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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롬(Slom)

title: [회원구입불가]Destin2022.11.07 18:02추천수 4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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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둘씩 스타 프로듀서들이 등장해 남다른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2020년대의 한국 힙합/알앤비 씬. 이 중에서도 슬롬(Slom)은 탄탄한 리듬과 감각적인 사운드를 바탕으로 한 본인의 작업물을 선보이며 대중과 장르 팬, 그리고 여러 아티스트의 취향을 사로잡고 있는 프로듀서다. 이런 슬롬이 마침내 첫 정규 앨범 [WEATHER REPORT]를 들고 우리 곁에 돌아왔다.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의 기라성같은 참여진으로도 화제가 되었지만, 그보다도 슬롬이란 프로듀서의 음악적, 인간적 매력이 함축되어 담긴 작품임이 분명하다. 이에 힙합엘이는 슬롬을 만나 음악관부터 작업기, [WEATHER REPORT]에 담긴 사운드, 포스트 프로덕션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LE: 힙합엘이 회원분들에게 인사를 부탁드릴게요.

 

슬롬: 안녕하세요, 슬롬입니다. 가을 전어같이 가을에만 찾아오는 사람 같네요. (전원 웃음)

 

 

 

 

 

LE: [MINISERIES] 이후로 오랜만입니다. 근황은 어떠신가요?

 

일단 봄, 여름 동안 앨범 초안 작업을 하다가 믹스 마무리가 이틀 전에 끝났고요. <쇼미더머니> 출연이 확정되면서 정신없이 보내고 있어요.

 

 

 

 

 

LE: 올해 초는 거의 앨범 작업만 하고 계셨던 건가요?

 

네, 아마 내년쯤에 발매될 트랙들이 있어요. 그 곡까지가 “회전목마” 같은 쇼미더머니 곡들과 [MINISERIES]를 기점으로 제가 가진 트랙들을 원기옥으로 모아서 던진 느낌이거든요. 그래서 재충전할 시간도 필요했고요. 이후로 굵직굵직한 트랙들이 연달아 발매하다 보니 다음엔 어떤 곡들을 작업할지 구상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LE: <쇼미더머니>에 두 시즌 연속으로 출연하고 계시는데요. 또, <쇼미더머니 9> 때는 노래를 프로듀싱하셨고요. 이렇게 자신을 혹사하면서까지 출연을 결심한 계기가 있을까요?

 

기회가 왔으니까 하는 게 맞다 생각했어요. 제가 라이브로 목소리를 내는 포지션이 아니잖아요? 막 킥 고르는 소리를 몇 시간 동안 들려줄 수도 없고요. 쇼미더머니가 곡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면밀하게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닌가 싶어서 제의가 올 때마다 잡아버린 것 같습니다.

 

 

 

 

 

LE: 사실 인터뷰가 잡혔을 때 의아했어요. 스케줄 때문에 갈려 나가다시피 하고 계실 줄 알았거든요. 정신없는 와중에 워라벨은 잘 찾고 있으신가요?

 

맞아요. 대체로 쇼미에서 음원 초안부터 믹스까지 2주 정도의 시간을 줘요. 그런데 이번 팀 음원의 경우 1주밖에 시간이 안 주어졌어요. 하지만 초인적인 에너지가 발휘되는지 그걸 완성해 나가는 정신적인 고양감이 생기더라고요. 

 

스케줄 자체는 들이닥치면 소화할 수 있는데 한 번씩 몰아치고 나면 연초에는 좀 쉬는 편이에요. 그러다가 초봄쯤 되면 '이렇게 쉬어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고, 오히려 심심해서 더 부지런히 작업하고 싶어져요. 또 여름쯤 되면 다시 섭외가 오고 고민에 빠지죠. '다시 한번 해도 괜찮지 않을까? 체력도 다시 올라온 것 같은데.' 이런 식으로요.

 

 

 

 

 

LE: <쇼미더머니>로 이렇게 작업 주기가…

 

네, (웃음) 그런 1년의 주기가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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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사실 이제 회사가 생겼잖아요? 스탠다드 프렌즈(STANDARD FRIENDS)에 합류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을까요?

 

사실은 제가 이 회사에 제일 처음 소속된 아티스트였어요. 엄청 오래전부터 이걸 기획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었고, <쇼미더머니>의 성과 이후로 해솔이 형(자이언티)도 확신이 생기셔서 제게 같이 해보자고 제안을 주셨죠. 사실상 합류했던 시점은 작년 <쇼미더머니> 때부터였어요. 어쨌든 제 앨범 발표에 맞춰서 영입을 공개하는 게 회사 입장에서는 더 이롭잖아요. 그래서 홍길동처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된 것 같아요. (전원 웃음)

 

 

 

 

 

LE: 이미 한국에 돌아올 때부터 자이언티(Zion.T) 님이랑 계속하기로 결심했던 건가요?

 

미국에 있을 때는 제가 음악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하고자 했고, 당시에 석사를 지원한 상태였어요. 그런데 이게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이 됐어요. 교내 커뮤니티 안의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기는 어렵겠다 싶어서 대학원은 보류하고 <쇼미더머니 9> 때 헤드 트랙 메이커로 참여했죠. 방송에서의 모습이 반향이 있었으니까 이렇게까지 흘러 들어온 느낌이에요.

 

 

 

 

 

LE: 인디펜던트 생활과 비교해봤을 때 회사와 계약을 맺고 바뀐 점이 있나요? 

 

기본적으로 너무 편한 것 같아요. 제가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도 음악 작업보다 더 힘들었던 점이 피처링을 부탁하는 입장에서 생기는 감정 노동이었거든요. 제 활동 때문에 남들의 스케줄을 비집고 들어가는 거잖아요? 제가 방해받고 싶지 않은 만큼 남들도 방해하기 싫어하는 성격인데요. 이런 부분에서 움직여 주시는 분들이 생겨서 그런 스트레스가 줄어든 것 같아요. 이제는 작업만 할 수 있고, 친한 사람들끼리 회사라는 지붕 아래 모이니까 든든한 느낌도 들고 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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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럼 이제 프로듀서 슬롬과 인간 김민우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해 봅시다. 일단 프로듀서 슬롬에 초점을 맞춰볼게요.

 

네, 좋습니다. 

 

 

 

 

 

LE: 개인적으로는 슬롬 음악의 매력은 미니멀함도 좋지만, 리듬 파트와 들리지 않을 법한 저음역 쪽에서 나오는 안정감, 그리고 여러 디테일에서 느껴지는 변태(?)스러움이에요. 이런 본인은 본인의 음악적 매력이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사람들이 각자 생각하는 완성형의 음악에 있어서 모자란 점을 채우기 위해 다른 것들을 갖다 넣는 경향이 있잖아요? 저 자신을 생각했을 때는 연주적으로 그렇게 뛰어나지도 않고, 건반이라고 해봤자 귀동냥으로 알게 된 코드들을 미디로 찍어 넣는 게 주된 멜로디 작업의 일환인데요. 그 부분을 드럼이나 베이스라인으로 묵직하게 채우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LE: 역시 겸손하시네요. (웃음) 슬롬 님의 드럼과 베이스라인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멜로디를 감추기 위한 요소라는 말씀이신가요?

 

겸손하게 말씀드리자면 그런 것 같아요. 드럼은 어쨌든 제가 그 소리를 찾고 가공하면 원하는 소리가 나오니까요. 제가 만드는 음악이 드럼 필인(여러 가지 테크닉의 구사로 일정 박자동안 연주하는 것)이 그렇게 복잡하지 않고, 질감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음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LE: 드럼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이오공(250) 님은 머릿속에 소리에 관한 라이브러리가 형성되어 있어서 실제로 음악을 만들 때도 반영이 된다고 하셨어요. 슬롬 님 같은 경우에도 그런 라이브러리가 음악에 반영되는 요소가 있을까요?

 

확실히 그런 게 있죠. 제가 좋아하는 소리가 대부분 80년대에서 나오는 소스들이거든요.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스플라이스(Splice) 소스들보다는 빈티지 드럼을 많이 사용하는 편이에요. 드럼 브레이크를 많이 사용하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이때는 이 드럼 소스끼리만 모여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작업을 하진 않는데요. 특정한 소리를 내고 싶을 때 주로 찾게 되는 소스들이 있는 것 같긴 해요.

 

 

 

 

 

LE: 이를테면 특정한 악기, 특정한 브랜드 같은 것들도 있을까요?

 

일단 린드럼(LinnDrum)이라든지, 롤랜드(Roland) 사의 CR-78이라든지 707 이런 소리들이 제일 잘 묻어나게 섞이는 것 같아요. 드럼에 베이스가 있으면 탑의 색깔이 될 만한 그런 소스들도 있죠. 제 스템을 열어보면 거의 한 절반 이상이 드럼 트랙이고, 드럼 레이어가 굉장히 많이 쌓여 있어요. 보통 작업을 할 때는 베이스로 들릴 만한 소스를 하나 고른 다음에 그 위에 올라갈 색채들을 모으는 편이에요.

 

 

 

 


LE: 사실 프로듀서로서는 다양한 롤이 있잖아요? 본인이 직접 사운드 하나하나에 집착하는 부분도 있지만, 조금 더 거시적으로 큰 그림을 보는 경우도 있고 말이죠. 현재는 프로듀서로서 어떤 롤을 고민하고, 그걸 어떻게 음악에 반영하시나요?

 

큰 대목에서 말씀드리면 특별하게는 없는 것 같지만 지금 입장에서는 A&R스러운 느낌이 있긴 해요. 저야 워낙 음악 찾아 듣는 걸 좋아하고 친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났을 때 상대가 모를 법한, 좋아할 만한 음악을 추천해줘서 환심을 사는 게 취미거든요. (전원 웃음)

 

저의 이런 점이 아티스트들을 만났을 때 강점으로도 작용하죠. ‘이런 노래도 있는데 이런 사운드로 꾸미면 당신에게도 잘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보컬적인 영역보다는 편곡의 디테일에서 첨언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https://www.youtube.com/watch?v=EoPQ5V8bIBk

 

 

LE: 말씀하셨듯이 슬롬님 하면 음악 디거로도 유명해요. 요즘 가장 눈여겨보고 있는 프로듀서나 음악 사조가 혹시 있을까요?

 

저도 요즘 되게 옛날로 돌아가고 있어요. 보즈 스캑스(Boz Scaggs)도 다시 듣고요. 최근에 테일러 맥퍼린(Taylor McFerrin) 신보도 좋았어요. 그리고 블루스에 눈이 뜨이게 된 것 같은데 폴 사이먼(Paul Simon)의 “Run That Body Down”이라는 노래를 앨범 마무리하면서 많이 들었어요. 키린지(KIRINJI) 신보도 괜찮았고요.

 

 

 

 

 

LE: 그래도 외부적으로 틱톡(TikTok)이라는 플랫폼 때문에 음악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고 있잖아요? 틱톡 뮤직이라 할 정도로 포인트 있는 음악이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데, 프로듀서로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유튜브로 보는 영화나 드라마 요약본과 비슷하다고 느껴요. 범대중적으로 포인트만을 위해 2차 가공된 영상이 순전히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수보다 훨씬 많다는 걸 인지 할 수 있었죠. 이걸 이용해서 음악 만드는 사람들이 덕을 볼 수 있다면 그런대로 좋은 점이지만요. 음악을 순전히 흐름에 맞춰서 들을 수 없는 사람들이 발생하는 점은 아쉬워요.

