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ly woods - GOLLIWOG
https://youtu.be/AzqMHkYNSLc?si=3Lw-UCsIQAw_seVB
*풀버전은 w/HOM Vol. 23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링크: https://hausofmatters.com/
골리웍(Golliwog), 19세기 말 미국의 동화책 작가 Florence Kate Upton에 의해 창작된 봉제인형 캐릭터이다. 석탄을 연상케 하는 칠흑의 피부와 폭탄을 맞은 듯한 부스스한 아프로, 민스트럴 쇼에서 묘사된 전형적인 흑인의 모습. 인종차별은 인형의 몸에 깃든 채 세인들이 그 영의 형태를 인지하지 못할 때까지, 윤리적으로 명백히 문제되는 사항이 추억의 의복을 걸쳐입을 때까지 미소 지으며 암약했다. 하지만 죽은 척하는 골리웍의 은신술조차 책상 위 잔뜩 쌓인 서적더미에서 완전히 모습을 숨기진 못했다. 그리고 책상의 주인은 — 얼굴 없는 한 뉴욕 작가. 모자이크 처리된 철학자의 고향은 프로젝트 버전의 도서관과 세계사 박물관. 허나 골리웍은 발견될 지언정 통제되지 않는다. 오감이 차단된 이에게 통제력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는 문화로 위장된 민족의 악몽이 아직까지도 문고리를 열어젖히는 현실을 막아낼 수 없다. 그러나 묘사한다. <GOLLIWOG>은 빌리 우즈(billy woods)가 포착하고 겪어낸 세상의 가장 처절하고 공포스러운 단편이다.
물론, 자칫 진명으로 오해할 만한 가명을 사용하는 이 래퍼의 음악을 진정 한 차례라도 주의깊게 접한 이들이라면 빌리가 펜을 잡은 운율가 중 가장 지혜로운 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방도가 없을 것이다. 이 도발적인 형용에 일말의 거부감이라도 든다면, ‘다방면에 무척이나 조예가 깊은’으로 대체해도 무방하다. Wu-Tang Clan 이래 출현하기 시작한 랩의 걸출한 작가 중에서도 그는 많지 않게 Black Thought나 Lupe Fiasco에 비견될 수 있는 존재이다. 이제 다소 고리타분해진 감이 있는 앱스트랙 힙합이라는 용어를 제하고도, 현재 Mach-Hommy와 빌리 우즈만큼 독창적인 가사를 양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래퍼를 잦게 접할 수 없는 형편이다. 재미있는 점은 두 얼굴 가린 유령의 작사 방식 차이에서 관측된다. 둘 모두 인문학 전반에 기반해 추적하기도 벅찰 정도로 다채로운 레퍼런스를 채용하지만 — Mach가 근래의 연예계 사건이나 유행어를 높을 빈도로 사용할 정도로 트렌디한 작가라면, 빌리는 철저히 역사서와 기억의 파도를 헤치며 하나의 연표를 그려내는 작가다. 그렇다. 좀 더 쉬운 표현을 모색하자면, 빌리 우즈의 펜촉은 다소 과거를 향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탐구 수준이 압도적으로 높기에, 그의 리릭시즘은 일찍이 커리어를 시작한 중견 래퍼들의 눈물 젖은 파운드 케이크 같은 회한에 비할 바가 되지 않는다.
그런 재능의 소유자가 제대로 작정을 하고 자신만의 관점을 집필하면 <Aethiopes> 같이 초월적인 음반이 배출되는 것을, 우리는 이미 한 차례 이상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하물며 그는 Kenny Segal과 함께 다소 일상적인 차원의 산책과 여행을 소재로 2023년의 랩 앨범을 제작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빌리 우즈는 <Maps>의 브루클린 거리를 <Hiding Places>의 흉가 수준까지 뒤틀어버리며 가히 무시무시하다 할 만한 이미지를 창조한다. 아니, ‘소환한다’는 표현이 보다 적절하다. 본작의 음형이 빌리 우즈 개인의 과거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개인사와 드라마를 빌드업하는 빌리의 스토리텔링은 쉴롭의 거미줄처럼 청자가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쉬이 형용하기 어려운 긴장감으로 숨을 조여온다. 그리고 그것은 같은 브루클린 출신의 래퍼 MIKE의 리릭시즘을 아직 덜 여문 청춘의 스쳐가는 고뇌 정도로 치부하게 할 만큼 염세적이고, 또 다분히 아프로페시미즘적이다. 일체의 미화가 전무하다. 시대의 주연이 아닌 시대의 관찰자로서 조명받지 못한 채 정돈한 빌리 우즈 저(著)의 사기(史記)는 어떤 관점에서는 Nas보다도 더욱 뉴욕과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본질에 근접했다고 볼 수 있다.
