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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지 - EAT ] 리뷰

카슈2024.01.27 05:09조회 수 1989추천수 13댓글 7

   당신에게 청춘靑春의 이미지는 어떤가? 아름답고 찬란한 시절? 힘들었지만 돌아보면 그래도 즐거웠던 시절? 누군가는 아무런 가책 없이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보통의 경우 청춘을 '아름 답'고 '찬란'했다고만 회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추억 보정'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회는 청춘을 지나치게 아름다워야만 할 것처럼, 아름답지 못했던 청춘도 굳이 아름답게 만들려는 습성이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청춘을 떠올릴 때 아름다웠던 기억만을 들춰낸다. 그러나 여기서 자신의 청춘을 한 번 돌이켜보라. 지금이 청춘이라면 지금의 자신을 돌아보라. 과연 아름다운가? 혹은 청춘이라고 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추하고 평범한가. 그것마저 ‘푸른 봄날’이라고 불러줄 수 있는가? 오직 오색 빛깔 찬란한 봄날만을 청춘으로 그리는 세상에 정면으로 자신만의 잿빛 청춘을 드러낸 앨범, 화지의 《 EAT 》이다.

 

   《 EAT 》은 저음 베이스가 뇌를 울리는 좁은 방에서 시작한다. 화지는 그 당시 2006년부터 2010년을 직접 회고하는데, 이는 장난으로라도 ‘오색 찬란’하다고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물 담배 보드카 앤 토닉/ 독에 전 몸 그리고 꽉 찬 재떨이’, ‘바닥을 기던 조울증/ 사람들 눈에 각인된 병신 또라이/ 저 새끼가 뭔 랩을 해’, ‘세상에 화가 많이 났었던 것 같아’. 화지의 세상을 향한 분노는 자기 파괴적 충동으로 발현된다. 예를 들면 섹스, 마약(...), 술과 같은 환락의 세계다. 화지는 이러한 충동으로 신이 되어버렸다가 (‘내게 걸맞은 건 하찮은 인기 말고 지배’, ‘두려워해 그게 지당해/ 네 얘기 같다면서 계속 따라오길 바라/ 어느 순간 나의 훅이 네 두 입술을 맴돌 때/ 넌 이미 나의 종, 주님이라 불러볼래?’ <새로운 신>) 여자와 쾌락에 지배되기도 하는 나날을 보낸다. (‘거기 언니 일로 와/ 내 옆에 앉아/ 저기 네 언니 데려와/ 차린 게 많아’ <말아>) 그러다가도 기약 없는 서울에 고래고래 소리를 친다. “잘 자” (‘언제나 한남대교 건너면서 소리쳐/ 잘 자, 잘 자. 서울’ <잘 자, 서울>) 언제나 서울은 밤늦게까지 욕망만이 반짝일 뿐 대답해 주지 않는다.

 

   환각제 중독 경험을 그린 한 만화가는 그랬다. 환각제는 느긋한 자살이라고. 놀이공원에서 돌아오면서 보는 집으로 향하는 길이 최악인 것처럼, 각성제를 써서 얻어지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오히려 깜짝 놀랄 만큼 압도적인 현실이라고. 화지는 이제 절뚝대는, 시야가 빙빙 도는 자신을 마주한다. 그래도 외면할 수 있다. 화지는 아직 ‘젊으니까’. 그러나 자신을 마주한 순간부터 스스로는 알게 모르게 균열되어간다.

 

   《 EAT 》의 백미인 <FETISH>에서는 쾌락이 충족되어가는 와중에서도 자아 붕괴를 목도한다. 앞서 <젊은데>에서 언급했던 ‘빙빙 도는 세상’이 눈의 흰자에서 다시 보이고, 가장 습한 기억에서 ‘어둠’을 꺼내 어루만지면서 본인을 더 깊은 나락으로 내몰게 된다. 세상에는 회색으로 일관하고, 본인은 스스로 어둠으로 내몰아진 순간, 스물다섯은 코앞으로 다가온다. 여기서 앨범의 첫 트랙인 <집에서 따라 하지 마>에서 사용된 드럼 샘플과 ‘Epiphany’라고 속삭이는 보컬 샘플이 다시 한번 사용된다. 이 장치를 통해 랩을 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은 <집에서 따라 하지 마>와 같이 <FETISH>에서는 세상은 흑과 백으로 나눠져 있고, 자신은 그 중간 회색에서 머물거나 일관해왔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야말로, 20대의 제2막이 열린 것이다. 담뱃불을 붙이고, 남자친구가 있는 여자와 단둘이 침대에 누운 어느 밤.

 

   화지의 스물다섯은 앞서 화지 스스로 두 단어로 축약했다. ‘랩과 섹스’. 사람들이 멀리하는 유혹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떠밀고, 피폐하게 하는 것들로서 스스로를 위로할 수밖에 없는 ‘외로운 눈시울’을 붉히는 스물다섯, 잿빛 청춘의 화지는 그저 발 디디는 곳으로 걷는다. 유혹이 이끈다면 이끄는 곳으로, 외로움이 이끌면 이끄는 곳으로. 회색으로 일관하기를 포기한 채, 흰자 너머 보이는 빙빙 도는 세상을 거부하고 검은 손을 부여잡는다. ('이게 내 루틴이자 날 다스리는 방법/ 검은 손을 부여잡지/ 내 나이 스물다섯' <스물다섯>)

 

   그러나 그는 검은 손을 부여잡은 것에 대해서 어떠한 가치 판단도 내리지 않는다. 그것은 옳지도, 그르지도 않은 행동이다. 그저 선택을 했을 뿐. 그것은 <스물다섯>에서 언급한 ‘이 도시의 역병/ 코를 막기엔 숨이 차서/ 되려 그걸 반기는 법을 배’운 것이고, ‘이게 내 루틴이자 날 다스리는 방법’일 것이다. 또, <테크니컬러>에서 나온 괴물의 ‘외롭지만 행복할 방법’이다. 가치 판단을 하는 것은 ‘마을 사람들’로 대표되는 타인들일 뿐이다. 그의 청춘에 멋대로 잿빛 칠을 한 것도, 다리를 빌려줄 듯 유혹하다가도 낭만을 이용했던 것도 모두 타인이다. 이 앨범을 여기까지 들어오면서 그를 조금이나마 한심하게 생각했다면 우리도 마을 사람이 되고야 만 것이다. 타인이기 때문에. ('잿빛 Bar들 뒤로 감춰진 내 꿈은 테크니컬러' <테크니컬러>)

 

   ‘마을 사람들’이 좇아낸 화지는 금고 속 자신만의 행복할 방법을 안고 바하마를 찾아 나선다. 꼭 바하마가 아니라도 좋다. 그곳이 어디든, 당신이 당신으로 살아가고, 그것이 검은 손이든 하얀 손이든, 잿빛 손이든 마음대로 손을 뻗고 잡을 수 있는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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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 1 1.27 07:17

    정말 묵직하고 끈적한 작품이죠…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 카슈글쓴이
    1.28 03:30
    @Writersglock

    감사합니다!!

  • 1 1.27 07:55

    바하마를 찾아 메타버스로 모험을 떠난 화지,

    3집 낸다고 하고 4년째 실종상태

  • 카슈글쓴이
    1.28 03:31
    @깡일권

    원래 바하마를 쉽게 찾을 순 없는 법이죠… 그의 시간을 기다려줍시당

  • 1 1.27 12:05

    그래서 오히려 아름다운 앨범

  • 카슈글쓴이
    1.28 03:32
    @AlexandRaw

    그럿읍니다…👍✌️

  • 1 1.27 12:10

    새 앨범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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