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검색

리뷰

Dälek - From Filthy Tongue of Gods and Griots

title: Daft Punk예리2024.03.02 11:28조회 수 985추천수 17댓글 39

IMG_2182.jpeg

 

Dälek - From Filthy Tongue of Gods and Griots

 

 

익스페리멘탈 힙합에서 빠질 수 없는 평가 요소는 ‘익스페리멘탈’과 ‘힙합’을 동시에 만족하는 균제된 평형 상태다. 간혹 천편일률적인 장치들의 기피가 곧 가산점으로 여겨지곤 하나, 맹목적인 혁신에 과하게 치중되어 있다면 이는 종종 앨범의 완성도를 헤치는 요인이 되곤 한다. <Black Ben Carson>, <Government Plates> 등의 작품이 다소 결여된 완성도에 의해 조금 아쉬운 평가를 받은 것은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된다. 실험성을 추구하는 것이 곧 장르명에서 드러나는 지향점이어도 당연히 음악으로서 좋게 들리기 위한 짜임새를 빼놓을 순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Dälek의 앨범을 감상할 때면 영양 불균형 없이 개성과 품질 모두를 만족하는 훌륭한 아메리칸 브렉퍼스트를 대접받을 수 있다. Oktopus와 Still의 인더스트리얼 사운드들은 시대와 장르는 물론 인도 음악까지 발을 딛으며 국경을 넘나들기도 한다. 이 무자비한 사운드 콜라주는 마치 몇백 개 가량의 원에 둘러싸인 벤 다이어그램처럼 과도하게 혼재되었다고 느낄 수 있으나, 전체 11개의 트랙들은 다양히 분포된 기본 재료의 무작위적 혼합으로 결집되며 서로 공통분모를 공유한다. 때문에 <From Filthy Tongue of Gods and Griots>에선 주로 메탈 혹은 일렉트로닉의 성향이 두드러지는 악기들을 기반으로 하며,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일그러진 조화의 선율을 연주한다. 하지만 이런 광폭한 사운드에 주의를 빼앗기기 전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도맡은 드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 아방가르드한 갈라쇼가 곳곳에 물감을 흩뿌릴 때, 드럼의 존재는 그 바닥에 깔린 도화지처럼 밑바탕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드럼이 얼마나 길길이 날뛰는지 그 정도에 유심히 시선을 두면, 타악기로 구축한 영역의 규모가 곧 트랙의 정체성을 결론지으며 전체적인 긴장감을 조율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드럼 자신이 과시하는 존재감의 정도가 곧 프로덕션에 고삐와 목줄을 채우는 방식이다. “...From Mole Hills”와 “Hold Tight”의 공간감이 가미된 둔탁한 드럼은 힙합의 강세가 도드라지는 초반부 트랙의 성향을 대표하고, 악마의 최후를 위해 만들어진 뒤틀린 장송곡과도 같은 트랙 “Black Smoke Rises”에서는 반대로 11분 길이의 곡 내내 드럼을 완벽히 배제하며 괴기하고도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또한 “Forever Close My Eyes”의 후반부에서 잔향을 남기는 노이즈 섞인 스네어 소리와 “Classical Homicide” 도입부의 폭력적인 기타 리프에 힘을 실어주는 강렬한 킥과 스네어 구성은 마치 Nine Inch Nails와 Slint 등을 연상케 하는 포스트 락 사운드 구현에 크게 일조한다.

 

이러한 폭넓은 사운드 구성 때문에 아카펠라를 분리했을 때는 다소 밋밋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Oktopus의 비트 퍼포먼스 위에 극렬히 대비되는 MC dälek의 음울하고도 가라앉은 톤의 랩 디자인이 더해지기에, 비로소 Dälek만의 불결하고 추잡스러운 아우라가 완성된다.

 

간혹 힙합의 경계에서 튕겨져 나갈 것만 같을 때엔 진중하고 철학적인 가사의 활용이 구심력으로 작용한다. 앨범에서 MC dälek은 상상 이상으로 다양한 주제들을 앨범 안에 녹여냈다. 인종과 민족의 간극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꼬집기도, 종교와 종교의 신도들을 향한 태도를 나열하기도, 힙합 음악에 대한 관철적인 태도를 고수하기도 한다. 주의를 분산시키는 프로덕션이 알몸의 페시미스트에게 얇은 망토를 둘러주고, 우주의 작은 먼지 하나가 고뇌하는 순간들은 한증막 속 그늘 아래에 나지막히 적혀내려 간다.

