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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까?

Parkta19582024.12.31 19:08조회 수 646추천수 13댓글 8

이건 무슨 나무죠?

''느릅나무'

'왜 저렇게 시커멓지?

''벌써 저녁이니까, 사물들이 전부 검게 보이는 것이에요'

 

체호프의 갈매기에 나오는 이 대화로 우리는 위대한 예술가의 천재성을 알 수 있습니다.연극 초반부, 나무에 주목하면서 작가는 두 연인의 어긋남을 암시합니다. 하지만 체호프이기에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저녁이어서 전부 검게 보인다는 말은 결국 우리 인생에 대한 표현입니다. 인간이란 검은 나무라는 은유로 서글프고 유약한 인간의 실존을 드러냅니다. 오로지 체호프만이 가능한 섬세함이지요.

 

저는 살아가다 라는 말이 때때로 어색합니다. 우리는 살아가지만 그것은 사실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여정이기도 하니까요. 살아가다와 죽어가다는 동의어입니다. 그렇기에 살아서 뭐하지 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생존에 대한 압박에 끊임없이 시달리기에 삶에 대한 질문이 더 미약해지기도 합니다. 삶이란 무슨 의미가 있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요?

 

To be or not to be, 지구가 낳은 가장 위대한 인간들 중 하나가 인류를 위해 남긴 선물은 이 구절로 유명합니다. 사는냐 죽느냐, 존재냐 부재냐, 하느냐 마느냐 등등 많은 번역이 가능하지만 이 be는 그 모든 함의를 내포하므로 거대한 질문이 됩니다. 삶이 고통인 이유는 우리가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이라는 극장은 수많은 영화들을 상영하지만 우리는 고작 하나만을 볼 수 있습니다. 삶은 내가 선택한 길과 가지않은 길들의 총합체입니다. 나이 들어갈 수록 가능성들은 사라집니다. 사실 태어난 순간 가능성들의 대다수가 없어지기도 합니다.

삶은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책임이고 산다는 것은 가능성을 삭제하며 죽어가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 역시 선택하지 못한 책임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저 구절로 고뇌하는 한 영혼은 인간이 무한공간의 왕이면서 먼지의 정수라는 사실에 괴로워합니다. 정말이지 인간이란 걸어다니는 그림자이고 인생이란 소리와 분노로 가득찬 바보의 무의미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even so, 그럼에도 라고 번역될 수 있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이자 가난한 노동자이며, 소설가와 시인이기도 했던 사내는 그의 마지막 시에 이 단어들을 삽입했습니다.

'그럼에도, 너는 이번 생에서 네가 얻고자 한 것을 얻었나?

'그렇다'

이 남자는 even so라는 말에 그 많던 삶의 고통을 넣은 다음 삶을 긍정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이 되지도 않는 과거에 600만명의 집시, 동성애자, 유대인들이 죽었습니다, 아니 도륙되었다 가 더 적확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더 윤리적이고 정확한 문장은 '그들 자신이라는 이유로 600만 번의 죽음이 있었다’일 것입니다. 아우슈비츠든, 1980년의 광주든, 드레스덴이든, 벨기에가 압제하던 콩고이든,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이든, 가자 지구이든, 우리는 삶과 개인이 말살되고 폭력만이 남은 것들을 봅니다.저를 두렵게 만드는 것은 이 모든 학살들에도 누군가의 일상은 유지된다는 사실입니다. 정말이지 '세상에는 눈물이 일정한 분량밖에 없어, 다른 데서 누가 또 울기 시작하면울던 사람이 울지 않게 된다.' 라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 있던 세상은 그대로니까요.

저는 생존만이 유일한 가치였던, 아우슈비츠에 수감되었던 작가이자 화학자를 떠올립니다, 그 화학자는 지옥에서도 몸을 청결히 유지합니다. 한 동료가 한 말 때문이었습니다.

