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icrophones - The Glow, Pt. 2
언젠가 불타버릴 것을 알면서도 집을 짓는 일이 있다. Phil Elverum의 The Glow, Pt. 2는 그 불붙은 집의 설계도이며, 잿더미 위에 피어난 음향의 회고록이다. 이는 단순한 로파이 인디의 기념비가 아니다. 이 앨범은 자신의 손으로 세계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살아보고, 끝내 스스로 무너뜨리는 자만이 남길 수 있는 기록이다.
앨범은 시작부터 끝까지 파괴와 재구축의 과정이다. I Want Wind to Blow에서 우리는 바람과 함께 무너진 옛 집의 그림자를 마주하고, 곧이어 The Glow, Pt. 2에 이르면 Elverum은 소리의 폐허 속에서 새롭게 불을 붙인다. 목소리는 울퉁불퉁하고, 리듬은 비틀거리며, 마이크는 갈라진다. 그러나 이 모든 불완전함이 곧 앨범의 구조이고 감정선이다. 깨끗하지 않은 것이 진실을 더 또렷이 말해주는 유일한 방식이 된다.
이 앨범의 위대함은 진심이나 일기장 같은 감성 따위의 진부한 언어로는 결코 환원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조차 해체해가는 일련의 실험이자 수행이다. Elverum은 트랙마다 악기와 감정, 구조와 의미를 계속 바꿔가며 나를 혼란에 빠뜨린다. The Moon의 붕 뜬 신스와 나른한 멜로디, I Felt Your Shape의 민낯 같은 어쿠스틱, 그리고 마지막 My Warm Blood의 길고 피폐한 사운드스케이프. 이 모두는 하나의 통일된 내러티브를 구성하기보다, 무너진 감정의 시간들을 병렬로 배치해 삶의 단면들을 엿보게 만든다.
이 앨범은 실패에 대한 시도로 이해될 수도 있다. 사랑의 실패, 이해의 실패, 표현의 실패. 하지만 Elverum은 그것들을 마치 의도된 불완전처럼 다룬다. 사랑은 완결될 수 없으며, 관계는 애초에 합일이 아닌 충돌의 연속이고, '음악은 감정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매체다'라는 전제를 그는 앨범 전체에 걸쳐 집요하게 펼쳐 보인다.
The Glow Pt. 2는 구조적 불안정성, 감정적 진동, 기술적 결핍이 모두 의도된 미학으로 전환된 드문 사례다. 이는 단순히 '로파이여서 더 진짜처럼 들린다'는 식의 말로 포장될 수 있는 음반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고의적으로 부숴진 사운드와 감정의 모자람 속에서 더 근원적인 존재의 형상을 탐색하는 실존적 음악이다.
앨범을 듣는다는 것은 그 폐허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이미 지나가버린 계절, 무너진 언어, 꺼져가는 불빛.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곳에서 삶은 가장 또렷하게 형체를 드러낸다. 이 앨범은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진 않지만, 살아 있는 소리로 그것을 감각하게 만든다.
The Glow Pt 2는 하나의 문장이 아니라, 고백이 반복되다 사라지는 메아리다. 그 울림이 다 사라지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자기 안에 남은 따뜻한 피의 잔열을 느끼게 된다. 불타버린 집 속에서.
:)
개추 ㅋㅋㅋㅋㅋ
요즘 빠진 앨범인데 좋은 글 감사합니다 처음 이 앨범을 접했을 때는 특유의 불안정성 때문에 즐기지 못했는데 음악을 좀 더 듣고 난 후 다시 들어보니까 이 점이 매력으로 다가오더라구요..그래서 그런지 “ The Glow Pt. 2는 구조적 불안정성, 감정적 진동, 기술적 결핍이 모두 의도된 미학으로 전환된 드문 사례“ 이 부분 되게 공감가네요
이 앨범은 리뷰도 어렵내;
:)
잘 읽었습니다
크
온전히 느끼지 못했던 앨범인데 다시 들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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