 섞이지 못한 채 침몰하는 모양새다.

 

술 먹고 약 먹지 말랬잖아

팔에 새겨진 지옥으로 향하는 계단

바닥 흩뿌려진 ᄈᆞᆯ간색

붕대를 가져와 감아주니

넌 말해, 나 지금 좀비 같애

 

QM은 마이크 스웨거에 출연해서도 자해를 ‘팔에 새긴 계단’이라고 비유한 바 있다. 정신과 약물은 간에 치명적인 경우가 많아 보통 술과 함께 복용을 엄금하는데도 환자들은 술에 의존하는 경향이 흔하다. 자해를 해야지만이 심리적 안정을 찾는 환자들은 가끔 피를 봐야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꼭 붕대를 감아서 뿐만 아니라, 살아 있지만 죽은 듯하게 느끼는 점에서 좀비와 유사하다.

 

문을 닫아 세상을 가둬 놓고

끝이 오길 바란 우리 성은 John Doe

문이 열리고 발견될 우리 둘 거린

폼페이 연인 0센치 정도

 

‘pompeii two maidens'로 검색하면 볼 수 있는 폼페이 연인의 사진. 세상이 멸망하는 와중 서로를 끌어안고 생을 마감한다.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모습이고, 이미 죽음과 다름없는 이들에겐 최고의 낭만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다. 정말이지 낭만에 질식해 죽을 것 같은 곡이다.

 

 

9. 개미 (feat. 최항석)

QM의 쇼미더머니 1차는 사실 Joey Bada$$ 타입 비트에 쓴 벌스였다. 그 녹음본을 인스타 스토리에 올렸었는데, 난 그것을 듣고 재즈 붐뱁을 제발 해달라고 DM으로 읍소한 적 있다. 최항석과 부기몬스터를 온스테이지에서 처음 접하고, [Founder]에서 최항석 피처링을 돌려 들으며 제발 QM과도 협업해달라고 마음 속으로 빌었던 적도 있다. 그리고 그 소원을 이뤄주듯 재즈 비트에서 최항석과 만났다. 도입부의 그루브가 정말 좋아 반 마디 만에 고개를 흔들었다.

 

아빠의 모닝 카톡, 아침에 일어나는 내게

답장이 오질 않자 불안한 그는 전화를 걸어

몇 번 걸다 더는 아들이 애가 아니란 걸

떠올린 뒤 바쁘냐고 적고 나서 다릴 떨어

 

7, 8 트랙에서 시작된 죽음의 암시는 9번에 와서 아빠의 불안을 일으키게 되었다. 인스타 스토리로 밝힌 바, 공황 발작으로 인해 ‘구급차와 가장 친하던’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구급차를 탈 정도로 심각한 아들의 모습을 지켜본 부모는 금 간 유리잔을 바라보듯 주의했을 것이다.

 

내 피사체는 모래밭에

애들 장난감에 치인 수개미 같애

원치 않는 우연에서 억지로 태어난

내가 적어도 정했단 거야 지구를 떠날 때

 

모든 생명은 자신의 의지로 태어나지 않는다. 부모의 선택으로 세상에 던져졌지만 자신의 삶은 자신이 책임져야만 한다. 삶은 고통이고, 죽음의 이유는 있을 지언정 삶의 이유를 찾기란 어렵다. 그런 생각들은 결국 죽음으로 유인한다. 시작은 내 선택이 아니었지만 죽음 만큼은 직접 선택하고 싶게 된다.

 

남이 되고파 샀던 금색 데이데이트

부자 친구 카시오 앞엔 손목 가리게 돼

비교하는 삶 여기 천국은 없기에

내 질투를 끝내는 방법 너에겐 아니길

 

남과 비교하며 산다면 결코 만족할 수 없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은 자연스럽게 질투를 유발하고, 질투를 없애기 위해선 가져야만 한다. 하지만 노력해서 시계를 사더라도 진짜 부자 앞에서는 부끄러울 뿐이다. 그렇다면 결국 질투를 느끼는 나를 없애야 한다.

 

네 살 때, 너무 예뻐서 효도를 다 했단

엄마의 말이 사실이길 바라 아리따운

나이 때 날 가진 사람, 내가 더 나이 많아

영원히 날 낳은 당신보다 어른 돼 떠나

 

효도를 다 했다는 그 말이 사실이어야 마음 편히 떠날 수 있다. 엄마가 날 가진 나이보다 지금의 내 나이가 더 많기 때문에, 더 어른이기 때문에 떠날 수 있는 나이로 합리화가 되기도 한다. 결국 이 앨범은 화자를 향해 달려간다.

