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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케첩 황제의 이중생활

TomBoy18시간 전조회 수 461추천수 15댓글 3

제일 좋아하는 밴드는 누구인가요?
저는 스테레오랩과 LCD 사운드시스템을 가장 좋아합니다.
남다른 이유랄 것도 없는 것 같아요.

 

Super Electric의 기타 리프
그리고 정체불명의 프랑스어 가사를 들었을 때부터,
저는 그냥 이 팀이 좋아졌습니다.

 

이제 와서 숙고해 보면
그 타고난 이중성에 매료된 게 아닐까 합니다.
쿨하디쿨한 댄스 음악을 선보였던 밴드의 프런트맨이
배불뚝이 40대 남성이었던 것처럼,
90년대 가장 독창적인 인디 팝을 만들었던 밴드 또한
영국인 케빈 실즈와 프랑스인 오노 요코로 이루어진 것이지요.

 


5월 23일!
스테레오랩의 11번째 스튜디오 앨범 'Instant Holograms on Metal Film'이 발매됩니다.
무려 15년 만의 정규 앨범이네요.
발매를 기념해 제일 좋아하는 작품 'Emperor Tomato Ketchup'을 돌아보았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시길.

 


Forever Stereol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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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스테레오랩은 롤라팔루자 올스타의 일원이 되어 비스티 보이즈, 스매싱 펌킨스, 그린 데이와 함께 미국 전역을 순회했다. 94년 발표한 세 번째 정규 앨범 <Mars Audiac Quintet>은 밴드의 정체성을 구축했다는 평과 함께 영국 앨범 차트 20위권에 진입한 최초의 스테레오랩 앨범이 됐다. 그러나 이들의 성장세는 멀리서 보면 희극이었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었다. 팀 게인의 말처럼, "스테레오랩은 무너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창작력이 가장 큰 골칫거리였을 것이다. 라운지풍 아방가르드 팝과 모토릭 비트라는 고유의 개성이 어느새 자신들의 한계를 규정하고 있었으며 녹음 세션은 그야말로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팀은 베이스와 드럼, 색소폰 등 거의 모든 세션이 10분 동안 똑같은 리프만 되풀이했다고 술회했다. 자신들만의 <Remain In Light>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복고풍 인디 팝으로 되돌아갈 것이냐, 선택의 순간을 마주한 것이다. 하지만 팀 게인과 레티샤 사디에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관점을 달리했다. 오리지널 트랙에서 4음계 프레이즈를 잘라내 루프를 만든 뒤 드럼 믹스를 추가하는 것. 90년대 중반에는 이미 보편화되어 더 이상 특별할 것이 없는 작법이었지만, 레티샤와 팀에게는 머리 위로 사과가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90년대의 스테레오랩이 같은 시기 라디오헤드나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과 똑같은 일을 해냈다고 생각하는데, 그 행적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부터 시작됐다. 비트 메이커나 전자 음악 프로듀서가 곡을 쓰는 방식으로 밴드 음악을 만든다면?

 

    "어떤 사람들은 우리 음악이 너무 '팝'스럽다고 말해요. 그런데 또 어떤 사람들은 우리 음악이 너무 '실험'적이라고 말하죠." 팝 음악과 실험성, 스테레오랩의 커리어를 한 줄로 압축한 듯한 캐치프레이즈. <Emperor Tomato Ketchup>보다 그 이중성을 잘 나타내주는 작품은 없을 것이다. Percolator를 한 번 들어보자. 베이스와 오르간의 정교한 대위법, 신경질적인 5/4 박자, 무심한 누들링, 즉흥성 강한 재즈 코드, 그리고 제 흥에 못 이겨 춤을 추는 듯한 레이 디카티의 색소폰 연주까지. 이것은 팝인가, 전위음악인가. 록 음악인가, 전자음악인가. 화음인가, 불협화음인가. 한편 비틀스에게 시타르가 있었다면 스테레오랩에게는 모토릭 리듬이 있었다. 이 둘의 아름다운 동행은 여기서 끝이 나지만, 이들은 Les Yper-Sound, Emperor Tomato Ketchup 같은 곡을 통해 오늘날의 스테레오랩을 있게 한 음악 기법에 경의를 표한다. 이전까지 이 팀의 모토릭 비트는 디스토션 기타라는 접시 위에 쌓아 올려졌다. 이런 화성에 지루함을 느낀 팀은 새로 합류한 프로듀서 존 매킨타이어에게 신시사이저를 활용해 기타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뭉개달라는 요청을 남긴다. 매킨타이어는 "비틀스는 시타르와 작별하기 위해 Within You Without You나 The Inner Light 같은 곡을 썼습니다. 우리는 우리 버전의 Within You Without You를 쓴 거고요."라며 흐뭇하게 당시를 회상했다.

