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행복할 권리에 대해 가장 자주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은 마치 태초부터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조건인 것처럼, 안내 책자, 성서 등에서 언급됩니다. 행복할 권리는 바로 나의 권리입니다. 하지만 저는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정말 불행할 권리가 있는 걸까요?
우리는 고통을 느끼기 전부터 스스로를 검열합니다.
"여전히 힘들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고통스럽게 슬퍼할 수 있을까요?"
'내가 불행할 만큼 힘든 걸까?'
'우울증'은 언제나 누군가의 더 깊은 상처에 비유되곤 한다. 점점 작아지고, 조용해지다가 결국 사라진다.
하지만 비교를 통해 '줄어든' 고통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애초에 그런 고통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가난한 자는 가난으로, 부유한 자는 공허함으로, 슬픈 자는 몸으로, 기쁜 자는 근거 없는 불안으로. 이는 상황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실존적 떨림이며, 삶의 어떤 상황에서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불행할 권리가 예술에서 증명된 것처럼, 고요하고도 정확하게.
쇼팽의 프렐류드 한 곡 한 곡에 담긴 숨죽인 탄식처럼,
메르쯔보우의 일렁이는 소음처럼,
불행은 자격이 아니라, 목소리이며 무늬이며 살아 있음의 증표로 존재해왔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이 불행해도 괜찮다고 허락하려 한다.
"그는 불행해야 한다."
그 단어의 그림자는 말한다.
"너는 불행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존재의 무게는 헤아릴 수 없고,
단위 없는 눈물이다.
누구의 고통도 더 현실적이거나 덜 현실적이지 않다.
불행은 특권이 아니라 감정입니다.
만약 그 감정이 당신에게 찾아왔다면,
당신은 스스로 그것을 느낄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불행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권리는 당신의 상처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인간이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9gbH_GAE8Q
팬티 찟으면서 울부짖었다
? 고마워요
이건 또 뭐야 ㅋㅋㅋㅋㅋ
오 님이 씀? 지리네 단위 없는 눈물에서 감명 받음
중2 예술병 모드키면 멋있는 표현들이 쏟아져나옴 ㅇㅇ
근데 뭐 뻔한 얘기지만 중2병이 곧 성장통이고 한창 관점이 변할 시기라..
나이 먹어선 님처럼 잘만 조절할 수 있으면 된다 봄 ㅋㅋ
저도 불행에 대해서 여럿 생각하곤 하는데, 특히 음악을 들을 때는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빈민가 출신 래퍼들 얘기는 하나같이 불행하고, 인종차별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 만연한데다, 100% 나아진단 보장도 없다고들 하니깐요.
그런 입장에서 제 삶을 바라볼 때면 가끔 정말 힘들다가도, 이런 불행이 티끌만큼도 못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치만 제가 본문에서 공감했던건 불행은 실존적이란 거예요. 상대적이고 객관적인 것 이전에 불행은 실존해요.
그러니 어떤 고민이든,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그것 자체가 스스로를 불행에 내모는 것이고, 누구든 불행을 건전하게 받아들일 자격과 필요가 있어요. 무조건적인 수용은 당연히 자제해야겠지만, 적어도 불행을 부끄러워하는 순간 끝이 없다는 것.. 이 제 생각입니다.
내뱉는 날 것의 부정적인 읍조리는 것 이 마음의 편안함이 오죠 참 역설적이에요 흥분한다는 느낌이 맞는거 같습니다 그러곤 과거의 상처를 이용해 현재 상황의 현상 속 너무 좋은 안식을 주죠 결국 마주하는가 이용하는가 기로에 있는거 같습니다 간사한 투영, 하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원인 모를 행동. 사람들이 그대로 내뱉었으면 좋겠습니다 잘못과 흔적 알 수 없는 복수의 틈 .
행복이랑은 다르게 불행에는 사회적 무게감이 있어서 날것의 부정적 감정은 보기가 힘들죠
물론 사회의 상황은 절대 뱉지 않는게 좋죠 한 인간이 개인에 대해서 조용히 아니면 상담으로 편히 통찰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불행하다고 느낀다는 것은 응당 행복의 절차인 기대와 그 충족의 어딘가가 박살이 난 거겠죠
충족을 자주 못해서 기대를 하지 못하는 몸이 되는 것이 불행의 개념일 겁니다
이 현상은 이 세상이 오차 없는 세상도 아니고, 반드시 일어나는 필연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근본적인 세상의 무질서에 인간이 무슨 힘이 있다고 비허용을 합니까
우리가 해줘야할 것은 그 박살난 행복 절차를 어떻게든 고치는 일 뿐입니다
그런가요. 저는 불행을 행복의 부재로 보지 않는 편이에요. 행복 절차와는 별개로 불행은 "불행 절차"가 있는 구조적 경험이라고요. 두가지 관점에서 모두 공존 할 수 없는건 사실이지만, 삶에 있는 모든 과정이 행복 혹은 불행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예상과 희망의 애매모한 선이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모르니까요.
저도 막 한번 충족을 못한다고 그게 곧바로 불행으로 이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한번 만으로는 그리 큰 파동은 일으키지 못하겠지요
하지만 그게 세상의 장난질로 계속된다면 그에따라 점점 기대도 낮아지고,
그렇게 낮아진 기대는 남들과 비교하며 정당화되어 더욱 낮아지죠
그래서 갠적으론 행복과 불행이 줄다리기 한다고 생각해요
충족 계속되면은 기대도 오르고 그만큼 자신감도 오르면서 줄이 행복에 치우쳐졌다가,
계속 실패하면은 기대도 떨어지고 그만큼 자신감도 떨어지면서 줄이 불행으로 치우쳐지는 거죠
오.. 울엇다
내적 갈등을 가장 많이 하는 주제임 :)
뭔가 되게 여러번 보게 되는 글이네요
종게랑 무슨 상관이냐 싶긴한데 애초에 음악은 대체로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 생각해서..
전 불행까진 모르겠어도 힘든 일이 있으면 최대한 잊어먹으려 노력해요
예전에 아빠한테 맞고서 하교 후 집에 혼자 피투성이로 쓰러져있던 집고양이를 본 기억이 있는데
뭐 트라우마라 하긴 그렇지만.. 뭐랄까 솔직히 말해서 객관적으로 큰 상황은 아녀도, 그냥 그 시간 자체를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었어요.
그래서 불행이 실재한단건, 말씀처럼 감정인 것 같아요. 그게 순간적일 수도 있고 점차 누적되는 형태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괴로운건 누가 대신해주는게 아니라 내가 하는거니까.
음악은 어떤 상황에서든 친구가 되어주죠.
우리 모두 음악을 들으면서 자신만의 기억을 떠올릴거라 믿습니다
전 그게 꼭 음악이 아녀도 된다 믿어요. 그냥 이런 보금자리는 내가 만들어간다 생각하거든요. 뭐 누구든 공감할거라 생각합니다. 전 음악에 그 둥지를 튼거고, 내 스스로가 의지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항상 하는 생각입니다. 성공과 별개로 불안에서 벗어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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