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단의 축을 이루던 인물은 죽음은 가히 충격의 피탄이 아니겠는가. 2020년, 한창 잘나가던 힙합 그룹 Injury Reserve는Stepa J. Groggs라는 팀의 주도적인 인물을 떠나보냈다. 빈 자리의 그 공간감과 씁쓸함을 느끼기도 전에, 그들은 이별의 고미를 입 안 가득 머금은 채, 세상을 떠나간 그를 기리기 위한 유작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완성된 <By the Time I Get to Phoenix>라는 기억은 그들이 담아왔던 어느 기억들보다 비참하고 의의한 모습이다. 통통 튀는 바운스를 주축으로 한 익스페리멘탈 힙합을 구사하며 신나는 분위기를 시사하던 그들은 Stepa J. Groggs의 부재라는 숨 막히는 사건 앞에 사느랗게 무기력해진 듯하다. 그 커다란 사건의 기억을 뒤진 그들의 음악도 역시 무기력하고 파탄적이다.
본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단연 앰비언트다. 오프닝 트랙 "Outside"부터 느껴지는 앰비언트의 묵직한 분위기와 정서는 앨범이 설정한 방향을 곧이곧대로 보여준다 ㅡ 앨범 제목대로 Injury Reserve가 기존의 음악상에서 벗어나 제시한 새로운 바깥(Outside) 말이다. 죽음이라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대의 비극을 부재의 음악 앰비언트로 표현하고자한 시도는 그들이 표현하고자한 무드와 서사에 안성맞게 들어맞았다. 본작은 전혀 힙합스럽지 않고, 이 점이 본작의 음악을 뛰어난 진혼곡으로 이끌어냈다.
앨범 전체에는 역시 Stepa J. Groggs의 죽음과 그 영향이 무겁고 낮게 깔려있다. "Top Picks for You"의 그를 향해 보내는 애도와 사무치는 그리움. "Superman That"의 무기력한 가사와 톤까지. 본작은 고도로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며, 그의 죽음은 본작에서 암해 그 깊숙한 골짜기 속에서 조용히 음습해온다.
가장 감정적으로 절정에 달하는 곡은 단연 "Knees"다. 곡을 장식하는 "자랄 때는 무릎이 아파오지."라는 라인은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신체의 노화를 넘어서, 살아가는 힘 자체가 소진된 상태를 비유적으로 뜻하는 라인이다. 축 처지는 느낌을 담고 있는 이 곡에서 필자는 Stepa J. Groggs 파트가 강하게 기억에 남았다. "씨발, 난 이제 더 못 커 ㅡ 위로는 말이지.", "내 배는 조금 더 조금 더 축 쳐져버렸네." 이제는 위로도, 양옆으로도 크지 못하는 그. 참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가사다.
죽음은 실로 비참하고 안타까운 것이다만, 때로는 존재의 의의 그 이상의 무언가를 남기기도 한다. Stepa J. Groggs의 죽음이 남긴 유산과 그의 죽음이 끌어낸 남은 멤버들의 애도와 감정, 주밀하게 엮여진 회백색의 기억들을 모아 발표한 <By the Time I Get to Phoenix>는 그의 죽음에 크나큰 의의 이상의 것을 부여했다. 죽음이라는 것이 단순한 생의 끝이 아닌, 남은 자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가는 제 2의 생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처럼 Stepa J. Groggs가 남은 멤버들과 유족들과 필자를 비롯한 팬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있게 하도록, 우리 모두가 그가 걸어왔던 수 만의 에움길을 기록하고, 기억하며, 다시 걸어보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친다. 5/5
https://rateyourmusic.com/~kmming_real
아 나도 느끼고 싶다
잘 읽었어요
고맙습니다 :)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렵대서 묵히는중이었는데 글 읽으니까 흥미롭네요
내일 들어야겠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 듯요
와 글 짧고 좋네요
짧다니.. 전 최대한 길게 쓴건데
앗 엄청나게 글 길게 쓰시는 분들도 있어서... 그분들 기준으로 말씀드린 겁니다 ㅎㅎ
사실 이 수준으로 이 정도 분량이면 굉장한 장문글 못지 않게 노력이 들어가겠죠
충격적인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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