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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4.

LucindatomasBBreaux2024.01.31 19:20조회 수 439추천수 8댓글 5

1994 #4.

Scarface - <The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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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부 힙합이 막 골든 에라의 전성기를 활짝 열어젖히고, 서부 힙합이 지펑크 시대의 도래를 선포하고, 중부에서는 얼굴이 벌개진 백인들이 컨트리를 흥얼대며 시가를 태우고 있을 때— 남부힙합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시대를 보내고 있었다. 아직 본격적으로 Outkast가 씬에서 활개치고 다니기 전의 일이다. 남부 씬의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랩스타는 스카페이스(Scarface) 뿐이었다. 휴스턴의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스카페이스는 1집 <Mr. Scarface Is Back>과 2집 <The World Is Yours>를 내며 열광적인 팬층을 얻었고, 평론지의 준수한 호평을 얻어냈으며, 여유롭게 음악 활동을 할 만한 기반을 마련했다. 그리고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The Diary>로 역사에 남을 흥행과 호평을 휩쓴 뒤 Outkast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아마 그 패권 교체가 끝없는 쇠퇴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한 때 마이애미 베이스와 더불어 남부의 자랑거리였던 스카페이스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지금은 어디서 무얼하는지조차 가물거릴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 어쨌건 앨범이야 어디선가 내고 있을 것이다.

 

 스카페이스가 1994년에 발표한 <The Diary>에는 근원적 미스터리가 어려있는데, 그 주된 이유가 이러한 그의 행보로부터 비롯된다. 그는 미국 전역에 힙합이라는 장르가 완전한 주류로 올라서기 직전, 이 앨범에 자신의 혼이 내포한 표현력을 전부 쏟아붓고는 서서히 힙합사의 표층 아래로 사라져버렸다. 자연히 그가 남기고 간 전설적 자양분을 회모하지 않을 수 없다. 스카페이스의 3번째 스튜디오 앨범 <The Diary>는 상업적인 색깔이 아주 옅지만 기록적인 흥행을 했고, 죽음에 관해 논하지만 그 가사가 사람들의 입에서 유희적으로 오르내린— 아주 희한한 물건이다. 이러한 앨범의 특질은 그 현상 자체로 수수께끼 같지만, 스카페이스 본인이 씬의 변경으로 밀려나면서 마침내 하나의 원형적 미스터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상업성에 크게 연연한 적 없던 그였으므로, 아마 다시는 수면 위로 드러난 미스터리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남은 것은 덩그러니 놓인 <The Diary> 하나 뿐이다. 스카페이스는 어둠 속에서 저주받은 황금을 던져놓고는 사라지는 주술사처럼— 살인과 고독의 제언들을 뭉쳐놓고서는 힙합사의 표층 아래로 홀연히 침전한다. 그리고 그가 침전한 자리엔 어떠한 예술적 부활이나 성공과의 해후도 없이, 늘 장대한 파고만이 남았다. 그건 아마 우리가 다소 고루하게 느낄지 몰라도 이 엄숙한 사의식의 일기를 계속 들여다볼 수 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The Diary>의 음악은 스카페이스의 디스코그래피 중에서도 특출나게 높은 흡인력을 자랑한다. 랩 앨범의 인트로보다는 스코어의 오프닝을 연상케 하는 도입부부터, 그는 이 랩 앨범을 그저 '플로우의 전시장'만으로 취급하지 않겠노란 결단을 선포한다. 그리고 그 결과 간단한 프레이즈 하나에도 진중한 음형이 서린, 예리한 작품이 완성되었다. 둔중하고 군데군데 밀도 높으며, '상당 부분' 끊겨있는 스카페이스의 랩은 그루브를 최대한 배제한 채 어마어마한 타격감을 선사시켜내는 장치였다. 자연히 부드러운 플로우 전개를 탈피한 랩 방법론과 뻣뻣한 발성이 빚어내는 <The Diary>만의 무게는, 앨범이 다루는 주제의 통렬함과 아포리아를 정열적으로 표구하게 된다. 사의식과 슬럼가의 삶을 다루는 앨범이 가질 수 있는 태도로써, 스카페이스가 연출한 톤앤매너와 구성이야말로 무던히도 적절한 요소였을 것이다. 통통 튀며 청자의 고막을 휘갈기는 래핑과 둔탁하게 청각을 강타하는 드럼 셋 모두가 '죽음'이란 재제에 무게감을 더하고, 날카롭게 깎인 샘플의 퀄리티가 완성도를 향해 정진한다. 그러한 요소들이 앨범이 가진 무거운 미스터리를, 둔중하게, 폭발시키듯이 힙합사 황금기의 정중앙에 떨어뜨린 게 아니었을까.

 

