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oyal Trux - Twin Infinitives
조잡하게 못 만든 음악과, 의도적인 해체를 통해 음악적 문법을 재구성한 음악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단순히 창작자의 '의도'만으로 이를 구분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아무리 창작자가 거창한 해체를 의도했다 한들, 그 의도가 작품 안에서 충분히 구현되지 못하거나 청자에게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국 실패하고 파괴된 소리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청자의 주관적 평가 역시 온전히 맹신할 수는 없다. 적어도 이 음반을 다회 청취한 나의 기준에서 《Twin Infinitives》는 썩어버린 록 음악의 탈을 쓴 채 치밀한 아이디어와 해체주의로 무장한 작품이다. 겉으로 드러난 소음과 조잡함만을 바라보며 "이것은 그저 파괴된 음악이다"라고 단정하는 것은 이 작품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완전히 놓치는 일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 안에서 아무리 의도적인 해체를 발견할 수 있다 하더라도 많은 청자에게 이 음반은 약에 취한 듯 록의 형태마저 잃어버린 찌꺼기처럼 들릴 것이다. 음악에서 절대적인 객관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여러 청취자의 판단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공통분모를 일종의 객관성이라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가혹하고 난해하며 직관적인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작품에 대한 주류의 평가는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이 발생한다. 작품의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 이들의 평가가 과연 그 작품을 대변할 수 있는가?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피카소나 칸딘스키의 작품을 접한다면 그것을 어린아이의 낙서라고 믿을 사람은 수두룩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첫인상이 그 작품의 예술적 성취를 충분히 설명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예술 작품의 완성도와 가치를 결정짓는 진짜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작품이 만들어진 역사적 맥락과 장르의 문법을 이해해야만 비로소 그 작품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다면, 그 작품은 보편적 설득에 실패한 것인가? 아니면 예술 작품을 판단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학습과 맥락적 이해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것인가? 더 근본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과 실패한 것은 정말 같은 것인가? 《Twin Infinitives》는 바로 이 질문을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음반이다. 그것은 록의 문법을 단순히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복해서 들을수록 그 무질서가 단순한 무능력의 결과인지, 아니면 기존의 문법을 의도적으로 훼손하고 그 잔해 위에서 새로운 음악적 질서를 만들어내려는 시도인지에 대한 판단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 음반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이라는 익숙한 구분에서 한 걸음 물러날 필요가 있다. 《Twin Infinitives》가 정말로 가치 있는 작품이라면, 그 가치는 얼마나 깔끔하게 만들어졌는가에 있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파괴했으며, 그 파괴를 통해 무엇을 새롭게 가능하게 만들었는가이다.