 

 

10. Slow horses

검색해보니 동명의 영국 드라마가 있지만, 스파이 드라마라고 하니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이 들진 않는다. (숙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말’이라고 하면 빠르게 달리는 이미지가 연상되고, 어쩌면 빠르게 달리는 자체가 말의 쓰임새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말이 느리면 쓸모가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QM은 90년생 말띠기도 하다.

 

물음표를 던지겠다고 만든 내 이름도

죽음 앞에선 느낌표가 돼 숨게 되는 거

솔직함의 맛은 떫고 비려

너무 거울 같은 내 가사들 너를 닮아 싫어?

나도 때론 날 지워 버리고 싶은 맘에 미워한

내 모습 여기 담았지 90도인 감정 기복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렵다. 솔직함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고,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에게 껄끄럽기도 하다. 나와 우리를 대변하는 QM의 이야기가 아프기도 하다.

 

위로 하려 들지 마라, 난 해봤지 사랑을

지구 넓다는 말도 시간 앞에선 단지 섬일 뿐

 

섬에 갇힌 이유 돈인 줄 알았지만

비로소 죽어야만이 이길 수 있어 시간

 

모든 것은 죽고 사라지게 되어 있다. 야속한 시간은 그들을 죽음으로 이끈다. 죽기 전까지 시간은 계속 흐를 것이므로, 죽어야만이 시간을 멈추게 할 수 있다. 이 앨범의 결말은 결국 화자의 죽음이다.

 

(아래 한 줄엔 CD 버전 결말 약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다만 사랑을 해봤다는 가사 때문에, CD 버전 결말에 설득력을 다소 잃어버린 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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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NAH]를 인생 앨범으로 꼽는 사람으로서, 이 냉소적인 앨범을 그만큼 사랑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음악적 완성도로 이 앨범은 확실하게 QM의 커리어하이 작품이다. 지루하지 않은 사운드와 탄탄한 랩, 징그러울 지경의 가사와 이를 뒷받침하는 연기력까지 앨범 장인의 반열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앨범으로 QM은 여러 방면에서 인정 받을 것이다. 지루한 랩보다 탄탄한 랩이란 수식어가 맞을 것이고, 단순히 시적인 문장을 쓰는 이상으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으며, 그 이야기를 직접 연기력으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 QM보다 랩 잘하는 래퍼는 있을지언정, 이 만큼 가사를 잘 쓰고 연기를 잘 하는 래퍼는 쉽게 찾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앨범들은 수필과 비슷하게 다가왔다. 경험했던 일들을 잘 정돈해서 깔끔한 문장으로 들려주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과거의 경험을 현재로 가져와 (고양이와 집 등은 ‘돈숨’ 이후의 QM이다.) 시간선이 혼재되면서 사실과 허구를 오가는 세계관이 만들어졌고, 과거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게 되면서 화자의 상황에 더욱 이입할 수 있게 설계됐다. 또한 의도적으로 자극적인 단어를 배치하며 청자에게 반응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작가주의적인 이 앨범은 장르 소설과 비슷한 여운을 준다.

 

다만 의도적으로 도덕적 규범을 파괴하는 순간이 있어 당황스러움을 소화시키는 데에 시간이 꽤나 걸렸다. 처음엔 당황스러움과 암울한 분위기, 그리고 걱정에 짓눌려 후기에 쓸 내용을 정리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럼에도 규범 밖의 욕구들을 표출하는 것에 대해 역겹고 징그럽게 표현한 것을 보며, 정말 다행이라고 느꼈다고 솔직하게 밝힌다.

 

2년 전 쯤 스쳐지나간 생각이 떠올라 메모장을 뒤져 보았다. ‘가장 숨기고 싶은 것을 내보이는 것이 가장 쿨하다’라는 문장이었다. 이 앨범을 듣는 내내 nasty라는 단어가 맴돌았는데, 아마 저 문장과 함께 이 앨범을 소개할 수 있는 말이지 않을까 싶다.

 

이 앨범 제목이자 가사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미’란 비단 QM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개미를 정확히 무엇이다 속단할 수는 없지만, 이 세상을 살면서 힘들어 하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우리를 포함한 비유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오래 전부터 기다린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을 [개미] 발매 전날에 보고 왔다. “소외된 사람인 나라도 또 다른 소외된 사람에게 다가갈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다. 이 메시지가 나는 [개미]에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만 이상한 것 같다‘고 느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났을 때의 안도감을. 내게 [개미]는 그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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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막차 타려고 급하게 썼더니 성에 차질 않습니다만, 그래도 열심히 썼습니다.

엘이 말고는 올릴 곳이 마땅히 없어서 이곳에 올립니다. 피로하시더라도, 마감이 30분 남았으니 조금만 더 버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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