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Ly33PihkXwE
콰데카(Quadeca)가 음악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어내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KSI와의 디스전을 시작으로 '유튜브 래퍼'라는 타이틀과 함께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이제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확장해 내려는 진정한 아티스트로 발돋움한지 오래이다. 이후 그는 <I Didn't Mean to Haunt You>와 <SCRAPYARD>의 두 작품을 통해 아트 팝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들에서 높은 이해도를 보여주며 본인만의 음악적 색을 어느 정도 구축해 낸 것으로 보였다. 디스토션과 리버브가 잔뜩 먹힌 보컬과 랩, 층층이 쌓이는 사운드 레이어와 취약해 보이는 감정적 표현. 콰데카는 단 5년 만에 보잘것없는 유튜버 래퍼에서 인터넷 리스너들의 지지를 한몸에 받는 대형 언더그라운드 스타가 된 것이었다.
다시, 콰데카가 과연 음악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어내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Vanisher, Horizon Scraper>는 이러한 그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묻는 작품처럼 들린다. 가볍게 흘러갔던 전작 <SCRAPYARD>에서 다시금 <I Didn't Mean to Haunt You>의 무겁고 영화적인 구조를 차용한 본작은 종말 이후의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의 여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본작의 발표와 함께 공개된 1시간의 영화 속에서 콰데카는 말없이 항해하고, 병을 발견하고, 괴수와 싸우다 끝끝내 익사한다.
Pitchfork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레코드 중 하나라고 밝힌 브라질 아티스트 Chico Buarque의 1971년작 <Construção>의 첫 3초를 샘플링한 "NO QUESTIONS ASKED"로 본작의 포문이 열린다. 본 트랙은 본작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 중 하나로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사운드 디자인이 가장 훌륭하게 구축되어 있다 생각된다. 콰데카의 겹겹이 쌓이는 화음들과 'I'll be there when no one is'라는 구절이 반복되는 곡의 후반부는 콰데카가 지금껏 만들어온 음악들 중 가장 몰입감 있고 초월적인 순간들 중 하나이다
2번째 트랙 "WAGING WAR"에서 그는 플라멩코 리듬과 스네어 사운드, 그리고 Olēka와 이루는 황홀한 하모니 역시 인상적이다. 70년대 에로 영화에 삽입된 Alberto Baldan Bemo의 "Samoa"를 샘플링한 "THAT'S WHY" 역시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달은 한 남성의 이야기를 호소력 짙게 그려낸 탁월한 트랙이다. 콰데카는 본작에서 바로크 팝과 챔버 뮤직의 소스를 적극 활용하고, 또한 앨범의 질감 하나하나까지 세심히 조율하려고 한다. 실험적이지만 간결하고, 깔끔하게 갈무리되었던 그의 전작들과는 다르다. 본작에서 그는 본인의 모든 아이디어들을 현실로 옮겨놓으려고 하며, 모든 곡들에서 악기와 보컬을 점층적으로 쌓아 올려가다 한순간에 이를 터뜨려버리곤 한다. 대표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앨범의 베스트 트랙으로 불리고 있는 "FORGONE"과 "CASPER"가 가장 적합한 예시가 아닐까.
그러나 본작에서 이러한 여러 음악적인 소스들이 적절히 사용되지는 못했다. 단순히 직관적으로 감상하기만 해도 "DANCING WITHOUT MOVING"와 같은 트랙들에서 악기들이 서로 따로 놀고 있다든지, 다소 뜬금없게 배치되어 있는 인더스트리얼 힙합 트랙 "THUNDRRR"라든지 여러 문제점들이 관측된다. 그러나 본작의 가장 큰 문제점은, 맥시멀리즘한 프로덕션 속에서 그 층위들이 서로 경쟁하듯이 얽히며 앨범의 초점이 흐려진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를 맥시멀리즘 앨범의 대명사격과도 같은 Kanye West의 대표작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와의 비교를 통해 설명해 보면, Kanye의 그것은 여러 장르적 요소와 수많은 소스가 겹겹이 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 그 안에서 분명한 사운드의 질서와 방향성이 유지되고 있다. 예컨대 "Runaway"의 미니멀한 피아노 루프는 그 위에 얹히는 오케스트레이션, 보컬 왜곡과 충돌하면서도 일관된 서사를 형성한다. 곡마다 과잉된 장식이 있더라도 전체적인 앨범은 하나의 테마로 귀결되며, 사운드의 화려함이 앨범의 주인공을 압도하지 않는다.
