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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마지막 리뷰, Mick Jenkins - The Patience

title: Frank Ocean (2024)NikesFM2023.12.30 16:13조회 수 655추천수 11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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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k Jenkins - The Patience

 

빈스 스테이플스의 Big Fish Theory와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Flower Boy, 그리고 플레이보이 카티의 Whole Lotta Red까지. 변곡점에 선 래퍼들이 한 걸음을 내딛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 보면, 나는 변화 그 자체에 헤아릴 수 없는 힘이 서려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계획적이든 아니든 일단 시선을 돌려보면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누군가 기존과는 다른 작업 방식이나 그런 유형의 작업물을 가져올 때면, 기존에 그가 나의 관심을 얼마나 가져갔던지는 상관 없이 그의 위치로 여러 발자국을 옮기곤 했다. 그리고 이런 작품을 듣는 순간은 급하강하기 직전의 롤러코스터로 느닷없이 순간이동한 듯 갑작스럽고 급격하다. 카티가 본인의 은밀한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노출하는 것을 즐기는 도착증 환자가 아니었기에 우리 모두는 2020년의 크리스마스 날 본의 아니게 무중력 상태의 하강감을 느꼈을 것 같다. 그래서 시카고 출신의 래퍼 믹 젠킨스의 The Patience는 더 유별나면서도 특별한 점이 있다. 본작 The Patience는 특이한 도착증도 없으며 어쩌면 보수적일 수도 있는 아티스트의 앨범이 무중력의 하강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급하강 이전의 서스펜스까지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덜 충격적일 수 있지만, 더 뛰어난 완결성을 지닌 것 같다.

 

시카고 래퍼들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은 시작점부터 노련한 중년의 예술가처럼 원숙하면서도 진중한 태도를 견지한다는데에 있다. 그들은 진보적인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문제점을 직접적으로 조명하며, 그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개인적 철학의 토대를 마련한다. 이는 믹 젠킨스 또한 마찬가지다. 믹은 두 장의 믹스테이프 앨범 The Waters와 Waves에서 자신의 세계관과 청자를 ‘물’이라는 가교를 통해 연결시키며 진부함이 아닌 진중함을 키워드로 내세웠고, 첫 정규 앨범 The Healing Component에선 사랑과 치유에 대해, Pieces of a Man은 소울 뮤지션이면서 흑인 운동가였던 길 스콧 헤론의 잔영에서 흑인 사회 전체를 다루기에 이른다. 그러나, 힙합에서의 철학은(적어도 나에게는) 언제나 목적보다 수단일 때 빛났다. 이것은 메시지와 사운드의 저울질과 동일한 모양새로, 특히나 현시대의 음악 경향으로 미루어 볼 때 이러한 특징이 더 두드러진다. 표현이 조금은 어색할 수 있지만, 나는 가사에 담긴 철학의 깊이보다 자연스레 자신의 철학을 소금처럼 뿌려두는 재치와 센스에 반한다. 때문에 믹의 음악에서, 리릭시즘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그의 인터뷰와는 정반대로, 청자를 가장 먼저 마중하는 건 프로덕션과 래핑이었다.

 

“저는 너무 콘셉츄얼한 앨범을 만드는데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어요.” 세 번째 정규 앨범 Elephant in the Room을 제작한 뒤 이러한 생각과 함께 소속된 레이블 시네마틱 레코드와의 작별에 마음을 굳혔다던 그의 인터뷰로 미루어 보건대, 믹 또한 기존의 방향성에 어느 정도 지쳤던 것 같다. 본작 The Patience는 회사의 부실한 지원, 이제까지의 “컨셉질”, 언더그라운드에 대한 힙합신의 아쉬운 대우, 진부하고 모순적인 래퍼들까지, 믹의 아슬아슬했던 인내심이 시네마틱 레코드와의 관계를 청산하는 순간 폭발하는 광경을 조명한다. 불만 토로의 장이 신선한 주제가 될 수는 없지만, 그의 디스코그래피와 아티스트로서의 내력이 그 자체로 서사를 부여하며 클리셰 딱지를 떼어버리는 모습에 그 누구라도 큰 불만을 가지지는 못할 것이다. 작품의 면면은 더욱 흥미롭다. 기존과는 다르게 간결한 러닝타임을 가져갔음에도 더 몰입적인 감상을 위해 대부분의 곡을 시각화했다는 점은 한 곡 한 곡에 더 집중한 ‘압축’에 가까워 보인다. 또 지금껏 부드러우면서도 때론 바이브 중심의 통통 튀는 일렉트로닉한 사운드와 재지한 터치로 일관했던 믹의 프로덕션은 사운드적인 결함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 그가 기존의 스타일에 거친 가죽 재킷을 걸쳐 입고 나왔는데, 지금 당장은 이것이 앞서 언급했던 무한한 가능성 중 단연코 최고로 보인다.

