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코 아오바(Ichiko Aoba)의 음악은 자연의 어휘로 기술될 수 있다. 바람에 흩날리는 풀밭, 해저와 지상 위를 오가는 미지의 생명체, 잔잔하게 밀려오는 파도. 이전까지 그녀의 음악은 주로 어쿠스틱 기타와 목소리에 의존한 것이었다면, 2020년의 <Windswept Adan>은 그렇지 않았다. 자연을 향한 그녀의 탐구가 확장된 편곡과 정교한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함께 실체를 가진 공간으로 확대된 것이었다. 그리고 Adan의 마을로 추방된 그녀는 죽음을 맞이한 뒤, 여러 형태의 생명체로 환생했고 — 마침내 약 5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확장된 사운드스케이프를 머금고 그 새로운 생명체가 우리의 눈앞에 다시금 모습을 내비치었다. <Luminescent Creatures>라는 이름으로.
본작은 명확한 줄거리나 서사를 가지고 운영되지 않는다. 그저 여러 빛나는 생명체로 환생한 이치코 아오바의 발자취를 좇고 좇으며 여전히 알 수 없는 어딘가에 이르려는 감각적 여정에 가깝다. 앨범의 제목처럼, 본작은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여러 존재들 — 그것은 육체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혹은 그저 기억일 뿐일 수도 있다 —의 궤적을 그린다. "SONAR"는 수중 생명체의 방식으로 소리를 통해 아름다운 세계를 탐색하고 교감하려는 존재의 내면과도 같은 곡이고, "mazamun"은 장난기 어린 요정의 시점으로 그려진 미시적 서사다. <Luminescent Creatures>의 모든 트랙들은 서로가 각자의 독립된 이야기를 가진 채로 운영되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이들은 서로의 존재를 반사하고 또 투영하며 하나의 생태계를 이룬다.
이치코 아오바의 최대 장점인 감동적인 기타 연주, 선율적인 보컬 편곡과 천재적인 송라이팅 능력 역시 <Luminescent Creatures>에서 십분 발휘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러한 장점들이 그대로 유지되지 않고 더욱 발전된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Windswept Adan>에서 사용된 사운드 조각들을 어여쁘게 이어붙여 만들어진 것처럼 들리는 본작의 송라이팅과 이치코 아오바의 보컬은 말 그대로 에테르와 동일화된다. "FLAG", "COLORATURA"는 그녀만의 독특한 사운드스케이프 설계 능력으로 완성된 아름다운 자연의 탐구이며, 앨범의 하이라이트인 "Luciférine"에서 보여준 그녀의 송라이팅 역량은 말 그대로 경이로울 지경이다. 그러나 세밀한 사운드스케이프로 묘사되어 있는 본작은 개별 곡들만의 하이라이트를 구성하기보단, 매우 자유롭게 흘러간다는 점 역시 인상적이다. <Luminescent Creatures>는 35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그 자체의 생태계에 깊이 참잠해있다.
결론적으로 <Luminescent Creatures>는 이치코 아오바의 최대 장점인 송라이팅 능력과 사운드스케이프 형성 능력을 내세우기보단, 이를 그저 하나의 생태계를 탄생시키는 도구로 사용해 — 깊은 음악적 내러티브를 탐구한 작품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느끼는 바를 말해보자면 — 본작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란 굉장히 쉽지 않다는 것이다. <Luminescent Creatures>의 존재가 이치코 아오바의 그 어떤 작품들보다 더욱 눈부시고, 또 숭고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 <Luminescent Creatures>는 영적인 방식으로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잔혹하고 상처 입은 세상 속에서, <Luminescent Creatures>라는 세상과 생태계에 며칠이고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분명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아오바 이치코 커하
잘 읽었습니다
아단의 바람 확장판 느낌 (실제로 연작이기도 하지만)
아단의 바람 속 신비로움을 더 극대화해서 보여준 앨범
아단의 바람을 듣고나면 꼭 발광생물까지 듣게됩니다.. 너무 좋아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전 극대화 시킨 것도 맞는데, 조금 더 세계관을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기분이라서 좋았어요. 물론 전 Windswept Adan이
여전히 아오바의 최고작이자 인생 앨범으로 꼽긴 하지만, Luminescent Creatures는 그 생태계에 무성한 풀숲을 헤쳐와 마침내 발견한 신비한 내음의 풀밭같달까요. 저도 둘 중 한 앨범을 들으면 결국 다른 앨범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무언의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그려낸 앨범은 말씀하신 대로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가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어쩌면 말로 표현할 수 없기에 음악으로 표현해낸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잘 쓰인 글 덕분에 그 아름다움이 조금 더 구체화되는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맞아요. LONG SEASON이나 Sky Hundred같은 앨범들도 전에 리뷰를 시도했었는데, 제 부족한 필력으로는 앨범의 진가를 도저히 형용해낼수가 없겠더라고요. 특히 이번 앨범은 글에서도 말했듯이 유독 숭고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라서 또 힘들었습니다ㅋㅋ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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