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iphople.com/fboard/31734222
이 글의 후속 격으로 자유로이 개인적인 해석을 거쳤다고 여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DorKy-13ak&pp=ygUOa2VuZHJpY2sgbGFtYXI%3D
작금 힙합 문화를 상징하는 얼굴은 누구일까요? 누군가에겐 투팍일 수 있겠고, 누군가에겐 에미넴일 수도 있겠고, 혹은 제이지일 수 있습니다. 칸예 웨스트나 닥터 드레일 수도 있죠. 어쩌면 나스와 드레이크일 수도요. 하지만 현재 힙합의 러시모어 산에 켄드릭 라마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음을 부정하려면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최근 Not Like Us - GNX 에라의 기록적인 흥행으로 켄드릭은 모든 면에서 한 시대를 평정했다 할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었습니다. 특히 켄드릭의 성공은 힙합 역사를 통틀어서도 상당히 이례적입니다. good kid, m.A.A.d city와 To Pimp A Butterfly로 신인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을 누리고, 마치 그것마저 전성기가 아니라는 듯 DAMN. 에라로 전작들의 기록을 갱신했죠. 그리고 2020년에 접어들어 2010년대보다 더한 위상을 과시하는 중입니다. 이와 같이 두 번의 10년 동안 대중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아티스트는 힙합에서 칸예 웨스트를 제외하면 또 없었죠. 칸예가 2020년대에 들어서 아티스트로서는 사실상 회생 불가 판정을 받았으니, 만약 켄드릭이 2030년대에도 건재하다면 정말 기록적인 일이 되겠죠.
https://www.youtube.com/watch?v=MsTsW8aIcH4
그러한 면에서 현재 그의 행보를 추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드레이크와의 역사적인 디스전, Not Like Us의 기록적인 흥행, GNX의 기습적인 발매, 슈퍼볼 하프타임쇼. 그리고 지금부터 다룰 플레이보이 카티의 신보 MUSIC 피쳐링까지. MOJO JOJO, BACKD00R, GOOD CREDITS, 트래비스 스캇 다음으로 앨범 내에서 높은 참여도를 기록하고 있는 켄드릭은 그 존재만으로 의문을 일으킵니다. 21세기 컨셔스 힙합의 예술성을 상징하는 래퍼가 어째서 혼돈과 반지성주의적 힙합의 아이콘이 된 랩스타의 앨범에 이토록 많이 참여한 것일까요? 그것도 우스꽝스러운 하입맨과 "Evil Twin"을 자처하면서? 작업물에 대한 호오를 떠나서도 우리는 MUSIC 내 켄드릭 라마의 유난히 높은 지분에 대해 이유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단순히 플레이보이 카티의 인기에 편승하고 싶어서? 혹은 으래 하는 것처럼 카티의 트랩 음악에서 일탈을 즐기고 싶어서? 이런 1차원적인 추측보다는 훨씬 설득력 있는 가설들이 이미 많이 등장한 시점입니다.
첫번째는 켄드릭 라마가 플레이보이 카티를 자신의 페르소나격 인물로, 혹은 카티가 켄드릭을 그렇게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켄드릭 라마는 이미 Mr. Morale & The Big Steppers에서 분명 도덕적으로 결점이 있는 코닥 블랙을 여러 차례 참여시키며 자신의 도덕적 결여를 강조하는 하나의 장치로 사용했죠. 이처럼 켄드릭은 또 다시 자신의 불완전성을 강조하기 위해 음악부터 사생활까지 말 그대로 '막장'으로 치닫은 카티와의 협업을 택한 것입니다. 물론 라이브 퍼포먼스로 정평이 난 카티의 에너지를 자신에게 이식하려는 의도도 있었겠죠. 반면 카티 또한 10년이 넘은 세월 동안 최고의 자리를 유지한 켄드릭의 정통성과 역량을 자신에게 대입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테고요. 두번째는, 너무나 뻔하게도 이 협업 또한 드레이크와의 디스전에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카티가 직접적으로 드레이크를 디스하진 않았지만, 카티가 최근 反 드레이크 진영 인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이어온 것을 감안했을 때... 이번 켄드릭의 MUSIC 참여로 더 확실해진 것처럼 보입니다. 켄드릭 역시 디스전으로 새로이 확립된 자신의 '부기맨' 페르소나를 강화시킬 겸 해서요. (You know what this is, the vamps and the boogies, we jugg through the party) 어쩌면 최근 제기되는 켄드릭 라마와 UMG 간 유착 관계의 연장선상으로, 켄드릭을 앨범에 참여시키라는 UMG의 압력이 있을 수도 있었겠죠. 혹은 켄드릭이 UMG를 통해 자신을 앨범에 참여시키라는 압력을 넣었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이는 앨범 제작에서 아티스트의 영향력을 완전히 무시한 터무니없는 음모론에 불과합니다.
