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트 코스트를 상징하는
인물(Biggie)이 친히 이름을 호명해주는 남자, 칸예 웨스트와 저스트 블레이즈의 오늘날을 있게 한 남자, 비욘세의 남자.
90년대 중반 뉴욕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자신의 랩 커리어를 시작한 숀 코리 카터는 이미 자신의 오래된 친구처럼 뉴욕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지만, 그를 위한 수식들은 왠지 모르게 종속적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방식으로 제이지라는 인물 그 자체를 온전히
표현할 수 있을까. 뉴욕의 왕? (너무 상투적이다), 라카펠라의 수장? (라카펠라에 이제 누가 있는데?), 엘리베이터 폭행 피해자? (오!). 어린 시절 제이콜의 방은 마이클 조던, 코비 브라이언트, 앨런 아이버슨 같은 NBA 스타들의 브로마이드로 가득했고, 브로마이드의 반대편은 나스의 데뷔 앨범인 illmatic의 가사들로 채워져 있었다. 제이콜은 이를 자그마치 성서Bible에 비유했다. 디트로이트 래퍼이자, 슬럼 빌리지의 멤버이기도 했던 엘자이는 illmatic에 너무 큰 감명을 받은 나머지 앨범의 표기를 살짝 바꿔 Elmatic이라는 앨범을 발표했다. 한 인터뷰에서 엘자이는
자신이 illmatic의 가사를 너무 숙독한 터라 이제는 가사집을 보지 않고 앨범 전체를 따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고 술회했다.
어째서 제이지는 이 두 래퍼들의 히어로가 되지 못했을까. 제이지의 13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4:44>는 어쩌면 이
도전적인 두 질문에 대한 제이지 식의 대답일는지도 모른다.
MF DOOM과 Madlib의 <Madvillainy>부터 커먼과 No I.D.의 <The
Dreamer/The Believer>와 최근의 Run The Jewels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1MC와 1PD의 조합은
힙합 장르에서 낯선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음반에 담긴 음악적 품질과 깊이감의 본바탕이 되기도 한다. 과거
Success, D.O.A., Run This Town 같은 하모니에서 기대할 수 있듯이 이들의 만남은 진즉에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과거 제이지는 전성기의 퍼렐 윌리엄스를 만나 감각적인 키보드 루프를 선물 받았고, 십수 년 전 저스트 블레이즈가 만든 곡들은 여전히 그의 대표곡이다. 칸예 웨스트와 제이지는 서로의 성공에 대한 근거가 되었으며 더할 나위 없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다만, 노아이디의 방식은 이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가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제이지는 자신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음악적 무대를 원했고, 노아이디
또한 자신의 경력 중 가장 취약한 입장에서 노래할 남자를 위해 설자리를 마련해주었다. 30여 분간 이어지는 음악적 무대, 이
무대의 기반이 되는 10곡의 비트와 10개의 샘플들 간의 상관성은 놀라우리만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Kill Jay
Z에서 사용된 The Alan Parsons Project의 Don't Let It Show는 '사는 일이 힘들지라도 드러내지
말고, 다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할 수 없더래도 그냥 내버려 둬라'라는 조언을 건네는 곡이다. 앨범에서 가장 인상적인 가사가 담긴
Smile에서는 끝없이 사랑을 설파하는 Stevie Wonder의 Love's in Need of Love Today가
사용되었고, 이는 자신의 어머니인 글로리아 카터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며 그녀의 내레이션을 덧입힌 시도와 맞물려 묘한 뉘앙스를
형성한다. 심지어 상대방을 실망시킨 자신을 책망하고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는 Hannah Williams의 Late Nights
and Heartbreaks가 사용된 4:44에서는 직접적으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잘못을 뉘우친다.
이 앨범에서 제이지가 취하는 기본적인 화법은 자신을 서로 다른 자아를 가진 둘로 나누는 것이다. 죄를 짓고 상처 주는 제이지,
뉘우치며 사죄하는 제이지. 큰 틀에서의 인식은 이렇다. 당장에 인트로인 Kill Jay Z에서만 보더라도, 제이지가 죽여라,
죽어라, 욕먹어라라고 하면서 조소 섞인 조롱을 보내는 상대방은 바로 제이지 그 자신이다. 그의 의도대로라면 노래 속에 등장하는
과거의 악행들, 헝클어진 이해관계, 금이 간 가정사 또한 자신이 아닌 또 다른 자신이 빌미인 셈이다. 어떤 것도 완벽하지 않은
세상에서 우리가 은연중 완벽하다고 굳게 믿고 있는 '셀레브리티로서의 삶'은 낙하하는 유리잔처럼 더 이상 미래를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에미넴은 자신의 친모에게 고소당할 만큼의 적나라한 가사들로 자신의 불우했던 인생사를 드러냈고, 나스가 말했듯이 셀렙들의
성적 외도는 더 이상 저녁 식탁의 가십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하지만 작년 비욘세와 한 잔의 레모네이드가 증명했듯이 예외 역시
존재하는 법이다. 제이지가 엘리베이터에서 자신의 처제에게 폭행을 당하고, 부인은 자신의 외도를 폭로하는 듯한 앨범을 발매하는 동안
제이지는 부정不貞의 대명사이자 경멸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제이지가 외도를 했다는 소문의 눈덩이는 어느새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의
눈사태가 되어 버렸고, 유례없는 피해자로서의 폭로 속에 우리 시대 최고의 셀레브리티 커플을 둘러싼 진실은 온갖 무성한 소문
속으로 그 자취를 감춰버렸다. 진실은 더 이상 우리가 취사선택할 수 있는 항목이 아니듯이, 힙합 아티스트와 비즈니스맨으로서의
성취(Blueprint)와 과시욕(MCHG) 또한 더 이상 제이지의 선택사항이 아닌 것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4:44는
Lemonade로부터 이어진 카터 집안 가정사의 외전이 되었으며, 외도를 저지른 가해자로서의 진솔한 응답이 되었다.