 

Dälek의 음악은 짙은 무게감이 어깨를 짓누르듯 공기의 흐름을 옥죄기에 익스페리멘탈 힙합의 범주 안에서도 상당히 복잡하고 난해한 편에 속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들을 대체할 수 없는 사악한 분위기의 음악을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차기작인 3집 <Absence>에선 보다 직관적이고 정돈된 모습으로 Dälek을 마주할 수 있지만, 그들의 눅진한 진면모를 품은 <From Filthy Tongue of Gods and Griots>는 앞으로도 꾸준히 Dälek의 대표작으로 남을 것이다.

 

 

IMG_2179.jpeg

신고
댓글 39
  • 3.2 11:54

    Absence는 너무 어려웠었는데 이 앨범은 어떨지 궁금해지네요

  • 2 3.2 11:59
    @midicountry

    Absence가 어려우셨다면 아마 더 어려우실 수도...

  • 3.2 12:37
    @예리
  • 3.2 12:16

    엄마 난 커서 예리가 될래요

  • 3.2 12:26
    @자카

    😘

  • 오... 앨범 아트만 알고 있는 앨범인데 이 글을 보니 흥미가 생기는군요

  • 1 3.2 12:45
    @나머지는나머지

    달렉이 처음이라면 추천합니다!

  • 1 3.2 13:18
    @나머지는나머지

    1집인 Negro Necro Nekros이 더 쉬울 거 같으니 한번 추라이 이것도 맛도리

  • 3.2 14:36
    @kued

    이건 음원 사이트엔 없나요

  • 3.2 14:46
    @루필

    5월 10일에 보너스 트랙 추가해서 나오니까 조금 기다리시는 편이 좋을 듯 합니다 근데 유튜브에 풀 앨범 있기는 하니까 궁금하시면 들어보세요

  • 1 3.2 12:44

    제가 기억하기로 달렉이 마블발의 영향을 엄청 받아서 노이즈 락/슈게이징 성향도 어느정도 많이 섞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사운드도 사운드지만 달렉의 비관적이면서 추상적인 가사도 달렉의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3.2 12:45
    @Body Without Organs

    가사를 단번에 꿰뚫어볼 수 없으니 그게 조금 아쉽긴 합니다...

  • 3.2 12:52

    Absence를 더 좋아하지만 이 앨범도 개 맛있죠 ㄹㅇ

  • 3.2 13:02
    @kued

    둘 다 조아요

  • 3.2 14:11

    잘 읽었어요 한번 들어봐야겠네요

  • 3.2 14:26
    @파란인쇄

    😘

  • 3.2 14:21

    제 앱스트랙 입문 첫 작품...너무 잘 읽었습니다...감사해요!

  • 3.2 14:26
    @앞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3.2 14:29

    많이 어려워 보이네요

  • 3.2 14:30
    @루필

    초반부는 좀 더 직관적인 편이어서 많이 어렵진 않을 겁니다 ㅋㅋㅋㅋㅋㅋ

  • 3.2 14:36
    @예리
  • 3.2 17:27

    들어보러 가야겠군요!

  • 3.2 17:32
    @깐예콜라마

    레츠고~

  • 3.2 17:28

    예리 폼 미쳤다

    오랜만에 들어보러 갑니다 몇년만인가

  • 1 3.2 17:32
    @DannyB

    몇 년은 좀 심한데요 ㅋㅋㅋㅋㅋㅋ

  • 3.2 17:43
    @예리

    들을 음악이 너무 많은걸…

  • 3.2 19:45

    Dälek 앨범들은 다 무서워서 듣다 포기하거나 아니면 한 번만 들었는데, 오늘 한 번 정주행 가야겠네요.

  • 1 3.2 20:47
    @도리개

    레츠고~

  • 3.2 20:41

    들어올땐 드레이크였는데....