https://youtu.be/rCiZKZJvDjM
위와 같이 제시한 다양한 가설에 반해, 제 의견은 조금 다릅니다. 켄드릭 라마와 플레이보이 카티 모두 진중한 태도를 가지고 작업에 임했다고 가정했을 때, 이 협업을 가장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릴 웨인'이 될 것입니다. 어느 날 LIKE WEEZY를 들으며 지인과 함께 MUSIC에 대한 감상을 나누고 있었죠. 그때 '서던 힙합 리바이벌'이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그 순간 MUSIC에 대한 제 감상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MUSIC이 2000년대 남부 힙합 믹스테입의 양식을 빌린 것은 일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리바이벌이라... 이보다 더 적합한 용어가 있나 싶었어요. 그리고 카티가 MUSIC에서 가장 재현하고 싶어 했던 인물은 당연히도 그 시절의 남부 힙합을 선도했던 릴 웨인이 되겠죠. 그리고 우키팝 님의 영상에서 릴 웨인이라는 이름을 좀 더 직접적으로 접하자 이 아이디어는 더욱 구체화되었습니다. 릴 웨인으로부터 영향을 끼친 후대의 래퍼들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위지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았다고 시인한 래퍼 중 가장 유명한 이가 누구죠? 켄드릭 라마. 그렇다면 양극단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릴 웨인의 스타일을 계승하는 켄드릭 라마와 플레이보이 카티의 협업. 뭔가 의미심장하지 않나요?
릴 웨인은 정말 대단한 래퍼였죠. 모두가 릴 웨인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이나 릴 웨인의 스타일이 독보적이었다는 방증입니다. 위지의 로우톤에서 갈라지는 하이톤 랩 보컬과 세상만사에 무심한 듯이 발음을 흘리는 딜리버리는 힙합 역사에서 비할 이가 없는 스웨거를 자랑했습니다. 그는 그에게 영향을 준 래퍼로 노토리어스 비아이지, 제이지, 미시 엘리엇 등을 꼽았는데요, 실제로 위지의 랩에서는 이들의 영향이 상당히 많이 느껴집니다. 무서울 만큼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라임 패턴은 비기, 무심하지만 감각적인 플로우와 재치있는 펀치라인 센스는 제이지를, 랩과 보컬을 오가며 불규칙하게 끊어지는 독특한 플로우는 미시 엘리엇을 연상케 하죠. 릴 웨인은 어떤 스타일을 소화하던지 그것을 믿을 수 없이 멋들어지게 만들 수 있는 래퍼였고, 심지어 정통적인 랩의 관점에서 봐도 위지의 라이밍은 전례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펀치라인은 힙합 역사상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죠. 릴 웨인이 빅 엘만큼 타율이 높은 코미디언이거나 루페 피아스코만큼 걸출한 언어학자는 아니었지만, 언어유희에 대한 그의 창의성만큼은 랩의 작가들 중에서도 가장 자유분방했습니다. 다음에 이어질 라임으로 펀치라인을 만드는 공식을 애용했다는 점에서 어쩌면 릴 웨인의 스타일은 둠과도 닮아있는데, 다소 추상적이고 고차원적인 언어유희를 사용하는 둠에 비해 위지의 전략은 훨씬 직접적인 접근을 택했죠. 모든 녹음을 대마를 피우고 즉석에서 해치웠기에 릴 웨인의 라임은 즉흥적인 경향이 매우 강한데, 이는 제이지와 아주 유사하죠. 하지만 릴 웨인은 범인이라면 떠올리지도 못할 비유를 떠올리며 내연을 무한히 확장시킵니다. 이는 고스트페이스 킬라로 대표되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말이 되게 끼워맞춘 듯한 경지죠. 이런 창의적인 리릭시즘이야말로 위지가 가진 또 다른 최고 무기일 것입니다.
켄드릭 라마는 릴 웨인에게서 정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켄드릭의 믹스테입 래퍼 시절 작업물을 들어보면 위지의 목소리를 따라하려 노력한 것마냥 들리죠. 켄드릭의 큰 강점 중 하나인 자유자재로 변모하는 독특한 보컬 또한 릴 웨인이 원조라 할 수 있습니다. Backseat Freestyle이나 m.A.A.d city 같은 곡에 결코 릴 웨인의 영향이 묻어나오지 않는다고 할 순 없을 것입니다. 물론 켄드릭은 영향을 받은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더욱 개발했죠. 위지뿐 아니라 에미넴, 제이지, 안드레 3000 등 다양한 MC들의 영향을 받은 켄드릭의 라임 패턴은 매우 복잡하고 치밀합니다. 반면 플레이보이 카티는 릴 웨인의 보컬 스타일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죠. 릴 웨인이 사실상 '멈블 랩'이라는 개념을 창시한 장본인이란 것을 감안했을 때 카티가 웨인의 영향 하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멈블 래퍼 중에서도 보컬이란 측면에서 위지의 스타일을 많이 수용하려 했던 아티스트는 카티가 단연 최고랄까요. 펑크의 영향이 강력하게 느껴지는 Whole Lotta Red의 스타일을 '이블 보이스'와 융합하며, MUSIC에 이르러 카티는 다양한 보컬 톤을 활용해 청각적 쾌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려 합니다. 이는 음정이 맞지 않는 가창으로 독특한 매력을 뽐냈던 릴 웨인의 작업물과 상당한 유사점을 보이죠. 결국 켄드릭과 카티는 릴 웨인의 강점을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이어받은 일종의 적자들이고, 그렇기에 카티가 켄드릭의 'Evil Twin'일 수 있는 것입니다. 둘의 뿌리가 같으니까요. 결국 릴 웨인으로 위시되는 남부 힙합의 적자라는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릴 웨인의 유산을 정반대로 계승하고 있던 이 시대의 주역 켄드릭 라마를 MUSIC으로 초대하지 않았나 — 하는 생각입니다.
