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앱스트랙트 힙합 (Abstract Hip Hop)을 거론할 때마다, 수많은 기라성을 입에 올리고는 한다. 자, 누가 과연 앱스트랙트 힙합의 거장일까? 유구히 좋은 작품을 제시해온 MF DOOM은 당연할 것이고, 밤하늘의 닻별로 떠오른 MF DOOM과 달리 현재까지도 내로라하는 작품들을 발매하고 있는 billy woods, 언더그라운드 저 밑동에서 조용히 후배들에게 전해질 전등을 닦아오던 EL-P 등. 수많은 이들이 이 장르의 권좌에 앉아왔고, 동시에 그 터전을 가꾸어왔다. 그 터전의 시지(田地)에서 불현듯 등장한 기린아가 있었으니, 그것이 익히들 알고 있을 Earl Sweatshirt가 아니겠는가.
사실 그는 이쪽 장르와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었다. 늦가을 단풍 아래서 산문을 불방케하는 작사 능력을 뽐내며, 침침한 비트 위에서 물 흐르듯 랩을 뱉는 것이 앱스트랙트 힙합 아티스트의 보편적인 이미지라면 말이다. 아무리 그가 Odd Future의 인원들 중에서 가장 어두운 음악을 해왔다고 한들, 앱스트랙트 힙합과 네오 붐뱁이라는 심히 마이너한 음악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 아니었던가.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는 가늠하기 어려우나, 아무쪼록 <I Don't Like Shit, I Don't Go Outside> 발매를 전후로, 그는 Odd Future와의 접점은 줄이고, 뉴욕의 앱스트랙트 힙합 크루 sLUms와의 교류를 늘리며, 완전히 이쪽 장르로 거처를 옮겼다.
노선 변경의 결과는 군더더기 없는 성공이었다. 그는 Odd Future의 광기와 폭발하는 에너지를 완전히 제거하고, 흑색으로 점철된 프로덕션 위에서 자신의 인생과 숙명을 술회하는 시인으로 돌아섰다. 그것의 시작을 알리는 <I Don't Like Shit, I Don't Go Outside>는 칼날 같은 몰입감을 선사하고, 아버지에 대한 심오한 헌정과 만시지탄의 슬픔을 담은 <Some Rap Songs>는 뉴 앱스트랙트 힙합의 현재와 미래를 제시하였다. 그는 아마 <Some Rap Songs>를 기점으로 앱스트랙트 힙합 씬에서 제2의 MF DOOM이라는 자랑스러운 칭호까지 받으며, 씬의 기둥으로 섰다.
그의 음악은 항상 전부 침울함과 비애가 뒤섞인 은둔의 형식을 띄어왔다. 하긴, 기구한 가정사와 인생에게서 달콤한 과실이 열릴 리는 없는 법이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허나, 우울함을 주무기로 휘둘러오던 Earl은 <SICK!>을 기점으로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줄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부성애와 긍정적인 태도를 통해 슬픔의 계곡에서 벗어난 자신을 그린 <SICK!>에서 그의 가사는 대놓고 보아도 매우 명징적이고 활달한 밝은 모습이니 말이다.
필자는 <Live Laugh Love>가 <SICK!>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SICK!>이 그가 치유되는 과정을 보여준다면, 본작은 아예 그가 새사람이 되어 돌아온 듯한, 그런 결과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본작에는 어두컴컴한 방에서 비운의 이야기를 읊던 Earl 대신에 낭만스러운 분위기를 보여주며, 명경지수의 가사를 보여주는 음유시인 Earl이 존재한다.
그는 정말 딴 사람이라도 된 양, 밝은 가사들을 선보인다. 오프닝 넘버인 "gsw vs sac"에서부터 그는 자신의 위치를 과시하면서,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INFATUATION"에서는 여태까지 끝내줬던 작사 실력을 우울함에 쓰는 대신, 삶에 대한 생동감 있는 관찰로 사용하고, 앨범 내에서 최고의 라인들을 퍼부으며, 앨범의 활기를 복 돋는다.
그런가 하면, 본작은 음악적으로는 그의 명작 <Solace>와 비슷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Solace>가 어떤 앨범인가? 처절한 우울함과 할머니, 어머니, 가족에 대한 감정을 여실히 담아낸 명작 중 명작이라고 손 꼽히는 작품이 아니던가? <Solace>가 우울감에 고통스러운 그의 혼백(魂魄)을 난해하고도 운치 있는 음악으로 자아냈다면, 본작은 그의 어리둥절한 행복과 긍정의 힘을 담아냈다.
본작은 그의 커리어가 그려온 사운드의 범위를 벗어나지는 않지만, 그 범위 안에서 한없이 부드럽고 담백한 사운드를 이끌어낸다. 그는 그의 작품들이 품었던 샘플링 기반의 로파이한 사운드와 끼익 끼익 꺼리는 루프도, Earl Sweatshirt 특유의 무감정적인 래핑 방식도 형태는 그대로 유지했지만, 근본적인 질감에서는 우울함에서 긍정으로의 변태를 이뤄냈다. "gsw vs sac"부터 무언가 따스하면서도 오묘한 느낌이 드는 것이 신비로운 감상을 주고, "Gamma"는 낙관적인 가사를 떠받쳐주는 따스한 선율을 자랑한다.
<Live Laugh Love>는 앨범의 제목 그대로, Earl의 바람과 변화를 담은 소소한 앨범이다. 짧지만 밀도 높은 사운드 안에서 고통, 혼돈, 비애 대신에 기쁨과, 혼돈과 질서, 성스러움을 동시에 끌어안는 그는 명징적이고, 동시에 도전적인 음악을 통해 자신만의 투쟁과 그 과정에서 얻은 지혜와 환희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울렸던 그의 음악이 이제는 긍정적인 방향에서의 울림을 가져다준다는 점에서, 본작은 필자에게 귀하고 감사할 뿐이다.
행복해야 돼 얼형
+
신보 공구하시는 분.?.?
음악이 참 개운함
얼이 무슨 음악을 하는 지도 잘 모르고 앱스트랙 힙합이 뭔지도 잘 모름. 근데 이번 신보는 확실히 좋드라.. 분위기가 편안하고 딱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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