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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동안 음악 들으면서 느낀 점

노미춘식2025.07.08 10:47조회 수 2036추천수 28댓글 27

올해로 스물여덟이고 서른 앞둔 직장인임.

하필 고2 고3 때 즈음 질풍노도 시기에 음악에 빠져서

대학도 변변찮은 데에 나왔지만, 인생이란게 결국은 어떻게든 풀리더라.

어리신 분들도 보이고 나이 좀 있으신 분들도 계시던데, 

음악에 대한 내 생각은 이럼.

음악이 절대 내 인생을 구해주지 않음.

백날 들어봤자, 명반 듣고 뭘 해도, 불행하게도 나아지는건 없음. 어릴 때는 음악만이 전부고, 그게 내 삶의 담보인 것 마냥 뒤가 없듯이 살았음. 우울할 때는 우울한 음악, 신나고 싶을 때는 신나는 음악. 그러다가 어느순간 도피처가 된거임.

해온게 그것 밖에 없는지라, LP 모으는 데에 수백이 깨지고, 일주일 내내 홍대 거리 돌면서 몸살 앓는건 일상이었음.

그러다가 수중에 남는 돈도 없지, 부모님이랑은 연락 끊긴지도 오래고, 그나마 알바해서 모았던 돈으로 어떻게 생계를 유지해보다가, 아는 형 집에 눌러 앉아서 잡일이나 심부름을 맡았음.

나한테는 은인 같은 분인데, 각설하고, 난 그 전에 자살도 생각했던 사람임. 노숙도 해봄. 한여름이라 위험한건 아녔지만 벌레한테 물리면서 온 피부에 썩이 나기도 했음.

피씨방에서 계란 하나 까먹어서 끼니를 떼우고, 거기서 음악도 옮겼음. Yepp 라고 삼성에서 나온 값싼 MP3 가 있는데 그걸로 많이 들었음. 헤드셋 살 돈도 없었고 이어폰만 귀에 꼽아대서, 한달간 귀가 멍했던 적도 있었음. 그래도 한국 병원비가 싸서 망정이지, 아니었음 난 이미 귀머거리가 됐을거임.

내 인생이 왜 이리 됐을까 돌아보니, 음악을 빼놓을 수가 없었고 나와 음악은 애증의 관계로 자리 잡음. 날 이렇게 버티게 해준 것도 음악이지만, 날 무너뜨린 것도 음악이었음.

후에 형 도움으로 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정신과도 다니고, 단지 음악만이 그 원인이 아녔다는걸 알게 됐고, 이리 연약한 나를 그리 쉽게도 음악 하나에 인생을 맡겼는지 후회가 됐음.

음악을 들으면 평온해지고, 우울이 가시고, 삶이 나아지고 있단 생각이 들면, 그건 착각이라 말해주고 싶음. 원동력이 되어줄 수도 있겠지만, 실행하는건 나 자신임. 깊은 본질? 역사적으론 있을거고 동의는 함. 그런데 그게 내 현실까지 건드릴 수는 없음. 우울하다고 방에 처박혀서 음악만 듣지 마셈. 하루는 그럴 수 있어도, 계속되면 아무도 책임 안 져줌. 아티스트도, 그 음악도, 차라리 사람을 만나셈. 경험담임. 끝내 날 구해준건 사람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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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7
  • 노미춘식Best글쓴이베스트
    5 7.8 11:13

    댓글 정도야 팬심으로서 고마운 마음에 적을 순 있겠죠. 그건 그냥 하는 소리일 수 있을테지만, 인간 관계 꼬일 때, 사는거 힘들 때 음악으로 돌려막기 하면서 일관된 태도를 취하면 인생 망하는거 진짜 한순간이라 느껴요. 막줄 매우 공감.

  • 7.8 11:08

    매우 공감

     

    비슷한 연장선으로 팬이 가수에게 팬심 드러낸답시고

    "~님 덕분에 ~ 노래 듣고 어디어디 합격했어요

    ~ 문제 잘 풀렸어요" 하는 부류들 많은데

     

    음악은 감정 꼬인거 해소하는 역할 까지만 하고

    그 이후 이성적인 상황에서 스스로 반추하고 문제 인식하고 해결하는 의지는 순전히 본인의 책임이고 역할임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거고

     

    음악 듣고 인생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말하는건

    인간 본인 고유의 회복탄력성을 너무 간과하는거라고

  • 노미춘식글쓴이
    5 7.8 11:13
    @장르편식노놉

    댓글 정도야 팬심으로서 고마운 마음에 적을 순 있겠죠. 그건 그냥 하는 소리일 수 있을테지만, 인간 관계 꼬일 때, 사는거 힘들 때 음악으로 돌려막기 하면서 일관된 태도를 취하면 인생 망하는거 진짜 한순간이라 느껴요. 막줄 매우 공감.

