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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Parkta19582025.01.14 11:22조회 수 299추천수 1댓글 4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윤동주만큼 시선이 편벽되고 고정된 시인이 있을까요? 때때로 이 맑은 영혼에 우리는 시대를 투과하기도 본인의 욕망을 투사하기도 합니다. 도저히 윤동주라는 시인을 그 시대를 감내하던 한 청년과 분리시키지 못합니다. 뭐 그 분리가 가능하냐 고 물으면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때로 이 시인의 말들을 그런 부박한 틀들, 반성과 부끄러움,시대,로 가둘 때 저는 갑갑함을 느낍니다.


 이 시의 감동적인 대목들은 많습니다. 


마지막 연,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라는 구절에서 윤동주는 본인과의 화해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그 손은 작습니다. 그리고 최초의 악수는 눈물과 위안이 공존하죠.

 윤동주는 감동적인 본인 자아와의 첫 화해에도 작은 손이라는 겸손함을 쓰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윤동주라는 시인에게서 자아의 분리,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 사이 간극 이라는 테마가 중요하다는 걸 감안하면 이 악수는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내미는 손은 작고 시인은 울고 있습니다.


인생은 어렵다는데

이 구절은 어렵지만 이 아닙니다. 어렵지만은 본인의 판단이고 어렵다는데는 남들의 판단입니다. 즉 본인에게 인생이 어렵다 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가 에 대한 망설임이 이 구절에 녹아있죠. 여컨데 이 망설임. 타인이든, 삶이든 내가 이렇게 말해도 될까 라는 발화의 자격과 윤리를 되묻는 망설임이 그의 시에 아름답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삶이 쉽지 않았음을, 누구보다 어렵다 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음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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