 

    이때까지의 스테레오랩은 기타 밴드로, 정확히는 <Loveless>와 슈게이즈의 연장선으로 간주됐다. ("<Transient Random-Noise>는 케빈 실즈가 쓰지 않은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의 차기작이다.") 그러나 90년대에 브릿팝, 붐 뱁, 포스트 록, 트립 합, IDM 등등 장르 음악 제2의 르네상스가 열리면서 어제의 음악에 대한 오늘의 평가 또한 빠른 속도로 변모했다. 스테레오랩 최고의 오프너 Metronomic Underground는 확실히 길 스콧 헤론의 대표곡 중 하나인 Revolution Will Not Be Televised에서 영향을 받은 것처럼 들린다. 헤론의 그것처럼 베이스와 드럼이 무미건조하게 반복되면서 서스펜스를 조성하거나 해소하는 양상은 얼터너티브가 아니라 꼭 일렉트로니카를 연상시킨다. 여기서 메리 한센과 레티샤가 부르는 두 개의 하모니가 등장하는데, 팀은 애초부터 보컬과 세션이 아닌 보컬과 보컬의 상호작용을 염두에 두고 데모를 제작했다. 러닝타임 내내 "미친 듯이, 견고하게, 나는 어뢰."라는 주술적인 만트라가 울려대는 동안 다다이스트의 냉소가 담긴 화음이 그 위를 교차한다. 루프 음악으로 출발한 곡이 스스로 구조를 갖추며 크라우트 록의 면모를 선보이다가 강렬한 펑크 기타와 함께 막을 내린다. 앞으로 스테레오랩 형식미의 핵심이자, <Dots and Loops>와 <Cobra and Phases Group> 같은 작품의 토대가 될 테크닉을 레티샤는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오아시스를 보세요. 그들 노래에는 두 개의 곡이 혼재돼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세 곡이 있죠."

 

    "저는 대부분의 정치 밴드를 싫어합니다. 음악과 가사를 결합할 상상력이 없는 밴드를 특히ㅈ 싫어하죠." 인디펜던트가 정치에 개입하는 방식에 팀 게인만큼 염증을 느낀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가 또 한 명의 케빈 실즈였던 반면에 레티샤는 정치적이고 철학적인 프랑스 여성의 본보기와도 같은 인물이었다. 그녀는 형식과 기능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이해했으며 음악을 통해 정치 이야기를 하는 데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Les Yper-Sound, Tomorrow is Already Here, Anonymous Collective 같은 표제 자체가, 또 그 내용면에서도 벌써 충분히 정치적인 분위기를 발산하고 있다. 단순 명확한 메시지, 반복되는 슬로건, 마침표가 아니라 물음표로 끝을 맺는 방법 등 레티샤의 가사는 그 자체로 효과적인 정치 커뮤니케이션이자 스테레오랩의 남다른 개성 중 하나였다. 그러니까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팀의 탐미성 강한 선율과 레티샤가 추구한 기 드보르의 사상은 물과 기름처럼 양립할 수 없다. 그러나 스티비 원더의 Living for The City, 존 레넌의 Imagine 같은 곡처럼 스테레오랩의 음악에서는 천상의 멜로디와 정치적 전언이 사이 좋게 우뚝 서 있다. When You Sleep의 달콤한 레이어링을 통해 마르크스의 강령을 전파할 수 있다는 듯이.

 

    “당신과 나는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어떤 것들에 의해 형성된 존재입니다.” 클로저 Anonymous Collective에서 레티샤는 흡사 최면을 걸듯 거듭해서 가사를 읊조린다. 인식할 수 없지만 우리를 형성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취향"일 것이다. 'Emperor Tomato Ketchup'이라는 타이틀은 테라야마 슈지 감독의 71년작 '토마토케첩 황제'에서 따왔으며, 커버 아트는 헝가리 작곡가 벨라 바르톡의 바이닐 디자인을 빌려왔다. 바로 이런 점이 음악과 예술을 소비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레티샤, 팀, 메리, 앤디의 실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그들이 어떤 취향으로 이루어진 존재인지 짐작은 할 수 있을 듯하다. 테라야마 슈지의 '토마토케첩 황제'는 마르크스가 인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다음과 같은 말로 막을 연다. "부의 축적이 아닌 쾌락의 축적에 초점을 맞추면 자본주의가 무너질 것이다." 쾌락의 축적, 이야말로 스테레오랩의 커리어를 한 줄로 압축한 듯한 또 하나의 캐치프레이즈 아닌가.

 

    스테레오랩의 <Remain in Light>는 결국 <Dots and Loops>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mperor Tomato Ketchup>을 선택했던 건 작은 믿음 때문이다. 어떻게 <Dots and Loops>를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거기까지 이르게 됐는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는 믿음. Super Electric을 처음 들은 것이 딱 10년 전의 일이다. 다음 곡, 다음 앨범을 들을 때마다 내가 알던 스테레오랩은 매번 전혀 알지 못하는 스테레오랩으로 변해갔다. 비트 메이커의 시선으로 밴드 음악을 바라봄으로써, 팝스러우면서도 실험적인 음악을 만듦으로써, 하나의 노래에 세개의 곡을 뒤섞음으로써, 정치와 멜로디를 양립시킴으로써, 가장 오래된 장르 음악을 자신들의 포스트모던한 취향과 결합시킴으로써,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그 어떤 것도 쾌락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움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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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14시간 전

    저도 정말 좋아합니다

  • 13시간 전

    스테레오랩 몇개 들어봣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 24분 전

    생각해보니 Dots and Loops를 정말 좋아하는데 다른 앨범들을 안 들어봤네요..

    리뷰 읽어보니 토마토 케첩 앨범도 기대가 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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