  • 3.2 20:43
    @MarshallMathers

  • 3.2 20:47
    @MarshallMathers

  • 3.2 20:43

    서너번 정도 From Filthy랑 Absence를 들어보려고 하다가 귀찮음과 사운드적 피곤함 때문에 망설였는데 예리님 글 본 김에 바로 듣고 있습니다

    제 기억보다 훠어어얼씬 들을 만 하네요ㅋㅋㅋ

    힙합도 그렇고 록이든 아방가르드한 팝이든 뭐든 익스페리멘탈-장르들은 늘 실험과 장르적 짜임새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걸 잘 해서 실험은 실험대로 다양하게 하면서도 장르적으로 완성도 있고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만든 아티스트들이 장르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거겠죠 분명 달렉도 그 중 하나일테고요

  • 3.2 20:47
    @Pushedash

    히히히 계획대로얌

  • 3.2 22:39

    인더스트리얼을 극도로 좋아하는 저는 처음에 듣자마자 뻑가버림

  • 3.2 22:55
    @180MG

  • 3.2 23:23

    좋은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그나저나 리뷰 전용 계정으로 변신하신건가요😏 ㅋㅋ

  • 1 3.3 01:08
    @FrankSea

  • 3.3 11:40

    익스페리멘탈 힙합 듣다가 우연히 알고리즘에 얻어걸려서 듣게 됐는데 진짜 부클릿 안 봤으면 2010년대에 나온 앨범이라 인지했을 것 같은 음반이었습니다 ㅋㅋㅋ

  • 3.3 12:20
    @SZAOcean

    사운드가 촌스럽지 않아요 ㅋㅋㅋㅋ

댓글 달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회원 징계 (2024.08.05) & 이용규칙7 title: [회원구입불가]힙합엘이 2024.08.05
[아이콘] VULTURES 1, VULTURES 2 아이콘 출시34 title: [회원구입불가]힙합엘이 2024.08.03
화제의 글 리뷰 칸예의 역작, Runaway 에 숨겨진 재밌는 아이디어15 ArtiViruz 2024.09.01
화제의 글 일반 칸예의 갤주 자리를 음해하려는 세력이 반란을 모의하고 있네요30 title: YeezusJPEGꓟAFIA 2024.09.01
화제의 글 음악 그동안 모은 앨범들12 파브루어프 4시간 전
176972 일반 요새 현생에 힘든 일 많아서 그런데38 yves 2024.03.02
176971 음악 스캇,칸예는 힙합중에서도 어떤 장르인가요?13 title: 2Pac (2)BKNNETS 2024.03.02
176970 일반 오션 좋아하시면 꼭 들어보십쇼4 김심야최고 2024.03.02
리뷰 Dälek - From Filthy Tongue of Gods and Griots39 title: Daft Punk예리 2024.03.02
176968 음악 BITTSM 처음 들었을때4 title: Dropout Bear외힙린이 2024.03.02
176967 그림/아트웍 외모 커하 갱신한 메간 누님21 midwest 2024.03.02
176966 음악 [BLUE LIPS]에 대한 호불호가 좀 갈리는데10 title: Ty Dolla $ignTrivium Hustler 2024.03.02
176965 음악 That Mexican OT - Twisting Fingers feat. Moneybagg Yo (M/V) title: Ty Dolla $ignTrivium Hustler 2024.03.02
176964 일반 어우 아리아나 그란데 머 나왔나보네요8 title: MF DOOM (2)DigginWa 2024.03.02
176963 일반 Becky G의 생일입니다! 🎉1 생일봇 2024.03.02
176962 음악 힙합 듣던 여중생이 고등학생 된 건에 대하여. (탑스터 포함)20 title: Madvillainykitejay 2024.03.02
176961 리뷰 스쿨보이 큐 앨범 김스모프 2024.03.02
176960 음악 요즘 즐겨 듣는 앨범들 title: Kanye West (Donda)JackKongnamu 2024.03.02
176959 음악 (극히 개인적인) 명반이라고 생각하는 오듣앨 두루미와거북이 2024.03.02
176958 일반 에이셉라키앨범 추천해주세요8 title: GraduationDududu 2024.03.02
176957 음악 스보큐 앨범 너무 좋은데요2 title: Nas (2)패션커쇼 2024.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