 

 

 

 


LE: 그런 흐름 속에 있는 프로듀서로서 ‘묵직하게 내 길만 걷겠다’라는 것도 있겠지만 트렌드를 반영해야 할 때도 있을 거 같은데. 본인은 어떠한 편인가요?

 

그래서 이번 앨범 수록곡들이 짧아요. (전원 웃음) 그런 부분에서 나름대로 반영이 된 것도 같고요. 기획적으로도 팝 씬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평소 같으면 섭외하기 어려웠을 분들을 모셔서 왔는데요. 그런 만큼 듣는 사람들이 편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LE: 좋습니다. 스플라이스와 같은 샘플팩 덕분에 누구나 쉽게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었어요. 슬롬 님은 스플라이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요? 

 

음악을 표현하기 편해진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생각하지만요. 보람적인 측면에서 반감되는 건 어쩔 수 없죠. 장기적으로 봤을 때 스플라이스에 너무 의존하는 사람일수록 허무함을 많이 느낄 수 있겠다 싶어요.

 

 

 

 

 

LE: 그럼 프로듀서로서 본인의 보람은 어디서 오나요?

 

저도 물론 듣고 자란 것들에 영향을 받아서 창작하긴 하지만, 제가 초창기에 배웠던 음악 만드는 과정에 충실하게 노래를 완성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껴요.

 

 

 

 

 

LE: 자신의 직접적인 기여도에 따른 건가요?

 

그렇죠. 샘플팩의 경우, 기타 리프를 전문적으로 하는 세션이 많지는 않아요. 이런 식으로 기타나 건반을 쓰다 보면 터치나 벨로시티가 유사한 경우가 많거든요. 그 때문에 스플라이스를 쓸수록 빠르게 작업을 할 수는 있지만 프로듀서 고유의 색깔을 보여주긴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요.

 

 

 

 

 

LE: 그렇게 된 경향에는 샘플 클리어를 포함한 저작권의 문제도 있지 않을까요?

 

맞아요. 그런데 또 웃긴 게 샘플링을 위해서 스플라이스를 쓴다고는 하지만, 막상 나왔을 때는 샘플링이 아닌 것처럼 보이려고 노력한 때도 보인다는 거죠. 물론, 저 같은 경우 그냥 샘플을 사용하기도 하거든요. 조광일의 “깽값” 같은 경우, 제가 샘플을 가져와서 만든 곡이에요. 어쨌든 프로듀서 개인의 색깔보다 전반적으로 요즘 나온 음악 같다는 느낌이 강하죠.

 

 

https://www.youtube.com/watch?v=_xeofqAIu74

 

 

LE: 그런 와중에도 본인의 취향을 저격한 국내, 외 프로듀서들이 혹시 있으셨나요?

 

이미 제가 알고 있던 사람들이 오히려 꾸준하게 연구를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해외 쪽으로 생각하면 푸르르르 레코드(Prrrrrrr Records)의 페르시안 엠파이어(Persian Empire)라는 분. 이분이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신 걸로 아는데 들어보면 나레이션만 쭉 사용하기도 하고요. 또, 특이한 트랙 중에는 “3 options”라는 트랙이 있어요.

 

주된 내용이 ‘이제 당신에게는 세 가지 옵션밖에 없다.’ 이러면서 ‘첫 번째는 주방에서 주 6일로 일하는 것이다. 출근할 때도 아이들은 자고 있고 퇴근할 때도 자고 있다. 하지만 너의 품위와 수익은 지킬 수 있다.’, ‘두 번째는 거짓을 파는 것이다. 음식도 대충 만들고 높은 가격으로 팔지만 네가 만든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된다.’, ‘세 번째는 앞치마를 벗고 무직이 되는 것이다.’ (웃음) 이런 건데 뭔가 되게 무드가 있더라고요. 노래도 다 짧아서 한 1분 20초 정도 돼요.

 

 

 

 

 

LE: 이런 건 다 어떻게 아시게 된 거에요?

 

제가 원래 푸르르르 레코드랑 소통하고 있었어요. 수민(SUMIN) 누나가 위에 노래를 부른 적도 있었던, 사이언티픽(Scientific)이라는 프로듀서와 같이 작업을 한 트랙이 있는데요. 그 친구가 소속되어 있는 레이블이 푸르르르 레코드예요. 자주 듣진 않지만, 들을 때마다 약간씩 뭔가 오는 느낌이 되게 좋아요.

 

 

 

 

 

LE: 재밌네요. 2020년대 한국 힙합 씬을 보면 2000년대 상황이 떠올라요. 프로듀서들이 팝 음악 업계의 러브콜을 받으면서 스타 프로듀서들이 여럿 배출되었던 시기였잖아요? 슬롬 님도 대형 기획사의 작업 러브콜을 많이 받았을 거 같아요.

 

딱히 없습니다. (웃음) 아마 있었는데 제가 성사를 못 한 것 같아요. 제가 레퍼런스 리드가 있는 작업에 강한 편이 아니에요. 제가 그걸 좀 어려워하는 거 같아요. 케이팝 작업에 대한 이해도가 어느 정도 생기기도 했고, <쇼미더머니> 작업을 하면서 일종의 공식 같은 것들이 머릿속에 구체화하고 있긴 한데요. 이런 상황 중에서 케이팝 작업 리드가 들어왔을 때 '기한 안에 이런 걸 완성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그냥 지나가 버렸던 것 같네요. 만약 송캠프가 열리면 케이팝 작업을 할 것도 같아요.

 

 

 

 

 

LE: 일단 의향은 있으시다는 거군요. 그러면 <쇼미더머니>나 개인 작업으로 히트곡이 쌓이면서 대중들의 니즈에 대한 공식 같은 게 생기잖아요? 그걸 신경을 쓰든 안쓰든 알게 모르게 반영이 되는 부분이 있나요?

 

반영되면서도 의도적으로 피할 때도 좀 있어요. 이번 <쇼미더머니> 팀 미션 같은 경우가 그런 걸 많이 벗어난 곡이었어요. 때때로 결과와 상관없이 무턱된 시도를 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앨범을 정규라고 붙인 것도 그런 느낌이죠.

 

 

https://www.youtube.com/watch?v=mHeWx860pIo

 

 

LE: 어떤 점에서는 의외네요? 그래도 <쇼미더머니> 작업은 트렌드를 신경 쓰지 않았을까 싶었는데요. "TROUBLE"이 나왔을 때도 팝 펑크(Pop Punk) 열풍이었고 이번 심사위원 무대에서 박재범 님이 사용하신 비트 역시 2000년대의 냄새가 났거든요.

 

장르적인 타겟층이 확실한 경연 프로그램이다 보니까 맞춰 생각하는 부분이 분명 존재해요. 그래도 제가 듣고 좋아했던 음악들이 다 녹아있어서 제 색깔이 들어가는 부분은 편곡 적인 디테일 정도지, 곡의 근간이 되는 것들은 파트너에 따라 바뀐 느낌이에요.

 

 

 

 

 

LE: 트렌드에 대한 고려보다는 퍼포먼스를 강조하고자 하신 거군요.

 

팀원들의 색깔도 그렇고 그 사람들의 커리어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서 제일 필요한 음악을 만든 것 같아요. 

 

 

 

 

 

 

LE: 좋습니다. 뭐 사실 쇼미더머니 이런 것들을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아무래도 커리어 음악관에서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친 부분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특히 "회전목마"는 그때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의 최대치를 끌어서 만들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실제로도 그랬나요?

 

모든 <쇼미더머니> 경연곡들이 그렇지만 제한된 시간 안에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도 "회전목마"는 특히 묘하게 상성이 잘 맞았던 작업이었어요. 그때 소코도모(sokodomo)가 갖고 있던 감정. 소코도모가 밝음 속에 냉소가 있는 친구거든요. 그래서 '사람 사는 세상 돌아가는 거 다 똑같다'라는 인류적인 시점을 노래에 녹여내고자 했었어요. 작업실에 있던 모두가 거기에 공감해서 만들었던 노래예요.

 

 

 

 

 

LE: 그렇게 탄생한 곡이 하반기 내내 차트 상단에 있었죠.

 

아직도 멜론(Melon) 차트 탑 100(TOP 100)에 있는 거 보면 저도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거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LE: 성공을 실감했던 에피소드가 따로 있었을까요? 

 

지나가다가 들리기도 하고 인스타 스토리에 태그된 걸 확인하다 보면 느끼죠. 그리고 처음 소개받아서 알게 되는 사람들에게 "회전목마" 만들었다 그러면 눈이 휘둥그레지는 상황도 있었어요. 그럴 때 '이 곡이 뭔가 나에게 영향을 주긴 했구나' 하고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nAxZipkuWw

 

 

LE: 이제 인간 김민우를 짚어보도록 할까요? 사실 다른 프로듀서들과 인터뷰를 하다 보면 차트 1위를 찍는 건 기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허무함이 밀려온다는 분들도 계세요. 슬롬 님은 어떠셨어요? 허무함이나 현타를 느낀 적은 없나요?
    
저는 없었습니다. 그냥 '좋고 감사하고, 이렇게까지 되네? 신기하다.'고 정리가 된 것 같아요. 저는 "회전목마"가 제가 좋아하는 거랑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의 중간 지점을 잘 찾은 노래라고 생각하거든요.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서 노림수, 혹은 모듈레이션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요. 사실 기획 자체가 차트 성적을 생각하고 만든 음악은 아니었어요. 물론 좀 더 미니멀 해지거나 듣기 편해진 경향은 있죠. 그래도 기본적으로 제가 작업을 하는 사조는 '스스로가 듣기 좋은 노래를 만든다'에요. 그래서 결과 때문에 다음 것이 영향을 받는다거나 그런 적은 없었어요.

 

 

 

 

 

LE: 그 점에서는 다행입니다. 그렇다면 "회전목마"를 내고서 실질적인 삶의 변화가 있었나요?

 

전과 다름없이 짬뽕을 시켜 먹는데요. 최소 주문 구매 걱정 없이 만두를 추가시킬 수 있다든지, 기름값이 올라도 그냥 차를 타고 작업실에 온다 정도의 차이지. 생활 패턴 자체가 바뀌진 않았어요. 제가 소비를 많이 하는 편도 아니고요. (전원 웃음)

 

대신에 자취를 시작했어요. 사실 이전까지 부모님과 살았거든요. 또 이별을 겪기도 했죠. 여러 가지가 작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되려 외로워 보고 싶다고 작정한 한 해를 보냈던 것 같아요. 제가 묘하게 슬픈데 우울한 티 안 내는 영화 주인공에게 이입하는 면이 있거든요. (전원 웃음)

 

집도 완전 고층 빌딩 많은 곳으로 이사해서 밤에 노래 들으면서 산책하다 보면 '혼자 있는 것도 좋은데?' 싶기도 하고요. '이런 노래 만들어야겠다.' 싶기도 하고 그랬죠. 그래서 올해 중반까지 그냥 혼자 보내고 싶었던 게 컸던 것 같아요.

 

 

 

 

 

LE: 그런 감정이 발현됐던 공간에 대해서도 궁금하네요. 방금 새로 자취를 시작한 곳에 대해서도 언급하셨는데요.

