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위
the greatest
라나 델 레이의 커리어는 갖은 구설수와 오해로 편벽되어 있지만 동시에 그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들이 마냥 틀리지는 않다. 그의 신비로운 목소리음색과 뛰어난 작사실력이 과소평가받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음악을 조율하고 장악하는 아티스트로서의 재능을 보이는 데에 의구심이 생기는 것도 근거없지는 않다.
그렇게 Norman fucking rockwell이 발매되었고 라나 델 레이는 단숨에 시대의 표징으로 올라선다. 비평가들은 이 도약- 어느 역사에나 있어온 간극들-에 어리둥절하며 찬사를 보냈다.
그 중 the greatest는 라나의 고혹적이고 신비로운 음성과 절묘한 작사가 웅장하고 거대한 편곡에 어울러진 대곡이다.
We didn't know that we had it all
But nobody warns you before the fall
이 압운에 담겨진 가사가 현재미국의 풍경을 그린 소묘의 일부일 거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았겠지만 라나 델 레이는 이 곡으로 그에게 덧입혀진 온갖 의문부호들을 지우고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 곡의 가치는 정확히 거기 있다.
9위
get lucky
다프트 펑크의 세계는 크게 두 가지로 함축할 수 있는데 아련함과 경쾌함이다. 전자를 대변하는 곡이 discovery의 something about us라면 get lucky는 후자다. 나일 로저스의 펑키한 기타소리에 알맞게 조율된 퍼렐의 목소리를 들으면 몸은 저절로 그 리듬에 적응하게 된다.
사이먼 레이놀즈는 그의 저서 레트로 마니아에서 과거에만 집착하고 과거의 유산을 탐닉하는 현재를 걱정한 바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다프트 펑크의 음악은 늘 현재에 가깝다.
그들의 음악은 과거를 향한 자폐적인 그리움이 아니라 과거를 받아들여 현재에 그것을 채색하는 행위다. 그렇게 그들은 디스코와 펑크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도 그 시절에 향수를 느끼게 만든다. 대상이 무엇이든 향수는 모든 인간의 근원이고 음악의 시원이다. 이 두 로봇은 그것을 잘 알고 있다.
8위 runaway
칸예 웨스트는 천재였고 혁신자였으며 선각자였고 멍청이인 동시에 문제아이다. 불행히도 그의 천재성이 총기를 소진한 지금 그는 그저 잘못된 사고방식과 언행을 일삼는 (돈이 매우 많은)중년이다.
하지만 runaway는 지금의 그와 달리 십수년 전의 칸예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였는지 깨닫게 한다.
이 곡에 대한 판단은 첫 피아노음이 울릴 때 결정된다. 그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오만한 확신이다. 그리고 그가 옳았다. 그 홀로 울리는 피아노음은 38초 후 시작될 청각적 스펙타클의 전조이자 칸예 웨스트가 가졌던 천재성의 증표다.
푸샤티와 칸예의 랩은 본인들의 본능을 표출하며 후반부의 샘플들과 사운드는 청자들을 황홀경에 이르게 한다.
칸예의 장력은 힙합의 요소들을 강한 구심력으로 응집시켜 하나의 사건을 만들어냈다. 슬프게도 그는 이 능력을 잃었다.
7위 smile
제이지는 수식어가 많은 래퍼이다. 이 곡과 이 앨범을 발매할 때 제이지는 바람피우고 아내의 여동생에게 엘리베이터에서 맞는 장면의 미장센을 본인 커리어에 추가한 상태였다. 그리고 제이지는 노아이디와 함께 자신의 반성 뭐 기타 등등을 담은 앨범을 세상에 내민다. 누군가에게는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솔직한 회개일수도 누군가에게는 변명일수도 누군가에게는 두 슈퍼스타 부부의 음악프로젝트일수도 있는 곡들이었다.
스티비 원더의 곡을 샘플링한 smile은 제이지의 놀라운 기술보다는 한 분야의 거장으로서 내미는 고백에 가깝다. 본인 어머니에 대한 진술은 힙합이라는 세계를 생각하면 다르게 들리고 가사는 제이지답게 본인의 말을 전달한다.
나에게 놀라웠던 점은 제이지가 이 곡에서 보이는 태도나 조언이 전혀 꼰대스럽지 않았다는 점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는 한 가지 사실에서 기인한다. 그를 둘러싼 수식어들이 아무리 많든 결국 그가 데뷔한 이래 가장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세계 최고의 래퍼'이다. 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유효하다.
6위 hold on, we're going home
'왜 다들 드레이크 노래를 드레이크보다 잘 부르는 거야?' 악틱 몽키스의 커버영상에 달린 댓글은 우리 모두를 웃음짓게 하지만 드레이크의 이 곡은 이 시기의 드레이크가 얼마나 좋았는 지 새삼 깨닫게 한다. 그가 스트리밍에 미치고 두 번의 디스전에서 처참히 짓밟힌 지금 이 곡을 듣는 기분은 묘하다.
이 노래는 타일러의 earthquake처럼 힙합과 알앤비 사이의 건을 지웠으며 몽환적이고 습윤한 사운드는 청자들을 편안하게 몰고 간다. 얼터너티브 알앤비의 아버지로서 드레이크는 이 곡으로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5위 lazaruss
예술을 통해 부활한 대가. 위대한 예술가들은 때때로 본인의 죽음까지 예술의 일부로 만든다. 데이비드 보위의 블랙 스타는 그 예이며 예수가 부활시킨 남자의 이름을 딴 이 곡은 죽음을 앞둔 한 인간의 위대한 투쟁이기도 하다.
