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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oolboy Q - Oxymoron 10주년 리뷰

title: Daft Punk온암2024.03.17 16:10조회 수 1523추천수 13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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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oolboy Q - Oxymoron

 

https://youtu.be/_L2vJEb6lVE?si=Rq5dWY4NWG-icXUb

 

갱스터 랩은 더 이상 힙합의 성공을 상징하지 않는다. 황금기의 석양이 래퍼들의 장신구에 블링 에라(Bling Era)라는 빛을 드리웠던 것조차 이미 한참 전이다. 도전자들은 장르의 기성 이미지에서 독립한 채로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해나갔고, 그 중 음악과 테마에서 선두에 선 이가 차후 트렌드의 타수가 되었다. 급변기의 최대 피해자는 역설적이게도 이전 쟁탈전의 우승자였던 서부였다. 2000년대 이래로 배출한 랩스타들이 정작 타 지역 출신이었다는 불명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거뜬한 상업성을 과시하던 웨스트코스트는 Kanye West와 Lil Wayne 등이 이끄는 새 트렌드에 천천히 무너져 내려갔다. 폭력 대신 약물이, 갱스터의 삶 대신 향락과 성공이 랩 리릭시즘을 장악한 작금. 그럼에도 갱스터 랩이 호흡기로 연명하는 노인 신세가 되지 않은 이유는, 갱스터 랩의 고장에서 계속 새로운 피가 수혈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초적인 흥취를 추구한 YG부터 갱스터의 삶을 연극의 한 장으로 꾸민 Kendrick Lamar까지, 2010년대 초 신예들의 부상 중 갱스터 랩은 다채로운 재해석을 거치며 장르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중 오늘의 주인공 스쿨보이 큐(ScHoolboy Q)만큼이나 'real'한 이는 존재치 않는다.

사실 큐의 크립스(Crips) 경력을 감안해본다면, 그가 같은 Black Hippy 소속의 Kendrick Lamar나 Ab-Soul 같이 걸출한 작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통 갱스터 랩의 계보를 잇지 못할 이유는 전무하다. 그는 남들이 허풍스럽게 떠들어대곤 했던 갱스터의 삶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경험했던 이이고, 그가 음악에서 실토하는 내용에는 한 치의 거짓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는 비단 장르성을 초월해, 랩에 과도하게 심취한 정통론자들이 요구하는 현실과 페르소나의 합치를 완벽히 이뤄낼 수 있는 유일인이다. 때문에 <Oxymoron>은 필연적으로 큐의 커리어에서 가장 중대한 작품이 될 수밖에 없었다. TDE 소속으로 발매했던 전작들 <Setbacks>와 <Habits & Contradictions>이 '갱스터 랩 적자'로서 스쿨보이 큐의 입지를 다졌다면, <Oxymoron>은 메이저 랩 씬의 명단에 스쿨보이 큐를 올려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일종의 '대작'이 되는 운명인 것이다. 그것이 가장 폭발적인 현대 갱스터 랩 앨범이 되던, 혹은 한 갱스터 래퍼의 부성애 담긴 편지가 되던 간에 말이다.

안타깝게도 <Oxymoron>은 TDE 내 非 Kendrick Lamar 멤버들의 대표작이 그러했듯이 한 시대를 대표하는 명반까지는 되지 못했다. "Los Awesome", "Collard Greens" 등 히트 싱글들의 어색한 배치는 둘째치고, 몇몇 트랙들의 출중한 묘사와 스토리텔링에도 불구하고 <Oxymoron>의 트랙 순서는 상당히 어설프다. 90년대 갱스터 힙합 음악과 클럽튠, 트랩마저 오가는 것이 평소 큐의 음악적 성향이라곤 하지만, 다양성에 대한 조율을 배제한 나열은 그저 음반으로서의 정체성을 저해할 뿐이다. 일례로 큐와 Tyler, Kurupt의 만남이라는 상징성을 지닌 중요한 트랙 "The Purge"는 앨범 전체에서 그 허울만큼이나 흥미롭게 작용하지 못한다. 더불어, 어린 딸의 얼굴을 앨범 커버로 사용했을 만큼 부성애와 드라마를 강조한 제작 의도는 오직 딸의 실제 음성 삽입에서만 발견된다. 따라서 우리는 <Oxymoron>에서 <good kid, m.A.A.d city>와 같은 치밀한 설계를 발견할 수 없다.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와 주동인물의 성장, 하다 못해 결말부의 뻔하디 뻔한 교훈마저도 <Oxymoron>의 원소가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Oxymoron>은 융통성 없이 뻔한 갱스터 힙합 앨범이다.