 

직장인이 많은 지역의 특징인데 주말이나 낮에 엄청나게 붐비다가 밤이 되면 거의 공터처럼 변하는 점이 재밌어요. 제 시점에서는 텅 빈 밤거리를 건물 안에서 지켜보는 그런 느낌이죠. 밤에 차들이 지나다니는 광경이나 제가 차 몰고 퇴근할 때 건물들 사이로 지나면서 보이는 풍경을 보고 ‘좋다…’ 이런 거요.
 

 

 

 

 

LE: 그런 부분들이 감정에 영향을 미친 건가요?

 

<쇼미더머니> 성과에 대한 허무함 보다도요. 저를 알게 된 사람이 많아지면서 불특정 다수에 비춰야 하는 친절함에서 어려움을 느꼈어요. 밖에서 사람들이 알아보는 것까진 괜찮지만, 좀 더 긴밀한 관계로 들어설 때 생기는 방어기제라고 해야 할까요? 장소적인 환경을 이용하려고 한 건 아닌데, 그런 곳에 있다 보니까 앞서 말한 감정들과 자연스럽게 동화가 된 것 같아요.

 


 

 

 

LE: 인간관계에서 번아웃이 온 건 아니죠?

 

그런가? 모르겠어요. 그렇게 판단할 만한 일이 있진 않았는데 정말 딱 혼자 지내보고 싶다는 정도였어요. 작업할 때도 진짜 친한 친구들은 자주 보고 하니깐요. 완전히 혼자 있을 때 생각들이 막 뻗어나가는 그런 흐름에 몸을 맡기고 산 것 같아요.

 

 

 

 

 

LE: 타의가 아닌 자의여서 또 한 번 다행이군요. 그래도 자취를 시작하면서 환경이 달라졌을 테니. 본인이 느낄 만한 차이가 있긴 할 것 같은데요?

 

딱히 그렇지도 않아요. 지금 이 쓸쓸한 감정도 예전에 작업했던 “귀가본능”과 결이 같거든요. 오히려 이런 곡을 썼을 때 좋아하는 분들이 계시기도 하고요. 또, 제가 좋아하는 음악이 이탈리아 영화 음악인 걸 보면 저는 그렇게 신이 나지 않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쇼미더머니> 촬영 기간 동안 재범이 형한테 ‘너는 왜 이렇게 힘이 없냐?’라는 말을 계속 듣는 것만 봐도 그래요. (전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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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렇군요. 본격적인 앨범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앨범 코멘터리를 먼저 읽었을 때 되게 쓸쓸한 음악일 거라 예상했는데 그런 것 치고는 밝은 무드가 섞여 있어서 굉장히 양면적인 앨범이다 싶었어요.

 

[WEATHER REPORT]라는 제목을 지은 이유도요. 저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하거든요? 하지만 그걸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날씨라는 게 개인 취향이 많이 작용한다고 느꼈어요. 똑같은 현상을 놓고 각자 느끼는 게 다르니까, 그런 다름에서 느끼는 아쉬움을 내려놓자는 의미가 담겨있어요.

 

 

 

 

 

LE: 앨범의 구상은 언제부터 시작하셨어요?

 

구상을 시작한 시점을 특정하진 못하겠어요. 저는 정말 만드는 과정에서만 재미를 느끼고 전문적인 포장의 단계에서는 당장 옆에 있는 해솔이 형에게 한참 못 미친다는 자각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앨범을 만들어야겠다’라는 생각만으로 접근했어요. [MINISERIES] 때도 똑같았죠. 수민 누나랑 노래를 만든 다음에요. '곡이 많이 쌓였네? 이거 앨범이다. 소재는 어떻게 할까? 미니시리즈다. 왜냐면 사랑에 대해서 튀어나오는 이야기들을 타임 프레임별로 다뤘기 때문이다.' 이런 정도였거든요.

 

이번 [WEATHER REPORT]도 비슷하게 참여진분들에게 주제를 전달했고, 그렇게 나온 곡들을 모아 놓은 후에 의미 부여를 한 거예요. 주변 아티스트나 제가 좋아하는 해외 아티스트들을 보면 자신의 결과물을 증명하고 발매하는 데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있어요. 지켜보는 저로서도 작업물을 발매하지 않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 컸어요. 그래서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죠. 만들 때 좋고, 나올 때는 큰 생각이 없어야 한다고 스스로 마음속으로 정리가 되었거든요. 그래서 이런 곡들을 모았더니 이런 이야기를 하려 했던 것 같다는 나름의 결론을 만든 겁니다.

 

 

 

 

LE: 그럼 모여 있는 트랙 중에 가장 먼저 작업한 노래는 언제쯤 만든 노래일까요?

 

2017년이요. “WHAT DO I DO”가 제일 처음 만든 노래였을 거예요. 그 이후로 조금씩 곡들을 쌓아갔어요.

 

 

 

 

 

LE: 트랙 수로 비춰봤을 때 EP가 아닌 정규 타이틀을 붙인 이유는요?

 

프로듀서 앨범이 완성하기가 진짜 어려워요. 본인이 목소리를 내지 않고 여러 사람의 여러 회사와 함께, 적어도 서너 회사들과 소통을 하면서 만들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앨범 단위 자체를 만들기가 쉽지 않아요. 그렇다고 지금 내지 않으면 앞으로도 ‘정규’라는 타이틀이 너무 부담으로 여겨질 것 같았어요. 어찌 됐건 이것이 현재 저의 모습이고, 몇 년간의 상태를 담은 앨범이라서 정규라고 명명했습니다.

 

 

 

 

 

LE: 부담감을 떨치려고 일부러 오히려 첫 정규라고 한 점이 있네요. 그렇다면 참여진에 대해서 여쭤볼게요. 화려한 참여진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 어떤 의도가 담겨 있나요?

 

어떤 의도가 있기 보다도요. 불가항력적이었어요. 제가 구현하고자 하는 시대의 음악을 정확하게 구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다들 비슷한 시기에 활동을 시작한 사람들이더라고요. 그중에서 아직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굵직굵직한 이름들만 남아있었던 거죠. 그렇다 보니까 기라성 같은 피처링 진을 모으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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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렇다면 앨범 타이틀을 [WEATHER REPORT]라 짓게 된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타이틀만 본다면, 여러 날씨를 사운드로 그려냈나 싶을 사람도 있을 거 같거든요.
 

제가 걱정을 많이 하는 성격이에요. 특히 뭔가를 원하거나,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그렇게 더 신경 쓰고 아낄수록 그런 성향이 심해져요. 제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갈까 봐 걱정이 되다 보니 여러 가지를 더 예측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오히려 그런 부분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되게 많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너무 일일이 예측하려고 애를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 생각에서부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그날의 관계적인 상황은 날씨와 같다’고 비유를 한 거죠. 제가 내일 날씨가 좋았으면 하는 희망에서 옷을 황토색으로 바꿔 입는다 한들 다음 날 날씨는 바뀌지 않거든요. 사람 사이의 일에서도 제가 너무 걱정하고 준비해봐야 한계가 있다는 부분을 (스스로) 납득하고 싶어서 그런 제목을 지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WEATHER REPORT]라는 제목을 보고 ‘일기 예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오히려 제가 거쳐온 날들에 대해 음악적으로 반응을 한다는 의미에서 ‘보고서’라는 표현을 쓴 거예요.

 

 

 

 

 

LE: ‘일기 예보’가 아니라 ‘일기 보고서’인 셈이군요. 사실 그때그때 다른 사람과의 관계, 상황이란 건 개인이 미리 대비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불가항력적이잖아요.

 

그렇죠. 제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맞춰서 행동한다고 한들, 당사자가 마음을 돌리지 않는 이상 어쩔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코로나19 유행 같은 경우도 원하지 않는 일이 벌어진 거지만, 한편으론 주변 사람들과 더 함께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가까워진 시간이었다고 생각하기도 하거든요. 이렇게 팬데믹처럼 여러 가지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생길 때, 장단점이 있다면 좀 더 장점에 집중해보자는 의미도 있겠네요. 

 

 

 

 

 

LE: ‘WEATHER’라는 워딩 때문에 ‘날씨’를 콘셉트로 잡아서 표현한 앨범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사람과 태도, 그날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란 거네요.

 

그렇습니다.

 

 

 

 

 

LE: 그동안 슬롬 님 음악을 들으면서 일종의 우울감이 기저에 깔려 있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인제 보니 단순히 우울감이라기보단 큰 진폭의 감정을 압축하면서 나오게 된 결과물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원래는 LA의 날씨 같은 것도 물어보고 싶었어요. LA 날씨는 굉장히 화창하잖아요. 햇빛도 쨍쨍하고요.

 

맞아요. 관련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이번에 LA로 휴가를 갔거든요. 그때 이미 앨범 수록곡들의 초안은 다 완성돼 있던 상태여서 LA에 가서 들었는데 별로 재미가 없더라고요. (웃음) 이 앨범은 그냥 서울에서 듣기 좋은 앨범인 것 같아요. 도시에서 스트레스받는 사람들이 듣기에 좋은 앨범인 거죠.

 

 

 

 

 

LE: 또, [WEATHER REPORT]라는 제목을 보고 전설적인 퓨전 재즈 밴드의 이름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한 데에도 의도가 있었던 걸까요?

 

사실 이 단어가 너무 좋은데 제목으로 사용하면 너무 직접적인 오마주로 비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어요.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통하는 의미가 있기도 해요. 개인적으로 이분들의 음악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이분들이 가지고 있는 조성이라든지 주법을 포함해서 너무 동경하는 부분이 많아요. 그러니까 음악에서 ‘이상향’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마침 제가 좋아하는 음악가의 이름이니 중의적인 의미로도 좋은 타이틀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 같은 곡은 앨범 타이틀을 짓고 난 이후에 작업한 트랙이어서 일부러 프렛리스 베이스(Fretless Bass, 플랫이 없는 베이스로 웨더 리포트를 거쳐 갔던 전설적인 베이시스트 자코 파스토리우스가 즐겨 사용한 악기)를 사용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음악의 결이나 장르는 다르지만 조금은 반영된 부분도 있죠.

 

 

https://www.youtube.com/watch?v=FtovFI8etOg

 

 

LE: 그러면 퓨전 재즈가 아니더라도 이번 앨범을 구상하고 준비하면서 표현하고 싶던 장르나 사운드의 방향성이 있었을까요?

 

저는 항상 비슷한 것 같아요. [MINISERIES] 때도 마찬가지인데, 그냥 그때그때 만들고 싶은 음악이 있고, 듣다 보니까 이런 부분이 더 있으면 좋겠다 하는 부분들이 느껴지고, 그러면 더하고 고치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진행해요. 인생은 되게 계획적으로 사는데 오히려 작업은 굉장히 즉흥적으로 하는 편인 것 같아요.

 

‘지금 내 상태는 이렇고 이런 노래가 지금 너무 좋다.’ 하면 일부러 그 무드를 바꾸거나 하지 않아요. 최근에 많이 들은 음악들은 거의 블루스나 재즈 록이 많아요. 스틸리 댄(Steely Dan)이라든지 도널드 페이건(Donald Fagen), 빛과 소금도 있고요.

 

 

 

 

 

LE: 이야기를 듣고 보니 스틸리 댄으로 대표되는 소프트 록이나 AOR의 영향이 앨범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저는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 저와 뭔가 비슷하다는 동질감도 느껴요. 도널드 페이건의 “New Frontier” 뮤직비디오를 보면 뭔가 ‘이 아저씨 되게 혼 많이 냈을 것 같다.’ 그런 느낌을 받거든요. (웃음) 음악은 엄청나게 정제돼 있는데 사람이 화가 많아 보인달까. 그런 것도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LE: 본인도 그런 느낌의 사람이란 거죠?