《Twin Infinitives》는 왜 실패작처럼 들리는가? 우선 첫 번째 문제는 청자가 음악의 구조를 발견하기 전에 물리적인 소리의 거부감을 먼저 경험한다는 것이다. 보통의 록 음악은 청자에게 최소한의 길잡이를 제공한다. 로큰롤 정신에서조차 드럼이 박자를 제시하고 베이스가 중심을 잡고 기타가 리프나 화성을 제시하며 곡의 전개가 긴장과 해소를 조직해 "음악"다움을 보여준다. 허나 《Twin Infinitives》는 이 위계를 반복적으로 무너뜨린다. 기타는 리프인지 노이즈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으며, 믹싱은 악기가 구분조차 안 될 정도로 자기주장이 강하고 이펙터 때문에 소리는 전부 찢어지며 조금의 리듬조차 유지되지 않는다. 또한 곡들의 기승전결을 찾기 힘들고 연주 자체부터 보컬까지 모든 요소가 "서툴러" 보인다. 또한 대부분의 난해한 음악들과 다르게 보상이 없다. 예를 들어 프리 재즈(Free Jazz)라면 폭발적인 상호작용이 있고, 매스 록(Math Rock)이라면 복잡한 리듬이 풀리는 순간이 있고,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이라면 거대한 구조가 마지막에 회수되고, 슈게이징(Shoegaze)이라면 소리의 벽 자체가 황홀한 감각을 만들지만, 이 음반에서 그나마 느낄 수 있는 감각은 노이즈 음악의 극단적인 음향적 쾌감뿐이다. 따라서 논의는 "이 음악적 난해함에서 얻는 보상은 마구잡이로 연주된 다른 소음에서도 얻을 수 있다"로 전개된다. 정리하자면 음악에 중심이 없으니 무엇을 들어야 할지 모르겠고, 구조가 보이지 않으며, 연주는 서툴게 들리고, 소리도 지나치게 많으며 곡의 목적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청자는 자신이 음악을 듣고 있는지, 단순한 소음에 노출되어 있는지 의심한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모든 현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수의 청자가 이 음악을 향해 "이건 엉망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실제 청각적 근거가 존재하는 셈이다. 이 음악은 모두를 위한 작품도 아닐뿐더러, 싫어할 근거 역시 충분함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왜 실패로 환원되지 않을까? 우선 Royal Trux는 “록을 모른 채 파괴한다”가 아니라 “록의 역사를 충분히 알고 그 문법을 해체한다”는 관점을 견지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음악은 록 작곡의 문법을 극한까지 밀어붙여, 여전히 로큰롤의 요소를 지니면서도 그것을 로큰롤이라고 알아보기 어렵게 만든다. Neil Hagerty는 이미 블루스와 록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를 경험했고 Jennifer Herrema와 함께한 Royal Trux는 Rolling Stones, Captain Beefheart 등의 유산을 지속적으로 변형해 왔다. 《Twin Infinitives》 역시 갑자기 무에서 등장한 소리가 아니다. Captain Beefheart의 《Trout Mask Replica》, Faust의 콜라주적 음악 세계관, Pere Ubu의 산업화된 도시 소음과 불안에 대한 전위적 해석, No Wave의 반음악적 태도 등 1970~80년대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축적해 온 여러 방법론의 연장선 위에 있다. 첫 트랙 "Solid Gold Tooth"에서는 블루스의 형태 위에 서로 다른 보컬, 신음, 이상한 음향들을 합쳐 블루스의 틀은 남겨두되 내부 위계는 완전히 무너뜨리며 블루스가 노이즈로 변화하는 과정을 들려주었다. "Jet Pet"에선 Herrema의 반항적이고 최면적인 보컬에 거대한 디스토션과 전자음, 찢어지는 기타 노이즈를 통해 기괴하면서도 묘한 펑키(Funky) 리듬을 만들며 일종의 그루브를 형성하고 무너뜨린다. "RTX-USA"에서는 혼란스러운 소음 사이 기괴한 플루트 소리가 돋보인다. 파괴된 악기들의 향연을 비집고 들어오는 플루트의 불협화음은 파격적이고 원시적이다. 가장 중요한 곡은 단연코 "(Edge of The) Ape Oven"이다. 이 곡은 일반적인 록 음악의 기승전결을 완벽히 거부한다. 마치 수천 개의 파편화된 소리 조각을 기괴하게 이어 붙인 원시적인 사운드 콜라주에 가깝게 느껴진다. 전자 키보드로 연주한 듯한 저렴한 비트와 피아노 인트로로 시작해, 점차 왜곡된 기계음, 정박을 벗어난 드럼 프로그래밍, 웅얼거리는 듯한 보컬이 무질서하게 뒤엉킨다. 소음의 이면에는 가장 음악적일지 모르는 위협적인 리프가 존재하지만, 그 리프 위에 자유로운 불협화음과 불안정한 퍼커션이 계속 겹치고 노이즈 장벽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는 형태를 띤다. 이와 같이 "(Edge of The) Ape Oven"에는 질서와 혼돈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 작품을 대표하는 또 다른 핵심 트랙 "Funky Son"에선 아주 단순하고 원시적인 루프 리듬 아래 기타 소음과 무작위적이고 비음악적인 전자 오디오 찌꺼기들이 뒤엉키며 철저하게 미니멀하면서도 혼란스러운 사운드를 형성한다. "Funky Son"은 그들이 아프리카계 미국인 음악의 유산을 어떻게 자신들만의 쓰레기통에 갈아버리고 재조립했는지를 파괴적으로 증명해 낸다.