 앨범의 프로덕션은 상당 부분 영화적이고, 군데군데 남부스럽다. 2010년대 전반에 걸쳐 칸예의 음악을 듣던 많은 리스너들이 이 앨범을 통해 젊은 시절의 마이크 딘(MIKE DEAN)과 재회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이크 딘 이야말로 스카페이스의 무겁고 침통한 분위기를 가장 잘 연출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90년대의 저화질 영상물을 보는 듯한 포근함과 알 수 없는 음산함, 우울감이 산재된 딘의 샘플러에서는 확연한 '스카페이스적' 건조함이 베어나왔다. 청소년기에 무수한 자살시도를 했던, 스카페이스만의 고통스러운 기운과 자조적 사의식이 담긴 앨범의 프로덕션이야말로 <The Diary>의 존재를 귀중하게 만드는 촉매제였을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그런 점 덕분에 <The Diary>의 프로덕션에 입체감이 더해진다. 직접 죽음의 문턱을 여러 번 드나들었던 인물의 사의식 표현은, '음악'이라는 분기점에 도달해 훨씬 장엄해지고 원숙해졌으며, 능수능란해졌다. 때때로 우리가 한 차례 깊은 감정의 상실을 겪었을 때 발휘되는, 역설적 표현력의 정점과도 같은 프로덕션이 앨범이 담길 때 <The Diary>가 비로소 그 '심미성'을 획득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 심미성은 결코 쉽고, 간단한 방식을 통해 얻어낼만 한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음악적 표현력을 초탈해 전반적인 완성도 자체도 탄탄했고, 스카페이스의 래핑도 Getto Boys의 소년미와 1, 2집의 발전기를 거쳐 더욱 우려해졌다. <The Diary>에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길만 한 명벌스' 따위는 없지만 곡 수에 비해 평균점도 높고, 음악적 고점을 찍은 곡들도 많은 까닭이다. 물론 딘의 영화적 표현력도 빌려왔지만, 어디까지나 스카페이스 본인의 근본적인 프로덕션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작품의 표현력과 래핑이 탄탄한 유기성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간혹 궁합이 아주 잘 맞는 래퍼와 프로듀서의 합작에도 필연적 '고유의 결함'이 등장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직접 송라이팅과 프로듀싱, 랩 파트 모두를 담당하는 올라운더 아티스트가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런 올라운더 아티스트의 이름들을 나열할 때 스카페이스의 이름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강렬한 문체를 가진 수수께끼의 사나이처럼, 그는 딱히 언론과 유명세를 배척한 것도 아니었던 2000년대 중후반에 급격히 희미해졌다. 그러니 <The Diary>라도 우리 앞에 남아, 저주받은 황금처럼 반짝이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감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가끔 그 실력과 예술성에 비해 너무 박한 대우와 기억을 받는 아티스트들을 볼 때면 그런 생각이 든다.

 

 앨범의 곡들 중에는 'G's'의 폭풍 같은 래핑도 좋아하고 'Hand of the Dead Body'의 장렬한 연출력도 좋아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혼재된 'The Diary'가 가장 맘에 와닿는다. 그리고 'Mind Playin' Tricks 94'. 그래서인지 이 앨범은 여타 청각적 쾌감에 집중한 랩 앨범과는 달리— 틀어놓고 천천히 음미해야만 그 진가를 깨달을 수 있는 것만 같다. 사의식의 고고하고 침통한 석양이 흐르는 초저녁에, 에스프레소를 음미하며 앨범을 플레이해야만 비로소 본래의 <The Diary>가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트랙들을 다 사랑하지만 'Hand of the Dead Body' – 'Mind Playin' Tricks 94' – 'The Diary'로 이어지는 앨범의 클라이맥스를 사랑하는 이유 또한 그와 관련되어있다. 가볍게 들을 때의 청각적 쾌감만으로도 훌륭하지만, 집중해서 들으면 들을수록 끝도없는 디테일과 음악적 수맥들이 수놓아져있다. 게다가 무엇보다 애상적이다. 이렇게까지 몸에 파고들면 더 이상 무어라 할 말이 없을 정도다. 가끔 세계를 애통해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어째서 스카페이스는 지구 반대편의 청년에게, 경험해본 적도 없는 게토의 사의식으로 눈물을 흘리게 만든 것일까— 가끔 예술이란 것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2024. 01. 31. Wed. Seoul / Lucinda Tomas B. Brea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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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10. 18

43:13

Rap-A-Lot • Noo Trybe

Scarface, Mike Dean, Uncle Eddie, N. O. Joe

 

 스카페이스의 세 번째 정규앨범입니다. 스카페이스는 이 앨범을 분기점으로 커리어의 전성기를 맞고는 급격한 유명세 하락을 겪었습니다. 물론 그 전성기가 이후 그의 행보를 초라해보이게 할 만큼 상업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던 것 또한 맞습니다. 하지만 스카페이스 같은 귀중한 재능의 래퍼가 명반들의 향연 속에 잊히는 것이나, 유명세의 하락으로 인한 낮은 존재감을 가지는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그러니 오늘은 스카페이스의 음악을 들으며 밤을 맞는 건 어떨까요? 조금은 우울해질지언정, 레코드 속의 담긴 그의 예술관과 신념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조금은 건조한 사의식을 읽어낼지라도— 우리는 불쾌감이나 비애감보다는 감탄사를 내뱉을 수 있습니다. 장담하건대 스카페이스의 음악 속엔 그런 힘이 있습니다. 

 

마침.


199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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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2.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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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 1 1.31 20:07

    이건 추천을 참을 수 읍따. 아웃캐스트도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 저에게 귀중한 남부 앨범들 중 하나네요. 양질의 리뷰는 언제나 땡큐입니다 냠냠.

  • 1 1.31 20:40
    @예리

    감사합니다! 아웃캐스트 이전의 맹주는 사실 상 스카페이스였죠ㅋㅋ 말씀대로 정말 귀중한 남부 앨범이었습니다!

  • 1 1.31 20:25

    최근에 스카페이스의 Tiny Desk 세트를 보고 미뤘던 The Diary를 한번 싹 돌렸습니다. 개인적으로 Ready To Die보다 좋게 들었을 정도로 꽤나 인지도 아쉬운 명작이라 들었는데 때마침 이런 좋은 리뷰 좋네요!

     

    The Diary 들으시고 좋으셨던 분들은 스카페이스의 솔로 전 팀이였던 Geto Boys도 들으시길 추천드립니다! We Can't Be Stopped도 진짜 엄청난 명반!

  • 1.31 20:41
    @에이셉과라마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좋은 작품이 동년의 명반들에 빛을 못 보는 게 참 아쉬워요ㅠㅠ

  • 2.1 14:19

    스카페이스를 소개하는 리뷰라니 너무 행복하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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