 

이제는 황금기의 분석가들처럼 라임을 자르고 펀치라인의 희열을 느끼는 등의 방식은 다소 거창하게 다가온다. 애초에 현 시대를 풍미하는 수많은 래퍼들은 그러한 과정을 통해 본인의 민낯이 낱낱이 파헤쳐 지는 것을 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유연함과 파괴력의 매끄러운 전환, 그리고 플로우와 톤이 구성하는 랩의 실루엣으로 뭉뚱그려 래퍼의 진면목을 판가름한다. 그래서 나는 믹 젠킨스만큼 랩을 잘하는 래퍼를 그렇게 보지 못했다. 인터뷰에서 내비친 랩에 대한 자신감이 허언이 아니듯, 믹은 인트로부터 아웃트로까지 단 한 차례도 랩에 대한 서스펜스를 놓지 않는다. 그 때문일까, 이전 작품들에서 스스로 바이브를 만들어냈던 비트의 특징들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서고, 단조로우면서도 감각적인 비트가 오롯이 래퍼를 위한 최적의 무대를 세워준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미 랩에 대한 감각이 절정에 달한 그임에도 증명하고픈 강한 욕망이 참여진의 이름에서 드러난다는 점이다. 예컨대 음산한 붐뱁 비트 위에서 프레디 깁스와 합을 맞추는 "Show & Tell"이나 곧장 그리젤다가 떠오르는 타입 비트에서 베니 더 부처에게 두 번째 벌스를 양보하는 "Sitting Ducks", 혹은 재즈 피아노 루프 위에서 JID의 유연한 플로우에 본인의 랩을 거리낌 없이 병치시키는 "Smoke Break-Dance"의 자신감이 그렇다. 믹 만큼 랩을 잘하는 래퍼를 흔하게 볼 수 없는 건 사실이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래퍼들과 손쉽게 만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믹의 음악을 듣는 것이다. 

 

지드와 함께한 "Smoke Break-Dance"에서 믹의 가사는 언뜻 보면 메트로 타입의 트랩 비트 위에나 얹어질 법한 진부한 마리화나 찬가처럼 들리지만, 흑인 사회의 이런 저런 이슈를 상징하는 불 타는 마을 속에서 시종일관 여유로운 모습으로 떨을 피우는 믹의 모습을 연출시키며 한 차례 전달력을 끌어올린다. 그런가 하면 "Show & Tell"은 겉보기에 허공을 향한 목적 없는 총질처럼 들리지만 총구는 마치 정치인처럼 말 뿐인 래퍼들을 향해있고, "Guapanese"에선 허례허식의 풍조와 물질만능주의자들로 점철된 씬을 정조준한다. 인내심이라는 키워드는 앨범의 구성적인 측면에서도 효과적으로 함축되어 있는데, 앨범의 오프너 "Michelin Star"부터 "ROY G. BIV"까지 적당히 제어되듯 느껴지던 톤이 후반부의 "Pasta"에 와서는 고함에 가까운 격앙된 어조로 소리치며 직설을 퍼붓기에 이른다. 또 앨범의 클로징에서는 이내 초연해진 듯 차분한 톤으로 과거를 덤덤히 회상하며 인내심이라는 키워드를 입체화시키고 작품의 완결성을 획득했다. ‘힙합은/래퍼는 이래야 한다’라는 고정관념만큼 예술가에게 치명적인 출혈이 없지만, ‘힙합다운 게 과연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여전히 흥미로운 주제 거리로 팬들의 입을 오르내린다. 나는 이에 대해 어떤 명료한 답도 내릴 수 없지만, 왠지 믹에게는 The Patience와 2023년이 가장 힙합 다운 앨범이자 힙합 다운 순간인 것 같다.

 


 

다행히 연말에는 음악 듣고 글 쓸 시간이 좀 나서 2023년의 마지막으로 어떤 앨범을 선택할까 고민하다  The Patience를 고르게 되었네요. 올해 괜찮은 힙합 앨범이 꽤 발매된 것 같은데, 다른 건 모르겠지만 과도기를 헤쳐나가는데에 힙합이 보여주는 방향성 만큼은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지금 당장에 만족할 수 있는 앨범이 많지는 않지만 이후를 기대하게 만드는 앨범이 많았던 것 같아요. 작은 바램이 있다면 2024년에는 좀 더 많이 듣고 쓰고 읽고 싶어요. 물론 그만큼 앨범이 발매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https://blog.naver.com/nikesfm/223307498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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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1
  • 1 12.30 16:17

    선 추천 후 감상

  • 12.30 16:18

  • title: Frank Ocean (2024)NikesFM글쓴이
    1 12.30 19:58
    @나머지는나머지

    감사합니다!

  • 1 12.30 16:28

    좋은 앨범 알아갑니다

  • title: Frank Ocean (2024)NikesFM글쓴이
    1 12.30 19:15
    @midicountry

    감사합니다!

  • 1 12.30 16:42

    이 앨범 너무 좋게 들었어요

    여담으로 프레디 깁스의 피처링은 몹시 아쉬웠다는..ㅋㅋ

  • title: Frank Ocean (2024)NikesFM글쓴이
    12.30 19:15
    @자카

    전 이번 피처링중에서는 JID가 제일 나았던 것 같아요. 실제로 지드 랩 스타일을 제일 좋아하기도 하고.

  • 12.30 19:16
    @NikesFM

    저도 지드가 젤 좋았습니다ㅋㅋ

  • 12.30 20:09

    최근에 알았는데 믹 젠킨스도 꽤 경력이 긴 아티스트더라고요

  • 12.30 20:58

    너무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너무나 매력적으로 리뷰해주셔서 꼭 들어봐야겠어요.

  • 12.30 23:13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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