Armand Hammer의 2023년작 <We Buy Diabetic Test Strips>는 사실상 Armand Hammer라는 브랜드 그 자체를 수록한 것이나 진배없었다. 빌리 우즈와 E L U C I D가 그들의 실험적인 카테고리 내에서 소화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음악이 한 장의 LP판 겉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GOLLIWOG>은 빌리 우즈 개인의 <We Buy Diabetic Test Strips>다. Preservation, Kenny Segal, Conductor Williams, Steel Tipped Dove, DJ Haram, Messiah Musik, 그리고 The Alchemist와 El-P까지. 오랜 협업자들이 아티스트의 경이로운 역량에 걸맞는 고품질의 비트를 하나 이상 제공했다. 이는 빌리 우즈 버전의 <The Black Album>이며, Backwoodz Studioz 버전의 <The Documentary>이다. El-P와 Despot의 화학 반응을 다시 체험할 수 있는 현장은 2025년 기준으로 결코 흔하지 않다. 바야흐로 추상 힙합의 올스타 음반이 창조된 것이다. 그는 심지어 의도적으로 스트리밍 사이트 아티스트란에 모든 프로듀서들을 표기했다. 이는 일종의 과시이자 명백한 장치이다. 엠바고를 취하기라도 하듯 앨범 공개 초반에는 피쳐링 아티스트조차 공개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 된 요즘, 본작은 그 관행을 우습게도 비틀어버린다. 덕분에 청자들은 Conductor의 “STAR87”이나 El-P의 “Corintians”처럼 전율적으로 연출된 사운드스케이프에 아낌없이 찬사를 보내면서도, 출생이 상이한 비트들이 빌리 우즈의 지휘 하에 단일 앨범으로 농축되어 강대한 응집력을 갖추는 치밀한 설계에 다시금 감탄할 수밖에 없게 된다.
호러코어를 표방하는 앱스트랙 힙합이 아방가르드 재즈의 망토를 두르고, 노이즈 음악과 앰비언트 음악 간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 <GOLLIWOG>은 다분히 영화적인 요소조차 일부 수용한다. 특히 빌리 우즈의 앨범치곤 흔치 않은 빈도로 삽입되는 보이스 스킷의 표면적 인상은 GZA의 성서가 그러했듯 찬바라 필름이나 블랙스플로이테이션 필름에서 갓 차출해낸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하여 본작이 RZA나 Madlib 같은 장르 거장들의 방법론을 완벽하게 채용하거나 모방하진 않는다. 앨범의 시작을 장식하는 “Jumpscare”는 제목 그대로 점프 스케어를 선사하기 위해 해당 분야에서 가장 악명 높은 비디오 게임의 효과음을 샘플링하는 센스를 갖추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빌리 우즈의 다이얼로그들은 역사적 현장에서 발굴된다. 일례로, Steel Tipped Dove의 음산한 “BLK ZMBY”에서 빌리는 ‘좀비’라는 키워드를 앞세워 착취당하는 현대 아프리카를 비유적으로 조명한다. 이때 그는 Yoweri Museveni의 자기변호성 발언을 직접 인용함과 동시에, 그 위 자신의 음성으로 ‘Zombie’를 연창하며 이 추례한 비극적 현장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Corintians”의 아웃트로 스킷에서 영어와 중국어가 동시에 들려오듯, 본작은 상이한 객체들을 덧씌움으로써 역설을 묘사한다. 이것은 컨셉 앨범 따위가 아니다. 그저 더없이 담백하고 참혹한 사실일 뿐이다.
