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분명하게 율이 그동안 추구해온, 소위 정병 감성으로 많은 사람(저를 포함해서)들을 매료시킨 아티스트인데, 사실 긴 관점에서 보면 그러한 방식으로만 율이 앨범을 만드는 것이 어쩌면 율의 장기적 커리어를 보았을 때 그닥 좋지는 않을 것 같아요. 스스로를 계속 몰아붙여야 하는데 그것은 결국 본인과 팬에게 모두 손해니까요.
저 역시 이번 앨범에서 그동안 율이 보여준 사이버 세계관 일부가 퇴색되지 않았나 느낍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돋보였던 점은, 이번에도 새로운 사운드(트립합, 배기, 인더스트리얼 록) 등을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녹여냈다는 것이 인상적이고, 곡 퀄리티 하나하나는 상당히 높았다고 느낍니다.
약간 찰리 xcx가 crash를 낸 것과 비슷한 느낌 아닐까요? crash가 처음에는 한동안 버블검 베이스로 팝의 새 지평을 열다가 갑자기 메인스트림 팝으로 돌아서서 아쉬운 평가를 받았지만, 나중에 brat을 내면서 찰리는 그래미까지 타는 아티스트로 화려하게 돌아왔지요.
일단 저는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앨범의 더 큰 도약을 위한 과도기라고 율의 신보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귀여운 율을 보면서 행복해지고 가세요.
통찰추
Data destruction Dynamite that breaks me in two Offline, I count them All of my names that I choose
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인트로 트랙이 되게 인상 깊었어요. "데이터"를 파괴하고 "오프라인"에서 지금까지의 페르소나를 세고 있다는 가사가 커리어 내내 온라인, 사이버 디멘션, 글리치 프린세스, 사이버보그등을 노래한 율한테서 나왔다는 거에서 완전 변화를 추구하겠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그 만큼 다양하고 이전과는 다른 음악적 시도가 보이긴 했지만 앨범 단위에서 응집력이 떨어진 게 젤 문제였던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확실한 디지털 세계관을 바탕으로 이 응집력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는데 확실한 세계관이 없다 보니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네요. 근데 30분으로 짧고 주제 면에서 가벼운 앨범이었던 만큼 과도기적 앨범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듯해요.
별개로 이 앨범은 그 내용적 측면에서 상당히 인상깊다 생각해요.. 4,5,6번 트랙에서 여전히 심한 우울이 느껴지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율은 우울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조금은 밝아진 모습을 보여줘요. 이전의 앨범에선 우울에 빠져 죽어가는 율을 보며 제가 직접 그 세계관에 뛰어들어 절 위로했어야 했는데 이 앨범에선 조금 밝아진 율이 직접 위로를 건넨다고 봐요. 이게 가장 폭발적으로 나타난게 What3vr 트랙의 What the fuck is wrong with you? Don't you know who loves you? 부분이라고 생각하고요. 아무튼 저한텐 정말 정말 위로가 많이 된 앨범이에요..
율이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조금이나마 밝아진 사람에게 '글리치 프린세스'를 반복하라 할 순 없잖아요 그래서 앞으로가 기대가 됩니다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사실 전 되게 좋게 들었어요 히히)
공감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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