 

그런 것 같아요. (웃음)

 

 

 

 

 

LE: 프로듀서는 보통 앨범을 낼 때 뭔가 ‘작정하고 음악의 패러다임을 한번 바꿔보겠다’라든가, ‘아예 트렌디한 스타일을 만들어보겠다’라든가, 아니면 ‘한 단계 커진 스타 프로듀서가 되겠다’라든가 이런 목적이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슬롬 님의 이번 앨범 목적성은 어느 쪽에 가까웠나요?

 

저는 그냥 곡을 모아서 앨범을 낸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MINISERIES] 때도 마찬가지인데, 그냥 앨범을 내는 것 자체가 목적이에요. 그 앨범으로 뭔가를 하겠다는 것보다는 ‘앨범을 낸 걸 보여주고 싶다’ 이거죠. ‘내가 이런 걸 할 수 있단 걸 보여주고 싶다’까지 세부적으로 들어가지도 않는 것 같아요. 음악 스타일도 ‘그냥 요즘은 이게 좋았던 것 같아요’ 정도죠.

 

앨범을 내면서 ‘나는 이 스타일에서 정점에 선 사람이다’ 이런 생각까지 하기에는 너무 객관적으로 저를 겸손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서요. 연주자 친구들도 그렇고 아직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말 보석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거든요. 그래서 제가 어떤 스타일을 어필하고 실력을 과시하려고 작업물을 내는 건 아니에요.

 

 

 

 

 

LE: 들을수록 슬롬 님은 정말 겸손한 편 같아요. 이 정도 작업을 하고 인정받다 보면 약간은 더 힘이 들어가기도 할 텐데 말이에요. 다른 사람들의 작업물을 들을 때도 비슷한 접근을 취하나요?

 

물론 저도 평가 기준은 있죠. 근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조금 미완성된 것을 들어봤을 때 이렇게 하면 더 좋겠다 하는 아쉬움이 있다는 정도예요. ‘내가 했을 때는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너보다 낫다.’ 이런 태도를 갖는 건 저 자신에게 오히려 해가 될 것 같아요.

 

 

 

 

 

LE: 그런 태도가 음악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 같아요. 프로듀서 앨범에 흔히 담기는 ‘내가 이런 것까지 할 수 있어’란 과시적인 태도가 없달까요. 이런 부분은 특히 신경을 쓴 걸까요?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인식할지에 대해서 신경을 쓰는 편이에요. 사실 이번 앨범에 지명도가 높은 아티스트들이 한 번에 참여를 해버렸는데요. 그런 부분도 사람들이 제가 과시하려고 한 거로 느낄지 모르겠다는 걱정을 했었어요.

 

그런 부분을 고려해서 일부러 좀 더 새로 찾은 아티스트들과도 작업을 해보고 싶었는데요. 어쨌든 준비한 음악의 결이 제가 한때 엄청 많이 들었던 음악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좀 더 이 장르에 숙련된 사람들과 하게 됐습니다.

 

 

 

 

 

LE: 참여진까지 이런 생각이 있으셨군요. (웃음) 이번 앨범 크레딧을 보면 작곡뿐만 아니라 작사에도 직접 참여한 걸로 나오는데요. 어떤 가사를 작업하셨나요?

 

가이드가 있는 트랙에 제가 가사를 써보고 있었고, 그 노래에 자이언티 형이 참여하면서 완성을 시킨 트랙인데요. “선인장”의 훅 파트 가사에 “Tell you what, look, 솔직하게 말해. 가시 돋친 건 내가 아닌 것 같애” 이런 내용이 나오는데요. 짜증을 한번 내보는 파트예요.

 

주변 사람들한테 회사에 다니고 좀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과 다르게 밤에 출근해서 새벽에 집에 들어가는, 배달 음식 먹고 햇빛 안 드는 방에 앉아서 작업을 하는 모습을 약간의 자기 연민 적인 시선으로 쳐다보다가도요. 남들이 "너 좀 특이하다?" 이렇게 얘기를 했을 때는 오히려 또 짜증을 내기도 하는 그런 모순적인 모습을 담아보고 싶었어요.

 

 

 

 

 

LE: 참여진분들과 가사 작업을 할 때 곡의 콘셉트까지만 이야기해주고 맡기는 편인가요?

 

콘셉트와 함께 제가 생각하는 어떤 부분을 가사에 녹여보면 좋을 것 같다는 정도의 가이드를 드리긴 했어요. 특히 "SKIT" 같은 경우는 제가 겪은 일련의 사건을 장문으로 적어서 이하이 씨와 로꼬(Loco) 형에게 전달하면서 이런 입장을 써주셨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죠.

 

 

https://www.youtube.com/watch?v=Qn0jQ9c3AW0

 

 

LE: 앨범의 세션으로 베이시스트 박종우 님, 기타리스트 김승현 님, 키보디스트 박준우 님 등이 참여했는데요. 슬롬 님과는 워낙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분들이지만 아직 잘 모르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 간단히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자이언티 형 작업부터 제 개인 작업까지 저랑은 한 6년 정도 같이 작업을 해온 프로듀서이자 세션 멤버들입니다. 준우 같은 경우엔 자이언티 형 앨범에도 많이 참여했고, 여러 가지 장르에 이해도가 높아요. 또 저의 터치에 대해서도 되게 잘 이해를 하는 사람들이에요. “TROUBLE” 작업할 때도 승현이랑 종우 형이 함께해 주셨고, 프로듀서 공연 때도 도와주셨죠.

 

 

 

 

 

LE: 이미 6년 동안 하다 보니 서로 어느 정도 동기화가 되어서 크게 디렉션을 줄 필요도 없었겠네요.

 

제가 어떤 틀을 만들어 놓으면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딱 제가 원하는 대로 해줘요. 제가 미디 노트를 쳐서 들려주면 완성됐을 때는 이런 느낌을 내려고 한 거겠다고 하는 이해도가 확실히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녹음 자체도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고 시원하게 작업했습니다.

 

 

 

 

 

LE: 거창한 음악적인 지향점보다는 함께하던 분들과 연주로 만들어내는 게 더 원하던 감성을 표현하기 좋으니까 연주를 맡긴 것에 가깝겠네요.

 

이 음악의 결 자체가 미디 노트로 표현하기엔 파라미터 적인 한계가 있기도 하고, 좀 더 생동감 있는 소리가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마 다른 장르를 하게 되면 또 저만의 악기들로 채울 수도 있겠죠. “우산” 같은 경우가 거기에 해당하고요. 장르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아요.

 

 

https://www.youtube.com/watch?v=KrxYthVGNUE

 

 

LE: 준우 님이 믹스 엔지니어로 참여하셨는데, 원래 준우 님이 믹스 엔지니어링에 예전부터 관여를 해오셨나요?

 

아니요. 특별히 제 트랙에서는 그렇지 않았는데요. 저희가 팀으로 움직일 때는 한 명이 곡을 만든 뒤에 여러 명이 돌아가며 차례로 첨삭을 보는 식이긴 해요. 원슈타인도 와서 한번 들어보고 “형 저는 이게 좋은 것 같아요.” 이렇게 얘기하고 하고, 저도 원슈타인이 “Cassie ($)” 작업할 때 들어가서 “이 부분에 이거 들어가는 거 어때요?” 이렇게 의견 주고 다시 제 작업하러 가고 그래요. 대학원 연구실처럼요.

 

준우 같은 경우는 사실 이번에 지우(Jiwoo)의 앨범 프로듀싱을 두 번 정도 연속으로 맡으면서 믹스에 대한 견해가 확실히 많이 생겼더라고요. 그리고 본인이 연주자이기도 하고, 그 악기의 톤이나 음역대를 어떻게 살리는지에 대한 이해도가 확실히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이런 색깔의 음악을 구상할 때 가장 같이하기 좋고 편한 상대라고 생각해서 섭외하게 됐습니다.

 

 

 

 

 

LE: 아무래도 준우 님과 믹스 엔지니어로서 호흡을 맞추는 과정들이 있었을 텐데요. 본인이 느꼈을 때 준우 님 같은 경우에는 어떤 스타일의 엔지니어인가요?

 

일단 연주자이고, 본인의 취향이 확실하게 있다 보니까 저와 논의하면서 절충하는 단계가 있긴 했죠. 어쨌든 이게 2022년에 나오는 음악이니까 너무 근본을 쫓아가다 보면 놓치게 되는 밸런스가 있거든요. 보컬이 너무 작아진다든지. 악기가 너무 커진다든지. 그리고 제가 원하는 드럼의 묵직함이 무너진다든지. 그런 부분에 있어서 큼직큼직한 선만 정해주고 제가 모르는 파라미터에 공간감이라든지 위상에 대한 것들은 준우가 많이 도움을 줬죠.

 

또, 현재는 저희가 이런 종류의 음악을 할 때는 프리앰프와 같은 하드웨어 장비들의 세계로 넘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요. 믹스에 있어서도 VST 플러그인보다 하드웨어 장비로 질감을 더하는 데 신경을 쓰기 시작했어요.

 

 

 

 

 

LE: 제가 들은 버전이 아직 완성된 믹스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 들었을 때 악기의 공간 배치를 상당히 신경을 써서 했다는 인상이 있어요.

 

저는 일단 만들 때는 필요하지 않을 것까지 다 담아낸 다음에 덜어내는 식으로 작업을 해요. 그래서 덜어내는 과정이 오히려 더 길죠. 초안을 만들 때는 그냥 와다다다다 올린 뒤에 옮겨서 하나씩 천천히 덜어내고 공간 배치를 하기 시작해요.

 

이번에는 아주 아날로그한 소리를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디지털 VST를 써서 원래 벌어지지 않을 사운드를 억지로 벌린다거나 그러지 않고요. 오히려 최대한 EQ나 패닝도 옛날 노래처럼 했어요. 옛날 노래 듣다 보면 그냥 드럼이 그냥 아예 왼쪽으로 가 있고, 기타는 아예 오른쪽에서만 나오고 그러잖아요. 이어폰 나눠 들으면 악기가 하나만 들릴 정도로요. 그런 감성이 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이번에도 들어보면 정말 중요한 악기인데 한쪽에만 나오는 경우도 있고 그래요.

 

 

 

 

 

LE: 이번 작업을 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한 것 같은데, 그러한 시도가 나오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저희가 하도 오랫동안 합을 맞춰오다 보니까 작업을 할 때 ‘이런 소스는 이렇게 가야 한다’는 데 서로 합의가 돼 있고, 그래서 깎아내는 음역 같은 것도 어느 정도 기본이 정해져 있거든요. 그런데 그게 반복되다 보니까 너무 여기에 안주하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했어요.

 

마침 자이언티 형이 거금을 들여서 커스텀 프리앰프를 하나 장만했는데, 그 기기를 거치고 나니까 소리가 달라지더라고요. 물론 디지털로 다 프리셋을 걸어서 만들 수 있는 소리긴 할 테지만 하드웨어 기기를 거치면서 생기는 배음이 되게 예쁘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건 프리앰프를 걸어보고, 어떤 건 걸었다가 다시 풀어보고 하면서 어떤 게 더 낫다는 의견을 주고받고 조율했죠. 그 과정이 재밌었어요.