앱스트랙의 MC들 — 특히 빌리 우즈의 작사에 있어 기성 랩 리릭시즘과 차별화되는 가장 큰 두 속성이라면, 컨텐츠 과잉과 누락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빌리 우즈의 가사에서 ‘L’로 시작하는 전치사를 찾기란 결코 쉬운 과업이 아니다. 그는 스스로를 위한 학자답게 일반인은 평생 들어보지도 못할 이름들을 무척이나 손쉽게 언급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원관념을 남기지 않는다. 때문에 그의 가삿말들은 필연적으로 추리를 요하는 거대 미로의 형상으로 정렬된다. 사건이란, 우선적으로 해체되고 작가들의 단어와 TV 전파를 통해 재편성되어 이해되는 것에 가깝다. 하지만 답을 모르는 이는 펜의 주인이 아니기에, 이해는 <GOLLIWOG>의 시청자들에게 요해진다. “Maquiladoras”에서 빌리 우즈는 Frantz Fanon의 ‘자기절단’ 개념을 선제시하며 Kendrick Lamar가 Kunta Kinte의 컨셉을 차용한 것보다도 명료히 메시지를 소묘한다. 하지만 ‘빌리의 일간 십자말풀이’를 잠시 뒷전으로 두고도, 본작이 드라마로서 가지는 위력 역시 무척이나 상당하다. 아마도 빌리 우즈의 모든 곡을 통틀어서도 가장 개인적일 호러코어 “Waterproof Mascara”의 스토리텔링은 여인의 흐느낌을 샘플링한 Preservation의 비트만큼이나 노골적인데, 한 번도 그의 부친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Careful what you wish for, might just get that shit’이라는 한 줄이 남기는 후폭풍은 상당하다. 그 모든 일련 과정에서 빌리 우즈는 골든 에라에서 유래한 정통적인 랩 플로우를 추종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어떠한 면에서 그의 랩은 스포큰 워드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Moor Mother와 합작을 제작했다는 이유로 그가 말하는 시인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그는 기술적인 MC로서도 여전히 MF DOOM의 공석에 가장 근접한 장본인이다.
<GOLLIWOG>이라는 추상화는 피사체의 존재를 정확히 명시하지만, 채색의 디테일이 너무 상당한 나머지 그 형체를 명확하게 인식할 순 없다. 이는 어떤 면에서 흔히 쓰이는 유화보다도 템페라에 더 유사하다. 혹은 우리가 재즈 버전의 1인 Cannibal Ox를 경험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영향의 기원이 다채로운 만큼이나 많은 그림자들이 본작을 스쳐가지만, 지난 몇 년간 한결 같이 자기주장이 다 강했던 빌리 우즈의 음반치고 <GOLLIWOG>이 유독 그 전신을 다 파악하기에 꽤 긴 시간이 소요되는 작품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체적인 카리스마만큼은 <Aethiopes> 이래로 가장 강렬하다. “A Doll Fulla Pins”의 나머지 절반은 단연 앨범 최고의 순간이라 찬사받을 만한데, 해당 벌스가 골리웍 인형과 부두 인형의 개념을 교차시켜 앨범 전체의 주제의식을 얼마나 간단하게 축약하는지 목도하라. 진입장벽이라는 이름의 오만함이 불만이라면, 당신은 아직 “Dislocated”를 온전히 청취하지 않았다. 맙소사, 지금의 빌리 우즈는 거의 John Carpenter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틀어놓은 채 GZA의 사무라이 검을 휘두르는 Stephen King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연작의 향연 끝에 나온 앨범이 이토록 스타일리시하면서도 품위 있다면, 이제 빌리 우즈를 추상 힙합이라는 서브 장르에서 꺼내올려 힙합의 최고 중 하나로 추대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Ka가 역사의 뒤안길로 걸어간 이상, clipping.이 대체 불가한 것 이상으로 그는 진정 독보적인 존재다. 아, 그래. 오리지널을 곁들여보자. 호러와 노스탤지어의 공통분모는? 아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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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이제 힙합에서 빌리 우즈의 포스에 대적할 수 있는 인물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싶습니다.
심지어 빌리의 음악은 독창적이기까지 해서 결코 대체될 일이 없을 것 같아요.
정말 이 정도라면 먼 미래에 둠과 같은 반열에서 언급되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Aethiopes>를 확실히 위로 치긴 하지만, 올해 힙합 음반 중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로 좋은 앨범이 나온 것 같습니다.
한 편으로는 씁쓸하네요. 동부 힙합의 현 주소를 책임지고 있는 인물들이 나스, 블랙 소트, 빌리 우즈 같은 70년대생 중년들이라뇨.
그나마 최근 조이 배드애스가 디스전으로 정말 좋은 모습을 보여주긴 했으나, 예상보다 파급력이 미약했던 것 같습니다.
이스트코스트 전성기와 밀레니엄 언더그라운드의 명맥을 이제 앱스트랙 힙합에서밖에 찾을 수 없는 걸까요?
+ 최근 게시판에서 AI 리뷰글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데, AI의 도움 따위는 필요없을 만큼 글을 잘 쓰면 되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떤 오리지널들은 AI로도 쉬이 모방할 수 없으니까요.
https://hiphople.com/fboard/31610802
빌리 우즈의 가사가 '누락'이라는 표현은 위 글을 참고하였습니다.
막줄 좃간지
평가원은 온암선생을 수능국어 출제자로 스카웃해라
너무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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