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도의 효율충이 되어버렸습니다. 제겐 시간도 에너지도 없다면서, 검증된 음악, 여러 매체에서 동시에 극찬하는 AOTY급의 음악만 들으며 만족했는데, 조금만 귀를 기울여도 세상엔 알려지지 않은 좋은 음악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특히, 발매된 당대에는 반응조차 없었지만 뒤늦게 발굴되거나 훗날 전설이 되기도 하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인) 음악들에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40여 년 만에 재발매된 어니스트 후드(Ernest Hood)의 앨범 <Neighorhoods>가 그런 음악이었어요.
1923년에 태어난 어니스트 후드는 포틀랜드에 살던 재즈 뮤지션이었는데, 20대에 병에 걸려서 목발과 휠체어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음악을 포기하지 못했고, 기타 대신 신시사이저를 잡았습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필드레코딩으로 주변의 소리를 채집했고, 자신의 아들과 가족과 이웃들의 대화, 그리고 새 소리, 비가 내리는 소리, 개가 짖는 소리, 지나가는 차 소리 등을 담아 프로토-앰비언트 음반을 만들어서 52살이던 1975년에 자비로 앨범 몇백 장을 찍었지만…. 먼지 속에 묻혔다고 합니다.
그런데 2019년, 40여 년 만에 재발매된 이 앨범이 미국에선 좀 화제가 되었다고 해요. 후드는 이 앨범이 이제는 잊혀져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담았다고 했지만, 누군가는 '이웃'이라는 앨범명에서 드러나듯 지금은 거의 희미해진 이웃 공동체를 떠올렸고, 누군가는 일상의 소음 속에서 어떤 영성을 발견해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1970년대 미국 교외의 풍경을 기록했을 이 앨범이 앰비언트라는 장르의 한 가지 성격을 잘 보여준다는 생각을 했어요. 유령 같은 어떤 시간(반드시 과거가 아닐 수도 있어요)을 물질적으로 각인하는 작업, 특정한 장소(이것은 실재하지 않는 비장소일 수도 있어요)를 그 장소에 기거하는 인간과 자연과 그것을 초월한 신비의 것들의 소리를 통해 음악적으로 탐구하고 사색하는 작업으로서의 앰비언트? ASMR의 시대, 음악이자 일종의 지적 실천으로서의 앰비언트가 한국에서 주목을 받을 수 있을까요? 한국에도 이런 앰비언트 음악이 나올 수 있을까요?
예전에 이런 음반을 만들었던 괴짜가 발굴될 수 있을 것 같진 않고, 1990년대나 2000년대에 구입해 집안 어딘가에 처박혀 있는 캠코더(디캠)나 핸드폰 영상들을 소스로 이용한 노스탤지어 앰비언트 음악이 나온다면 화제가 될 것 같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개인적으로 가장 듣고 싶은 앰비언트 음악은, 서대문형무소나 남영동 대공분실, 광주처럼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좀 익숙하고 진부한 현장에서 느낀 감흥을 담아낸 앰비언트 기반의 음악입니다. 미국 학생들에게도 진부하기 짝이 없었던 필독서인 <안네의 일기>로부터 진심 어린 음악을 이끌어낸 뉴트럴밀크호텔의 <인 더 에어플레인 오버 더 씨>(앰비언트가 아니네요..) 또는 투쟁 속에서 죽음을 맞은 이탈리아 레지스탕스들에게 모호하게 경의를 표하는, 유령들의 목소리 또는 한밤중의 속삭임처럼 들리는 팀 헤커의 <하모니 인 울트라바이올렛> 같은 앨범이 한국에서 나온다면 정말 근사할 것 같아요.
특출난 앨범이 아닌 이상, 음종게 같은 곳에서 몇번 언급되는 게 끝일 거라 생각합니다
잠깐의 즐거운 망상을 무참히 깨부수는 현실적 지적이에요 ㅎㅎ;
ㅋㅋㅋㅋ ㅠㅠ
우리나라에서 주목받는다는게 대중들에게냐 아니면 음악 매니아들에게냐인데.. 대중들에게 먹히는건 거의 불가능하다 생각합니다. 한국 대중들에겐 케이팝,발라드,트로트 아니면 거의 경쟁력이 없고 락은 최근에야 좀 붐이 왔다가 어캐 될지 모르겠으며 힙합은 계속 하락세에 전자음악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근데 그 전자음악 중에서도 비상업적인 앰비언트가 주목을 받을 수 있을까요.. 아주 걸출한 앨범이 나와서 몇몇 힙스터들에게 발굴되고 RYM 등을 통해 해외 리스너들이게 반응이 생긴다면 그때야 아주 소수의 리스너층이 생길 것 같습니다만 이 소수의 리스너도 아주 음악 매니아겠죠..
한국은 장르음악이 나오기엔 너무 빡세다 생각해요 게다가 비상업적인 장르들은 더더욱요
그치만 그럼에도 한국에 좋은 앰비언트 아티스트가 있습니다 박지하와 같은 아티스트는 국악 사운드를 활용해 앰비언트 앨범을 만들기도 하고 앰비언트 테크노, IDM 아티스트인 모하비는 <시실리의 친구들 "19세기 별똥별">같은 앨범에서 아주 한국적인 전자음악을 보여주기도 하였죠
저도 이러한 음악들이 그리고 작성자님께서 원하시는 그런 음악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지만 솔직히 많이 힘들다 생각해요
대중은 생각도 안 했어요. 저 역시 주목의 주체는 매니아와 음악을 진지하게 여기는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냉정한 현실 인식이 좀 슬프네요 ㅋㅋㅋㅋ ㅠㅠ 한국에 좋은 앰비언트 아티스트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고 박지하는 공연도 봤어요. 그냥 더 기대를 해보는 거예요. 시장성과 무관하게 한국에서 집단기억이나 역사와 결합해 사운드 실험과 탐구를 밀어붙이는 앰비언트 아티스트들이 출현해주길.
조금 현실적으로 상상을 해보자면.. 한국에서 앰비언트는 마크 브금으로 어느정도 알고있어서 생각보다는 ? 친숙할거 같은디
만약 제가 한국에서 앰비언트를 하겠다 그러면 저는 음악 그 자체로 성공하기보단 게임음악 프로듀서쪽으로 가지 않을까 싶으요
단점은 게임이 개망한다면 그냥 묻히는거고.. 좀 흥하면 음악까지도 주목받으니 게임보는 안목도 좀 키운 후 결정할듯 해요
암튼 음악 그자체로 성공하기 어렵다면.. 이런식으로 가는것도 나쁘지 않을까 싶네염
현실적인 가능성인데요? 매력적인 세계관을 가진 게임의 시간이나 장소에 찰떡같이 달라붙는 음악이라면 주목을 받기 쉬워지겠네요. 앰비언트만 아니라 위에서 말씀해주신 비상업적인 장르음악의 생존 어려움은 다른 문화예술과의 협업이 하나의 답일 것 같습니다. 멋진 답변 감사드려요.
앰비언트 뮤지션이 영화음악으로 진출한 사례도 정말 많으니.. 게임도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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