 

 

 

 

 

LE: 그러면 포스트 프로덕션 과정에서 여러 시도를 하면서 시간이 오래 걸렸겠네요. 사실상 준우 님과도 엔지니어로서는 처음으로 합을 맞춰보는 거기도 하니까요.

 

믹스 자체가 오래 걸렸어요. 작업 기간 내내 트랙이 디벨롭될 때마다 믹스를 하고, 마무리할 때도 믹스만으로 꼬박 2주 정도는 썼던 것 같습니다. 저랑 김상일 엔지니어 형이랑 준우랑 시간을 오래 보냈죠.

 

 

https://www.youtube.com/watch?v=-FCKPQnn0eA

 

 

LE: 말씀하신 김상일 엔지니어님은 계속 블랙 레이블(THE BLACK LABEL) 쪽에서 일하시는 건가요?

 

그렇죠. 그런데 자이언티 형의 담당 엔지니어이기 때문에 스탠다드 프렌즈에 작업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어요. 어느 순간부터 저희가 외부 믹싱을 안 하고 저희가 직접 믹스를 하기 시작하면서 상일이 형도 믹스 엔지니어로서의 위상이 올라가게 됐죠.

 

 

 

 

 

LE: 이번에 보니까 릴러말즈(Leellamarz) 님의 [MaRz&B] 믹스도 담당하셨더라고요.

 

맞아요. 또 일복이 많으셔서. (웃음) “회전목마” 믹스로 저번에 아비드 컨퍼런스(Avid Conference) 가서 강의도 하셨어요. 드럼 설명하는 데만 1시간 10분 쓰더라고요. (전원 웃음)

 

 

 

 

 

LE: 그렇게 다들 자기 분야의 장인이다 보니까 조율하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상일이 형 같은 경우는 실제로 관련한 전문적 지식이 있는 분이다 보니까, 어떤 작업을 했을 때 충돌되는 지점들을 미리 알고 있어요. 예를 들어 헤드룸이 부족하게 된다거나 마스터링을 거쳤을 때 소리가 예쁘지 않게 된다는 예측 가능한 정보를 저희한테 주시죠. 그러면 저희는 오히려 좀 더 감정적으로 전달이 되기에는 이 소리는 더 커야 한다. 이 사운드가 더 뚱뚱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소통하면서 약간은 서로 스트레스를 드러낼 때도 있긴 하죠.

 

 

 

 

 

LE: 그렇다면 지금의 믹스 버전은 좀 더 양보하면서 타협점을 찾은 사운드일까요, 아니면 본인의 앨범인 만큼 좀 더 본인의 표현을 우선시한 결과물일까요?

 

그런데도 타협점을 잘 찾은 것 같아요. 아예 장르적으로 갈 거였으면 이런 앨범을 굳이 기획하지도 않았을 거거든요. 저도 지금보다 더 보컬이 없는 앨범을 만들었겠죠. 하지만 어쨌든 회사의 부흥에도 힘을 써야 하고요. (전원 웃음) 이 집단에 소속된 개인으로서 맡은 바를 다 해야 하니까요.

 

 

 

 

 

LE: 크레딧을 보니까 사운드 이펙트를 크레딧에 쓰셨더라고요. 사실 한국 장르 앨범 크레딧에서는 웬만하면 사운드 이펙트를 볼 수 없어서 신기했어요.

 

그런가요? 제가 만드는 트랙들 안에서 오히려 그 사운드들이 포인트가 되는 경우들이 매우 많아서 쓰는 게 바르다고 생각했어요.

 

 

https://youtu.be/htmloyhXsBg

 

 

LE: 프로듀서가 쓰는 언어, 엔지니어가 쓰는 언어, 또 연주자가 또 쓰는 언어가 서로 다르잖아요. 그렇다 보니까 서로 다른 언어들을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엔지니어 같은 경우는 확실히 주파수, 음역대와 볼륨과 피크를 이야기하죠. 한 곡 안에서 남는 볼륨의 공간, 공간감을 얘기하죠. 연주자 같은 경우는 배음이나 화성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하는 편이고요. 프로듀서는 ‘흐름’에 대해서도 많이 얘기하고요. 그런데 그런 거를 다 한 번에 합칠 때는 결국에 음악을 들으면 되거든요.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이런 노래의 어떤 부분이 좋은 겁니다. 이해되셨죠?" (전원 웃음) 이렇게 설명하죠.

 

 

 

 

 

LE: 스탠다드 프렌즈는 아티스트가 원래 하려던 것 이상의 무언가를 뽑아낼 수 있게끔 해주는 환경이라고 들었는데, 한 작업을 다른 인원들이 다 들어보고 피드백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이 사람이 그동안 작업한 것들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다 서로 이해하고 있고, 어떤 길을 가고 싶어 하는지도 다 알고 있거든요. “네가 하는 거에서 이건 별로 멀지 않은 것 같은데”라고 제시를 해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죠. 그래서 그렇게 불친절하게 들리지도 않고, 서로가 해주는 이야기들이 다 조언이 되는 그런 관계인 것 같아요.

 

 

 

 

 

LE: 슬롬 님의 성격도 워낙 차분하고, 주변에서도 좋은 충고를 주지만, 그래도 해결이 안 되고 답답한 상황도 있었을 것 같아요.

 

물론 저도 답이 없을 때는 있죠. 그런데 답이 안 나온다고 남한테 성질을 낼 수는 없잖아요. 이게 분명히 완성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뭔가 필요한데 '여기서 끝인 건가?' 이런 생각이 들 때는 답답하지만요. 그건 제가 답답한 거지 누군가 대상을 삼아 답답해하거나 그러지 않아요.

 

 

https://youtu.be/K_eRv94tcec

 

 

LE: 이렇게 앨범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수록곡을 하나씩 짚어보며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앨범의 타이틀 곡 “아니라고”부터 이야기해볼게요. 직접 쓰신 앨범 소개 글을 보니까 “새로운 인연의 기회비용이 낮아진 시대” 이런 멋있는 표현을 하셨더라고요. 어떤 의미를 담은 표현일까요?

 

문과여서요. (웃음) 그건 저나 제 주변의 일들을 3자화시킨 건데,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 대한 허무, 스쳐가는 인연들에 대해 허무함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LE: “아니라고”가 원래는 스킷 이전에 들어갈 트랙으로 알고 있었는데, 결국 1번 트랙으로 바뀌었더라고요. 이 노래를 오프닝 트랙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완성도가 제일 높은 트랙이었어요. 또, 사람들이 새로 나온 앨범을 들을 때 처음 듣는 게 1번 트랙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이 노래를 제일 먼저 자랑하고 싶어서 가장 앞에 배치했습니다. (웃음)

 

 

 

 

 

LE: ‘완성도가 높다’는 게 어떤 면에서 완성도가 높다는 의미일까요? 작업 과정을 전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을까요?

 

전체적으로 보면 공이 많이 들어간 곡이에요. 시작은 그냥 저 혼자 이사한 집에 앉아서 술 마시면서 야경을 보다가, ‘이런 노래도 만들어봐야겠다’ 하고 만든 거거든요. 정말 쉽게 쉽게 바로 곡이 나왔고요. 영문으로 “ANIRAGU”라는 가제를 지어서 자이언티 형한테 보냈어요. 사실상 곡의 형태는 만든 첫날에 다 나왔어요. 후반 작업에 오히려 시간이 오래 걸렸죠.

 

 

 

 

 

LE: 후반 작업에 더 공을 들이면서 완성도를 높였다는 이야기이시군요. 그런데 보통 곡 작업할 때 드럼에 공을 많이 들이는 편이라고 하셨잖아요. 이번 앨범에서는 어떤 식으로 드럼 프로덕션에 공을 들였나요?

 

기성곡의 소스를 굉장히 마이크로 한 단위로 가져와 썼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곡인지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1970~80년대에 방점을 찍었던 노래들의 트랙에서 소스를 가져왔어요.

 

다른 악기에 걸린 리버브가 딱 없어지는 구간에 하이햇이 하나 나온다고 하면 그거를 샘플링해서 모아놓는 습관이 있거든요. 브레이크가 나오거나 맘에 드는 드럼 소스가 나오면 그것만 잘라놓고 나중에 다른 소스와 레이어를 해서 새로운 사운드를 만드는 방법이 있는데, 이 곡 같은 경우에도 제가 원하는 드럼이 굉장히 잘 믹스된 노래예요.

 

 

 

 

 

LE: 그러면 이번 곡을 위해서 드럼 소스를 새로 구했다기보다는 평소에 드럼 라이브러리를 계속 모아 놓는 게 일종의 습관인 거군요.

 

맞아요. 그렇게 모으다가 기존 제 라이브러리의 드럼 키트와 섞어서 또 새로운 질감을 만들죠. 제가 습관적으로 쓰는 드럼이 있으면, 소스를 더해서 거기에 채색해주는 거예요.

 

 

 

 

 

LE: 드럼 트랙만 몇 개가 되는 거예요?

 

"아니라고"는 드럼 트랙만 10개가 넘어요.

 

 

 

 

 

LE: 그래서 이렇게 두텁고 안정감 있게 느껴졌던 거군요.

 

정작 메인이 되는 악기는 트랙이 별로 없어요. 기타는 여기에 이렇게 모여 있고, 스트링 있고, 피아노 두 개 그리고 신스 하나 이런 정도죠. 그런데 또 모든 곡에서 이렇게 드럼에 많은 트랙을 쓰지는 않아요. 무조건 많이 쌓는 게 능사는 아니거든요. 어떤 곡은 아예 브레이크 하나만 써서 만든 트랙도 있습니다. 이 곡의 경우는 제가 확실하게 구현하고 싶은 드럼 사운드가 있었기 때문에 그걸 위해서 많은 트랙을 쓰게 됐어요.

 

 

https://youtu.be/6IpGkDSKAKk

 

 

LE: 일반 리스너들이 알기 쉽게 설명해주자면 어떤 드럼 작업 방식을 거쳤을까요?

 

최근에 ‘루노라쿠스(LunoLacus)’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마이클 잭슨이 스튜디오에서 작업할 때 있었던 비화들을 재밌게 설명해 주는 영상을 봤거든요. 그 이야기를 보다 보니 지금 저희 팀이 스튜디오 안에 모여서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연히 들어가는 소리라든지 드럼 소스가 아닌 소스들도 톤만 맞으면 리듬 소스로 쓴다든지 그런 시도를 하는 것도 포함해서요. 제가 해온 게 그렇게 틀리지 않았다고 느꼈어요.

 

 

 

 

 

LE: 지관 통이나 합판 같은 걸 두들겨서 리듬 파트를 만든 예군요. 그렇다면 이번 앨범에는 원래 드럼 소스가 아닌데 리듬 파트로 활용한 사례가 있을까요?

 

이 트랙에는 없는 것 같고요. 자꾸 이번 음원 미션이 생각나는데요. 음원 미션 트랙 같은 경우는 클랩 소리를 킥 드럼 소리로 쓰는 식으로 약간 변형을 많이 했죠.

 

 

 

 

 

LE: 도입부 진행에서 담아내고 싶었던 의도가 있었을까요?

