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데 노래의 가사와 관련해서 좋은 내용이 있길래 한 번 옮겨 봤습니다*^^*
푸른역사에서 2013년에 출간한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좋은 가사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찬찬히 뜯어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1980~90년대에 인기 있던 민중 가요 <솔아 푸르른 솔아>(1986) 같은 작품은, 그저 노래로 부를 때에는 그 가사 구절구절이 감동스럽습니다. 그런데 가사만 놓고 찬찬히 살펴보면, 정말 이상합니다.
"거센 바람이 불어와서 어머니의 눈물이", 첫 소절의 가사가 이렇게 끝납니다. 그 다음 소절이 "가슴 속에 사무쳐 오는"으로 시작하는데요. 뭐가 사무쳐 오죠? 앞 소절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어머님의 눈물'이 사무쳐 온다고 봐야 하는데, 음악의 흐름은 네 마디씩 소절로 끊겨 있으므로, 노래를 부를 때 '어머님의 눈물'과 '사무쳐 오는'을 의미로 연결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 다음 소절이 "민중의 넋이 주인 되는"으로 시작하는데요. 민중이 주인이 되는 거지, 민중의 '넋'이 주인이 되는 거는 또 뭡니까? 이어서 "시퍼렇게 쑥물 들어도 강물 저어 가리라", 난데없이 강물이 튀어 나옵니다. 참 뜬금없습니다.
그리고 감동스러운 클라이맥스 부분입니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푸른색의 이미지가 앞에서는 '쑥'이었는데 갑자기 '소나무'로 바뀝니다. 게다가 '샛바람'은 동풍 凍風입니다. 동쪽에서 부는 바람은 그리 추운 느낌이 아니죠. 된바람, 즉 북풍쯤은 돼야 춥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데 이 구절을 '된바람에 떨지 마라'라고 고쳐 부르면 음성적 재미가 확 떨어집니다. '솔'과 '푸르는'에서 'ㅅ'과 'ㅍ'이 주는 기운 찬 느낌이 있는데, '샛바람'은 'ㅅ'과 'ㅃ' 발음이 그 느낌을 이어주지만 부드러운 'ㄷ'과 유성음 두 개가 연결되는 '된바람'은 그 느낌을 급격히 떨어뜨립니다. 그러니 의미와 무관하게 '샛바람'이라는 말을 썼을 거예요.
자, 보세요. 이 감동스러운 노래의 가사를 시처럼 분석하면 이렇게 엉망진창입니다. 그런데 이게 그리 나쁜 가사라고는 볼 수 없어요. 한 마디로 말해, 노래가 되거든요. '노래가 된다', 그거 참 중요한 말입니다. 안치환은 노래가 뭔지, 이성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몸으로 아는 사람입니다. 말이 안 되는데, 노래가 되는 사람이에요. 아주 뛰어나요.
반면에, 의미가 정연하고 이미지 전개도 좋은데, 노래로 불러보면 '노래가 안 되는' 가사도 매우 많습니다. 둘 다 잘 되는 사람도 있어요. 김민기나 문승현이 지은 노래는 의미가 정연하면서도 노래도 돼요. <아침이슬>(1970) 같은 노래는 가사만 떼어놓고 봐도 의미가 정연하고 이미지 전개가 말끔합니다.
저는 노래 가사라면, 의미가 다소 부실하고 이미지 전개도 엉망이라 할지라도 노래를 불렀을 때 노래다운 가사가 좋은 가사라고 생각합니다. 노래 가사는 시가 아니고, 모든 노래가 다 시적일 필요도 없다는 겁니다."
좋은 글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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