결국, 이 앨범의 지향점은 한 계단 위의 성숙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he Story of O.J.에서 흑인으로서 재산 축적의 중요성과 자신이 축적한 재산의 크기로 남의 부를 비웃는 방식은 제이지의 단골 클리셰이다. 4:44에서의 비욘세를 향한 고백에서조차 실수를 저지른 흔한 남성들의 후회하는 모습이 쉽게 오버랩된다. 앨범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다 늙은 47살의 남자가 도대체 뭘 후회하고 어떻게 성장한다는 거야'라며 회의적인 시선을 보낼 수 있다. 누군가의 지적처럼 단지 30여 분에 달하는 간결함으로는 그의 모든 잘못을 회개할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4:44라는 앨범은 우리 같은 음악팬들을 위한 콘텐츠가 아니라 막대한 자본을 보유한 음악인 부부의 그럴듯한 기획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작 <Magna Carta Holy Grail>에서 드러난 제이지의 과시욕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단지 취미로 피카소와 반 고흐의 그림을 사고 집에 가면 지구상 가장 섹시한 여성이 자신을 기다린다는 묘사를, 제이지 이외에 그 누가 이처럼 멋스럽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반면에 4:44에 담긴 이야기들에서는 (그동안 제이지의 모습과 상충하여)다소의 어색함이 느껴진다. 가족 내 갈등을 다룬 토크쇼의 제목을 딴 Family Feud는 언뜻 가족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는 곡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구세대와 신세대 간의 단절에 대한 우려가 담긴 흑인 공동체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같은 맥락에서 Marcy Me는 자신의 삶과 영감의 원천이 된 곳에 대한 향수를 담은 곡처럼 느껴진다. 처연한 도니 헤더웨이의 목소리가 담긴 Legacy를 듣고 나면, 왠지 모르게 켄드릭 라마와 제이콜 같은 젊디젊은 컨셔스 래퍼들이 연상된다. 대체 어떤 표현으로 제이지를 수식할 수 있느냐고? 왜 제이지가 아닌 나스가 그들의 히어로가 되었느냐고? 젊은이들의 게임이 되어 버린 현대 힙합 신의 늙은이들 중에서 유일하게 제이지만이 젊은이들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 질문에 대한 답이 있다면 아마도 대답은 제이지가 서있는 그 지점에 존재할 것이다. 아버지로서의 가장 큰일은 자신의 자식에게 무언가를 심어주는 일이다. 부성父性은 마침내 이 남자를 변모시켰고, 그의 세상의 일부분(불순하고 추악할지라도)을 자신의 딸과 우리에게 공유했다. 이 앨범은, 제이지의 성대했던 여정의 피날레인가, 아니면 또 다른 챕터의 프롤로그인가. 가만히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본 적 없는 사람에게는 끝내 움켜쥐지 못할 대답일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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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지도 대단하지만 노아이디는 더 대단합니다. 저는 현시대 프로듀서들 중 가장 위대한 프로듀서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노아이디라고 대답할 겁니다. 노아이디는 커먼이나 나스같은 올드 래퍼들과 만났을 때 특히 그 합이 좋은데, 제이지도 예외는 아닌 거 같습니다. 나스의 Life is Good이 나스 버전의 Late Registration이었다면 4:44는 제이지 버전의 Late Registration이랄까요.
이 앨범이 이견 없는 걸작이랄 수는 없겠지만,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걸작에 가까운 앨범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요. 제가 그렇게 느끼는 사람 중 한 명 이기도 하구요. 리뷰 내용에 적으려다 지엽적이라 빼버렸는데, 이 앨범은 11년도 커먼과 노아이디가 선보인 TDTB 앨범처럼 누군가에게(특히 올드맨들에게) 앞길을 제시해주는 앨범이 될지도 모릅니다. 물론 허무맹랑한 예측일 수도 있구요ㅋㅋ
Smile 넘모넘모 좋은 것!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스웩~
미플에 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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