 

제가 익숙하게 찾고 자주 쓰게 되는 보이싱을 반복해서 사용하다 보면 결국 질리기 마련이라서, 최대한 다른 진행을 만들어보려고 해요. 그래서 여러 시도를 하면서 건반을 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도 연결되는 지점들을 발견하고, 그러면 그걸 어떻게든 써먹어야겠다고 생각을 하죠.

 

그렇게 만들고 나면 준우가 트랙들 믹스하면서 “이건 엄청 모덜하네요.” 이런 얘기를 하기도 하는데, 저는 그것까진 모르겠고 (웃음) 너무 멀리 가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기존 방식을 틀어보려고 노력을 하는 거죠. 어쨌든 뭔가 흔하지 않고 좋다고 느껴져서 좋아요.

 

 

 

 

 

LE: 훅 부분이 시작될 때 뭔가 확 터지는 느낌이라기보단 오히려 사운드를 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요. 그런 사운드 연출에도 의도가 있었던 걸까요?

 

자이언티 형의 목소리가 주인공인 노래고, 인스트루멘털이 사운드적으로 딱 어떤 멜로디가 나올 것이다라고 제안해주지는 않는 트랙이거든요. 패드성으로 소리가 깔려 있고, 그래서 보컬의 역량이 굉장히 중요한 트랙이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그래서 목소리가 주는 감정선이 더 잘 전달이 되는 것 같고요. 마지막에 리드 정도만 스윽 나와서 여기가 절정 부분이라고 알려주는 역할을 하죠.

 

 

 

 

 

LE: 자이언티 님의 보컬이야 워낙 대단하지만 그래도 특별하게 디렉션을 준 부분도 있었다면요?

 

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이언티 형도 너무 잘 알고 있고, 이 가사를 같이 쓴 한별이의 경우도 저의 너무 오래된 친구로서 지금 제가 어떤 상태인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특별한 디렉션 없이 원하던 방향대로 구현이 잘 된 것 같아요.

 

 

 

 

 

LE: 그러면 “아니라고”에서 특히 공을 들였다고 한 후반부 작업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요.

 

소리에 질감을 입히는 과정, 착색하는 과정이라고 할까요. 거기서 되게 많이 신경을 썼던 것 같습니다. 로즈(Rhodes) 같은 악기는 너무 익숙한 소리긴 하지만, 그래도 그 악기에 좀 더 특별한 느낌을 주려면 코러스도 어떤 코러스를 줘야 할지 고민해야 하거든요. 또 어떤 소스는 하드웨어를 통해서 좀 더 질감을 따뜻하게 만든다든지 하는 과정도 있고요. 들어가 있는 악기 구성은 단순하지만, 그 악기 하나하나가 힘이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기타도 녹음을 받은 소스를 하드웨어로 리앰핑을 한다든지, 스테레오로 받은 것을 모노로 만들어서 한쪽으로 배치한다든지, 기타의 트레몰로도 왼쪽과 오른쪽에 트레몰로 레이트를 다르게 해서 스테레오 감을 준다든지 그런 식으로 세밀하게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LE: 그러한 시도들은 여태까지 했던 작업을 통해서 쌓여 있던 노하우를 활용한 건가요, 아니면 이번 기회에 여러 시도를 해보게 된 건가요?

 

각자 갖고 있던 노하우를 집약해서 만든 것 같아요. 마침 준우도 최근에 하드웨어를 모으고 있었고, 저도 요즘 이런 음악을 만들고 있었으니까요. 이 타이밍에 같이 모이면 좋겠다고 느꼈고, 작업하면서 서로 가지고 있던 것들을 결합한 거 같아요.

 

 

https://music.youtube.com/watch?v=nPhFvSa9YP8&feature=share

 

 

LE: 재밌습니다. 아까 얼핏 이야기하긴 했는데, “선인장”이란 곡을 쓰게 된 계기를 설명 부탁드려요.

 

지금은 치워서 없지만, 원래 작업실 로비의 구석에 선인장이 있었거든요. 어느 날 밥을 먹고 치우다가 화단에 있는 커다란 선인장이 싹 다 죽어서 쓰러져 있는 광경을 봤는데, ‘나도 저렇게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재작년에 <쇼미더머니 9>을 할 때도 그렇고, 제가 본가에서 작업실로 오는 길이 좀 먼데요. 차를 타고 오다 보면 여의도에서 퇴근 시간에 직장인들이 횡단보도 앞에서 핸드폰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되거든요. 그런 걸 보면 ‘나는 이제 출근하는데 저 사람들은 퇴근하네. 진짜 다른 세상이다.’하고 실감이 돼요.

 

또 친구들을 만나거나 새로 알게 되는 사람들을 만나서 “음악을 합니다.”라고 했을 때 생기는 묘한 시선이 느껴질 때도 이게 참 독특한 삶인 것 같다고 느껴질 때가 많잖아요.

 

그런데 또 업계에서는 저도 그냥 평범한 사람이거든요. 굳이 제가 독특하다고 볼 필요까진 없단 거죠. 어쨌든 저도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거고, 일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자아를 실현한다든지 내가 원하던 소리에 다가가면서 좀 더 쾌감을 느낀다든지 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이 자기 일을 하면서 신념을 가지고 보람을 챙기는 것과 똑같거든요. 그러니까 저도 그냥 똑같이 일하는 것뿐인데 너무 다르게 보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거예요.

 

그런 괴리는 아무래도 방송하면서도 더 심해진 것 같기도 해요. 왜냐하면 방송에선 아무래도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연출된 것들이 많거든요. 그러면서 제 생각과 다르게 보이거나 괴리가 커지는 부분들이 있어서 거기에 대한 짜증을 내보고 싶었다는 게 노래를 쓰게 된 계기인 거 같아요.

 

 

 

 

 

LE: “선인장” 같은 경우에는 사운드적으로 어떤 시도를 담고 싶었나요? 그리고 그 안에 크러쉬(Crush) 님과 빈지노(Beenzino) 님을 데려온 것도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아요.

 

2000년대에 유행했던 영국 록 사운드를 많이 담아내려 했어요. 특히 이 노래를 만들 때 존 브라이언(Jon Brion)을 굉장히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 나온 <펀치 드렁크 러브> 사운드트랙을 좋아해요. 그 영화도 좋아하고요. 하여튼 이 노래는 그래서 밴드 사운드이기도 하고, 키린지 같은 색깔도 조금 녹아 있고 그런 무드의 음악이에요.

 

이러한 스타일로 이러한 주제의 곡을 완성했을 때 한국에서 잘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고민을 해봤죠. 이 이야기를 또 너무 자기 연민적으로 쓰게 되면 위축돼 보이고, 까칠한 느낌이 잘 안 살 것 같아서 제가 알고 있는 ‘가장 세련된 내향인’ 두 사람을 섭외했습니다. 두 명의 세련된 INFP 아티스트요. (웃음)

 

 

https://youtu.be/lWjkAJ-Kkok

 

 

LE: “선인장”이라는 테마 때문에 사운드 표현에서도 좀 더 신경을 쓴 부분이 있을까요?

 

굉장히 건조해요. 트랙이 굉장히 드라이하고 리버브가 많지도 않아요. 악기들의 어택이 굉장히 좀 날카로운 편이죠. 이 이야기만 들으면 마치 테마에 맞춰서 그런 사운드 디자인을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아녜요. (웃음) 사운드를 먼저 만들었습니다.

 

저의 영감은 항상 사운드에서 나오거든요. 오히려 소재에 대해서 먼저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져요. 그래서 제가 리드 작업을 못 하는 것 같기도 한데, 저는 일단 만들고 싶은 걸 먼저 만든 다음에 거기에 맞는 주제를 생각하는 게 더 만족도가 높은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저는 목소리를 쓰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LE: “선인장”을 듣다 보면 빈지노 님 랩 파트에 마디마다 악기가 바뀌면서 계속 변주가 되는데, 그건 원래 초안에도 있었던 건가요 아니면 편곡하면서 추가된 건가요?

 

초안부터 있었어요. 지금 완성된 음악을 듣는 분들은 전체적으로 사운드가 좀 미니멀하다고 느끼실 수 있는데, 이게 제 앨범이다 보니까 작업을 할 때는 제 기준에 있어서는 굉장히 맥시멀하게 작업을 했어요.

 

외주 작업 과정과 비교를 해보면, 다른 아티스트와 작업할 때 저는 코드와 베이스라인 이런 완전히 기본적인 정보만 있는 트랙을 보내주거든요. 그다음에 아티스트가 거기에 맞춰서 탑 라인 작업을 하면, 그때야 제가 그에 맞는 소리를 찾아서 넣으면서 살을 붙이고 완성하죠.

 

그런데 이건 제 앨범이니까 일단 제가 하고 싶은 걸 이미 다 한 상태로 아티스트를 섭외해요. 그래서 대부분 트랙이 기본적으로 초반에 만들었던 곡 상태 그대로 마지막에 악기 한두 개 정도만 추가하는 식으로 완성이 되죠.

 

 

 

 

 

LE: 단순히 루핑을 하는 대신 마디마다 뭔가 사운드를 넣고 빼고 하면서 계속 변주하는 스타일이 본인의 음악적 성향과 잘 맞는다고 보면 될까요?

 

제 성향과 맞기도 하고, 아마 그건 피제이(PEEJAY) 형에게 물려받은 기운이 아닐까 싶습니다.

 

 

 

 

 

LE: 그렇다면 피제이 님은 어떤 기운을 지닌 프로듀서라고 생각하시나요?

 

피제이 형의 음악은 공간감이 특징적이에요. 사용한 악기 개수가 많지 않지만, 사운드가 딱 필요한 곳에 있어요. 밸런스가 진짜 엄청나죠. 저는 아직도 한국 최고의 프로듀서는 피제이 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LE: 저도 동의합니다. 다시 노래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빈지노 님의 가사는 따로 디렉팅 한 부분이 없으시죠?

 

네. 빈지노 형에게 가사를 아예 맡겼어요. 제가 선인장이란 소재와 안에 담긴 비유를 설명했고, 여기에 빈지노 형의 상상력을 더해 지금의 가사가 나왔습니다.

 

 

 

 

 

LE: ‘X뱅이’ 라인을 처음 들으셨을 때 당황하진 않으셨나요? (전원 웃음)

 

좋은 라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노래를 들어 보면 디테일적으로 막 가시에 찔려서 아파하는 더빙도 들어가 있어서 재밌어요. “선인장”은 앨범의 다른 노래들보다 추상적이지만요. 그래서 멋있는 노래인 거 같아요.

 

 

https://music.youtube.com/watch?v=inCRLGXzzzA&feature=share

 

 

LE: 이제 “SKIT”을 짚어 볼까요? 소개 글을 보니까 “아니라고”의 후일담이라는 설명도 있고, 노래 자체는 왠지 모를 쓸쓸함이 전해지더라고요. 노래를 만들게 된 계기를 간략히 이야기해주시면 어떨까요?

 

“아니라고”와 동일선상에서 일어났던 일은 아니지만요. 어떻게 보면 이어지는 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노래는 순간의 짝사랑에 대한 이야기예요. 제가 당시에 지인의 소개로 운명이라고 생각할 상황을 겪었어요. 제가 쉽게 갑자기 마음을 여는 편이 아니거든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확 마음의 문이 열리게 되면서요. ‘이거다. 나는 이제 행복해질 수 있다.’ 이러면서 마음이 들떠 있다가 툭 떨어졌을 때의 그 허무함을 표현하고 싶었던 노래예요. 노래는 3월에서 4월쯤에 만들었어요.