이 곡은 록의 집대성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분야에 대한 탐구에 가까우며 그의 도전의식이 어디까지 나아갔는지 알 수 있는 증거다. 르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처럼 대가들은 본인의 커리어를 갱신해나가고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를 일깨운다.
휴대하면서 음악을 듣는 시대가 열리며 집중해서 음악을 청취하는 일은 매우 드문 경우가 되었다. 하지만 보위의 이 곡과 앨범은 우주에 그와 나만 있게 만든다. 그가 늘 했던대로
4위 Q.U.E.E.N
자넬 모네는 흑인음악의 유산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해 본인의 개성을 축조한다. 그의 목소리는 소수자들, 괴짜들,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본인의 빛나는 단독자로서의 힘을 형형히 천명한다. 반복되는 루프의 리듬감 속에 자넬의 목소리는 멋진 가사들을 내뱉는다. '나는 인생이 리허설 없는 연극이라고 들었어' '나는 모든 꼬리표를 거부해'
잃어버린 세대, 마빈 게이, 필립 K 딕의 인용을 이용해 그는 이 시대를 고발하고 거기서 단단히 일어난 자신의 존재를 용기있게 밝힌다. 그럼으로써 자넬은 인류의 목소리가 된다.
3위 alright
켄드릭 라마는 한 인간이고 그에게는 수많은 정체성이 있다. 하지만 시대는 그들의 시대정신을 투과하며 그 시대를 정의하는 존재를 찾고 켄드릭 라마가 낙점되었다. 켄드릭의 신묘한 래핑과 퍼렐의 손길이 닿은 사운드는 소위 랩훅의 정수를 보이며 켄드릭의 래핑은 과장해서 말하면 신들렸고 정확히 말하면 역대최고다. 예컨데 좋은 음악은 다양성과 질서가 황금비를 이루며 귀를 사로잡는다. 21세기 들어 음악은 집중의 대상이 아니라 집중의 보조제가 된 듯 하지만 어떤 예술가는 본인의 목소리를 각인시키며 시대의 상징이 된다. 이를 그가 반기는지는 논외로 결국 그는 이 시대를 정의하게 되었다.
2위 self control
음악은 크게 사운드, 리듬, 멜로디, 음색, 가사로 분류할 수 있다. 프랭크 오션은 이 다섯가지 항목서 만점을 받을 수 있는 가수고 2010년대를 대표하는 목소리다. self control은 그가 전작의 성공법과 당대의 성공공식을 무시한다는 점서 놀랍지만 이.곡의 후반부의 공간감 넘치는 사운드, 시적인 가사, 오션의 목소리는 총체적인 경험으로 청자들을 멍하게 만든다. 오션의 음악은 품이 넓다. 그렇기에 청자의 경험과 기억조차 본인 음악의 일부로 만들고 곡을 확장한다. 어쿠스틱 기타 기반의 전반부, 후반부 오션의 가창을 극대화하는 공간감 가득한 편곡은 이 곡의 위치를 높이면서 경계를 넓혀 청자의 기억을 끌어들이고 곡의 여백을 채워놓는다. 이는 극소수의 예술가만이 다다를 수 있는 경지다. 프랭크 오션은 음악이라는 언어로 대화하는 권능을 가진 매우 드문 존재다.
1위
should have known better
수프얀의 이 곡이 수록된 앨범의 비화는 다들 알 것이다. 하지만 그 정보를 알아도 이 곡은 알 수 없는 신비로 가득차있다.
지속적으로 들리는 Pedal point는 때때로 극복할 수 없는 과거로 들리기도 한다. 이 앨범에는 디즈니 식의 화해가 없는데 이는 수프얀은 진짜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에서 어떤 상처와 고통, 공허는 메우거나 극복할 수가 없다.
should have known better가 의미하는 것은 결국 그 때는 몰라다는 사실이고 과거는 수정될 수 없다는 잔인한 진리이다.
Nothing can be changed
The past is still the past
그 무엇도 변하지 않으며 과거는 과거이다. 시간에 흘러도 극복할 수 없는 상처는 상처라는 사실을 수프얀은 담담하게 노래한다.
삶은 동화가 아니라는 것을, 삶은 고통과결핍으로 존재함을 이야기한다. 사랑과 슬픔이 하나이며 과거는 수정될 수 없음을 노래한다. 우리의 과거 속 상처들을 소환하고 응시하게 만들며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한다. 공허를 말하며 희망을 전하고 아픔을 노래하며 치유를 믿게 만든다. 반복되는 곡조처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게 한다.
수프얀은 치유할 수 없는 상처와 극복할 수 없는 결핍이 있음을 안다. 삶은 고통과 결핍이며 그와 함께 살아가야하는 슬픈 여정임을 그는 안다. 이 앨범서 그가 노래하는 것은 구원과 치유가 아니라 상처와 상실,결핍이다. 그럼에도 아니 어쩌면 그랬기에 우리는 이 노래들을 다 들었을 때 아름다움과 치유,희망을 발견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냐고? illumination!
Smile이나 Queen은 잘 선정되지 않는 곡인데 저도 좋아하는 노래들이라 반갑네요 ㅎㅎ
Chic의 Good Times가 21세기에 환생한다면 Get Lucky가 되지 않을까요? ㅋㅋ
the greatest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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