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고생이 되고 싶은 이유는 뭘까

나는 가끔, 아주 느닷없이, 여고생이 되고 싶은 이유를 생각한다. 그것은 단순한 추억의 재연도, 막연한 동경도 아니다. 더 깊고, 더 서늘하고, 더 찬란한 갈망이다. 나는 그 시절의 여린 시간 위에,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반짝이는 무지(無知)를 다시 입고 싶다. 흠잡을 곳 없는 순진함도, 세상을 모르는 어리광도 아닌, 세상을 알지 않기에 가능한 '온전한 사랑'을 다시 품고 싶다.

나는 여고생이 되고 싶다. 세상이 아직 내게 빚지지 않은 때로 돌아가고 싶다. 아직 세상의 계산기를 배우지 못했을 때,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 아무런 명분도 필요 없었던 그 시절로. 이유도 없이 미워하고, 이유도 없이 울고, 이유도 없이 웃을 수 있었던 그 찬란한 무지성의 계절로.
교복은 그저 천 조각이 아니라, 나를 미성숙의 보호막 안에 가두어주는 마법의 옷이었다. 어른이라는 말 앞에 움츠러들지 않고, 아이라는 말 앞에서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던, 그 불완전하고 그래서 더욱 완벽했던 존재의 상태.
나는 여고생이 되어 다시 걷고 싶다. 꺾인 꽃처럼 아프게 휘어지는 골목길을, 신발 끈을 헐겁게 묶고 무심히 스치는 바람 속을, 마치 영원히 그렇게 살 것처럼 아무 이유 없이 달리고 싶다.

그 시절엔 사랑이 영원할 거라 믿었다. 어긋남도, 배신도, 끝이라는 개념도 몰랐다. 좋아하는 것에는 이유가 필요 없었고, 싫어하는 것에도 변명은 없었다. 모든 것이 뜨겁고 어설펐지만, 그래서 눈부셨다. 어른이 된 나는 이제 모든 감정에 각주를 달고, 모든 선택에 부연 설명을 붙인다. 나는 나조차도 설득해야만 살아남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여고생이라면—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냥 '좋으니까 좋아'라고 말하고, '싫으니까 싫어'라고 말하고, 엉망으로 울고 웃고 상처받아도 용서받을 수 있다. 세상이 나를 품어줄 것이다. 어른이 된 나는 세상을 품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여고생인 나는 그 품 안에 안겨 있을 수 있었다.

나는 여고생이 되고 싶다. 가슴이 터질 듯 설레는 편지를 쓰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밤을 친구와 속삭이고, 시험지 위에 엎드려 꿈을 꾸고 싶다.
나는 여고생이 되고 싶다. 아직 세상에 물들기 전, 아직 나 자신도 모르는 나를 사랑할 수 있던 그 때로.
나는 여고생이 되고 싶다. 푸르게, 서툴게,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지만 모든 걸 가진 것처럼 살던 그 시간으로.

아, 나는 여고생이 되고 싶다.
지금 이곳이 아닌, 어디에도 닿지 않는 찬란한 유예(猶豫)의 세계로.
한없이 흐릿하고, 한없이 명확했던 그 이름 모를 계절 속으로.


 

https://www.youtube.com/watch?v=Owmqx9Ms32c

민의 속뜻도 알고 내 인생이랑도 별 상관 없는 얘기지만
민은 여전히 나의 검정치마 최애 곡임.
그냥 주제는 마약에 관했을지언정, 무언가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사실 순수한지도 모르겠고 그런 솔직한 표현들.
나도 살다 보면 참 그런 순간들이 많은 것 같음.
어째 뽕쟁이 얘기인데도 난 가사를 들으며 눈물을 훔친다...............
흑 흐 흐흑 흑  흑,       흑     흑흐 흐    흐흑  흐흐 흑
새삼 가사란게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상상력을 저해하는 요소 중 하나인듯.
그래서 난 이렇게 주제는 뚜렷해도 가사 자체는 포괄적이고 추상적인게 좋음.
청자가 맘껏 꿈 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그런 아티스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