 

 

 

 

 

LE: 내향인의 짝사랑을 표현한 노래였군요. 이런 소재를 어떻게 음악적으로 그려 내셨나요?

 

사실 “SKIT”은 다른 편곡 버전이 제일 많았던 곡예요. 앨범에 수록된 다른 곡은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사운드가 있어서 만든 곡이었다면요. “SKIT”은 확실하게 표현하고 싶은 주제와 이야기가 있어서 만든 노래였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록 기반의 트랙을 만들었어요.

 

이후에 로꼬 형의 목소리를 받았는데요. 로꼬 형의 가사 톤이 편곡에 잘 어울리지 않는 거 같아서 좀 더 무게감이 있는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알앤비스러운 편곡으로 다시 바꿨어요. 그 이후에 이하이 님의 보컬을 받아 보니깐요. 1990년대스러운 편곡이 너무 시대적인 분위기를 강요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최종적으로 지금의 버전으로 편곡을 완성했습니다.

 

 

 

 

 

LE: 두 분을 한 곡에 참여시킨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두 분 같은 경우에는 앨범 외에도 함께 여러 작업을 하고 있는데요. 로꼬 형 같은 경우는 제가 오랫동안 알고 있었고, 저랑 같은 MBTI를 가지고 있거든요. 로꼬 형이 굉장히 조심스럽고, 말을 잘하지 못하는데요. 가끔 돌발적인 행동을 보일 때도 있거든요. 이런 부분이 저랑 되게 비슷하고, 가사로 저의 마음을 잘 표현해 줄 것 같았어요. 이하이 씨 같은 경우는 지금 함께 작업하고 있는 트랙들이 매우 많거든요. 그러다 이하이 님의 가사를 살펴보니깐요. 저와 다른 상대방분의 입장을 얄밉게 가사로 잘 써 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같은 곡에 두 분을 모은 이유가 있습니다.

 

 

 

 

 

LE: 사실 흔히 앨범에서 그냥 넘어가는 트랙으로 여겨지는 “SKIT”에 두 분을 참여시킨 것도 재미있었어요.

 

저는 ‘SKIT’ 이란 단어를 볼 때마다 앨범에서 가장 짧고, 음악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잘 들어보지 않는 트랙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도 저와 상대방이 좋은 관계가 될 줄 알았지만, 그냥 지나가는 관계가 된 것처럼요. “SKIT”이 명곡이 될 줄 알았지만, 그냥 앨범에서 지나가는 트랙 중의 하나이지 않겠느냐고 나름의 비유를 생각했습니다.

 

 

 

 

 

LE: 이런 의도 때문인지 몰라도 이번 앨범이 여러모로 입체적으로 느껴진 거 같아요. 앞서 이야기한 슬롬 님의 지금 상태를 만드는 데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준 영화나 작품도 있을까요?

 

네. 올해 양조위가 출연한 영화를 굉장히 많이 봤어요. 또, 왕가위의 리마스터링 영화도 다 봤고요. 그 중에서도 <2046>에 굉장히 이입을 많이 했어요.

 

 

 

 

LE: 왕가위 이야기가 나온 것도 재미있네요. 디테일 하나만 짚어보면요. 로꼬 님 파트 뒤에 보이스 샘플이 들리는데요. 이건 두 참여진의 목소리를 변형한 건가요?

 

사실은 보이스 샘플이고, 캠 오비(Cam O’bi)의 목소리예요. ‘Okay Okay’하는 부분을 트랙에 넣어 봤는데 너무 잘 어울리더라고요. 이 샘플이 챈스 더 래퍼(Chance The Rapper)의 “Living Single”에도 들어가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CwyvxWGW58

 

 

LE: 뒤이어 나오는 “D.R.E.A.M.”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트랙을 만들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될까요?

 

이 트랙은 1월에 만들었어요. 제가 딱 한국에 들어왔을 때였거든요. 그때 일본도 좀 가보고, 여행도 하러 가고, 친구들도 좀 만나고, 편하게 쉬다가 다시 공부하러 가든지 뭘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그런데 웬걸. 그때 역병이 돌게 된 거예요. 이거 때문에 헨즈(The Henz Club)도 못 가고, 소프(Soap)도 못 가고, 친구들도 약속을 잡으려 하면 인원이랑 영업 제한도 다 생각해야 했어요.

 

뭐 이런 상황에 대해서 싫다는 느낌은 아니었는데요. 몇 달을 그렇게 살다 보니 금요일이 되었는데도 그냥 다른 날이랑 똑같게 느껴졌어요. 금요일이 어떤 날인지 까먹은 느낌인 거죠. 그러면서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설레던 감정이 왠지 꿈처럼 느껴졌고, 코로나 이전의 일상에 대한 향수 같은 게 꿈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소재로 트랙을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에 피에이치원(pH-1) 형에게 카톡을 해서 트랙을 보내 드렸는데요. 하루 만에 답장이 왔어요. “D.R.E.A.M.”이란 말을 떠올린 건 피에이치원 형이었고, 의미랑 가사가 잘 매치된 거 같습니다.

 

 

 

 

 

LE: 사운드적으로는 어떤 걸 담고 싶었나요?

 

그 당시에 즐겨 들었던 베니 싱즈(Benny Sings)나 프리 내셔널스(The Free Nationals) 같은 음악가들의 작법을 한번 구현해보고 싶었어요. 이런 드럼을 만들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러 번 고민을 거쳤고요. 그걸 저에게 맞는 앨범으로 내기 위해 밸런스를 찾고자 했어요.

 

 

 

 

 

LE: “D.R.E.A.M.”은 딱 들어도 드럼 트랙이 많게 느껴지고, 라이브로 드럼을 연주한 느낌도 들더라고요.

 

이것도 드럼 트랙만 열다섯 개 정도 있어요. 메인 신스도 있지만, 카우벨 같은 것도 들어가고요. 사실 드럼이 미디로 만든 거였어요. 미디 드럼을 라이브 드럼처럼 만들기 위해서 오버헤드 믹싱을 했고요. 그래서 드럼을 한 스튜디오에서 레코딩한 것처럼 룸을 따로 만들고, 실제로 드럼을 연주한 것 같은 질감을 주고자 엔지니어링 적으로 접근해서 재밌었어요.

 

이전까지는 이렇게 시도를 안 해봤는데요. “D.R.E.A.M.”을 만들면서 익혔던 믹싱과 엔지니어링에 대한 이해도가 <쇼미더머니 10>의 “TROUBLE”을 만들 때나 <쇼미더머니 10> 프로듀서 공연을 할 때 큰 도움이 되었어요. 이렇듯 이번 앨범은 전반적으로 사운드의 공간 배치에 대해서 깨달은 점이 좀 많이 있어요.

 

 

 

 

 

LE: 공간 배치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말로 풀어 보면 어떨까요?

 

예를 들면 여기 흰색 컵이 있잖아요. 그리고 흰색 컵이 오른쪽에 가까이에 있다. 흰색 컵이 오른쪽에 멀리 있다. 이런 식으로 조금 더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계가 있는 거죠. 소리도 마찬가지로 이 소리가 난다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요. 소리가 좀 부드럽지 않게 난다. 소리가 부드럽지 않은데 오른쪽에서 난다. 오른쪽에서 조금 뒤쪽에서 난다. 이런 게 있는 거죠.

 

각각의 소리가 있고, 이걸 연주하는 연주자들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 사람들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상상하면서 말이죠. 이런 걸 많이 고려해서 악기 배치를 했어요. 제가 모르는 영역에 대해서는 준우가 도움을 주는 부분도 있었고요. 악기가 가운데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양쪽에서도 나오는 소리가 있거든요. 그러면 가운데를 비워주고, 비운 곳에 들어갈 것을 채워주는 식으로 배치했어요. 

 

쉽게 말씀드리자면 3D의 영역. 왼쪽, 오른쪽으로 가는 게 아니라 앞, 뒤 그리고 위 아래도 고려하면서 믹스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이게 어떻게 보면 진짜 끝이 없는 작업일 수도 있는데요. 함께 작업해 준 사람들이 너무 응원을 잘해줘서 무사히 마칠 수 있었어요. <쇼미더머니 11>까지 해서 앨범 마무리 작업을 하는 한 달 동안 너무 힘들었는데요. 이제는 시원하게 음원 미션 작업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LE: “D.R.E.A.M.”의 도입부에는 화음이 들리던데요. 그건 그냥 피에이치원 님이 알아서 부르신 건가요? 아니면 슬롬 님이 디렉팅을 한 부분이 혹시 있나요?

 

제가 피에이치원 형이 준 보컬 트랙을 지금의 자리에 배치했어요. 피에이치원 형이 노래에 필요할 만한 재료를 어떻게 쓰이지 않더라도 한꺼번에 보내 주면 그것을 재조립을 하는 게 제 몫인 거죠.

 

 

 

 

 

LE: 사실 슬롬 님이 LA, 피에이치원 님이 뉴욕 출신 인 만큼, 참여진으로도 양면적인 무언가를 의도하신 걸까 싶었어요.

 

이건 좋은 해몽이네요. (전원 웃음) 딱히 의도한 건 없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ZQh9PPaP0vs

 

 

LE: 다음 트랙으로 넘어가 볼게요.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는 빛과 소금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곡이잖아요? 이번 앨범에 리메이크곡을 수록한 이유가 특별히 있을까요?

 

사실 올해 봄에 정말 좋은 기회가 닿아서 제가 장기호 교수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제가 웬만하면 매체에서 가족 이야기를 잘 안 하는데요. 사실 장기호 교수님과 어머니가 아는 사이세요. 제가 처음 썼던 미디 키보드가 어머니께 고등학교 졸업 선물로 받았던 커즈와일(KURZWEIL) 사의 디지털 키보드였는데요. 그 모델을 추천해 주신 분이 장기호 교수님이셨어요.

 

어머니가 아들도 음악을 좋아하신다고 교수님께 말씀하시면, 교수님이 원격으로 응원도 해주셨고요. 제가 직접 뵌 일은 없었지만, 어머니가 아들이 이런 곡을 만들었다고 가끔 교수님에게 보내주시고 교수님이 들으면서 좋다고도 해주셨고요. 저는 아직 미숙하다고 생각하는 곡이라 교수님에게 들려드리기가 너무 민망해서 어머니한테 이거 왜 들려주셨냐고 했죠. (전원 웃음)

 

그러다 최근에 제가 <쇼미더머니>를 나오기도 하니깐요. 교수님이 저에게 한번 보고 싶다고 먼저 말씀을 주신 거예요. 그렇게 너무 좋은 기회로 처음 교수님을 뵈었는데요. 처음으로 저에게 하신 말씀이 "일찍 자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른 선생님들끼리 하시는 이야기를 옆에서 들으니까 선생님 시대의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가 저희와 별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저희 세대 아티스트들이 나이가 들어서 다 건강하게 잘 살아있고, 감옥에 가거나 죽지만 않는다면요. 조금 더 세상이 아름다워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음악을 하는 저의 인생에서도 좋은 롤모델을 찾은 거 같아서 너무 행복했어요. 원래도 빛과 소금과 장기호 교수님의 음악을 좋아했는데, 교수님이 처음 제가 음악을 할 때 알게 모르게 일조를 해 주셨고요. 또, 제 첫 정규 앨범이다 보니까 교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리메이크곡을 넣게 되었습니다.

