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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Chip - Joy In Repetition 피치포크 리뷰 해석

title: DMX공ZA12시간 전조회 수 5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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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밍 시대에 커리어 회고집은 이제 사라진 전통에 가깝다. 그러나 인디트로니카의 상징 같은 Hot Chip은 이를 의외로 세련되게 풀어냈다. 늘 그렇듯, 진지함과 데드팬¹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이들의 방식답게, <Joy in Repetition>은 자기비하적인 제목 속에 몇 겹의 정서를 봉인한다. 직접적으로는 2005년 브레이크스루 싱글²이자 대표곡 "Over and Over"의 후렴구를 가리키지만, 더 넓게는 댄스 음악의 본질과 Hot Chip 특유의 차용 정신을 동시에 담고 있다. 애초에 이 제목은 Prince의 것이었다.

물론 그들은 빚을 숨긴 적이 없다. 데뷔 때부터 Prince에 빚지고 있음을 당당히 밝혔다. 처음부터 세계적인 댄스 락 그룹을 목표로 했던 것도 아니었다. “Destiny’s Child 같은 쇼를 할 제작비는 없었죠.” 보컬 Alexis Taylor가 2016년 회상한 말이다. “하지만 우리를 흥분시킨 건 바로 그런 음악이었어요. New OrderDepeche Mode의 전통을 이어가려 했던 건 아니었죠.” 다섯 명의 멀티플레이어는 흑인 팝과 인디 락을 동시에 탐닉했고, 이는 당시 힙스터 세대의 기본 언어가 되던 흐름이었다. 2004년 데뷔작 <Coming on Strong>은 커버 속 가짜 신스처럼 과잉된 상태였다. 소울 발라드, 백포치 포크³, 색소폰 솔로, 미니멀 테크노가 뒤섞인 앨범은 Angie Stone에 빠진 Beta Band처럼 기묘하고도 친밀한 분위기를 풍겼다.

<Coming on Strong>은 이번 합집⁴에서 빠졌다. 아마 작년에 디럭스 리이슈가 나왔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 베드룸-투-블로그의 미학 / 화이트 보이 리릭스⁵가 이번 트랙들과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대신 2012년작 "Look at Where We Are"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Rodney Jerkins풍의 발라드지만 R&B라는 장르명은 거의 소거법에 가깝다. 이번 앨범은 “Best Of가 아니라 Best Loved”라는 문구로 소개됐다. 즉, 가장 많이 사랑받은 라이브 레퍼토리. 라이브 버전도, 셀프 리믹스도 빠져 있다. 냉소적으로 읽자면, 같은 것만 갈망하는 관객의 습관을 비춘 셈이다.

그러나 Hot Chip은 그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뉴욕에서 여자친구를 만나던 Taylor가 우연히 DFA⁶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합류한 것은 거의 필연처럼 보였다. 이후에도 TaylorJoe Goddard가 프로듀싱을 이어갔지만, 2006년 <The Warning>에는 DFA 특유의 하우스 냄새가 묻어났다. 사운드는 더 선명해졌고, 믹스는 밀도 있게 채워졌으며, 색소폰은 이제 스크랭크를 내질렀다⁷. 소울의 흔적은 물러나고, 치켜세운 전자음이 전면을 차지했다.

"Over and Over"는 그 <The Warning>의 선두 싱글이었다. 반복을 비트는 댄스 락 넘버. 디스코 박자와 철자 나열식 브레이크다운은 기본을 제공했지만, 동시에 블루지한 오르간과 스카 업스트로크⁸가 뒤섞였다. 그 거친 톤은 Taylor가 빠져 있던 Royal Trux의 흔적이었다. ‘심벌즈 치는 원숭이’라는 가사 또한 Trux의 농담 같은 크레딧에서 가져온 것이다. 2012년작 "Night and Day"는 일렉트로클래시 유행에 늦게 올라탔지만, 늦은 자답게 충격과 기묘한 매력으로 방을 장악했다. “벽이 무너지는 순간 우리의 밤을 기념하리라” 같은 구절은 TV on the Radio도 얼굴을 붉힐 법한 대담함⁹이었다.

미국 씬과 교류하면서도, Hot Chip은 끝내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DJ보다 프로레슬러를 더 스승처럼 여겼고, 스튜디오에서는 하우스의 환희와 엔드 크레딧 팝을 만들어내면서도 뜬금없는 가사 전환을 즐겼다. Chic의 "Le Freak"을 두고 ‘우리가 최고’라며 장난을 치거나, Sun Ra Arkestra의 잘 알려지지 않은 라이브 앨범을 찬양하는 식이다. LCD SoundsystemJames Murphy가 결코 쓰지 않을 “당신은 학교 가는 길의 Andre the Giant 같아” 같은 문장은, 오히려 <Freakout/Release>(2022)의 "Eleanor"에서 부드러운 발레아릭 보기에 둥지를 튼다¹⁰.

