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
'쓰읍 뭔가 좋은 것 같기도?' 와 '이게 뭐야 ㅅㅂ' 을 반복하게 되는 신비한 작품
2. 3.5
첫번째 곡은 진짜 개 좋은데 두번째 곡이 테러해놓음
3. 4
밍거스는 사실상 믿고 듣는 수준. 시원하고, 중후하며, 시가를 피고서 내뱉는 연기와도 같다.
4. 4
최소한의 드럼, 최소한의 재지함 만으로 최고가 되기엔 부족함 없다.
5. 4
선전을 비판하고서 선전하는 작품.
?. 올더스 헉슬리 - 멋진 신세계 (소설, 4.5 / 5)
당신들은 행복만이 가득 찬 세상을 원하는가? 자 그렇다면 여기, 멋진 신세계가 있다. 이 세계는 참 좋아보인다. 일은 터무니 없이 적으며, 즐거운 일이 가득하다. 혹시나 안좋은 일이 일어났더라도, 순식간에 잊어버릴 수 있다. 그래서 이 세계를 처음 마주한 존 또한 이 세계를 멋진 신세계라 부른 것이다. 하지만 야만인인 존이 그 다음에 마주한 이 세계는 자연을 잃어버린 세계이다. “동일성, 안정성, 공동체” 라는 세계정부의 슬로건은 매우 정확했다. 이 세계에선 인간의 껍질을 한 행복을 향한 동일성, 안정성, 공동체들이 돌아다닐 뿐이었으니 말이다. 이 세계의 인간은 왜이리 되었을까 하고 둘러보면, 어릴 때부터 세뇌되었으며 나머지는 잊었기 때문이다. 세뇌된 구절들이 성경의 구절들을 잊히게 만들었고, 슬로건의 유령이 되어 세계를 떠돌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유령들은 그리스 문자 순으로 정해지는 등급에 따라 극심한 차별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보지 못한다. 그렇기에 멋진 신세계는 진실과 거짓 중에서 행복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거짓을 택하는 작품이다. 또한 그것을 강압적인 방식이 아닌 수면시 교육으로 반항심 느낄 세 없이 주입된다. 이미 끝없는 행복에 도취된 이 세계는 행복에 예속된다. 행복하다면, 별 상관도 없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그렇다면 우리는 이 상황을 문제가 있다고 해야하는 걸까? 일단 우리는 그렇게 느낀다. 근데 무엇을? 답변할 길이 없다. 어떤 이들에겐 인생의 목적으로도 여겨지는 저 행복과 진실이 과연 비슷한 가치를 지닐까. 진실을 보아야한다는 게 우리들의 이때까지의 믿음이지만, 거짓으로 평생을 행복하게 산다면, 당신들은 바꿀 것인가, 말 것인가. 참 애매하다. 이러한 선택지에 관해, 작중에서 주인공인 야만인 존은 이렇게 답한다.
"하지만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
이러한 대사나, 존의 위치, 작중의 세계 묘사등으로, 작품 자체는 결국 이러한 세계를 부정하고 있으며, 또한 비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품의 시점에서, 저 세계가 취하고 있는 행복은 행복이 아니다. 그 안정성만을 보장하는 사회에 따라 안정하게 있는 것. 그들은 그것을 행복이라 여긴다. 하지만 그러한 행복은 형식적인, 세뇌일 뿐이다. 그리고 작품이 꺼내드는 진정한 행복은 실패와 쟁취의 상승과 하강이 직조된 선율이다. 나는 이러한 작품의 말에 동감한다. 인간적인 행복은 쇼츠를 볼때보다 훨씬 삶을 느끼게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저 멋진 신세계가 밉게 보이진 않는다. 저렇게 편안한 세계, 좀 살아보고 싶단 말이다.
숭배해야해
오.. 멋진 신세계... 감상이 비슷하네요
저 세계가 잘못 되었다는건 알겠는데 솔직히 거부하고 싶진 않아요
행복만 한다면 된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참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작품인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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