그러나 과거의 교보재들 이상으로, <Oxymoron>은 그 아쉬움을 상쇄할 만큼 만족스러운 갱스터리즘 엔터테인먼트를 함유하고 있다. Henry Mancini를 감각적으로 차핑한 Sounwave 산의 인트로 "Gangsta"부터 독특한 드럼 브레이크에 기반한 히트 싱글 "Collard Greens" 등의 곡들은 앨범의 강렬한 오프닝을 담당한다. 다분히 장르적인 두 장곡 "Hoover Steeets"와 "Prescription/Oxymoron"는 갱스터리즘의 암담함을 조명하고, 트랩에 기반한 파티송 "Hell Of A Night"는 앨범의 톤앤매너를 유지한 채로 트렌디함이라는 부가적인 성과까지도 성취한다. The Alchemist가 주조한 "Break The Bank"의 가공할 파괴력은 역시나 만족스럽고, Chromatics의 "Cherry"를 샘플링한 엔딩 "Man Of The Year"는 화룡점정으로서 큐가 그동안 추구한 힙합과 사이키델릭의 조화를 완성시킨다. 통제되지 않는 다양성으로 인해 앨범의 구성이 아쉽긴 하나, 갱스터 랩 음반으로서 <Oxymoron>의 수록곡들이 가진 개별적 매력만큼은 부정할 도리가 없다. 그리고, 애초에 부정할 필요조차 없다.

사실 <Oxymoron>만의 고유 특장점을 모두 제쳐두고서, 본작이 가지는 최고의 어드벤티지는 따로 있다. 퍼포머, 아티스트. 스쿨보이 큐 본인. 앞서 언급했듯 스쿨보이 큐가 선배들이나 동시대의 경쟁자들과 비교했을 때 출중한 필력을 지닌 래퍼는 아니나, 단순히 '랩'이라는 창법이 주는 쾌감만을 비교했을 때 큐의 아성을 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 신경질적인 야수는 어떤 타입의 비트에서든 평생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감각적인 플로우를 수놓으며, 이는 특유의 톤이 가진 탄력으로 극대화된다. 생각해보라. Jay Rock, Kendrick Lamar, Tyler, The Creator, Kurupt, Raekwon 등 내로라하는 인사들의 등장에도 앨범의 주도권은 스쿨보이 큐의 손에서 떠난 적이 없다. 그 어떤 지리멸렬한 수식어보다도 더 단순하고 명료하게, 스쿨보이 큐는 그저 랩을 잘한다. 랩에 최적화된 인재의 역량이 실화라는 배경과 절묘히 맞아떨어질 때, <Oxymoron>이 장르 음악으로서 제공하는 쾌감은 막대하다.

예술은 탐구와 사유를 통해 제 가치 이상의 것으로 거듭난다지만, 굳이 복잡한 과정 없이도 충분한 쾌감을 주는 작품들은 현재까지도 쉬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여러 명반들이 배출된 2014년에서 <Oxymoron>은 바로 그러한 위치를 담당한다. 가공할 랩 퍼포먼스, 중독적인 훅, 적나라한 묘사, 폭력적인 언어들과 다채로운 비트들까지 본작은 랩 엔터테인먼트로서 모난 부분이 없다. 혹여 <Oxymoron>이 큐의 최고작은 아닐 지라도, 언급량부터 상업적 성적까지 <Oxymoron>이 현재까지도 그의 명실상부한 대표작임에는 이견이 없어보인다.

7.9/10

최애곡: Break The Bank

​​​​​-Gangsta

-Hell Of A Night

 


 

블로그: https://m.blog.naver.com/oras8384/223385872072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2월 25일 스쿨보이 큐의 정규 3집 Oxymoron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현재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현대 갱스터 랩 수작인 만큼 딱 발매 10주년에 맞춰 리뷰를 기고하고 싶었는데, 내부적으론 <Blue Lips> 발매에 맞춰 같이 수록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졌습니다.

 

본 리뷰가 포함된, 4월에 공개될 w/HOM Vol. 9의 알찬 컨텐츠를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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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
  • 1 3.17 16:13

    젠장, 또 온암이야. 온암은 자대에서도 3000자 분량의 미친 리뷰를 써내고야 말았어.

  • 3.17 16:13

    한 달이나 빨리 w/HOM를 스포해주시는...ㄷㄷ

  • 3.17 16:14

    리뷰글쓰는 온암선생은 언제나 개추야

  • 3.17 17:33

    이게 벌써 10년,,

  • 3.18 10:56

    촤고의 파괴력을 가진 앨범 캬

  • 3.18 17:12

    도대체 글을 어떻게 하면 이렇게 잘 쓰지?그것도 갱스터랩 상대로..

  • 3.18 17:17

    젠장.. 드디어 온암이라니…. 그만 놀고 일하려고 했는데 온암의 글을 봐버렸어.. 난 이제 이 글을 정독해야만 해. 심지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앨범의 리뷰글..? 제기랄 이러면 일따윈 갖다버리고 화장실가서 이걸 읽을 수 밖에 없잖아. 외쳐 대 온 암

  • 3.18 23:06

    저렇게 쓸수있는 필력이 부럽습니다...

  • 3.19 08:54

    천금 같은 리뷰 감사합니다.

    소식도 모르고 신보 뜨자마자 알콜중독자가 소주 뚜껑따듯이

    바로 플레이 눌렀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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