'수용소는 우리를 동물로 격하시키는 거대한 장치이기 때문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동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곳에서도 살아남는 것은 가능하다.......죽을 것이 확실하더라도, 우리에게 한 가지 능력만은 남아 있다, 마지막 남은 것이기에 온힘을 다해 지켜야 한다. 그 능력이란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물론 동물들도 존중해야 합니다)

 

이제 제 이야기를 꺼낼 차례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겠지요. '뭐? 너의고통이 저런 부조리하고 불가해한 비극과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해?'

정확한 말입니다, 고통에 서열을 매길 수 없지만 저의 것은 감히 저런 비극에 얹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대다수는 생존을 위한 분투와 사랑받기 위한 부박한 노력들 사이에서 고통받습니다. 그렇기에 비도덕적이지만 조금의 말은 얹을 수 있으라라고 믿습니다.

 

영화와 책,음악을 사랑하는 사람, 남자를 더 좋아하는 동성애자, 지적인 사람, 인어를 잘 다루는 사람, 피해의식과 애정결핍에 시달리는 이기주의자, 어린 시절 이혼과 재혼, 그 사이에 얽힌 가정불화와 학대에 시달린 사람, 매력없는 사람,외톨이, 믿음직스러운 친구들을 괴롭히는 우울증 환자, 10대 시절까지 가난에 시달린 사람 자해하는 사람,

저는 저를 이렇게 생각하고, 남들은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있겠지요. 고독과 자기 연민,자아도취에 빠진 사람이 저만은 아닐 겁니다, 생존에 대한 압박과 자기연민, 애정결핍은 저의 지옥이고 각자 모두 각자의 자옥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삶이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왜 살아야할까요?

 

Say yes to life, in spite of everything,

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삶에 예라고 답할것, 그 자체로 멋진 구절이지만 이 말이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사람의 말이라면 달리 들릴 겁니다,

그 everything에 우리는 말 그대로 모든 것들 끔찍한 폭력과 생존투쟁, 애정결핍,고독,무의미 등등 빌어먹을 것들을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삶 그자체를요.

 

그렇다면 in spite of에 무엇을 욱여 넣을 수 있을까요?

저는 별들 하나하나에 본인이 사랑하는 것들을 호명하던 시인을 떠올립니다. 저 역시 하나씩 불러볼까 합니다. 히치콕, 존 포드, 자크 타티, 박찬욱, 폴 토마스 앤더슨의 걸작들과 평범한 모든 영화들을, 셰익스피어, 입센 그리고 평범한 이들의 회곡들을, 윌리스 스티븐스와 어느 이름 모를 할머니가 처음 글을 배우고 쓴 시를, 제 발을 어루만지던 바다를, 봄을 실어오던 바람을, 버스에서 저를 툭툭 건드리던 햇살을, 여전히 저라는 인간을 견디는 제 주변 친구들과, 혹은 저를 떠나버린, 제가 잘못한 이들을 , 제가 책 읽을 때 안기는 고양이와 펩 과르디올라와 메시, 데브라이너의 축구를, 무엇보다 에드워드 양과 체호프, 카버, 수프얀 스티븐스를 열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in spite of-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표현에 저를 아프게 만든 모든 것들, 그러니까 제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모든 것들을 담고 싶습니다.

‘'알기 위해 믿는다' 삶의 가치와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삶을 믿어야합니다. 왜냐하면 삶은 별 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것들로 가득차 있거든요.

To be or not to be를 고민하던 청년은 독백을 멈춥니다. 그리고 진실된 친구와의 대화를 let be로 마무리 합니다. 있는대로 받아들이겠다,로 해석할 수 있겠죠. 이 구절은 아우슈비츠에서 저항한 이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니까 저 청년, 햄릿은 삶을 마주하고 그 끝이 패배이더라도 받아들입니다. 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삶을 있는 그대로 살아갑니다. 때때로, 아니 모든 순간 삶은 질문합니다. 그 모든 것들이 있는데? 결국 우리의 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yes!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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