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gelo - Brown Sugar
재즈 클럽 위 유희를 즐기는 사교 모임. 술과 음식이 가득한 테이블. 몽실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군데군데 퍼지는 담화 소리. 다이닝 밴드 연주 소리. 피아노 연주자는 감미로운 목소리를 뽐내며 곡에 몰입한다. 곧 엘리베이터가 멈춰서는 때, 건반을 놓치고 만다. 어여쁜 얼굴. 눈길을 빼앗는 몸매. 그리고 아련한 눈웃음. 동료들 눈초리는 온데간데 없이 무심한 척 눈을 맞댄다. 눈동자가 닿는다. 숨을 죽인다. 순간이 영원처럼 멀어진다.
그곳이다. <Brown Sugar> 속 D'Angelo는 그곳이 아니면 존재할 수 없다.
60-70년대. 모타운 알앤비가 전국 라디오와 가정집으로 처음 인종 음악을 퍼트릴 때, 소울은 가스펠의 자식들을 눈여겨보며 태동했다. 어릴적 D'Angelo는 선교사 아버지를 둔 버지니아의 성가대 일원이었고, 흑인 음악을 노래하기에 더없이 완벽할 운명이었다.
그러나 탄생을 알린 <Brown Sugar>는 아닌 듯 보일 뻔했다. 비록 인종주의를 다소 등한시한 90년대의 알앤비 팝스타들에 미치지는 못해도, 황홀한 사운드 뒤 단면적 주제들은 무던히 어림잡아도 섹스 어필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신인 가수가 이리 도전적으로 섹슈얼리즘을 노래할 수 있다니! Prince가 일으킨 반향 이래 새로운 문제아가 탄생했다. 네오 소울이라는 용어 정립 하나로는 이 까다로운 엑스터시 종합체도 무자비한 장르 규격화로 뭉뚱그릴 수 없었다.
때문에 <Brown Sugar>는 완전한 복원으로 꿈꾼 장르 리바이벌보다 그가 향유해온 음악의 흡수와 재해석에 가까웠다. 웰메이드 크로스오버다. Marvin P. Gaye와 Stevie Wonder 등에게서 비롯된 소울과 알앤비 기반, 전설적인 90년대 힙합의 영향력, 약간의 재즈 향과 가스펠 요소, 그리고 영원토록 존경하던 우상 Prince의 화법과 인삿말까지 섭렵한 콜라쥬.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 뿐, D'Angelo였다.
그러한 문법 아래 앨범 전체를 꿰뚫는, 되돌아올 때마다 감탄하게 만드는, 감쪽같이 숨겨둔 가사들이 아니고서야 작품을 논할 수 없다. 모두 첫눈에 녹아 스며든 사랑들이다. 애간장이 타면서("Smooth"), 야릇하고도 외설적이고("Brown Sugar"), 때로는 위험하고 삐그덕대기도 하지만("Shit, Damn, Motherfucker"), 울퉁불퉁하게 오고 가는 일들이 있을 뿐 매순간은 절절 끓는 사랑이다. 그 대상조차도 다양하다. 여성들과 벌인 남사스러운 일담도, 은유로 둘러싼 탐닉과 중독들도, 혹은 그 무엇이 아닌 경우도. 끝에 이르면 한 결론에 모인다. 이 모두가 그에게 꼭 걸맞은 아지트다.
육감적인 유희들이 뒤섞인다. 유혹하고 유혹당하며 환희와 질책을 오가는 복가적 감정들이 노닌다. 누군가는 결별하고 누군가는 눈이 맞는다. 오직 한 목소리로부터, 스물한 살 청년이 품은 양가감정들과 한 덩어리가 된다. ‘나’와 ‘너’ 모두가 불분명한 러브 스토리들을 늘어놓은 뒤, 그는 "Higher"라는 마무리로 수많은 엑스터시들을 끼얹고서 격식 있게 재즈 클럽을 퇴장한다. 역시 완성되지 않았으나, D'Angelo였다.
D'Angelo는 이곳이 아니면 존재할 수 없다. 성탄절의 슬레이벨. 또는 대성당의 파이프 오르간. 아니면 관현악 교향곡의 첼레스타와 글로켄슈필이다. 배경은 차분한 템포와 여린 리듬의 연속이다. 농염한 목소리가 청자를 밀고 당기며 이야기 속 달콤한 사랑 고백으로 이끈다. D'Angelo는 진정 이 사랑들을 위해 탄생했다. 그럴 운명이었다.
모두들 미래에서 D'Angelo를 되짚기에, 무시무시한 첫걸음은 사실 가장 그답지 않았음을 종종 까먹는다. 시작은 회귀와 부흥으로, 결실은 미성숙하게 발화하던 불씨로. 치기 어린 사랑과도 같다. 겉은 전부인 줄만 알고, 속에는 타오름을 넘어선 불길이 있었음을.
몰랐다. 20년의 시간을 넘어서, 그가 말하려 했던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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