 

 

 

 

 

LE: 그렇다면 빛과 소금의 많은 노래 중에서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를 리메이크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일단은 노래가 사랑을 소재로 한 트랙이기도 했고요. 또, 저는 편지라는 것이 앞뒤 모든 세대를 연결해주는 거라 생각했어요. 제 나름대로 원곡과는 조금은 다른 의미를 부여했고, 노래의 조가 가지는 성질을 해석해서 리메이크한 것 같습니다. 

 

 

 

 

 

LE: 또, 슬롬 님은 원곡에 어떤 매력을 느끼셨나요?

 

노래의 보컬과 가사에 담긴 감정선이 되게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또, 이게 누구한테 이야기하는 건지 잘 모르겠는 그 모호함이 좋았어요. 어떻게 들으면 이별 노래인 거 같고, 어떻게 들으면 사랑 노래인 거 같고요. 여러 가지 복합적 감정과 벅차오르는 느낌이 드는 것이 되게 좋았어요.

 

 

 

 

 

LE: 그렇다면 슬롬 님은 원곡을 또 어떻게 해석하려고 하셨나요?

 

일단은 제가 이 노래를 만들 때 많이 듣던 게 반젤리스(Vangelis)였어요. 또, 신병하 선생님의 “소나기”도 많이 들었고요. 그때 듣던 소리가 자연스럽게 음악에 묻어난 거 같아요. 또, 언젠가는 저도 영화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꿈도 있고요. 동시에 너무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신박한 노래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곡이 드라이해지다가 갑자기 808드럼이 나오는 식으로 힙합적인 요소를 넣어봤습니다.

 

 

 

 

 

LE: 갑자기 808드럼이 나와서 되게 재미있더라고요. 노래에 또 포인트가 있을까요?

 

원곡에서는 ‘말하지 못했지’ 부분. 그 파트에서 악기가 굉장히 많이 레이어 되면서 소리가 과부하 되는 느낌이 있거든요. 저는 이게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행복한 건지, 우울한 건지 잘 모르겠는 그런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한 거 같습니다. 참여한 아티스트분에게 트랙에 대한 해석을 맡기지 않다 보니까 이번 앨범에서도 인스트루멘탈로 수록된 두 곡이 오히려 제 감정을 어떤 식으로 소리로 배치하고 표현했는지 잘 드러난 거 같아요.

 

 

https://www.youtube.com/watch?v=z5jjoMlu9_A

 

 

LE: 여러 디테일이 있는 노래네요. 다음 노래로 넘어가 볼까요? “WHAT DO I DO”는 언제 만든 노래인가요?

 

2017년에 만들었어요. 노래에 참여한 윌 허드(Will Heard)같은 경우는 인스타그램으로 소통했어요. 작년 인터뷰에서 말씀드렸던 카이 스미스(Kai Smith) 같은 경우도 그런데요. 제가 사운드클라우드를 열심히 한 덕분에 여러 외국 아티스트에게 팔로우가 올 때가 있어요. 그러면 영어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아티스트와 친분을 쌓아 놓는 편인데요. 

 

언제 한번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윌 허드에게 트랙을 문득 보냈는데 굉장히 수월하게 지금의 곡이 돌아왔어요. 본인이 마이크로 코러스를 쌓아서 보내준 걸 제가 한 곡의 형태로 완성을 시켰습니다.

 

 

 

 

 

LE: 노래에 담고 싶었던 하루는 어떤 하루였나요?

 

대체로 제가 작업을 말이 되든, 안 되든, 혹은 언제 쓰일지도 모르지만, 습작처럼 일단 해 두는 편인데요. 그냥 피아노 연주곡 같은 걸 만들 때도 있고, 그냥 드럼 루프만 만들어 둘 때도 있어요. 그럴 때마다 프로젝트 파일에다가 만든 날짜를 제목에 써 놓고, 그날 먹었던 음식이나 그날 느낀 기분을 문장으로 써 놓는 경우도 있거든요. 또, 노래를 만든 다음에 소재를 적어 놓는 경우도 있어요. 어떤 노래는 '일주일을 파티만 한 것처럼 일하자.'라고 적혀 있는 것도 있었어요. 이 노래의 경우에는 아예 제목이 “WHAT DO I DO”였어요. 윌 허드가 이 제목을 잘 캐치해서 본인이 노래를 잘 이어 나간 거 같습니다.

 

 

 

 

 

LE: “WHAT DO I DO”를 들어보니까 보컬보다 악기가 좀 더 앞으로 나왔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이런 부분은 의도한 점이 있을까요?

 

앨범의 마지막 세 곡은 비트에 더 집중할 수 있는 배치인 것도 맞아요. “WHAT DO I DO” 같은 경우에는 비트에 보컬이 들어간 상태고요. 후반부의 새 트랙은 비트를 좀 더 집중해서 들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트랙 배치를 했습니다.

 

그래서 “WHAT DO I DO”는 과도할 정도로 긴 솔로와 아예 연주적인 간주도 있거든요. 다른 곡들은 회사도 생각해서 어떻게 보면 상업적인 선택을 했다고 하면요. 후반부 세 트랙은 제가 원하는 대로 만들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김승현 님에게는 리 릿나워(Lee Ritenour)처럼 기타를 쳐 달라고 부탁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JOJcSrhtkUk

 

 

LE: 이야기를 들으니 마찬가지로 “우산”에서 어떤 표현에 집중했는지도 궁금해지네요.

 

본래 트랙의 제목은 발베니였다가 웨더 리포트라는 타이틀이 정해지면서 지금의 제목이 되었어요. 앨범 수록곡 중에서 제일 술에 취해 만든 노래예요. 비 오는 날에 위스키를 진탕 먹고 비틀비틀 집에 들어왔었는데요. 잠도 안 오고 해서 작업이나 해볼까 했어요. 룹을 만들었는데 BPM이 안 맞지만, 얼추 맞게 만들 수 있을 거 같더라고요. 안 맞는 대로 하나하나 악기에 나름대로 의미를 담아가면서 작업을 했어요. 

 

다 엇박이고요. 그리드에 맞는 것이 거의 킥, 스네어 밖에 없었어요. 베이스도 일찍 나왔다가 떨어지고요. 그때 제가 술기운에 눌렀던 터치, 타이밍은 거의 보정 안 된 상태로 있었어요. 믹스 같은 건 계속 수정했지만요. 그때 약간 취했던 그 감정 상태를 그대로 담아내서 재미있었어요. 하루의 마무리를 할 때도 그렇고요. 항상 술 먹은 다음에는 신나더라도 집에 들어와서 누울 때는 되게 조용해지고 그러는데요. 그런 기분이 잘 담겨 있어요.

 

 

 

 

 

LE: “우산”에 담긴 햇소리는 마치 비 내리는 날씨를 연상하게 하더라고요. 이렇게 트랙에서 소리로 연출한 부분이 혹시 있을까요?

 

드럼이 브레이크 되는 부분은 젖어 있다가 갑자기 드라이해지는 느낌을 주고 싶었는데요. 그 이후로부터는 무드에 맞게 아이디어를 넣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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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렇게 트랙별 이야기를 나눠봤는데요. 그렇다면 슬롬 님에게 [WEATHER REPORT]는 어떤 의미가 있는 앨범일까요? 

 

몇 년 동안 있던 저의 상태와 여러 가지 사건들이 일어났을 때 제가 했던 반응들, 그리고 그런 사건을 피하고자 애를 썼던 저에게 위로를 주는 앨범인 거 같아요.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무던해져도 된다고 저에게 이야기해 주는 앨범 같습니다. 물론, 앞으로 쉽게 변하진 않겠지만요.

 

 

 

 

 

LE: 개인의 감정 부분에 있어서는 그런데, 음악적으로는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앨범일까요?

 

사운드 디자인이나 좀 더 미니멀한 트랙의 믹싱 부분에 있어서 확실히 성장한 것 같습니다.

 

 

 

 

 

LE: 확실히 포스트 프로덕션 쪽으로 많이 성장한 앨범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인간적으로는 어떻게 성장을 한 거 같나요?

 

어떻게 보면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 사람이 살아온 환경 배경이 다르다 보니 기조가 다르잖아요. 그래서 지금 제가 이렇게 행동한다고 저 사람과의 상황이 나아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거 같아요. 어떻게 보면 좀 허무주의에 가깝기도 하지만요. 나름 좀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자면, 내가 너무 애쓸 필요도 없고 그냥 이런대로 앞으로 나가는 게 낫다는 걸 깨닫게 된 거 같습니다.

 

 

 

 

 

LE: 왠지 슬롬 님이 어른이 된 거 같이 느껴지네요. (전원 웃음) 그렇다면 리스너분들이 이번 앨범을 어떻게 들어줬으면 좋겠나요?

 

[WEATHER REPORT]가 듣고 신이 나는 앨범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저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있거나 이전에 했던 선택에 대해서 굉장히 자책하거나 후회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적어도 지금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앨범. 그런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앨범이었으면 좋겠어요.

 

 

 

 

 

LE: 좋습니다. 남은 앨범 활동 계획이 혹시 있을까요?

 

<쇼미더머니>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데요. 아마 <피식쇼>는 나갈 것 같아요. 아까 말씀드린 답변 선상에서 영어도 웬만하면 매체에서 잘 안 하거든요. 의식해서 안 쓰는 편이기도 하고, 일부러 콩글리시를 쓰고 LA 미션 때도 한글로 질문을 했어요. 방송 같은데 나왔을 때 해외에서 유학했다. 대학을 나왔다. 이렇게 올려 치는 게 부담스럽더라고요. 그래도 유일하게 하는 콘텐츠인 만큼, 진짜 되게 오랜만에 영어를 쓸 거 같아요.

 

 

 

 

 

LE: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하자면요?

 

어떻게 보면 1년 하고 조금 넘어서 다시 앨범을 내게 됐는데요. 정규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규모가 짧고, 트랙 길이가 짧다고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시고요. 앨범을 더 많이 자주 만들기 위해 낸 포맷임을 이해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원 웃음)

 

 

 

 

 

LE: 인터뷰 고생하셨습니다.

 

 


CREDIT

Editor

INS, Destin

신고
댓글 9
  • 11.7 23:23

    기대되네요

  • 11.8 00:11

    프로듀서로서 힘을 빼고 그냥 앨범을 낸다는 태도가 상당히 재밌네용 또 다른 깨달음을 얻어갑니다..

  • 11.8 00:20

    👍👍

  • 11.8 01:43

    바야흐로 슬롬의 시대다..

  • 11.8 14:30

    앨범 또 돌려야겠네요 좋은 인터뷰 감사합니다

  • 11.8 15:06
  • 11.8 19:34
  • 11.9 17:39

    와 쉽게 읽어보려했는데 엄청나게 디테일 해서 스크롤이 기네요. 감사합ㄴ디ㅏ!

  • 11.10 17:39

    최근에 슬롬님이 유튜브에 올리신 플레이리스트 정말 잘 듣고 있어요. 중간에 튀거나 별로다 싶은게 없이 뭘 하면서 듣기가 편안하더라구요. 그래서 어떻게 이런 노래들을 알았을까 궁금하던 차에 마침 인터뷰가 떠서 봤는데 생각보다 너무 알차네요. 잘 읽었습니다. 나중에 세상의 모든 음악이나 씨네뮤직 같이 음악 소개해주는 프로 진행하시면 챙겨볼 것 같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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