  • 7.8 11:14
    @노미춘식

    와 ㄹㅇ 진짜

  • 노미춘식글쓴이
    7.8 11:14
    @장르편식노놉

    그리고 아티스트가 음악이 나를 구했다는 맥락은 또 리스너와는 차이가 있가 생각합니다. 인터뷰 보고서 나도 그러겠지 싶음, 문제가 있는거. 가수 할 거 아니라면.

  • 7.8 11:53

    비슷한 나이네요. 음악의 힘도 대단하지만 그만큼 대단한게 스스로의 힘임. 음악으로 위로 얻고 동기 얻고 에너지 얻었으면 그걸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함.

  • 노미춘식글쓴이
    7.8 12:29
    @끄응끄응끄응

    오 제 나이대도 ㅋㅋ

  • 7.8 11:56

    처음엔 너무 박하네 했지만 막판에서 공감하네요 사람을 죽이는 것도 사람이고 사람을 살리는 것도 사람임

  • 노미춘식글쓴이
    7.8 12:30
    @nomnomcat

    우선순위가 있죠

  • 2 7.8 12:19

    Please don't put your life in the hands of a rock 'n' roll band

    Who'll throw it all away

  • 노미춘식글쓴이
    7.8 12:32
    @JPEG

    별로 안 좋아하지만 현실주의적인게 맘에 듦

  • 7.8 12:25

    인생 무섭네

  • 노미춘식글쓴이
    7.8 12:29
    @오션부활기원

    현실은 생각보다 막막함

  • 7.8 12:45

    결국 스스로가 자신을 구원하는 거죠

    음악이 구해줄 수는 없는 거임 !!

  • 노미춘식글쓴이
    7.8 15:04
    @공ZA

    🏄

  • 7.8 12:55

    마지막 문단이 공감되네요

    사람 만나는 게 참 중요한 거 같음

  • 노미춘식글쓴이
    7.8 15:04
    @Ellos

    그죠잉

  • 7.8 13:01

    공감은 안가는데 위로는 되네요 개추

  • 노미춘식글쓴이
    7.8 15:04
    @七草ナズナ

    ㅎㅎ

  • 7.8 13:55

    음악이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비료 역할을 해줄 수는 있어도 씨앗을 심고 수확하는건 본인의 몫이죠. 모두 힘든 삶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고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아직 찾아나가는 중이지만..ㅎㅎ

  • 노미춘식글쓴이
    7.8 15:04
    @야마다료

    맞습니다우리존재화이팅

  • 7.8 14:39

    근데 저는 인생이 재미없어서

    음악 없었으면 지루해서 못 살았을것 같아요 ㅋㅋ

  • 노미춘식글쓴이
    7.8 15:04
    @웻싸잍

    ㅋㅋ 재밌어질겁니다

  • 1 7.8 15:14

    이런 인생 이야기가 요즘엔 귀하게 느껴지네요

    갠적으론 음악 뿐만 아니라 온갖 것들에도 통하는 이야기 같아요

    그리고 그러한 물체들의 본질은 의존한다는 거겠죠

    의존은 필연적이라 생각해요

    인간이 지지대가 아무것도 없으면 그냥 무너질게 뻔하거든요

    그래서 뭔가 의존할 것을 찾는거죠. 종교나, 예술이나, 철학같은.

    그렇기에 여기서 제일중요한 지점은 의존에 매몰되지 않은 채 나아가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 노미춘식글쓴이
    7.8 15:25
    @vilence

    현대에서 믿음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죠

  • 별로

  • 7.9 13:19

    음악은 꿈 속을 날아다니게 해주는것에 불과한거 같아요.

    꿈이 행복하면 현실에서 일어났을 때 기분이 좋고 위로가 될 수 있지만 결국 현실은 그대로일 뿐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7.9 14:05

    글 감사합니다. 음악은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라고들 하는데, 음악을 단지 기분 나아지기 위해 투약하듯 듣는 게 주가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현실을 사는 게 우선돼야 하고, 현실과 나의 관계가 고착되지 않게 이따금씩 들으며 여러 가능성을 감각으로 일깨워주는 게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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