하지만 <Vanisher, Horzion Scraper>는 그렇지 않다. 본작에서는 수많은 샘플, 국적 불문한 악기, 실험적 텍스처가 몰아치지만, 그 에너지가 특정한 정서나 메시지로 수렴되지 않고 흐릿하게 흩어지고 있다. 즉 Kanye가 맥시멀리즘을 극적인 사운드의 응축과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했다면, 콰데카의 맥시멀리즘적인 프로덕션은 과잉과 방황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본작의 맥시멀리즘적인 프로덕션에서 필자는 그 의미를 찾기가 어려웠으며, 복잡한 사운드 자체가 그 목적으로 들려 앨범의 감동과 밀도가 떨어진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본작이 발표된 이후에, Rate Your Music과 AlbumOfTheYear를 비롯한 다양한 웹사이트들에서 유저들 중 일부가 입 모아 '이 앨범은 영화와 함께 감상해야 돼!'라고 외치던 때가 기억난다. 그러나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Vanisher, Horizon Scraper>라는 앨범의 컨셉은 지나치게 흐릿하고 설득력이 다소 부족하다. 이러한 문제는 앨범의 후반부에서 가장 눈에 띄게 발현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NATURAL CAUSES"에서 "CASPER"로 이어지는 그 흐름은 그 어떠한 이음새나 연결성을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THUNDRRR"에서 그는 본작에서 가장 이질적인 퍼포먼스를 보이며 정신이 나간 듯 랩을 내뱉고, "THE GREAT BAKUNAWA"에서는 Danny Brown과 함께 여러 사운드를 뒤섞으며 광기 어린 목소리로 누군가를 향해 위협하며, 이후 "FORGONE"에서는 피아노를 주축으로 그가 지금껏 만들어온 모든 트랙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어내며, 그 뒤엔 Maruja를 등에 업고 7분간 화려한 연주를 선보이다 앨범을 끝맺는다.
우선적으로 "FORGONE"은 본작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자아내는 앨범의 핵심적인 트랙이기에, "THE GREAT BAKUNAWA"와 "CASPER" 사이에 배치한 그의 선택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THUNDRRR"와 "CASPER"는 본작의 음악과 다소 어울리지 않는 트랙들이며, "THE GREAT BAKUNAWA" 역시 <I Didn't Mean to Haunt You>의 "knots"와 "house settling"을 생각했을 때 어색하게 기워 넣어진 것처럼 보인다. 아마 이러한 문제점은 콰데카가 음악보다 영화라는 매개체에 초점을 맞추어서 발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음악을 또 다른 예술적 매개체에 기대어 완성하려 한다는 시도는, 당연히도 음악 그 자체의 독립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귀결된다. 콰데카가 구현하고자 한 서사는 트랙 사이에서 일관된 흐름을 형성하지 못한 채, 개별적으로만 인상적인 사운드 레이어와 실험들을 쌓아둔 데에 그친다. 결과물을 듣는 우리는 곡마다 산발적으로 흩어진 파편들을 감상하며 스스로 연결고리를 찾아내야 하는데, 당연히도 리스너들에게는 그럴 필요가 단 하나도 없다. 그렇게 <Vanisher, Horzion Scraper>는 희석된다.
본작에서 그가 띄우는 물음표는 그 누구도 쉽사리 풀 수 없는 질문이다. Pitchfork는 삶에 몸을 맡긴다는 건 사실 훨씬 더 지저분하고, 미완성이며, 이해할 수 없고, 괴상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Vanisher, Horzion Scraper>는 본연의 음악보다 내러티브와 상징들에 보다 과하게 비중을 맞추었다. 그가 그려내고자 한 고독한 선원의 서사는 필요 없이 장대한 내러티브들과 파도처럼 휘몰아치는 편곡들에 묻혀 사라진다. 콰데카는 앞으로의 음악들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연히도 '음악' 그 자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음악은 음악으로써 완성되며, 그 이외의 겉들은 그저 장치로 역할할 뿐이다. 콰데카는 본작에서 앨범의 주인공인 선원처럼 — 수평선을 향해 끝없이 떠내려가고 있을 뿐이다.
on w/HOM -> https://hausofmatters.com/magazine/w-hom/#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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