이 다정함이야말로 그들을 기회주의적 댄스 펑크와 구분 짓는다. 원래는 TaylorGoddard가 보컬을 분담했으나, 곡들이 점점 실존적인 주제를 다루면서 Taylor의 취약한 톤이 전면에 놓였다. 그는 Green GartsideNeil Tennant, Abel Tesfaye로 이어지는 신스팝 테너 계보의 일원이 되었다. 2008년 "Ready for the Floor"에서 Taylor의 순진한 톤은 단순한 춤 요청이 아니라 은밀한 초대가 된다. Goddard는 팀 버튼 영화의 농담을 끌어와 옆을 받친다. 이 곡은 그들의 유일한 UK Top 10 히트곡으로, Boys Noize보다는 Sean Kingston의 "Beautiful Girls"에 가까운 팝 감각을 품었다. 그러나 이번 합집에서 <Made in the Dark>는 이 곡만 수록됐다.

<Joy in Repetition>의 트랙 배열은 다소 의도적으로 보인다. 공연 세트리스트도 아니고, 연대기적 구성도 아니다. 같은 앨범의 곡이 연이어 등장하는 경우는 단 한 번뿐이다. ‘일관성’을 강조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20년간 같은 라인업을 유지한 밴드를 블로그하우스¹¹ 시대의 U2라 불러도 무방하리라. 후반부가 발라드 위주로 기울어지는 것은 노화의 흔적이자 삶의 리듬과 닮아 있다. Hot Chip이 25년 동안 뚜렷한 졸작 없이 이어올 수 있었던 건, 진심조차 믹스의 하나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2010년 "One Life Stand"의 썩소 나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베이스·드럼·스틸팬이 교차하는 그루브는 고양이 도둑처럼 은밀하다. Goddard의 “keep on feeling” 속삭임은 훗날 <The King of Limbs>의 섬세한 울음을 예고한다. 2019년 "Melody of Love"가 절정에 다다를 때, Hot Chip은 갑자기 Mighty Clouds of Joy의 라이브 클립을 삽입해 영적인 바통터치를 완성한다.

신곡 "Devotion"은 반짝이는 뉴웨이브 질감 위에서 터진다. “나는 감정을 느끼지 않아/그것은 나를 완전히 집어삼켜”라는 멋진 오프닝으로 시작하는 곡은 단순하면서도 황홀하다. 코드펜던스¹²의 초상은 동시에 ‘당신들이 진짜 주인공’이라 외치는 디바의 제스처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진짜 흥미로운 순간은 길 위에서 찾아온다. "Flutes"의 프로그 하우스 광란 속에는 끊임없이 지시문이 끼어들며 황홀과 무심함을 교차시킨다. 2015년의 "Huarache Lights"는 커리어 중반에 터진 걸작. 무대 조명이 신발에 반사되는 순간 Taylor는 ‘리터럴 슈게이징’에 취한다. 이후 곡은 댄스 음악의 노쇠와 대체 가능성에 대한 공황으로 기울고, 그는 끝내 이렇게 반복한다. “우리를 대체하라, 더 잘하는 것으로.” 처음엔 두려움으로 들리지만, 곧 도발로 바뀐다. 반복 속에서 터져 나오는 계시다.

¹ 데드팬 : 무표정하고 건조하게 농담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태도.

² 브레이크스루 싱글 : 아티스트를 대중적으로 알린 첫 히트곡.

³ 백포치 포크 : 미국식 뒷마당(Back Porch)에서 연주하는 듯한 소박하고 편안한 포크 스타일.

합집 : 히트 곡이나 주요 곡들을 모아 만든 컴필레이션 앨범.

베드룸-투-블로그의 미학 / 화이트 보이 리릭스 : 집에서 만든 DIY적, 로파이 감성과 블로그 문화의 미학. ‘화이트 보이 리릭스’는 당시 인디 신에서 백인 남성들이 쓴 어색하고 자기중심적 가사를 비꼬는 표현.

DFA : 2000년대 초 뉴욕을 대표한 인디/댄스 레이블. LCD Soundsystem, The Rapture 등을 배출.

색소폰은 스크랭크를 내질렀다 : ‘스크랭크(skronk)’는 거칠고 불협화적인 색소폰 연주 스타일을 가리킴.

스카 업스트로크 : 스카 음악 특유의 기타 주법으로, 리듬의 약박에서 위로 튕겨 올리듯 연주하는 방식.

TV on the Radio도 얼굴을 붉힐 법한 대담함 : 당대 실험적이고 대담한 밴드 TV on the Radio조차 민망할 정도의 노골적이고 파격적인 가사 표현.

¹⁰ 부드러운 발레아릭 보기에 둥지를 튼다 : 발레아릭(지중해식) 댄스/팝 사운드의 부드럽고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 자리 잡는다는 뜻.

¹¹ 블로그하우스 : 2000년대 중반 블로그를 통해 확산된 전자 음악/하우스 신. Ed Banger, Justice 등이 대표적.

¹² 코드펜던스 : ‘공의존’. 상대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희생하는 관계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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