https://youtu.be/WdOxSAVhGwQ
https://youtu.be/3tFZzheqb2M?si=MZxAGmYF3u_JjktW
지금은 하나의 컬트가 된 켄드릭 라마의 슈퍼볼 하프타임쇼 이전 예고격으로 공개된 영상이 있는데요, GNX를 타며 대화하는 켄드릭 라마와 티모시 샬라메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입니다. man at the garden을 대표로 켄드릭이 음악가로서 견지하는 자세를 탐구하고, 이를 티모시의 배우 활동과 비교하며, The Heart Pt. 2나 Kush & Corinthians (His Pain)을 같이 따라부르는 등 흥미로운 부분이 많습니다. 사실 켄드릭과 티모시의 인연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데요, 최근 켄드릭이 고용한 스타일리스트 테일라 맥네일이 바로 원래 티모시 샬라메의 스타일리스트입니다. 그 많은 배우 중 켄드릭 라마는 왜 하필 티모시 샬라메를 택했을까요? 최근 부상하는 젊은 남성 배우 중 티모시만큼 명징한 비주얼과 굵직한 필모그래피를 가진 배우가 드물긴 합니다. 물론 티모시 샬라메가 키드 커디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백인 힙합헤드로도 워낙 유명하고요. 저는 켄드릭이 티모시를 소환한 이유를 그가 맡은 가장 유명한 역에서 찾고 싶습니다.
듄의 폴 아트레이데스는 하코넨 가문에게 멸족당한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후계자로서 아라키스의 토착민 프레멘들과 함께 하코넨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지만, 이내 자신의 운명이 초월적인 예언자 퀴사츠 해더락으로서 전 인류를 '파멸적인 구원'으로 이끄는 것이란 걸 깨닫고 반메시아적인 행보를 걷게 되는 인물입니다. 듄 시리즈의 핵심인 반영웅주의를 상징하는 불운한 인물이죠. 그리고 어째서인지, 폴의 모습은 켄드릭 라마의 행보와도 닮아있습니다. 21세기 최고의 음반들을 발표하며 힙합의 메시아로 추앙받고 문화의 선도자로 칭해진 그이지만, 정작 켄드릭 본인은 그 자신을 한번도 구원자로 칭한 적이 없습니다. 흔히 블랙 메시아의 여정으로 은유되는 To Pimp A Butterfly마저도 결국 한 명의 흑인 남성에 불과한 그가 감내하는 고통과 흑인 스타로서의 숙명에 가깝죠. 하지만 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고통받는 개인인지보다, 그가 얼마나 걸출한 래퍼인지 관심 있어 보입니다. 결국 Mr. Morale & The Big Steppers라는 테라피 세션에서 심정을 충분히 정리한 뒤, 켄드릭은 이제 그렇다면 정말로 문화의 대표자임을 자처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드레이크와의 디스전에서도 그의 당위는 문화적 자부심에서 유래했고, GNX에서 그는 당당하게 모순점을 무시하고 그의 편집증적 경향과 야망을 내비칩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전례 없는 성공을 맞이하고 있죠. 지금의 켄드릭 라마는 분명 good kid, m.A.A.d city의 그, To Pimp A Butterfly의 그 사람이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우리가 보는 씬보다 더 큰 세상을 보는 듯합니다. 855일 동안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요? 우리는 그를 이해하지 못할 테고, 그 본인도 이해를 구하지 않을 테죠. 마치 퀴사츠 해더락처럼.
영화는 가장 고차원적인 예술 매체입니다.
켄드릭 머리속은 너무 어렵다..
잘 읽었습니다
선 개추후 내일 아침에 읽기
술술 읽히네요 잘읽었습니다
켄드릭 뇌 들여다보면 참 많은 게 나올 듯하네요. 켄드릭도 그저 음악가일 뿐인데, 사람들로부터 이런 방대한 해석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신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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