여기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갈 수 있다. 조잡하게 못 만든 음악과 의도적인 해체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Twin Infinitives》가 제시하는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의도만으로는 부족하다. 결과물 안에서 해체의 흔적과 새로운 관계가 실제로 발견되어야 한다. 단순히 음정을 틀렸다고 해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리듬을 망쳤다고 해서 그것이 실험이 되는 것도 아니며, 녹음을 더럽혔다고 해서 그것이 미학이 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파괴가 음악적 문법과 관계를 맺고 있는가이다. 무질서 내부에서 작동하는 구조적 통제력과 장르 문법에 대한 자의식은 조잡한 소음과 구분되는 결정적 증거가 된다. 그리고 《Twin Infinitives》에서는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 블루스의 흔적과 록의 리프, 그루브, 보컬의 형태가 존재하지만 그것들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려는 순간마다 다른 소리들이 개입하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며 구조를 무너뜨린다. 따라서 이 음반의 무질서는 질서의 부재가 아니라 질서에 대한 지속적인 공격이다. 이것이 《Twin Infinitives》를 단순한 실패작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아무런 맥락 없이 만들어진 단순한 소음은 파괴 이후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지만, 《Twin Infinitives》의 파괴는 록 음악이 지난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전통적 규범’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 음반의 조잡함이 결함처럼 들린다. 그러나 반복해서 들으면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처음에는 아무렇게나 배치된 것처럼 보였던 소리들이 특정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에는 실수처럼 들렸던 불협화음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아무 의미 없어 보였던 노이즈 뒤에서 리듬이나 리프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청자의 질문도 "왜 이렇게 못 만들었나?"에서 “왜 굳이 이렇게 만들었나?”가 되고, 최종적으로는 “이렇게 만들지 않았다면 무엇을 할 수 없었을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동한다.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Twin Infinitives》의 가치가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이 음반은 아름답기 때문에 위대한 것도 아니며, 정교하게 들리기에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정상적인 음악적 기준으로 보았을 때 수많은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결함 자체가 록 음악의 가능성을 다시 질문하게 만든다. 피카소의 입체주의가 대상을 해체함으로써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듯, Royal Trux는 록 음악의 사운드 믹싱, 악기 간의 위계, 리듬의 정박을 산산조각 냄으로써 "록은 어디까지 파괴되어도 여전히 록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결국, 《Twin Infinitives》가 쟁취한 예술적 성취는 보편적 설득의 성공이 아닌, 질문의 영속성에 있다. 이 음반은 청자에게 친절한 해답을 제시하거나 완성된 감상을 구걸하지 않는다. 대신, 전통적인 록 음악의 사체가 뿜어내는 가스 속에서 청자 스스로가 자신의 청각적 관습과 예술적 편견을 의심하게 만든다.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는 단순한 노이즈의 쓰레기통으로 보일 수 있다는 한계는, 역설적으로 이 음반이 록이라는 장르의 역사와 얼마나 밀접하게 얽혀 있는지를 증명하는 반증이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유녀들》이 당시의 평단에 야만적인 모욕으로 받아들여졌듯, 진정한 해체는 기존의 평가 체계 자체를 무력화하는 폭력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Twin Infinitives》를 둘러싼 주류의 비판이나 거부감은 작품의 실패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거부감이야말로 이 음반이 선사하는 가장 강력한 정서적 반응이자, 록의 관습이 청자의 무의식 속에 얼마나 깊게 뿌리내리고 있었는지를 드러내는 통증이다. 이해되지 않는 것과 실패한 것은 결코 같지 않다. 실패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무능력의 결과이지만, 이 음반의 난해함은 록의 완결성을 파괴하겠다는 목표에 완벽히 도달한 능동적 균열의 결과다.
결국 이 작품을 가치 있게 만드는 '진짜 기준'은 보편적인 우아함이나 깔끔한 만듦새가 아니다. 그것은 기존의 질서를 정교하게 무너뜨림으로써 "이것 역시 음악인가?"라는 질문을 청자의 턱밑까지 밀어붙이는 전위의 힘에 있다. Royal Trux는 록의 잔해 위에서 아름다운 신전을 새로 짓는 대신, 파괴된 콘크리트 덩어리들을 청자에게 내던졌다. 그리고 그 파편을 맞닥뜨린 청자가 소음 속에서 숨겨진 질서를 발견하고 자신의 감상적 기준을 재구성하는 순간, 《Twin Infinitives》의 해체는 비로소 완성된다.




듣고 있으면 시간 훅 지나가는 앨범이죠
이런 거 좋아할 만한 rym에서 생각보다 점수가 안 높은 걸 보면
제 예상보다 사람들의 '도저히 못 들어주겠다'는 허들이 높나 보네요
어우 제목부터…
ㅋㅋㅋㅋㅋㅋ
좋은 음악이 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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